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집요한 시선이 삽입이 반복될 때마다 쾌감으로 젖은 숨을 토해내는 하은의 표정을 놓지 않았다. 그녀의 안을 사정없이 파고들 때마다 풍만한 그녀의 젖가슴이 흔들렸다.
허리를 질척이며 양쪽 젖가슴을 번갈아 빨아대던 그가 쇄골의 움푹 파인 곳까지 올라 혀로 쓸었다. 빠르게 허리를 움직이자 페니스에 들러붙은 속살이 사정없이 그를 조였다.
반듯한 이마가 일그러지며 굵은 핏줄이 도드라졌다. 강한 자극이 울리며 동시에 두 개의 몸이 겹쳐졌다.
발그레한 그녀의 얼굴 위로 쏟아지는 젖은 호흡이 거칠어진 순간 깊숙한 삽입에 그녀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하읏.”
젖은 물이 왈칵, 딱 붙은 음부 사이를 적셨다.
강한 쾌감에 건하의 얼굴도 흐려졌다. 동시에 그가 강하게 허리를 튕겼다.
겹쳐진 몸 위에 심장이 맞붙어 격한 호흡이 한꺼번에 터졌다.
절정의 여운이 사라질 때까지 건하가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격한 숨을 토해냈다.
한참 맞물린 채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탁한 숨이 조금씩 가라앉을 때쯤, 건하가 몸을 세우며 그녀에게서 빠져나갔다.
갑자기 밀려드는 한기에 하은이 가볍게 몸을 떨자 건하가 무심히 발치에 있던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벗은 몸을 덮었다.
격한 정사 후 그녀를 안아주던 다정한 손길 따위는 없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없을지도 몰랐다.
벗은 몸으로 욕실로 걸어 들어간 후 얼마 뒤 바닥을 적시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생각은 배제하고 몸만 가지는 거야.’
고단한 숨을 내쉬며 하은이 옆으로 돌아누웠다. 어둠 속에서 깜박이던 눈이 금세 젖어들었다.
떨어져내리던 물소리가 멈추고 얼마 뒤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둠 속에 희미한 그림자가 흔들렸다. 바닥에 떨어진 옷을 입는 소음이 들리고 얼마 뒤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마저 들렸다.
그리고 다시 조용한 실내, 숨을 죽이고 있던 하은이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
이른 아침부터 이어진 임원 회의가 끝나고 다음 일정을 위해 차에 올랐다.
얼마 전 새로 증축한 천안 물류 공장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미 한차례 일정을 미룬 뒤에 잡힌 일정이라 연기할 수 없었다.
평소보다 주량을 초과해 마신 탓에 뒤늦게 숙취가 밀려들었다. 건하가 피곤한 듯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오전에 1심 선고가 났습니다. 결과는 이미 예측한 대로 장하은 씨 쪽이 승소했습니다.”
시트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던 건하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비서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며칠간 쉴 새 없이 스케줄을 소화한 탓에 백건하의 얼굴에 피로가 짙어 보였다.
한 회장이 손수 지어 보낸 한약을 들였더니 나중에 먹겠다고 말만 하고 마시지도 않은 채 그대로였다.
몸을 돌보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사고 관련해서 특이점은 없었어?”
눈을 감은 채로 건하가 생각난 듯 물었다.
“이미 증거물 보관 시효가 지나 폐기한 상태라, 경찰을 통하기는 어려울 듯 보입니다. 장범우 사장 주변을 파헤치고 있으니 조만간 확보되면 보고드리겠습니다.”
갑갑한 듯 건하가 눈을 뜨고 창문을 내렸다.
찬바람이 맹렬히 차 안을 파고들었다. 목을 죄고 있던 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낸 뒤 위의 단추 하나를 끌렀다.
절박한 얼굴을 하고 그의 폭주를 묵묵히 끌어안던 지난밤 하은의 표정을 떠올렸다.
벌주듯 몰아붙여 억지로 받아낸 미안하다는 한마디, 그거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지난밤 그녀를 거칠게 대한 대가는 지금 자신이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놓친 것처럼 내내 불편한 마음이었다. 상처받았을지도 모르는 여자가 걱정이 되어 자꾸 마음이 쓰였다.
건하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때? 굳이 장범우한테 알아낼 필요 없잖아? 그쪽 친가 가족들도 더 있을 텐데.”
백미러를 통해 건하의 눈치를 보던 비서가 대답을 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차는 어느새 천안 톨게이트로 들어가고 있었다.
영양제를 맞고 있던 한 회장은 희미한 소음에 눈을 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행 비서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아 보여 한 회장의 눈가가 예민하게 일어섰다.
“무슨 일이야?”
수행 비서가 한 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다가 이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게……, 천안 물류 공장에서 사고가 좀 있었다고 하십니다.”
“증축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누가 다치기라도 한 거야?”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던 한 회장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가만! 오늘 건하가 거기 간다고 하지 않았어?”
수행 비서가 뭐라고 말을 하기 전에 성미 급한 한 회장은 손목에 있던 링거 바늘을 잡아떼었다.
놀란 수행 비서가 다가와 협탁 위에 있던 티슈로 한 회장의 손목을 눌렀다.
“회장님! 지금 상황 수습 중이니 곧 보고가…….”
“얼른 차 대기 안 시키고 뭐 해? 이놈들아! 그 아이가 어떤 애인 줄 알고……!”
입술을 눈에 띄게 떨어대며 한 회장이 호통을 치자 밖에 있던 가드들이 한꺼번에 안으로 들어섰다.
“얼른 전화 연결해 봐! 얼른!”
조바심이 난 한 회장은 기다리지 못하고 복도로 나섰다. 갑자기 몸이 비틀거리자 옆에 있던 가드가 재빨리 한 회장을 부축했다.
“하이고, 내 새끼…….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러길래 내가 하은이 고것을 붙잡아 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도 고집을 피우더니 이 사단을 냈어! 이제 이 일을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부들부들 떨며 혼잣말을 하던 한 회장이 병원을 나섰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언젠가 오늘처럼 아들은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섰다.
유난히 하늘이 맑고 파래서, 기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날이었다. 그렇게 세상 가득 그녀에게 행복을 주던 아들은 그날 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맑고 파랬던 하늘이 그 후로 내내 그녀에게 핏빛 붉은색이었다. 한 번도 하늘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그날 아들을 잃어버린 그 파랗게 시린 하늘을 원망하면서 평생을 보냈다.
건하를 품에 안고 그 후로 처음 하늘을 올려다보며 빌었다.
이 아이만은 지키게 해달라고, 뭐든 다 가져가도 좋으니 건하는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심장이 벌렁댔다.
절대, 아무 일도 없어야 했다. 어디 하나 다친 곳 없이 아침에 집을 나서던 그대로 품으로 돌아와야 했다.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오른 한 회장은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천안 공장에 도착하자 공장 주변은 어수선했다.
한 회장이 타고 있던 차가 도착하자 흩어져 있던 직원들이 몰려와 한 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딨냐? 건하는? 왜 안 보여?”
파리한 안색으로 한 회장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건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눈빛이 금세 불안으로 흔들렸다.
“안에서 잠시 쉬고 계십니다. 다행히 큰 사고가 아니라…….”
“네 놈이 의사야? 그걸 왜 네가 판단해!”
공장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 의무실로 들어선 한 회장은 간이 침대에 앉아 등을 보이고 있는 건하를 발견했다.
문 여는 소리에 뒤돌아본 건하가 한 회장을 발견하고 난색을 했다.
“연락하지 말라고 했더니!”
“왜 연락을 안 해? 어딜 다친 게야?”
매끈하고 잘생긴 이마에 제법 큰 의료용 반창고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한 한 회장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병원 가게 앞장서, 얼른.”
한 회장의 호통에 건하가 미간을 찌푸렸다.
“별로 다치지도 않았어, 그냥 단순 타박상이야. 병원은 무슨.”
“네가 뭘 알아서? 사진도 찍어보고 어디가 잘못됐는지 확인을 해야지. 당장 박 원장한테 연락…….”
“됐어! 그만해! 사람 무안하게…….”
침대에서 일어선 건하가 옆에 벗어 놓았던 재킷을 집어 들었다.
“그러게 내가 그 아이 보내면 안 된다고 그렇게 일렀건만! 결국 이 사단을 만들어? 모가지를 비틀어서라도 데려다…….”
“그만 좀 해! 하은이 손대면!”
날카로운 칼날처럼 말을 뱉어내며 건하가 한 회장을 향해 돌아섰다. 한 회장이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하은이 손끝 하나라도 건드려 봐! 내가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너……, 너 이놈! 지금 할미 앞에서 그게 할 소리야?”
부들부들 떠는 한 회장을 보며 건하가 한숨을 내쉬고 한 회장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이제 그만해! 지금까지 할머니가 하는 건 뭐든, 할머니 마음 편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보고만 있었어. 근데……, 이제 그만해. 소용없는 짓이야! 나는 그 애가 나 때문에 상처받는 거 더는 못 보겠어.”
건하는 한 회장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잡았다가 놓았다.
미세한 고통이 건하의 얼굴을 지나가는 것을 한 회장이 놓치지 않고 보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건하의 모습에 한 회장의 미간이 모아졌다.
하은이 그 아이에게 마음을 준 게 틀림없었다. 한 번도 할머니인 자신에게조차도 함부로 곁을 내어준 적이 없던 아이였다. 어릴 적부터 저에게 처한 상황이 남달라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도 않았다. 꿋꿋하게 빗장을 걸고 절대로 열어주지 않았던 그 견고한 문을 연 게 그 아이라니! 하지만 보아하니 건하가 마음을 준 만큼 돌려받지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건하 성격에 제 것이 안 되면 무슨 수를 쓰든 빼앗기라도 했을 텐데, 지금까지 알고 있던 건하와 다른 사람 같았다.
의무실을 나서는 건하의 뒷모습을 보며 한 회장은 속을 끓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아이를 다시 건하의 옆에 데려다 놓아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