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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60화 (9/1,000)

00060   11. 기축옥사  =========================================================================

왕실의 비밀 허락을 얻어 이주 희망자 모집이 삼남 지방에서 반쯤 공개적으로 진행됐다. 인구유출에 반대하는 고을 수령들의 저항이 약간 있었으나 내수사가 나서서 지원해주는 일이라 적은 숫자라면 용인하고 넘어갈 분위기였다. 조선시대 양인에게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것은 군역과 공납, 부역 등 국가의 수취제도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활하기 어렵고 고달파도 고향을 떠나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한정 없는 전복 공납 때문에 왜구에게 붙었다는 사화동 같은 사람이 분명히 있지만, 그런 배반자는 조선 통틀어서 극히 적었다. 이민호의 속을 썩이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대만에 다녀온 간수군들이 ‘개척 초기라서 생활은 다소 불편해도’ 땅을 얻을 기회는 많다고 좋은 말을 하고 다녔으나 이민 대상자들에게 중요하게 들리는 것은 생활이 불편하다는 말뿐이었다. 이앙법이 전국 규모로 확산되면서 좀 더 많은 소작농들이 농토에서 밀려나야 그들 중 일부가 이민을 생각해볼 것 같았다.

실망한 이민호는 손권이 인간 사냥을 하고 다닌 것을 떠올리며 그를 이해하기로 했다. 국가에 백성이 부족하면 국방부터 경제까지 도대체 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첨지 영감, 아니 도련님! 저를 보십시오. 해결책이 보이지 않습니까?”

“계복이 너 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일부러 그러는 거지? 널 보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무슨 해결책?”

“노비를 사십시오. 저처럼 가짜 말고 진짜로요.”

계복의 노비 문서는 이미 계복의 품안에 들어있었다. 언제든 양인이 될 수 있으나 병역기피와 부역회피를 위해 계속 노비 신분을 유지하는 것뿐이었다. 천민 입장에서는 군역과 공납의 부담이 큰 양인을 건너뛰고 바로 양반이 되는 것이 최고의 신분상승이었고, 군공이나 납속에서 자주 나타난다. 천민에서 양인이 되는 것은 천민들이 꺼릴 수 있었고, 오히려 양인이 내수사 노비가 되는 것을 선호했다.

노비를 사는 것이 이 단계에서 어쩌면 가장 쉬운 방법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노비를 사고파는 행위에 강한 혐오감을 느꼈다.

사실 조선시대 양반사대부들도 그런 비슷한 감정 때문에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눠줄 때가 아니라면 노비를 파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다. 유교의 불사이군(不事二君) 개념이 노비와 주인 사이에 적용돼서, 양반과 같은 인간인 노비에게 다른 주인을 모시도록 강요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과하다는 식으로 여긴 탓이었다.

“노비? 쳇! 나도 그런 생각 안 해본 줄 알아? 사노비는 분명히 사고팔 수 있는 것이 법이지만 실제 거래되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

“작년까지도 사실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이앙법이 유행하면서 소작농들이 계속 농지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주에게 투탁해서 노비가 되고 있지만 지주의 농지가 계속 늘어나지 않는다면 지주들이 수용하는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노비 한 구에 얼마야?”

“요즘 시세가 전마 상품이 면포 500필, 중품이 400필, 황소가 300필, 젊은 노와 비가 150필에서 170필 사이입니다. 해동상단을 동원하면 삼남지방에서 노비 일만 구쯤 쉽게 모을 수 있습니다.”

이민호가 보기에도 계복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해결 못할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고산국에 가느니 차라리 노비가 되겠다는 사람들이다. 고산국으로 가는 배에서 물에 뛰어들까 겁난다.”

“노비가 되나 고산국에 가서 사나, 사람들은 시간 지나면 다 적응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 고산국에 가면 즉시 노비문서를 소각해준다고 해. 그리고 마음에 안 들면 조선에 다시 돌아와도 상관없다고 말해. 노비를 구할 수 있다면 정기적으로 노비들을 배로 실어 날라야겠다. 항로도 대충 파악됐으니 열흘에 한 번씩 해중국과 좌수영 사이를 교대로 왕복하도록 외륜선 사공들에게 시켜라.”

“정기 객선을 운영하면 간수군들이 자주 교대할 수 있어서 좋아하겠습니다. 그런데 도련님이 말한 방식이라면 스스로 몸을 팔아 노비가 되어 고산국에 갔다가 다시 조선에 돌아오는 것을 업으로 삼는 놈들이 생길 겁니다. 첨지 영감, 아니 도련님만 호구 되는 거죠.”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그 제도의 빈틈을 악용하는 인간들이 틀림없이 생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법과 제도는 현실에 맞게 꾸준히 개선돼야 하며, 제도가 적용되는 단계에서 실무자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해야 한다.

정부의 고위 관리가 부정부패를 일소하느니 뿌리 뽑느니 하고 쉽게 말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제도의 부실은 제도로 고쳐야 한다.

“그럼 배 삯을 높게 받아야겠군. 고산국에서 3년 이상 일해야 배 삯을 낼 수 있도록 바가지를 씌우자. 간수군은 당연히 무료로 하고.”

“밀항을 원하는 자들이 많을 테니 사공들 부수입이 많아지겠습니다.”

“사공들이 늠료를 그렇게 많이 받는데도 푼돈에 욕심을 낸다면 어쩔 수 없지. 외륜선 사공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줄을 섰으니 바꾸면 돼.”

“비밀유지를 위해 그 동안 계속 같은 사람들을 사공으로 썼지 않습니까?”

“가끔 좌수영에 가서 아전, 진무들에게 들어 보면 우리가 뭘 하고 다니는지 다 알고 있더라. 간수군이든 사공이든 일단 술 한 잔 들어가면 비밀이 술술 새나가는 건 마찬가지야.”

이민호가 그 동안 함께 일했던 간수군과 사공들에게 불만을 표했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신뢰하면서도 일하다 보면 불평불만이 생기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심한 경우도 많아서 꽤나 불편한 경우도 자주 당했다.

며칠 뒤부터 전라좌수영 소포에서 외륜선이 한 척씩 가족 단위로 노비들을 태우고 정기적으로 출항했다. 배가 떠날 때마다 포구는 눈물바다를 이뤘다. 이민호는 자기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속으로 많이 불편했지만 노비들을 고산국으로 보내는 일을 계속 추진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민호의 개척 사업이 조정에서 본격적으로 공론화가 되었다. 논란이 가중되면서 이제는 여론이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알 수 없었다. 현재 배를 타고 나가는 노비들을 제외하더라도 일단 조선 백성이 조정의 허락 없이 국경 밖으로 나가 땅을 개척한 것은 잘못이었다. 해금 정책을 무시하고 바다로 나간 것은 더더욱 큰 문제였다.

그래도 이왕 땅을 개척했으니 국경을 넘은 백성들의 잘못을 사해주고 정식으로 조선 영토로 편입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것은 왕실과 친인척 관계로 얽힌 가문들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이민호가 사업을 계속하도록 돕기 위해 왕실이 움직인 것은 분명했는데, 대만을 조선 영토로 편입하는 것은 이민호가 바라지 않았다.

조선 백성들 위주로 섬에 들어가 개척했으니 당연히 지방관을 파견해 세금을 걷고 백성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현재 조정에서의 주도적인 여론이었다. 지금 고산국과 해중국에 조선인은 극소수였는데도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니까 그런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해중국과 고산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참칭한 것에 양반들은 무척이나 분노했다. 붕건적인 왕토사상에 의거해서, 민간에서 땅을 개척했더라도 임금에게 바쳐야한다는 것이 이 시대 양반들이 주장하는 당연한 논리였다. 속을 파고 들어가면 왕의 대리인으로서 양반사대부의 수조권을 통한 농민지배라는 체제가 적용되지 않는 땅에 대한 거부감의 표출이었다. 그러나 조선에서도 함경도와 평안도처럼 양반사대부가 수조권을 통해 농민지배를 하지 못하고 모든 역량이 국방에 소요되는 특수 지역이 있으므로 이와 비슷한 변경 개념으로 이해하자는 소수 의견도 나왔다.

이런 논의가 진행되면서 이민호라는 이름도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새 땅을 개척하고 밀무역을 하는 흉측한 자들의 수괴가 사실은 이민호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민호가 믿을 만한 소수가 아닌 다수의 간수군과 사공들을 고용해서 일을 시켰으니 언젠가는 터져 나올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마침 지금 폭발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천일염전을 개발하고 감자를 퍼뜨리는 등 조선 백성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하기에 헛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반대 여론도 강했다. 이민호가 겨우 열두 살이므로 그 부친 이응화가 배후조종자라는 소문도 당연히 나왔다.

이민호는 최근 돌아가는 이야기에 위기를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억울했다. 대만 땅에 조선인이라고는 최근 출항한 아주 극소수 노비들밖에 없고 간수군은 교대로 근무하는데, 조선 백성들을 빼돌려 해외에서 나라를 세우는 역적 취급을 하는 양반사대부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론은 그들이 만들어갔고, 조정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여론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이때 이민호를 수괴로 지목한 역모 고변이 여러 번 조정에 들어갔다. 심지어 간수군을 그만 둔 사람들 중에서 이민호가 밀무역을 하며 조선 조정 몰래 해중국과 고산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사실이긴 한데 봉건주의 관점에서 보면 심각하게 여겨야 할 발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민호가 내수사 전수를 만났다. 대만으로 건너간 조선 백성이 극소수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 땅도 밀무역을 위한 중개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미리 들어서 알고 있는 전수는 이민호를 믿어주는 편이었다.

“전수 영감! 해금령이 아직 살아있어 중개무역을 위해 나라를 세웠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조정 신료들에게 제가 그 섬을 개척 중이라는 사실을 다 공개해 주십시오. 왕명으로 섬의 개척을 추진했다고 하면 곤란할 테니 저를 포함한 개인들이 하고 있다고 하셔야 합니다. 복건성 앞에 주인 없는 큰 섬이 있어서 개척 중인데 명나라 가까이 있어서 그 위치 때문에 공개적으로 조선 땅으로 삼기 어렵고, 여차하면 천조에서 빼앗아갈 것 같아서 꼼수를 부렸다고 설득해 주십시오.”

“으음. 그래도 될까 모르겠소. 이 첨지의 순수한 뜻을 신료들이 받아줄지 그것도 잘 모르겠소.”

충직한 환관은 요즘 돌아가는 여론을 보고 나서 양반사대부들이 임금을 비판할까 두려워 한 발 빼고 있었다. 임금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 심지어 자기 목숨마저 버릴 수 있는 인간이 내수사 전수였으니, 이민호를 버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열 받은 이민호는 조선 땅에서의 기반을 다 포기하고 대만으로 가버릴까 하다가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잡기로 했다. 조선 백성들을 아직 더 많이 빼돌려야 하고, 조선과의 무역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겨우 2년 반 뒤에 임진왜란이 시작된다. 이민호가 돕지 않으면 조선 백성들이 떼죽음 당한다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이민호 혼자 몸만 빼어 나가는 것은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그것은 조선인이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다.

“지금 세워진 해중국이나 고산국이 사실은 명목상의 국가에 불과하고, 조선 땅임이 분명합니다. 올해 안으로 고산국 왕이 한성에 입조해서 신속(臣屬)할 테니 기다려달라고 설득해주세요.”

“이야기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것도 잘 안 먹힐 것 같소.”

“삼남지방의 넓이에 해당하는 주인 없는 큰 섬을 차지할 기회입니다. 명나라의 눈치를 살피느라 꼭두각시 왕을 세웠을 뿐이고 백성들이 우리 조선인들이니 고산국은 당연히 조선의 속국입니다. 다만 조정에서 관리를 파견해 직접 통치를 하기 어렵다, 이런 뜻으로 몇몇 신료들에게 비밀리에 전교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직 조선 백성은 몇 명 없어도 그렇게 설득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조선 조정에서도 새 땅에 대한 욕심은 분명히 있었다. 명나라 눈치를 보느라 압록강과 두만강 위쪽으로 올라가 영토를 확장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는 비판은 사실에서 벗어났다. 백두산 남쪽에 사군을 설치하고 폐지한 사례를 보면 고을 관아의 개폐 논의에 국방상 필요뿐만 아니라 경제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조선 후기에는 두만강 너머 간도를 개척하고 지방관을 파견했다. 기회가 생기면 조선도 영토를 얻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움직였다는 증거였다.

“미묘한 사대교린의 국제관계 속에서 아슬아슬 외줄을 타느라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득해야겠구려.”

“이 방법이 아니면 그 주인 없는 섬을 우리 조선이 영유할 길이 없습니다. 앞으로 조선에서 기근을 사라지게 만들 꽤 넓고 괜찮은 영토를 보유할 기회입니다. 이 중요한 때에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해야지요.”

“좋소. 최선을 다해보겠소.”

내수사 전수가 편전으로 달려갔다. 전수가 임금을 설득해서 임금의 뜻에 움직이는 대신들에게 비밀전교를 내려 조정의 여론을 바꾸는 방식이었다. 이민호가 주먹을 번쩍 치켜들어 파이팅을 외쳤다. 지금 이 시기에 이민호가 믿을 만한 아군은 전수밖에 없었다.

그까짓 땅, 언제든지 줘버릴 수도 있었다. 대만 남쪽이나 필리핀에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기 때문에 고산국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의 이민호에게 있어서 행동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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