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3화 (2/1,000)

00053  9. 발전  =========================================================================

(양식 전복의 먹이인 다시마의 지역별 분포에 문제가 있어서 앞 내용 일부를 삭제하고 수정해서 올립니다.)

“미역이 밀집해서 자라는 곳이 있어?”

“예. 배를 타고 돌아다니며 몇 군데 찾아냈어요. 이곳 만에도 있지만 저쪽 작은 바위산 너머 바다에서 더 빽빽이 자라는 것 같아요.”

이곳은 아열대 기후대의 바다였다. 그리고 만 안쪽은 수심이 얕고 물의 유동이 적어서 여름에 수온이 지나치게 높이 오를 수 있었다. 해삼은 수온이 25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여름잠(夏眠)에 빠져들어 성장이 멈추고 천적에게 쉽게 잡아먹히니 양식장을 만들 바에 이왕이면 물이 차가운 만 바깥이 안전할 것 같았다.

다시마를 먹고 자란 전복은 살에 다시마 향이 스며들어 더 고급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다시마는 한대성 해조류라 한대와 아한대 바다의 찬물에서만 자란다. 현재 조선에서는 원산 이북 해역에서만 다시마가 자라서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 남부지방에서 다시마를 인공 양식할 때는 한류가 흐르는 지역을 찾아서 재배했다.

“앞으로 전복과 해삼 양식을 할 계획이야. 직접 키우는 것은 아니고 알을 부화시킨 다음 적당히 키워 바다에 뿌렸다가 잡는 일이야. 물질하는 여자들 외에 어민 출신 일꾼을 몇 더 붙여줄 테니 종패와 종묘 생산부터 건조까지 미카가 맡아서 해봐. 잘할 수 있겠지?”

“네! 맡겨만 주세요! 하지만 해삼은 잘 모르니 주인님이 가르쳐주세요.”

미카가 활짝 웃었다. 고정적으로 할 일이 생기니 무척 기뻐하는 것 같았다. 미카는 이민호와의 관계 탓에 이곳에서 왕비 대우를 받으며 지냈다. 그러나 미카는 나중에 일본으로 돌아가야 할 여자였다.

다음 날 오전 이민호는 외륜선 한 척만 몰고 고산국에 가서 신라방 상인들을 만났다. 해관으로 사용할 건물에 아직 지붕이 얹히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곳 사무실에서 은을 금 10만 냥과 바꾸는 큰 거래를 했다. 신라방 장 씨 뒤에 노인들 세 명이 배석하고, 이민호 뒤에는 계복과 미카가 앉았다.

거래는 간단히 끝났다. 각자 상대방이 가져온 귀금속의 품위와 무게를 조사한 다음 광동 지역의 금은 교환비율에 따라 금과 은을 교환하고 각자 배에 실었다. 10만 냥의 금과 56만 냥의 은을 짧은 시간에 교환을 마치자 노인들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 점주. 다음에는 황금 20만 냥을 미리 준비해주시오. 아마 보름 뒤가 될 것 같소. 앞으로는 바다에서 나를 기다리지 말고 이 항구로 올라오시오. 그리고 사흘 후에 곡식창고가 몇 채 더 완성될 테니 그때 쌀 5만 석을 이곳까지 실어주시오.”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논을 많이 만드셨던데 혹시 종자는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뒤에서 지켜보던 노인들이 엄청난 거래 규모에 할 말을 잃었다. 평생 장사를 해온 사람들인데도 큰 규모의 상품 거래와 더불어 금 10만 냥을 교환하고 보름 뒤에 다시 20만 냥을 교환하려는 이민호의 재력에 많이 놀랐다.

“조선과 일본, 유구국에서 가져온 볍씨가 있으니 괜찮소. 사실 천조 사람들과 조선, 일본 사람들은 입맛이 좀 달라서 천조의 쌀을 갖고 있더라도 밥으로 지어 먹지 않고 술을 담근다오. 다른 종자는 뭐가 있소?”

“밀, 보리, 조, 수수, 메밀, 호밀, 여러 종류의 콩과 팥, 옥수수와 호박, 수박, 오이, 가지가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지금까지 재배한 조와 수수는 생산성이 낮은 종류라 이 기회에 종자를 바꾸시길 권해드립니다.”

“알겠소. 한데 옥수수는 빼시오. 혹시 땅콩은 있소?”

감자는 아직 명나라에 들어오지 않았고 옥수수와 땅콩은 이미 들어와 있었다. 옥수수는 효율이 매우 높은 작물이지만 그만큼 지력 소모가 심하고 가축 사료로 사용할 경우 고기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대량 재배해 주식으로 삼았다간 인간과 산의 건강에 큰일이 난다.

이민호는 옥수수를 아예 금지작물로 정해버렸다. 석탄을 때는 증기기관을 좋지 않게 보는 이민호는 만약 브루나이에서 유전개발이 실패한다면 그 다음에야 옥수수를 대량 재배해 바이오디젤 원료로 삼기로 했다.

대신 류큐에서 들여온 사탕수수와 해동상단을 통해 구한 감자는 이미 이곳 땅에 심었다. 이민호는 설탕을 대량 생산해 동아시아 사람들의 식생활에 크게 변화를 줄 계획이었다. 감자는 간식 겸 만약을 대비한 구황작물로서, 그리고 주정 원료로 대량 재배할 예정이었다.

“예. 땅콩은 대명에도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그러나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콩처럼 수확 후에 지력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어 요즘 많이들 심고 있습니다. 얼마나 준비해드릴까요?”

“밀과 보리는 오백 섬, 다른 것들은 오십 섬씩 준비해주시오. 땅콩은 종자로 쓸 것 말고 껍질째 볶은 것도 오십 섬을 넘기시오.”

땅콩과 감자를 이용한 간식을 생각한 이민호의 입에서 침이 살짝 흘렀다. 아직 활동량이 많을 나이이니 비만을 걱정할 필요 없이 실컷 먹을 작정이었다.

“밀과 보리는 쌀과 이모작을 하실 거라고 알겠는데, 설마 삼천만 평을 경작할 요량이십니까?”

“아니오. 저지대에서는 쌀로만 이모작을 하고 밀과 보리는 고지대 밭에서 봄가을에 교대로 심을 거요. 저 앞에 육천만 평이 아니라 삼억 평이 넘는 땅이 있소. 땅이 넓으니 대충 뿌려도 거둘 게 많을 것 같소.”

물론 그런 약탈식 농사를 짓다가는 김매기하느라 오히려 인력이 많이 들고 지력이 급속히 소모되므로 길게 봐서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조선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올지 모르겠지만 땅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가축은 어떻게 할까요? 하하! 이번에 제가 귀인의 재산을 좀 털어먹겠습니다.”

“훗! 당장 내년부터는 여기서 사야 할 일만 남을 거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귀인께서 판매하시는 물품은 모두 상품이니 기대가 됩니다. 어제 주신 홍삼과 흑해삼이 동료 상인들에게서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홍삼을 잘 파시오. 농우로 쓸 소 일천 두, 노역용 말 5백 필, 전마는 뺍시다. 양과 염소, 닭, 오리, 돼지를 각 500마리씩 주시오. 이것을 한 단위로 해서 나중에 추가로 주문하겠소.”

이민호는 전라좌수영에서 했던 방식으로 농민에게 농우를 빌려주고 송아지를 받는 식으로 불리는 게 가능할까 고민했다. 소를 주면 원주민들이 일단 받겠지만 제대로 키울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지금으로선 조선인과 일본인 농민들이 원주민들에게 축산법을 제대로 가르쳐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예. 매입금에 일괄적으로 수수료와 운송료를 붙여서 나중에 정산하겠습니다. 혹시 차를 수입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우리는 대명국 사람들이 아니라서 차를 마실 사람은 별로 없소. 이곳은 물이 깨끗해서 물을 그냥 마셔도 된다오. 나중에 백성들이 충분히 부유해져서 차를 마실 여유가 생긴다면 그때 차를 수입하겠소.”

중국이나 영국에서 차를 많이 마시는 이유는 첫째로 물이 더럽다. 둘째로 육류 위주의 식습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과 일본에서 차를 전혀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나 영국, 티벳에서처럼 필수적인 식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이 더운 땅이면서도 고산지대가 많아 차 생산에 적합한 것 같소. 장 점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추운 곳에서는 차나무가 자라지 않습니다. 덕택에 대명은 그 사나운 북원을 벽돌차를 이용해 견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운 땅의 낮은 곳에서도 역시 차가 나지 않습니다. 운남이나 절강처럼 강남땅의 산악지대가 차 생산에 적합한데 이곳 풍토도 흡사합니다. 묘목을 준비해드릴까요?”

차나무는 온대도 아닌 아열대 식물이다. 야생 차나무가 지리산에 서식한다지만 한국에서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차나무를 대량 재배하는 곳은 보성과 하동밖에 없었다.

“예. 접목기술은 보유하고 있으니 고급 차 몇 가지의 묘목을 준비해주시오. 사실 산악지대에 대한 탐사는 아직 이뤄지지 못했소. 야생차가 자생한다면 키워보겠지만 일단 없다고 보고 있소. 우롱차를 만들 만한 차나무 묘목을 충분히 보내주시오.”

“귀인께서 특별히 지정하실 품종이 있습니까?”

“운남성 남부에 차마고도가 시작하는 곳이 있지요? 서장의 장족이 말을 팔고 차를 사가는 길 말입니다. 그곳 난창강 유역에 차를 많이 재배하는 지역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흑차를 만들 넓은 잎을 따는 차나무를, 묘목이 아닌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이곳까지 살려서 가져와 주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파는 맷돌 모양으로 압착한 흑차도 되도록 많이 가져오시오. 발효차인데다 운남성이 원래 축축한 곳이라 차가 썩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상관없으니 버리지 마시오.”

이민호가 예전에 어느 방송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1부가 티베트의 말과 그 지역의 차를 무역하는 최후의 마방을 다룬 인상적인 편이었다. 이민호는 푸얼차, 즉 청나라 옹정제 때 유명해진 보이차를 만들 차나무를 수입하려 했다. 이 시대에 발효차는 일부 소수민족들이나 마시고 중국인들에게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예. 말씀하신 내용을 다 적었습니다. 해남도까지 배로 가면 빠르겠군요. 강을 통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니 배 한 척을 보내겠습니다. 아마 왕복하는데 3개월쯤 걸릴 것 같습니다.”

“복건성 안시현에서도 우롱차의 차나무를 구해오시오. 가까운 곳이니 나무를 많이 가져오시오. 같은 종류라도 아주 조금씩 다르다면 반드시 구해오고 표시를 해주시오. 일단 선금을 드리고 나중에 비용과 구전을 청구하면 더 계산해주겠소.”

우롱차의 종류는 많았다. 안시현의 우롱차는 나중에 청나라 건륭제에 의해 철관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실 이민호는 보이차나 우롱차의 차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복건성 어느 산에 대홍포를 만들 수 있는 차나무가 4그루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몰라 그것도 포기했다.

차나무는 생산을 시작하기까지 오래 걸리겠지만 일단 차밭이 완성되면 꽤 오래 생산을 지속할 수 있었다. 차를 가공하는 방법은 이민호가 알고 있으니 차밭 조성에 실패하더라도 여차하면 생산지에서 찻잎을 사서 가공해 판매하는 방법을 써도 됐다.

“매번 저희 신라방을 이용해주시니 최선을 다해 일을 성공시키겠습니다. 간악한 휘상들 사이에서 저희들이 살아남도록 후의를 베풀어주신 귀인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송구한 말씀이 있어 미리 사죄드립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죄송하게도 남경과 복건성 일대에 저번 거래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더욱 큰 문제인 것은, 열흘 전부터 복주의 관헌이 이곳에 대한 정보를 수소문해서 남경 응천부와 도찰원에 보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도찰원 감찰어사가 조만간 이곳으로 파견돼 조사할 예정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만 아마 오지는 않을 겁니다.”

“설마 군사를 몰고 쳐들어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곳이 대명의 영토가 아니고 대명의 영토를 침범할 의도를 엿보이지 않았으므로 어림군의 움직임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귀인께서 정식 책봉을 받게 된다면 기간을 정해 지정된 항구에 입항하여 정상적인 조공무역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신라방 장 씨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밀무역을 하면서 엄청난 이득을 얻은 거래가 단 두 번으로 그치게 될지 모르는데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민호에게 말했다.

“책봉은 보통 제후국에서 천조에 신청하는 게 아닙니까?”

“보통은 그러하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유구국의 경우 100여 년 전에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 황도에 입조한 다음 책봉을 받도록 요구했습니다. 만약 어느 나라가 중요한 위치에 있거나 특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반대로 조정에서 먼저 사신을 보내 그 나라를 사대관계에 편입시키기도 합니다.”

“흐음. 사실 제가 유구국을 통해 사대관계에 편입시켜달라는 청원을 하긴 했습니다만, 아직 유구국 사신이 입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원하던 일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조공이 3년 1공이나 10년 1공으로 정해지면 공무역은 있으나 마나이니 피곤해지겠군요.”

“조선의 1년 4공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니 기대하시지 마십시오. 그러나 조공이 아니더라도 조정에서는 국경이 붙어있는 나라들을 위해 공무역이나 사무역을 많이 허용해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진이나 몽골을 위해 마시를 열어 꾸준히 무역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민호는 아직 광저우나 항저우에 혼자 가서 거래할 자신이 없었다. 인간관계 중심인 명나라의 상업 관행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이민호 입장에서는 신라방을 통한 간접 거래가 훨씬 편했다.

“흠. 그렇군요. 잘 됐습니다. 신라방이 우리 고산국의 공무역을 대리하시오. 입조해서 조공무역을 할 때도 우릴 도와줬으면 좋겠소.”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직 건국 초기라 고산국에 제대로 된 토산품은 없지만 조만간 해삼이나 전복을 꾸준히 팔 수 있을 거요. 더욱이 조선이나 일본과도 교역을 하고 있으니 팔 물건이 없다는 소리는 안 나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홍삼 한 가지만 해도 엄청납니다. 이로써 저희들은 조상님들 제사를 이어나갈 수 있겠군요.”

“혹시 명나라 남해안의 도시에서 인력을 대량 고용할 수 있겠소? 건설할 것이 많으니 사람들을 많이 동원해 후딱 해치워버리게 말이요.”

“그건 어렵습니다. 조정에서 상인의 해금령은 풀어줬지만 어부나 백성의 해금을 풀어주지는 않았습니다.”

명나라가 외국 상인들에게는 기항지나 품목, 물량 등 갖가지 통제를 가했지만 명나라 상인이 외국에 나가서 무역하는 것을 제한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저우나 광저우가 큰 국제무역항이었어도 마닐라나 말래카 등 외국 무역항에 중국 상인들이 자주 드나들 수 있어서 동남아시아의 여러 무역항이 번영하는데 일조했다.

거래는 끝났다. 신라방 장 씨를 따라온 노인들은 거래규모에 큰 충격을 받고 말없이 장 씨를 뒤따랐다. 국가를 새로 세우는 이민호와 거래하게 되니 상거래 규모가 평생 해오던 것과 차원이 아예 달랐다.

명나라에서 직접 고산국에 입조를 요구하거나 류큐국의 소개를 받아 입조를 허락한다면 이민호가 직접 북경으로 가기로 했다. 국왕이 직접 갈 필요는 없으나 거리가 가까우니 핑계를 대기 어려웠다.

물론 고산국의 국왕은 아직 없었다. 일본 노예시장에서 구입한 여송국 사람 둘 다 너무 똑똑해서 못 정한 것이다. 늙고 젊은 필리핀인들은 겨우 한 달 만에 조선어와 북경어를 꽤 잘 구사할 수 있었고 사서삼경을 익혀 문자도 곧잘 썼다.

“그냥 중국어나 좀 배우고 말 것이지 쓸데없이 뭐 하러 사서삼경까지 통째로 외워? 그 머리가 부럽다.”

원래 지식인은 아니었는데 엄마 친구 아들 같은 두 사람은 지식을 솜처럼 빨아들였다.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 할 국왕 후보들이 너무 잘 나서 이민호는 은근히 신경 쓰였다. 그러나 대안도 없어서 둘을 고산국과 해중국의 명목상의 왕으로 앉히기로 했다. 이럴 때는 특이하게 생기고 볼 일이었다.

케타갈란족과 아타얄족 원주민들도 수행원에 포함시켜 민속의상을 입고 행진하면 그럴 듯해 보일 것 같았다. 코끼리나 얼룩말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새로운 쇼군의 즉위를 축하하는 화란 사절단을 칭한 네덜란드 상인들은 나가사키에서 에도까지 입조하러 갈 때 네덜란드 토착 동물도 아닌 코끼리를 앞세웠다. 입조하는 사절단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즐겁게 해주는 것도 사절단의 임무였다.

“아하! 악어가 있었지.”

고대 기록을 검토해봤을 때 중국에서 용의 원형은 뱀이 아닌 악어라고 한다. 그래서 시암에서 큰 악어 한 마리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길고 화려한 꼬리 깃털을 가진 극락조를 뉴기니아에서 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용과 봉으로 이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식인종만 조심하면 극락조는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고산국과 해중국이 명나라에서 책봉을 받은 다음에는 고산국을 칭해 항저우와 광저우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거래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해중국의 이름으로 조선과 일본에 입조해 두 나라와 정기적인 조공무역을 하기로 했다.

이것은 내수사 전수와 함께 예전에 세운 계획이었다. 여진족처럼 야만인 취급을 받는 족속들에게 이중신속이야 흔한 일이었고, 명나라는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갔다.

그리고 고산국과 해중국은 언덕 하나를 넘나들면서, 또는 이 항구에서 저 항구로 배를 옮겨 물자를 교류한다. 바로 이것이 이민호의 계획이었다.

가짜 나라 두 개를 세워 이를 통해 얼마나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아직 판단하기 어려웠다. 자칫하면 여기저기 끌려 다니느라 실속은 전혀 없이 헛배만 부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와 조선, 그리고 일본의 무역장벽을 넘어 최대한 이익을 얻으려면 이 방법이 가장 나을 것 같았다.

이민호는 대만 땅 전체를 정복하겠다는 의지가 지금 당장은 전혀 없었다. 현재 예속한 부족들이 나라를 세워 독립하겠다고 하면 지원해줄 의사도 있었다. 대만을 기반으로 동아시아의 바다를 제패하겠다는 의욕도 현재는 없었다.

지금은 기반을 닦으며 내실을 다질 때였다. 물리적인 영토가 아닌 조공무역 체계에 편입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물론 잘 풀릴 경우 사람 욕심은 커지는 법이었다.

============================ 작품 후기 ============================

챕터 제목은 나중에 바꾸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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