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벗은 몸의 어디를 가려야 할지 몰라 하은이 몸을 움츠리자 건하가 셔츠의 단추를 풀며 다가왔다.
“안 건드린다며?”
하은의 눈을 맞추며 건하가 순식간에 옷을 벗어 던졌다.
잘생긴 귀공자 같은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다부진 몸의 중심을 장악한 험악한 남성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며 튕겨 올랐다.
완전히 발기한 페니스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도 얼굴이 빨개진 하은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이성과 다르게 다리 사이가 뜨끈하게 젖어들었다.
건하의 시선이 탄력 있는 가슴의 정점에 물방울이 맺혔다 떨어지는 것을 보다가 이내 젖은 음모로 덮인 사타구니 아래로 내렸다.
“안 믿는 눈치라.”
애초에 건들지 않겠다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욕실 문을 열고 들어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위험하게 눈을 빛내며 다가온 그가 하은의 뒤로 돌아 쏟아 내리는 물줄기 아래에 섰다.
몸을 가리고 있던 하은의 손을 내리고 그 자리에 그의 손이 덮였다.
등 뒤로 발기한 남성을 바싹 붙이고 선 그가 젖가슴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이 납작한 배를 따라 내려왔다.
그의 손길이 몸에 닿자 하은이 젖은 숨을 토해냈다.
“피곤해 보여 씻겨 줄까 해서. 전에도 여기, 손 넣어서 씻겨준 거 생각 안 나?”
그의 손이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며 갈라진 틈을 더듬었다. 손바닥이 벌어진 아래를 쓸고 지나갔다. 따뜻한 물이 몸을 데워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은이 몸을 떨었다.
손가락을 더 깊숙이 밀어 넣자 터져나오는 교성을 참으며 하은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곧이어 드러난 목덜미에 건하가 입술을 내렸다. 흡입하듯 연한 목덜미를 빨자 하얗고 여린 피부가 금세 붉어졌다.
“넌 인정 안 하겠지만 우린 잘 맞아. 적어도 여기, 사람 미치게 하거든.”
굵고 긴 손가락을 안으로 밀어 넣자 결합된 부위가 맞물리며 사정없이 조여댔다.
손가락이 가랑이 사이를 끊임없이 드나들며 젖은 내벽을 거침없이 휘저었다.
다른 한 손은 젖가슴을 손아귀 가득 넣고 터트릴 듯이 세게 움켜쥐었다.
그에게 유일하게 열리는 몸, 누구도 아닌 백건하만 아는 몸이었다.
누구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그만이 품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하은이 참을 수 없어 하는지, 어디를 만지면 비명처럼 교성을 지르는지 그는 속속들이 알았다.
하은은 서늘한 타일 벽을 손으로 짚으며 균형을 잡으려고 애썼다. 건하가 발기한 페니스를 하은의 엉덩이에 비벼대자 몸이 자꾸 앞으로 쏠렸다.
“못 참겠어.”
건하가 하은의 허리를 받치고 몸을 숙이게 하고는 벌어진 틈을 메우듯 단단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며 너무 깊게 들어오자 하은은 숨이 턱턱 막혔다.
그가 하은의 골반을 잡은 채 뒤에서 밀어붙이듯 삽입해 들어갔다. 페니스를 조여대는 여린 살점이 징징대며 울렸다. 미칠 듯한 쾌감이 건하를 강렬히 자극하며 척추까지 저릿하게 했다.
“하읏.”
벌어진 가랑이 사이를 건하는 맹렬하게 파고들었다. 울음인지 분간하기 힘든 신음이 하은의 벌어진 입술 틈으로 새어 나왔다. 건하는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허리를 튕겼다.
결합이 깊어지자 하은의 여린 몸이 파르르 떨렸다. 굵고 거대한 크기의 남성이 좁은 틈을 나가고 들어가는 감각이 선득하게 닿았다.
온몸을 꿰뚫리는 것 같은 감각에 온몸의 세포가 한곳에 몰리며 반응했다.
이미 몇 번이고 절정에 오른 것 같았다. 그럼에도 백건하는 멈출 것 같지 않았다. 몸이 바들거리며 떨렸다. 그가 허리를 튕겨 올릴 때마다 풍만한 젖가슴이 바닥으로 향한 채로 흔들렸다.
“흐응.”
하은이 고양이처럼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떨자 건하의 허벅지에 바싹 힘이 들어갔다.
쾌감이 그의 전신을 타고 내렸다. 목울대가 출렁이며 건하가 하은의 골반을 강하게 받치고 몸을 떨며 사정했다.
하얀 정액이 물줄기와 함께 바닥으로 쓸려 내려갔다. 건하가 무너져 내리는 하은을 받치고 돌려세우며 끌어안았다.
침대 위에서 두 번째 섹스를 한 뒤 하은은 기진맥진한 채로 누워있었다.
등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은 건하의 거친 숨소리가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하은은 어둠 속에서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피곤이 온몸을 덮었다. 밖에서 희미한 파도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왔다.
“돌아와.”
낮고 허스키한 건하의 말이 어둠을 갈랐다.
“나를 못 벗어나. 그러니까 포기해.”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온 그의 손이 말캉한 젖가슴을 거머쥐었다. 지친 기색 없는 그가 하은의 어깨에 입술을 내렸다. 그리고 그의 체취가 섞인 그녀의 몸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마셨다.
연하고 탄력 있는 살점이 그의 피부에 닿는 감촉이 좋아 건하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어차피 매일 이렇게 찾아올 텐데, 굳이 떨어져 있을 필요 없잖아.”
반복된 섹스에 이미 늘어진 몸인데도 젖가슴을 만지는 자극에 몸에 열이 차올랐다.
하은은 깊은숨을 내쉬고 그의 손을 밀어냈다.
“오고 싶으면 언제든 와, 쫓아내지 않으니까. 날 만지는 네가 좋아. 하지만 그것뿐이야. 네 말대로 우린 부부니까, 몸은 네 맘대로 가져.”
보드라운 살을 어루만지던 건하의 손이 멎었다.
그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도 느껴졌다. 하은은 소리 없이 마른침을 삼켰다.
“나는 충분히 만족해, 백건하 너하고 자는 거. 하지만 그 집에는 돌아가지 않아.”
“원하는 게……, 그것뿐이라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건하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울렸다.
“그것 말고 우리한테 뭐가 더 있어?”
무거운 침묵이 꽤 오래 두 사람 사이에 머물렀다. 어둡고 습한 호흡이 하은의 머리 위에서 느껴졌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그의 속을 헤집는 갈등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하은은 손톱으로 그녀의 손등을 아플 정도로 눌렀다. 지쳐서 포기를 배우는 방법, 지금 백건하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얼마간 침묵이 흐른 뒤 건하가 한숨처럼 말을 내뱉었다.
“그래……, 뭐가 더 있겠어? 그것 말고.”
숨을 깊이 내뱉는 건하의 뜨거운 호흡이 하은의 목덜미에 달라붙었다.
“그럼 충실해야지, 몸이 시키는 대로! 본능에 충실하게.”
건하의 손이 하은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자 그녀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래…… 어디에 있든 무슨 상관이겠어? 굳이 네가 들어오기 싫다면 내가 너한테 가면 되는데 그걸 여태 머리 아프게 고민했네.”
다리 안쪽을 파고드는 건하의 손을 쳐내며 하은이 몸을 돌려 건하를 쳐다보았다.
어둠 속이라 그의 표정이 어떤지 보이지 않았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이 사납게 번득이는 건하의 눈만을 비췄다.
“무슨 뜻이야?”
건하가 상체를 일으키며 하은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내려다보았다. 뜨거운 숨이 그녀의 얼굴과 목덜미로 느리게 파고들었다.
“무슨 뜻이겠어? 네 말대로 언제든 내가 필요할 때 널 갖겠다는 말이지. 내가 가질 게 네 몸뚱이뿐이라면 기꺼이 그러겠다는 말이야. 그게 정말 네가 바라는 일이라면.”
뜨겁게 호흡하던 그가 멀어지며 소리 없이 침대에서 빠져나갔다.
침실을 지나는 발소리,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용히 닫혔다. 그리고 백건하가 빠져나간 침실은 꽤 오래 침묵이 흘렀다.
더 이상 백건하가 느껴지지 않는 텅 빈 방이었다.
비로소 하은은 참고 있던 호흡을 한꺼번에 내쉬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백건하가 남기고 간 아릿한 통증을 느꼈다.
이제 정말 끝인 건가?
안도감과 함께 뼛속 깊숙이 파고드는 절망감이 느껴졌다.
‘그 사람들은 모르지? 한 회장도, 그리고 한 회장이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그 손자놈도! 너한테 씌여있는 그 악귀가 언젠가는 그 손자도 잡아먹을 거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하네.’
가슴에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이 온몸을 적시는 것 같았다. 입술을 깨물고 참아보려고 했지만 눈가에 맺힌 눈물이 이내 볼을 타고 흘렀다.
이제, 다 된 건가?
백건하가 아무 이유 없이 죽는 건 바라지 않는다. 더 이상 자신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 백건하를 보내는 게 맞는 거다.
큰어머니의 말이 맞든, 안 맞든 중요하지 않았다. 진실을 시험하고 싶지 않았다.
같이 있지 않아도 멀리, 어디선가 살아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거였다.
아픔을 견디는 건 그녀 몫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그녀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
해가 뜨지 않은 푸른 새벽, 밖에서 여러 개의 발자국 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더니 이내 자동차 바퀴가 지면과 맞닿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멀어져갔다.
백건하가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못되게 말을 했으니 자존심이 상했겠지.
단단한 사람이니 상처도 깊지 않을 것이었다.
어쩌면 상처 따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뒤돌아 금방 잊어버리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이 순간은 분명히 지나간다.
견디다 보면 또 살아지는 게 삶이다. 지금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그저 먹고 자고 그것만 하면 어떻게든 살아질 테니 말이다.
견디고 견디다가 그런 자신이 비참해질 때, 아주 지쳐버려서 더는 버틸 힘이 없을 때가 되면 그때는 어떤 방법으로든 끝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시작과 끝은 분명히 있으니 이 지긋지긋한 삶의 끝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