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5 10. 작은 해전 =========================================================================
영주를 칭할 때 성이나 영지 이름과 함께 존칭인 도노(殿)를 붙여 불러 시마즈 도노가 돼야 한다. 그런데 가고시마 사투리에서는 도노를 돈이라 발음했다. 4형제 중 장남이자 2년 전에 큐슈를 거의 통일하기 직전에 실패하고 은퇴한 시마즈 요시히사에 이어 차남 시마즈 요시히로가 현재 시마즈 가문의 당주였다.
전령무사가 명령하자 병사들이 이쪽을 향해 조총을 겨눴다. 그러나 이민호가 턱을 까딱 치켜들자 선수루에 올라 대기 중인 간수군들이 먼저 사격했다.
- 쾅! 쾅!
단 두 방에 왜군 조총수 두 명이 왜선에 널브러졌다. 조총이 바다에 빠지기 직전에 노꾼들이 잡으려 했으나 놓치고 말았다. 사무라이가 성질을 부리는 사이 계복이 장전된 소총을 이민호에게 건넸다.
“웃기는 놈이지만 꼴에 저래도 장수니까 도련님이 쏘세요.”
“알았다.”
이민호도 사격 훈련은 열심히 한 편이었다. 군주나 장수가 무예에 뛰어날 필요는 전혀 없지만 병졸들은 우두머리가 일반 병사들보다 강하길 원했다. 이민호는 그 요구를 만족시켜주기로 했다.
- 쾅!
검을 빼들고 소리를 지르던 사무라이가 이마에 총탄을 맞고 뒤로 넘어갔다. 이민호는 손잡이를 당겨 새 총알을 장전했다. 기다란 일본 활을 들고 화살을 날리려는 궁수들이 이민호의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목표가 되었다. 50미터 남짓한 거리에서는 놓치기도 어려웠다.
사무라이와 병사들이 죽자 노꾼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노를 저어 도망갔다. 격군도 병사인 조선 수군과 달리 일본 군선에서 노를 젓는 자들이나 사공들은 관에 의해 징발돼 각 배에 배정된 민간인들이거나 다이묘의 하인 신분이었다. 군함 단위에서 민간인을 납치해 수병으로 삼거나 심지어 전쟁 상대국인 미국 해군 수병 포로들까지 현지 입대를 시키는 영국 해군보다 훨씬 선진적이었다.
“왜선들이 몰려옵니다! 배를 뒤로 물리겠습니다.”
역풍을 받고 오느라 왜선들은 돛대를 뒤로 젖힌 채 노만 저어 외륜선으로 접근했다. 외륜선에 탄 사공들은 소들이 돌리는 톱니바퀴에 다른 톱니바퀴를 끼워 외륜선 바퀴를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켰다. 그리고 돛을 조정해 역풍을 배의 기동력에 이용했다. 적의 화공을 우려해 해전을 시작하기 직전에 돛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민호는 왜선에 화공 수단이 별로 없다고 판단해 돛을 그대로 두었다.
이민호는 후장식 단발 소총을 개발한 다음 지상에서의 교전 거리를 200미터로 잡았다. 그러나 해전에서는 배가 흔들리고 진동하기 때문에 사거리를 훨씬 줄여야 명중률을 보장한다고 봤다. 이번이 첫 해전이니까 이번 전투에서 얻은 교훈이 앞으로의 해전술 정립을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었다.
조선이 사용하는 도량형에서 1보(步)는 여섯 자, 두 걸음인 2무(踇)였다. 첫 총성은 60보, 대략 72미터 거리에서 울렸다. 국궁 사대에서 과녁까지 거리가 120보, 145미터였으니 조선 군졸들은 이 거리에서 활을 쏘는 게 가장 익숙하고 또한 정확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그 거리를 절반으로 줄여 왜선들을 많이 끌어들인 다음 사격 명령을 내렸다.
- 타타타탕!
- 타탕!
배 여덟 척에서 서로를 향한 총구에서 불을 뿜었다. 외륜선 네 척의 선수루에 오른 간수군 각 10명씩 40명이 사격을 퍼부었다. 선미루에 오른 40명은 거리는 충분하나 돛대 등 구조물에 가려 총격전에 거의 참가하지 못했다.
세키부네 네 척에서 합계 48명의 조총수들이 교대로 조총을 쐈으나 간수군들의 탄피식 소총에서 빠르게 퍼붓는 화력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삿갓 모양의 진가사를 쓰고 가슴과 배를 가린 갑옷을 어깨에 걸친 일본 조총수들이 픽픽 쓰러졌다. 이민호는 권총만 갖고 있어서 총격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역시 무기가 좋으니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습니다.”
“무기 차이가 결정적일까? 계복이 네가 만약에 왜선에 타고, 왜적들이 우리 윤선에 탔다고 해보자. 무기는 지금 갖고 있는 무기 그대로고. 그럼 누가 유리할까?”
“그거야...... 왜적이 유리하겠네요.”
진행되는 전투를 보면 알지만 사거리와 발사속도는 조총보다 후장식 단발 소총이 훨씬 유리했다. 하지만 어느 전투에서든 지형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고, 전쟁사를 살펴보면 피아 병력이 위치한 높이 차이가 전투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가른 경우가 많았다.
이민호가 괜히 항해 중 배가 전복될까 걱정하고 화물을 싣고 내릴 때마다 돌로 무게중심을 맞추면서까지 외륜선의 선수루와 선미루를 억지로 높인 것이 아니었다. 높은 곳에서 싸우면 3배 유리하다고 하지만 포격이나 단병접전을 제외하고 순수한 총격전만 진행한다면 그 이상으로 유불리가 나뉜다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싸우는 쪽과 그 반대쪽은 명중시켜야 할 표적 크기가 달랐다.
“도련님! 대포는 안 쏩니까?”
“이런 흉측한 것은 안 써도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지금 거의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데 포탄까지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외륜선에 탑재된 포는 구경은 작지만 포구 안에 든 것은 조선군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포탄이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을 썼다가 소문이 나면 곤란했다.
“수사에게 빼앗길까봐서요? 가져가도 쓰지도 못할 텐데요.”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임진왜란이 몇 년 안 남았다. 이민호는 요즘 들어서 생각이 자꾸 흔들렸다. 선조 임금을 죽여 다른 왕을 세우거나, 직접 왕위에 오르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반대로 조선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임진왜란이 아예 발생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초기에 끝낼 생각도 했다.
이민호는 조선 수군과 협조해 왜군을 부산포 정도에서 밀어낼 능력이 있었다. 그 능력은 올해 들어서 더 늘어났다. 그러나 이민호의 목적을 위해 왜군이 한성을 점령하는 것까지 용인하기로 했었다. 이것은 부친과 합의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의사와 목적을 위해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받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맞는지 고민했다. 물론 역사에 개입해 미래를 뒤틀어버리는 것이 과연 맞는지도 고민해야 했다.
“오늘 싸움은 좀 그렇습니다. 조선 수군은 활도 잘 쏘지만 화포로 적선을 쳐부수는 게 특징인데 지금은 마치 왜구의 전투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섭섭해?”
“말이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이 시대 대부분 나라에서는 총과 포를 동원해 상갑판의 전투원을 향해 쏘아 인명살상을 노리는 식으로 해전이 진행됐다. 여기서 추가해봐야 작은 배나 반쯤 부서진 배에 화약을 싣고 적선에 부딪쳐 폭발시키거나 불을 붙이는 화선(火船) 정도였다.
작렬탄이 꽝꽝 터지는 그런 해전은 19세기나 가야 가능했고, 지금은 포나 총이나 인명살상용으로 사용했다. 이 시대에 배의 침몰을 노리는 조선 수군이 특이한 것뿐이었다.
물론 유럽 해군에서 작렬탄을 사용한 다음부터는 인명 살상 후 적선 나포보다는 적선의 격침을 우선 목표로 삼는 것으로 바뀌었다. 발전이라기보다는 전장 상황과 무기 등 여러 가지를 감안해 자연스럽게 변한 것뿐이었다.
“잡담하지 말고 저기 돛대 뒤에 숨은 놈이나 쏴.”
“예, 도련님.”
- 탕!
계복은 사격실력이 꽤 좋았다. 계복이 꽤 오랫동안 활을 쏘던 가닥이 있어 소총 쏘는 것도 이민호보다 나았다. 기다란 칼을 빼어들고 뒤로 기울인 돛대 뒤에 숨어있던 왜병이 이마에 총탄을 맞고 뒤로 날아갔다.
어느 일본 해적 만화에서 칼 세 개를 들고 설치던 캐릭터가 이민호의 뇌리에 떠올랐다. 칼 하나는 입에 물고 휘두르는 것이 특이했다.
“칼을 세 개나 들었으니 고위 무사일까요?”
“긴 칼을 주 무기로 쓰는 병사나 하급 무사일 거야.”
“아! 고위 사무라이는 칼 두 개만 패용하지요.”
전투 중인데도 이민호는 지휘관의 임무를 기억하고 소총을 쏘지 않았다. 그 대신 적선을 살피며 사공들에게 적절한 거리를 두라고 지시하거나, 위험도가 높은 표적을 먼저 쏘라고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그 외에도 전투 중에 지시할 것은 많았다. 전투가 시작되면 정말 다양한 돌발 상황이 생기는 탓에 미리 훈련하거나 전투 절차를 준비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채워지지 않았다. 간수군들에게 훈련과 실전 경험이 필요한 것처럼 전투를 지휘하는 이민호에게도 역시 실전 경험이 필요했다. 고토에서 조선 수군을 구출할 때처럼 작전 자체는 성공했으나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는 것은 이민호도 더 이상 바라지 않았다.
“상갑판에서 움직이는 전투원만 쏴라. 노꾼이나 사공은 쏘지 마! 아래층에 오오쓰쓰를 들고 쏘려는 놈이 있다. 쏘기 전에 먼저 잡아!”
수하들이 왜인 노꾼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총통수를 먼저 쓰러뜨렸다. 그 후에도 이민호는 선수루 갑판에 남아서 전투를 계속 지휘했다.
가끔 주변으로 총탄이 날아왔으나 이 정도 거리라면 일반 조총의 유효사거리에서 벗어나 왜군 조총수가 정확히 조준할 수 없었다. 구경이 크거나 정밀한 조총이라면 이민호를 명중시킬 수도 있겠지만, 투구와 전투복에 끼워둔 방탄판의 성능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조총을 쏘는 세키부네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총에 맞을 가능성도 별로 없었다.
- 타앙~
외륜선에서 마지막 총성이 울렸다. 배와 허벅지에 두 발이나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마지막까지 서서 왜검을 높이 치켜들어 전투를 지휘하던 젊은 사무라이가 드디어 쓰러졌다.
다른 배들에서는 전투가 더 먼저 끝났다. 이민호가 탄 외륜선이 적 대장선과 맞붙어 더 많은 병력을 상대해야 해서 전투가 조금 늦게 끝난 셈이었다.
“이 정도면 외륜선 한 척으로도 다 잡을 수 있었겠는데요? 다음에는 한 척으로 싸워 봐요, 도련님.”
“싫은데? 우리 편에 피해가 없도록 압도적으로 이기는 게 좋아.”
“그것도 그렇군요. 같은 편이 죽거나 부상당해서 비명 지르면 정말 끔찍합니다.”
외륜선 쪽에서는 전사자는 물론 부상자도 나오지 않았다. 같은 기병끼리 맞붙은 시전부락 전투에 동원된 조선 기병들 전원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압도적으로 유리한 배와 무기로 싸우는 간수군들 중에서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그것도 문제일 것이다.
전투가 끝난 직후 왜선 네 척이 제각각 선수를 돌렸다. 감시하던 사무라이와 아시가루들이 모두 죽자 사공이나 노꾼들이 살아남기 위해 도주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일본 민간인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군선 자체가 무척 비싸니 도망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 추격!”
노꾼들이 합심해서 노를 저은 것도 아니고 돛대도 미처 못 세워서 왜선 네 척은 외륜선에 금방 따라잡혔다. 외륜선들이 각각 왜선에 하나씩 접현하고, 간수군들이 총구를 앞세우고 왜선에 대한 수색에 들어갔다.
그 사이 사공이나 노꾼으로 동원된 왜인들은 바닥에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고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간수군들은 승리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시키는 어떤 명령도 왜인들이 그 즉시 수행했다. 일본 백성들이 정규군을 공격하는 것은 그 정규군이 패해서 도주할 때 약탈하기 위해서였다.
계복도 간수군 열 명을 데리고 수색에 참가했다가 돌아왔다. 왜군들이 마지막 한 명까지 치명상을 잃고 쓰러진 다른 배들과 달리 계복은 왜군 조총수 한 명을 포박해 끌고 왔다. 그리고 세키부네에서 일단 무기와 갑옷만 챙겨왔는데도 전리품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 작품 후기 ============================
오전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