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휩쓸리듯 절정이 지나간 뒤에도 건하는 살점이 뽑혀나갈 듯이 강력하게 빨아대며 핥기를 반복했다. 집요한 그가 성에 찰 때까지 하은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에게 점령당한 아래의 깊숙한 곳에서 다시 쾌감이 요동쳤다. 젖을 대로 젖어 엉망인 아래를 건하가 쉴 틈 없이 혀로 핥고 빨아댔다. 아쉬운 듯 느리게 고개를 든 그가 다가왔을 때 하은은 망설임 없이 그를 당겨 입술을 벌렸다.
동시에 젖은 그녀의 음부에 터질 듯이 부푼 페니스가 닿았다. 한껏 발기한 페니스에 울퉁불퉁한 핏줄이 한껏 드러나며 꿈틀댔다. 그리고 이내 안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듯 삽입했다.
하윽.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신음이 좁은 실내를 가득 채웠다.
단단한 허벅지의 살점이 하은에 닿아 마찰을 일으키자 건하가 미간을 모은 채로 숨을 내뱉었다.
그가 허리를 틀며 끝까지 안으로 밀어 넣자 하은의 다문 입에서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매끈하고 빈틈없는 건하의 이마가 한껏 비틀리며 굵은 핏대가 섰다.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낸 건하의 눈이 하은을 응시했다.
“못 참겠어.”
그가 낮게 속삭이는 것과 동시에 건하가 폭주하듯 허리를 들어 거칠게 삽입하며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뿌리까지 깊숙한 곳과 맞물리자 쾌감이 전신으로 번졌다. 이미 자제력은 물 건너간 듯 건하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점점 뜨겁게 허리를 튕겼다.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쾌감에 하은은 견딜 수 없어 상체를 뒤로 젖혔다. 기다렸다는 듯 위로 들린 젖가슴을 건하가 물었다. 날카로운 콧날이 살점에 파묻히며 강하게 젖가슴을 빠는 그를 하은이 끌어안았다. 안을 파고드는 감각에 하은은 아랫배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촘촘하게 살점이 그를 조여대자 건하의 목울대가 출렁이며 신음을 쏟아냈다.
깊숙한 삽입으로 몸의 깊숙한 곳이 징징대며 울렸다. 겹쳐진 두 사람의 몸에 동시에 쾌락이 덮쳤다. 건하가 삽입한 채로 그녀의 몸 위에서 그대로 멈추자 건장한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
동시에 강하게 허리를 튕겨 올린 그가 진득하고 만족스러운 숨을 토해냈다. 땀이 밴 몸이 그녀 위로 무너지자 하은은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한차례 격한 절정이 두 사람을 휩쓸고 지나간 후에도 건하는 여전히 그녀의 안에 삽입된 채로 있었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어떤 날은 결합된 채로 잠이 드는 날도 있었다.
함께인 느낌이 좋아서, 떨어지기 싫어 부둥켜안고 밤을 보냈던 익숙했던 느낌이 그리웠다.
오만하고 차갑다고만 생각했던 그가 그녀를 안을 때는 얼마나 뜨겁고 따뜻했는지 잊고 있었다.
아니 잊고 싶었다. 그를 미워하고 싶었는데 그래지지가 않아서.
하은의 눈가가 젖어들자 그가 혀로 하은의 눈물을 핥아 닦아냈다. 몇 번이고 반복하며.
불규칙하던 하은의 숨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즈음 건하가 몸을 떼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지쳐 기절하듯 잠든 하은을 어둠 속에서 내려다보았다. 헝클어진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고 드러난 작은 얼굴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듯 쓸어보았다.
“하아.”
묵직하고 깊은 신음이 건하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불을 끌어다 서늘한 공기에 드러난 하은의 나신을 덮었다.
그녀가 잠에서 깨면 그와 보냈던 밤을 후회하게 될 테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건하가 씁쓸한 얼굴을 했다.
미워하고 원망해도 그녀를 놓을 생각은 없었다.
침대에서 빠져나온 건하는 하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옷을 집어 들었다.
아직도 페니스는 단단하게 일어서 다음에 이어질 삽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브리프 안에 페니스를 구겨 넣고 지퍼를 올리자 돌덩이처럼 굳은 사타구니가 꿈틀댔다. 셔츠를 입고 단추를 채운 건하가 침대로 다가와 하은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이미 어둠에 익숙해져 좁은 집안의 내부가 희미하게 보였다. 주방과 침실이 구별되지 않은 좁은 실내.
건하의 미간이 틀어지며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현관문을 향했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 건하가 아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 하은이 누워있는 침대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돌아서 문을 열고 나갔다.
실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햇살 때문에 하은은 이불 안으로 몸을 숨겼다.
머리가 흔들리며 깨질듯한 두통이 시작되었다.
몸을 웅크리고 동글게 말며 누워있던 하은이 기겁하듯 눈을 떴다.
이불 속 그녀는 속옷 하나 남아있지 않은 완벽한 벗은 몸이었다. 게다가 건하가 평소의 자제력을 잃고 거칠게 삽입했던 터라 사타구니에도 미세한 통증이 느껴졌다.
문득 지난 밤의 기억들이 드문드문 눈앞을 스쳐 갔다.
백건하의 차에 올라탄 것부터 시작해 그가 그녀의 집까지 따라 올라온 것까지는 비교적 기억이 또렷한데 이후는 필름이 끊긴 것처럼 토막 나있었다.
이불 안에서 입을 틀어막고 있는 힘을 다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끔찍한 고통보다 몸에 익숙했던 쾌감이 떠올랐다.
미워한다고 증오한다고 말했는데 그에게 매달리듯 섹스했던 지난 밤의 그녀는 얼마나 우스웠을까?
하은은 끙, 하고 신음을 했다.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실내를 훑었다.
발자국처럼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은 하은의 옷밖에 없었다. 관계를 끝낸 뒤 룸을 빠져나간 백건하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제 욕망만 채우고 곧장 나갔을 테지.
하은은 괴로운 듯 신음하며 자신의 머리칼을 사정없이 흩트렸다.
그때 초인종이 울려 하은은 놀란 표정으로 현관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문할 사람이 없어 하은은 몸을 일으켜 인터폰을 응시했다.
“윤 실장입니다. 드실 것 좀 가져왔는데 놓고 가겠습니다.”
인터폰을 통해 들려오는 음성을 하은은 듣고만 있었다.
인터폰 화면에 비치는 형체가 누구인지 정확하지 않았다.
한참 누워있던 하은은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걸치고 현관 문 앞에 섰다. 망설이며 문을 열자 입구에 놓여있는 커다란 쇼핑백이 보였다.
문을 닫고 쇼핑백을 식탁 위에 올렸다. 안에는 포장 음식과 약국 봉투도 들어있었다.
약국 봉투를 꺼내 안을 들여다보자 숙취 해소제와 영양제 몇 개가 눈에 띈다.
봉투에서 숙취 해소제를 꺼내 입구를 열어 한꺼번에 삼켰다. 여전히 속이 거북하고 머리에 편두통이 일었다. 하은은 쇼핑백에서 포장 용기를 꺼내 내용물을 빈 냄비에 넣었다. 그리고 가스 불을 켜 식탁 의자에 앉았다.
문득 백건하와 함께 보냈던 일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밤새 이어진 섹스에 지친 하은에게 백건하는 트레이 가득 음식을 가져왔다.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를 일으켜 앉히고는 싫다는 그녀를 달래가며 음식을 먹여주던 것이 생각났다.
거칠고 인정머리 없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백건하는 다정했다.
국이 끓자 가스 불을 끄고 그릇에 먹을 만큼 담았다.
식탁에 앉아 백건하가 보낸 해장국을 응시했다. 목 끝이 따끔거리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정이 끓어올랐다.
수저를 들고 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 안에 넣었다.
따끈함이 목을 타고 넘어가 속을 데웠다.
조용한 실내, 수저와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만이 전부였다.
하은은 조용한 실내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기말고사도 끝나 오늘부터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이라고 해서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뭔가를 계획하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난 여름 방학은 백건하와 뉴욕에 있었다.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특별한 게 없었지만 바다도 보았고 센트럴파크의 아름다운 선셋과 하릴없이 걸었던 뉴욕의 거리와 그리고.
백건하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제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일은 없겠지.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 계속될 것 같고 잘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의심이 커서 마음이 불안했다.
백건하가 그녀를 속인 것은 맞지만 그래도 함께였던 순간에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옆에만 있어도 편안했고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달콤한 순간을 맛봤고 그것이 사라진 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잘 알고 있었다.
종일 집에 혼자 있다가는 지금처럼 백건하의 일만 곱씹을 것 같았다.
방학하면 단기 알바로 모은 돈으로 혼자 여행 갈 거라는 영빈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혼자만의 여행.
뚜렷한 계획도 없이 하은은 무작정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강릉행 표를 끊었다. 출발까지 1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있으니 뒤늦게 마음이 설레었다. 여행 앱에 들어가 호텔 예약까지 끝내고 나니 출발 시간이 임박했다. 평일이라 버스 안은 한산했고 그녀처럼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도 몇몇 보였다. 버스가 출발하고 고속도로 위를 달리자 그제야 여행이 실감 났다.
지금까지는 늘 뭔가에 쫓기듯이 살았고 그래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악몽을 꿨고 부모님을 떠올리면 보이지 않은 무언가가 자신을 바닥끝까지 끌고 내려가는 것 같았다.
지나치는 창밖의 풍경들을 무심한 눈으로 보았다.
서울을 벗어나자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 눈이 하얗게 쌓여있었다. 첫눈이 내린 곳이 있다고 하더니, 아마 저기 어디쯤이었나보다. 초록이 떨어져 나간 겨울 숲은 보기에도 시린 냉기가 느껴졌다.
매일 걸었던 숲길을 떠올렸다. 하늘이 보이지 않게 빽빽하게 늘어선 나무들도 지금쯤 온통 회색빛이겠지. 산책하다 지칠 때쯤 앉아 쉬곤 하던 나무 밑동에도 하얗게 서리가 내렸을 것이다.
지금도 백건하는 가끔 숲을 산책할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은은 시간을 거슬러 기억을 그때로 되돌렸다. 그날, 백건하와 한 회장이 나눈 대화를 듣고 무작정 숲을 향해 뛰었던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