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1/62)

50.

하은의 몸이 바들거리며 떨렸다. 어정쩡하게 서있는 상태로 절정을 맞은 셈이다.

하은은 발목에 걸린 바지와 팬티에서 빠져나와 침대 위로 올라갔다. 건하의 위에 올라가 가랑이를 벌리자 건하의 손에 쥐어진 페니스가 좁은 구멍을 찾아들었다.

“하윽.”

누구의 신음인지 분명하지 않게 동시에 새어 나왔다.

젖가슴을 움켜쥔 건하의 손이 바들거렸다. 단번에 깊숙이 들어간 페니스가 좁은 질구 안에서 꿈틀댔다. 사정없이 조여대는 선득한 감각에 건하가 낮게 신음을 흘렸다.

하은은 밖에 누가 오지 않을까 불안하면서도 발끝까지 저려오는 선득한 쾌락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의 단단한 가슴 위에 손바닥을 대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자 젖은 질벽을 뚫고 굵은 살덩이가 밀려들었다. 좁은 질구에 가득 들어찬 굵은 페니스가 맞물리며 딱 붙은 부위가 뜨거웠다. 젖은 살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음흉하게 병실을 울렸다.

하은이 다시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가 내리자 젖은 질벽에 달라붙은 페니스를 조이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젖가슴이 출렁거렸다. 건하가 상체를 세우고 흔들리는 젖가슴을 물었다. 츱츱 소리를 내며 입 안 가득 들어찬 가슴을 세차게 빨아댔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었다.

건하가 하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바싹 당겼다.

“하윽.”

그녀의 안을 파고들던 페니스가 한껏 발기해 크기가 더해졌다. 단단한 근육으로 뭉친 가슴을 손으로 짚고 하은이 그의 허벅지 위로 내렸다. 성급하게 스퍼트를 올리는 건하의 얼굴이 붉었다. 페니스가 폐부 깊숙이 치고 들어오자 하은은 온몸으로 그를 빨아들였다. 페니스를 그녀의 안에 품은 채로 허리를 흔들었다. 격한 신음 소리를 내던 그가 하은의 다리를 넓게 벌린 후 페니스를 강하게 치대 올렸다.

“흐윽.”

쾌감이 척추를 타고 온몸으로 자릿하게 퍼졌다. 건하의 목울대가 출렁였다. 그의 손이 하은의 젖가슴을 거머쥐며 거칠게 요동치는 페니스를 다시 강하게 들어 올렸다.

동시에 두 사람의 몸이 부딪치며 절정을 맞았다.

강한 오르가슴이 뒤덮이며 하은은 건하의 위로 무너져내렸다. 하은을 끌어안으며 거친 호흡을 내쉬던 건하가 드러난 그녀의 목덜미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

건하의 팔을 베고 누워 심장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그의 호흡을 느꼈다.

간혹 불규칙하게 들릴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고른 리듬처럼 들렸다.

“안 불편해?”

눈을 감고 있던 건하가 하은의 말에 눈꺼풀이 가볍게 흔들렸다.

“뭐가?”

“침대 말야, 너 혼자 누워있어도 비좁아 보이는데 나까지 있으니까.”

“글쎄, 전에는 몰랐는데 마음에 들어. 이참에 집에 가면 침대는 전부 요만한 사이즈로 바꿔볼까 생각 중이야.”

“뭐라는 거야?”

새침한 하은의 말투에 건하가 나직하게 웃으며 하은의 어깨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좁으니까 딱 붙어있게 되고, 좋다는 뜻이야.”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닐 텐데, 적응이 안 될 정도야.”

으음, 하고 건하가 멋쩍은 표정을 했다.

“어리광 피우는 애들이 요즘은 이해가 돼. 그게 바로 관심받고 싶다는 외적 표현이거든.”

“그러니까. 너처럼 차갑게 사람 잡아먹을 것 같은 눈을 하고 지금처럼 어리광 피우면 옆에 사람 얼마나 소름 돋게 하는지도 알아야지.”

건하가 소리 내어 웃자 하은도 따라 웃었다.

얼마간 침묵이 흐르고 하은이 망설이듯 어렵게 입을 떼었다.

“왜, 그랬어?”

“뭘?”

“죽을 수도 있었잖아. 평생 죽음이 꼬리뼈처럼 따라다녔는데 그 순간 무섭지 않았어?”

건하의 얼굴이 수수께끼처럼 어려웠다가 이내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 것처럼 후련한 얼굴을 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 복잡한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무서웠던 건……, 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어.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았건 상관없이 앞으로 너 없이 내가 혼자 살아갈 시간이 두려웠으니까.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이야.”

“죽음이 두렵지 않아?”

하은은 마른침을 삼키고 건하의 옆모습을 응시했다.

“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두렵다는 생각을 해. 너하고 나 둘 중에 한 사람이 죽으면 결국 누구든 혼자 남게 될 테니까.”

하은을 향해 고개를 돌린 건하가 시선을 내려 그를 빤히 보고 있던 하은의 눈을 맞췄다.

“그러니까 우리는 한날한시에 같이 가는 걸로 해. 다른 사람한테는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말이겠지만 너하고 나한테는 절박하니까.”

목 끝이 따끔거리며 뜨거운 것이 심장을 통해 느껴졌다. 하은은 눈물을 참으며 건하와 시선을 맞춘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진하게 가슴을 울렸다.

목발을 짚고 옆을 걷는 건하가 신경이 쓰여 하은은 자꾸만 옆을 보게 된다.

백건하가 퇴원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사이 하은은 살고 있던 집을 정리하고 건하의 집으로 들어왔다.

백건하 때문도 아니고 한 회장 때문도 아닌 오로지 하은의 선택이었다.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에서 점술가의 예언대로 백건하의 명이 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머릿속에 인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자신의 나쁜 기운 때문에 백건하를 잃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그녀의 존재가 백건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삶은 늘 원하는 것을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큰어머니의 차에 치여 하은이 죽을 수도 있는 그 상황에서 그녀를 살려낸 게 백건하였다니, 사실 점술가의 말도 흔하게 들었던 하은의 나쁜 기운도 모두 우습게 만드는 일이었다.

큰어머니가 그녀와 건하를 다치게 한 뺑소니 범인이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큰집은 무슨 일이든 할 사람들이었고 언제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생각,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큰어머니의 만행이 지금까지는 그녀에게 국한된 것이었기에 참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백건하를 잃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건하는 이런 분노조차 필요 없으니 자신만을 봐 달라 하겠지. 이미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보복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백건하 성격에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을 테고, 만약 그가 행동에 옮겼다면 가장 최악의 상황까지 몰아갔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큰아버지나 큰어머니 두 사람에게 그치지 않고 미국에 있는 사촌들에게도 영향이 갔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어떤 일을 당하든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저지른 일에 대한 합당한 죄를 받았든 그 이상의 것을 당했든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어쩌면 그럼에도 결코 반성이라는 것을 모를 사람들이었다.

“혼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건하가 툴툴댔다.

“혼자 생각도 못 해?”

하은의 모습이 어딘지 힘이 빠져 보였고 얼굴도 어두웠다. 하은을 보는 건하의 눈이 깊어졌다.

“사람 불안하게 하니까 그러지, 내 주먹보다도 작은 머릿속이 뭐가 그렇게 복잡한 건지 가끔은 단순하게 살 필요도 있어.”

건하의 말에 하은이 핏 웃었다.

“단순하게 사는 사람치고 말이 길어.”

목발을 짚고 걷는 건하의 속도에 맞춰 하은도 느리게 걸었다.

“힘들면 지금이라도 들어가. 산책만 하고 금방 따라 들어갈게.”

“됐어. 안에만 있으려니까 답답해.”

한때 푸른 잔디로 꽉 차 있던 정원이 포크레인으로 어지럽게 파헤쳐지고 있었다. 추위에 시들은 꽃과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졌다.

“정원 인테리어를 너무 자주 바꾸는 거 아니야?”

“한 회장이 시든 나무, 꽃 그런 걸 못 보는 성미라. 집안에 그런 게 남아있으면 재수가 없다고. 하여간 미신은 드럽게 믿어.”

할머니를 한 회장이라고 칭하며 꼭 남의 말 하듯이 하는 건하를 하은이 곁눈질했다.

“말이라도 좀 이쁘게 해. 회장님 살아온 세월이 전부 백건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으니까. 내가 보기에 넌 너무 버릇이 없어.”

하은의 말에 건하가 큭, 하고 웃었다.

“넌 어째 말하는 게 점점 할머니를 닮아가는 것 같지?”

그의 말에 반박하려다가 하은은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그녀의 남은 삶도 그의 할머니를 닮아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건하를 위해 존재하는 삶.

사실은 그렇게 작정하고 그의 집으로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것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이 두렵다고 해서 ‘오늘’이라는 귀한 시간을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백건하와 함께일 수 있는 시간이 오늘밖에 없다면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살아내자, 그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백건하가 옆에 있으니 늘 뭔가에 쫓기듯 살았던 삶이 편안해졌다.

매일 밤 그녀를 괴롭혔던 악몽도 줄어들었다.

넓은 정원을 지나 숲의 초입에 서서 여전히 하늘까지 뻗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길게 뻗은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선명했다.

가라앉아 있던 건하의 눈동자가 그녀를 볼 때면 흔들리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숲은 백건하를 닮아있었다.

사계절의 비바람을 거치면서도 변함없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

그래서 늘 빠져들듯 숲을 찾았던 건지도 몰랐다.

숲을 걸으면 가슴을 뛰게 하기도 하고 혼란이 잦아들며 휴식을 주기도 했다.

사는 건 버티는 거라고, 언젠가 건하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하지만 하은은 지금, 사는 건 그늘 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주저앉은 무릎을 세워 잃었던 걸음을 내딛는 것, 바로 백건하가 그녀에게 새로 준 삶이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시간을 온통 백건하로 채우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그녀에게 삶이 곧 백건하일 테니.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위대한 말이 있다면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표현하는 말이 그것밖에 없다면, 진심으로 백건하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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