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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52화 (1/1,000)

00052  9. 발전  =========================================================================

이민호가 골짜기에서 내려와 선착장으로 왔을 때 간수군 하나가 노란 돌을 들어 보여주었다.

“이봐! 배에서 유황을 내리라고 한 적이 없는데.”

“첨정 나리! 배에 실린 것이 아닙니다. 북쪽 산을 탐망하다가 골짜기에서 유황을 발견했습니다.”

“뭐? 아차! 온천이 나온다고 했으니 사화산이 있구나. 잘했다! 거기에 유황이 많아?”

그러나 이 지역에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조선이 국방을 위해 수입하는 세 가지 대표적인 물품, 유황과 구리와 물소 뿔 중에서 두 가지가 해결됐다.

“저기 왜인에게 위치를 알려주고 원주민 일꾼들 열 명쯤 데리고 가서 캐오라고 시켜라. 너는 앞으로 쓸 만한 광물이 발견되거나 아니면 새로운 정책 같은 건의할 만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내게 보고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첨정 나리.”

유황을 가져온 간수군은 이민호의 기억에 있었다. 처음 좌수영에서 간수군들을 모집할 때 이 젊은이는 몸이 작고 비리비리해서 힘든 훈련을 버틸 수 있을까 했는데 100명 안에 끝까지 남았다. 시전부락 전투에서도 앞장선 것으로 기억했다. 이민호가 그 간수군의 명찰을 확인했다.

“최경식. 현재 계급이 병인가? 너는 오늘부터 오수다. 오수가 빠진 오가 생기면 최우선적으로 넣어주마. 아니, 그냥 다른 일을 해볼 생각 없나? 나라 영역 안에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쓸 만한 물건이나 일을 찾는 그런 창의적인 일 말이야.”

“감사합니다. 지금은 간수군 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동료들도 재미있는 사람들이니 다른 오로 옮기고 싶지 않습니다.”

현재 간수군의 직제는 계급과 직책이 결합돼 있었다. 캡틴을 예를 들면 육군 대위나 해군 대령이라는 계급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 전에 육군 중대장이나 해군 함장 직책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이민호도 간수군의 규모가 커지면 계급과 직책 명칭을 분리할 예정이었다.

이민호가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옮기라고 하자 최경식이 물었다.

“그런데 첨정 나리는 왜 저 높은 산들을 수색하지 않으십니까? 산삼이나 옥, 금이나 은이 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고산국이나 해중국이 직접 관할하는 영역이 아니라 원주민들의 땅이니까. 너는 이 땅이 중국에 가까운데도 어떻게 수천 년 동안 중국에게 정복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원주민이 거주하는 땅에서도 자원을 천천히 채굴해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어째서 원주민들이 이민호를 지배자로 받아들였는지는 아직 이민호도 정확히는 몰랐다.

“침략자들이 밤에 잘 때 집에 불을 지른다거나 땔감을 채취하지 못하게 해서 쫓아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원주민들이 왜 그렇게 저항했을까?”

“자기 땅이니까 지키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원주민들이 쌀농사 지을 줄을 몰라 겨우 화전을 일궈 조와 기장 농사를 짓지만 수확량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땅이 풍요로운 것 같습니다. 저쪽 바닷가도 첨정 나리께서 하신 것처럼 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도 많이 잡힙니다. 이런 풍요로운 땅에서 쫓겨나고 싶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테니 죽기 살기로 싸웠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왜 그냥 받아들였지?”

최경식이 한참 고민하다가 이민호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대답했다.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정답이 나왔다고 두 사람 모두 인정했다.

“첨정 나리가 호구라서요.”

“맞아. 슬프지만, 바로 그게 이유야.”

이민호는 원주민들에게 일을 하면 쌀을 준다는 약속을 지켰고 원주민들이 베를 얻기 위해 쌀주머니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도 계속 공짜로 나눠주었다. 케타갈란족 원주민들과 신뢰가 쌓이니 그 소문을 듣고 오늘은 그 남쪽 아타얄족 사람들도 떼로 몰려왔다. 원주민들은 이민호 같은 지배자라면 받아들이더라도 앞으로 손해 볼 일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산국 영역인 평원에서 논을 만들기 위해 수용된 원주민들의 땅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원주민도 거부하거나 땅값을 물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화전(火田)농업에서 한 번 농작물을 거둔 땅은 가치가 없고 몇 년 동안 묵혀놓아야 하기 때문에 가치가 아주 낮았다. 그리고 그 원주민들은 이미 품삯만으로도 땅값 이상을 받았고 앞으로 더 받을 테니 땅이 아까울 것도 없었다.

이민호가 평소에는 바보처럼 손해 보는 것 같아 보여도 이럴 때는 저들 원주민들이 판단할 때 그를 받아들인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품삯으로 줄 쌀을 줄이라거나 면포가 아까우니 쌀주머니를 돌려받아 재활용하라는 건의를 계복도 했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원주민들에게 퍼줬다.

지금까지 다른 지역, <삼국지>의 기록처럼 정말로 오나라에서 대만을 정복하기 위해 공격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침략자가 누가 됐든 침략 목적은 땅을 얻는 것이었고, 원주민들은 이 땅에서 배제돼야 할 방해물이거나 일을 시킬 노예에 불과했다. 그러니 원주민들이 살아남기 위해 저항한 것이다.

그러나 이민호는 빼앗아가기는커녕 퍼주기 바빴다. 다른 지배자들과 달리 원주민들에게 뭘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해중국과 고산국의 지배 아래에 들어온 원주민의 마을을 방문한 적도 없고 그들의 생활이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간섭하려는 일체의 시도도 하지 않았다.

사실 원주민들이 해중국과 고산국의 지배 아래에 있는지도 지금은 불명확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저 협력관계에 그칠 수도 있었다. 이민호와 원주민들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원주민들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여전히 독립된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었고, 바로 그것이 원주민들이 이민호의 지배를 받아들인 이유였다.

시끌시끌하더니 케타갈란족 원주민들이 얻어맞았는지 얼굴이 퉁퉁 부은 간수군 한 명을 포박해왔다. 다른 간수군들이 놀라 원주민들에게 총구를 들이댔으나 원주민들 대부분이 총이 뭔지도 몰라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다. 동료를 구해주려는 간수군들을 막고 이민호가 원주민들에게 물었다.

“간수군은 나의 직속 병사다. 무슨 일로 간수군을 포박했나?”

“왕자님! 그건 압니다만 이놈이 글쎄 우리 마을에 숨어들어와 닭을 잡아먹었습니다.”

“사실인가?”

“예. 뭐. 우리가 이 주변을 정복했으니 그 정도 즐거움은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남도에서 북병영으로 군사들이 부방 갈 때도 민가의 돼지와 닭을 잡아먹는 것은 물론 처마까지 뜯어서 불을 때기도 합니다. 그 정도가 민폐지 닭 한 마리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데 원주민들이 괜히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간수군은 힘없는 원주민들에게 잡혀 얻어터지고 끌려왔다는 사실을 더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했다. 구경꾼들 중에는 일본인들도 많았다.

“케타갈란족은 도둑에게 어떤 처벌을 내리나?”

“도둑질을 하면 피해자나 마을 사람들에게 얻어맞고 물건 값의 12배를 물어준 다음 추방당하는 것이 통례입니다. 그런데 이놈은 우리 부족 사람이 아니라서 왕자님께 처분을 맡기려고 끌고 온 겁니다.”

“잘했다. 앞으로도 누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함부로 처벌하지 말고 꼭 재판을 받도록 한다. 판결을 내리겠다.”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민호는 경국대전을 읽었으나 형법 부분인 대명률은 대충 넘어갔다. 도둑은 곤장을 치고 구금과 징역에 해당하는 처벌을 하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실치 않았다.

“여기서 대명률 아는 사람?”

간수군들은 대부분 수군 대립을 하던 사람들이라 대명률 규정도 어느 정도 알았다. 간수군들이 여러 가지 처벌규정을 내놓았다. 대명률이 조선에서 무조건 적용되지 않고 개정되거나 예외가 많아 중구난방이었다.

“초범은 오른팔에, 재범은 왼팔에 절도(竊盜)라는 글을 문신으로 새기고 삼범은 교수하는 것이 대명률입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경면형이라 하여 얼굴에 자자(刺字)합니다.”

“하지만 저 자가 초범인지 알 수 없으므로 형장을 치는 것으로 대신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간수군은 사병이라 해도 군인입니다. 군율에 의해 참수해야 합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간수군들이 동료 범죄자를 보호하지 않자 도둑이 이민호에게 항의했다.

“첨정 나리가 재판권을 가진 절도사나 고을 수령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식 재판을 요청합니다!”

“내가 재판권을 위임받았거든? 교지 보여줄까? 저놈을 형틀에 묶어라. 곤장 칠 줄 아는 사람?”

“첨정 나리! 여기에는 형틀도 없고 곤장도 없지 않습니까? 곤장의 재료와 크기가 세밀하게 규정돼 있어 함부로 다른 물건으로 때리면 안 됩니다.”

“따질 게 많네.”

결국 도둑질한 간수군은 웃통을 벗고 무릎을 꿇은 채 원주민들이 휘두르는 회초리에 등짝을 맞았다. 그 동안 이민호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어도 은근히 원주민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던 간수군들이 바짝 긴장하게 됐다.

닭 값의 열두 배를 쌀 한 섬으로 대충 계산한 다음 도둑질한 간수군의 늠료에서 까서 피해자에게 쌀 한 섬을 주어 손해배상금으로 삼았다. 그리고 도둑을 잡아서 이민호에게 끌고 온 자들에게 상으로 쌀 한 섬을 나눠주었다.

그 외에는 따로 형벌을 가하지 않았다. 간수군들은 원주민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됐지만 그래도 조선에서의 법집행보다 훨씬 약하다고 좋아했다. 원주민들은 정복자나 다름없는 간수군을 처벌하자 더더욱 이민호를 믿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참수 당할까봐 사소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으니 상관없었다. 일본에서 바늘도둑은 손이 잘려 소도둑이 될 기회가 없었다.

말이 겨우 세 마리라 고개를 넘어가지 못하고 외륜선을 타고 다시 해중국으로 돌아왔다. 말 한 마리는 전령이나 정찰 용도로 쓰라고 고산국에 남겨 놓았다.

대만 북부를 빙 돌아 우회하는 항로라 시간이 꽤 걸려 늦은 오후가 되었다. 선착장에 배를 대는데 반대쪽에서 벌거벗은 여자들 수십 명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계복이 손으로 가리키고 어버버거렸다.

“도련님! 혹시 저것들 인어 아닙니까? 그런데 하반신이 물고기가 아닌데요? 그래서 보기에 더 좋습니다.”

“계복아. 일본 여자들이 물질을 하는 거야.”

“예? 쳇!”

그래도 계복의 시선은 물질을 하는 여자들의 하얀 알몸에 꽂혀 있었다. 이민호는 계복을 얼른 장가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어차피 남자는 늙으나 어리나 여자 몸에 눈길이 가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관뒀다.

해변에서 여자들에게 일을 시키던 미카가 하녀들 세 명과 함께 선착장 쪽으로 달려왔다. 하녀 한 명은 공사 현장에서 일본 여자들을 데리고 밥과 빨래를 하는 일을 지휘하느라 이곳에 없었다.

하녀들이 나기나타를 들고 뛰어오니 이민호는 좀 겁이 났다. 짧은 왜검을 든 사무라이를 기다란 나기나타로 조져버리는 일본 승병과 무사 가문 여자의 인상이 이민호에게 떠올랐다.

“주인님! 이것 보세요. 해삼과 전복이 다 있어요. 그 동안 사람들이 잡지 않아 무지 커요.”

“그래. 무슨 전복이 사람 얼굴만 하구나. 해삼은 이 정도 크기가 되니까 무섭다.”

이민호가 전복을 받아들였다가 한쪽에 눈길이 갔다. 이민호가 전복 살을 손으로 꾹꾹 누르자 미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이민호가 작은 손칼을 꺼내들어 칼날을 전복에 대자 화들짝 놀랐다.

“전복에 진주가 들어있어. 꽤 큰데? 자! 가져.”

“예? 에. 그런 거였군요. 놀랐어요.”

하얀 진주를 받은 미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복 생김새가 여자의 신체 부위를 좀 닮았다.

해삼은 제주도에서 나는 홍해삼과 비슷한 종류였다. 크기가 워낙 커서 말린 다음 명나라에 가져가면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처음에나 이런 큰 것이 잡히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런 저서 생물은 금방 씨가 마를 수 있었다. 이민호는 자연자원을 채취할 때 적용될 세세한 규정을 미리 만들어 둬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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