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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57화 (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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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축옥사

좌수영에서 간수군들에게 휴가를 준 이민호는 바로 그 날로 방답의 둔전마을에 도착했다. 논밭은 어느새 다 개간됐고 앞으로 군사들이 둔전하면서 머물 집까지 30여 채를 만들어두었다. 지금은 부친이 집안 노비들과, 그리고 가끔 필요할 때마다 재 너머 방죽마을에서 품을 사서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봄이 됐는데 수원이나 한성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온 사방을 뻔질나게 드나드는구나. 상행은 잘 마쳤느냐? 그 맛없는 해삼 말린 거 팔아서 명나라 교자라도 사 먹겠든?”

“물론 사 먹을 수 있죠. 양이 좀 많아서 그렇죠.”

“그런데 그 궤짝은 뭐냐?”

이민호의 부친 이응화가 종 10여 명이 지고 들어온 나무 궤짝에 눈길을 돌렸다. 이민호가 해삼 판매대금으로 받은 천은(天銀) 일만 이천 냥이라고 하니 부친은 어이없다는 표정만 지었다. 어민들에게 해삼을 사서 집안 종들을 시켜 말린 것뿐인데 상행 한 번에 만석꾼의 일 년 수입을 넘어버리자 허탈했을 것이다.

물론 해삼을 말린다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예리한 칼로 해삼에 아주 작은 상처를 내어 내장을 뽑아내고 소금물을 부은 가마솥에 적정한 시간 동안 삶아 꺼내서 한나절을 밀봉해 둔 다음 햇볕에 말리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흑해삼이 아주 잘 팔립니다. 어민들이 먹고 살도록 아버지가 도와주세요.”

“소금을 싸게 생산한 다음부터 건어물이 많이 팔리고 있다. 네 덕택에 어민들이 아주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라. 해삼은 계속 수매해서 말려두마.”

그러나 이응화가 궤짝을 다시 보고는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도대체 이 은은 어디에 쓰지? 그 동안 해삼을 팔았던 어부들에게 나눠줘서 집이라도 새로 지으라고 해야겠구나.”

“삼 년 후에 전쟁인데요?”

“아차! 에휴! 그냥 맛있는 거라도 해먹으라고 해야겠다. 여기서 해삼 값을 더 올려줬다간 사람들이 해삼의 씨를 말려버릴 테고, 다른 방법으로 혜택을 줘야 하겠는데 말이야. 일단 어부들이 배를 만들 때 배 값의 절반을 내줘야겠다. 이걸로 다 못 쓰겠는데?”

이 시대의 만석꾼답게 이민호의 부친은 재산이 늘어나면 오히려 더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매해 수입이 백미 기준으로 만 석이 넘지 않도록 항상 경계했고, 버는 것보다 쓰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더 많이 들였다.

“마을마다 서당을 지어 훈장을 초빙하는 것이 어떨까요? 아니면 좌수영 수군들이 입번할 때마다 은 한 냥씩 주시든지요.”

“오오! 그거 좋다. 엄청나구나. 해삼 상행 한 번 더해라. 두 번 더해라. 서당도 만들고 삼남의 수군들에게 은을 나눠주자. 앞으로도 계속 명나라에 해삼을 팔 수 있겠지?”

전라좌수영 수군이 정병 4천 명이고 한 달 단위로 교대하며 일 년에 3개월씩 근무한다면 딱 일만 2천 냥이 필요했다. 일 년에 한 번 해삼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수군 정병이 수영이나 진포까지 먹을 양식을 지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급료제를 실시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군역을 지면서 자기 돈을 내는 억울한 상황은 벗어나게 해줄 수 있었다. 해삼 무역만 잘 된다면 삼도의 수군들이 여유롭게 군역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백성에 불과한 이응화 부자가 수군들에게 개인적으로 나눠줄 수는 없고 관찰사와 수사 등과 협의를 거쳐야 했다. 당연히 육군 정병들과 형평을 맞추자는 소리가 나오겠지만, 그 동안 수군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봤기 때문에 반발은 적을 것으로 예상했다.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였습니다. 지금이 해삼 나오는 철은 아니지만 많이 모아주세요. 길게 봐야 하니 어민들이 일정한 크기 이하는 못 잡게 해주세요.”

“그래야겠다. 다른 지역에서도 해삼을 사와야겠구나. 해삼 말리는 법을 널리 알려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해삼 무역은 시험적으로 한 번 시도해본 것인데 의외로 성공을 거뒀다. 해삼 판매대금을 부친에게 모두 넘겨도 이민호에게는 상관없었다. 해삼 건조기술을 얻은 것만 해도 이민호에게는 남는 것이었다.

그 후 거제도부터 시작해 남해안과 서해안 전체, 개펄이 있는 지역이라면 어디서나 흑해삼 열풍이 불었다. 부친은 수매할 해삼의 최소 크기와 말리는 법까지 다 공개한 다음 조운선이 내려오면서 대량 수매하도록 했다. 이민호의 부친이 개간한 둔전 일부가 엉뚱하게 해삼건조장으로 변했다.

며칠 뒤 오후 손님이 찾아왔다. 부친은 해삼을 잘 모른다고 이민호에게 손님을 떠밀었다. 이민호가 만난 사람은 40대 중반의 어부였다.

조선시대에 연안어업을 한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먼 바다로 나가지 않는 대신 연안에서 돌아다니는 어선들의 활동 영역은 꽤 넓었다. 동해와 울릉도부터 서해 백령도까지 철따라 어선들이 이동해 어로작업을 했다.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일본에서 인정받고 돌아온 안용복은 동래 수군 중에서도 능로군이었다. 동래 수군이 동래에 거주하는 수군인지, 동래부 전선에서 노를 젓던 수군인지, 혹은 동래부 관할 지역의 수군 진포나 수영에서 근무하는 수군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두 번째로 울릉도와 독도를 거쳐 일본에 들어갔을 때 울산에서 출발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상도 영덕에 사는 어부 김 가입니다, 첨정 나리.”

“오! 멀리서 오셨군요.”

이민호는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다. 동해안에는 개펄이 없어 흑해삼이 나지 않았다. 제주도와 울릉도에서 생으로 먹으면 흑해삼보다 훨씬 맛있는 홍해삼이 나지만 명나라에서는 흑해삼보다 높은 값을 쳐주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 손님이 풀어놓을 물건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예, 나리. 이곳에서 해삼을 많이 산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동해에 개펄은 없지만 해삼은 여러 가지가 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공을 잘하면 진미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영덕부터 울진, 강릉, 원산까지 돌아다니며 여러 종류를 모아 왔습니다. 비록 개펄에서 나는 흑해삼은 아니지만 맛이 좋은 것만 말려서 가져왔으니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견본을 봅시다. 호오! 염장 건조를 아주 잘했군요. 품종은 다섯 가지에, 그 중에 하나가 조금 특별하게 생겼군요.”

의례적으로 감탄을 한 이민호는 사실 속으로 굉장히 놀랐다. 동해에서 난다는 해삼 중에 한 가지는 돌기가 길고 굵고 빽빽하게 나 있어서 다른 해삼들과 생김새부터 많이 달랐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피기로 했다.

그 해삼을 그릇에 담아 물을 부어 원상태로 부풀려 놓은 다음 잠시 지켜보았다. 물을 먹은 굵은 돌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왔다. 색도 진해서 신라방 상인이 알려준 고급 해삼의 조건을 모두 갖춘 것 같았다. 명나라에서 최고 품질로 인정받는 대련 해삼보다 확실히 나아서 당분간 홋카이도에 안 가도 될 것 같았다.

이민호는 몰랐지만 조선의 동해 해삼보다 높은 값을 받는 일본 해삼이 청나라에 수출된 것은 17세기 말이었다. 당시 에도성으로 들어가는 공물 극히 일부 외에는 전부 청나라로 수출되고 일본 국내에서는 홍삼처럼 해삼 거래 자체가 금지됐다. 그때부터 일본인들은 해삼은 못 먹고 해삼내장으로 만든 젓갈이나 요리를 만들어 해먹게 되었다.

그리고 홋카이도 해삼은 막부 말이나 돼서야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당분간 이 동해 해삼이 명나라에서 최고 해삼의 자리에 등극할 것이다.

“통통하고 품질이 아주 좋소. 이 해삼 종류는 남해안에서 난 흑해삼보다 두 배를 드리겠소. 제대로 건조까지 했고 이곳까지 물길이 머니 더 쳐드리겠소. 혹시 은으로 계산해도 되겠소? 싫다면 면포나 쌀로 주겠소.”

“감사합니다.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나리.”

영덕 어부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영양분이 풍부한 개펄에서 잘 먹고 자란 흑해삼보다 적게 받아도 할 말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두 배를 받을 줄은 꿈도 못 꿨었다.

“나머지 건해삼은 열 근에 쌀 한 섬, 이 돌기가 크고 많은 건해삼은 두 근에 쌀 한 섬을 쳐주겠소. 괜찮겠소?”

“허억! 그렇게 많이 주셔도 되겠습니까?”

“앞으로 어민들에게서 해삼을 좀 더 비싸게 사주도록 하시오.”

헐값에도 기뻐하는 어부를 앞에 두고 이민호는 속으로 굉장히 미안했다. 사실 이민호는 남해안의 흑해삼을 명나라에 팔아 자그마치 100배 이상의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이 해삼은 아직 정확한 가격은 모르겠지만 그 이상의 이익을 볼 것이 분명했다.

“일이 년 장사하고 끝낼 것도 아니니 남획은 절대 금물이오. 한 뼘을 넘지 않는 새끼는 절대 잡지 말라고 어부들에게 단단히 알리고 아예 사지도 마시오. 돌기가 크고 많은 해삼이 더 좋은 것이니 산지를 잘 보호하고, 새로운 해삼 종류가 발견되면 이곳으로 보내도록 하시오.”

“명심하겠습니다, 나리.”

“이 해삼 이름은 뭐가 좋겠소? 동해는 명나라에서 다른 바다를 지칭하는 말이고 강릉이나 양양은 그곳에도 있는 지명이라 쓰기 불편하다오. 이 해삼을 정확히 어디서 잡았소?”

“강원도 고성 땅 인근 바다에서 많이 납니다, 나리.”

“강원도 고성이라면 서쪽에 금강산이 있지 않소? 그럼 지금부터 이 해삼 이름은 봉래 해삼이오.”

“너무 과하게 좋은 이름입니다.”

“그런 이름이 붙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소.”

이민호는 불로장수를 기원하는 명나라 사람들의 취향에 맞춘다는 의미에서 엄청난 프리미엄급 이름을 붙여버렸다. 진시황 때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러 갔다는 곳이 봉래인데 한반도와 일본 곳곳에 서복과 관련된 설화가 산재해 있었고 봉래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 또는 섬이 많았다. 그러나 금강산의 별칭 중 하나가 확실히 봉래산이니 과장된 이름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이민호는 영덕 어부에게 종묘장 설치와 관리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영덕 어부는 해삼을 채취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중간 수집상일 뿐인데 얼떨결에 종묘 생산까지 맡게 됐다.

사실 이민호도 해삼의 종묘생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번식기의 해삼을 몇 마리 모아서 인공 수정을 시키고 천적으로부터 안전한 수조에서 종묘를 잘 보호해주고 사료를 뿌려주는 것뿐이었다. 종묘가 손톱만한 크기로 자라면 바다에 뿌리라고 말하자 어부가 잘 알아들었다.

“새끼 해삼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물이 흘러나가는 쪽을 삼베나 촘촘한 그물로 막고 시원한 바닷물을 계속 퍼 담아줘야겠군요. 인건비가 많이 들겠습니다.”

“그러니 수차를 이용해서 물을 꾸준히 퍼 담으면 될 거요. 수차를 만들 자금은 있소?”

“그게...... 물레방아 같은 바퀴 말씀이시지요? 제가 어떻게든 만들어보겠습니다. 계속 이 정도 금액으로 사주신다면 마땅히 제가 다 준비해야지요.”

“배를 타고 왔을 테니 해삼 값을 제외하고 면포를 두 동, 100필을 더 내주겠소. 그것으로 수차와 물길에 수조까지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거요. 아차! 여섯 동을 내줄 테니 종묘장을 세 군데에 만드시오. 나중에 자금이 더 생기면 바닷가 갯마을마다 종묘장을 더 만드시오. 우리 함께 길게 보고 사업을 해봅시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해안 어민들도 나리 덕택에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간수를 뺀 소금을 줄 테니 그것으로 염장을 하시오. 최고의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어느 안전의 명인데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이로써 동해안에 수산업 재벌이 하나 탄생했다. 물론 동해 건해삼을 명나라에 가져가면 백 배 이상의 이익이 이민호에게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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