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하은에게 어깨를 내어준 채로 건하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지금처럼 옆에 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여전히 하은은 그를 밀어낼 생각뿐이었다.
옆에 가까이 오는 것도 질색을 하며 독기를 뿜어내더니 잠든 지금은 순한 양 같았다.
건하는 조심스럽게 호흡을 내쉬었다. 이렇게라도 잠시 옆에 있으니 살 것도 같았다.
태엽을 감아 놓은 인형처럼 그의 하루는 기계적이고 눈을 뜨면 또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그렇게 매일이 같은 시간이 계속된다. 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게, 벌을 받고 있는 기분이다.
텅 빈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아무 기대도 없이 목적의식도 없이 사는 의미 없는 시간들, 그는 다시 하은을 만나기 전의 텅 빈 시간으로 돌아갔다.
아니 이 여자를 만나기 전에는 오히려 그 시간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감정의 기복도 없이 그저 잔잔한 수면 위에 둥둥 떠있는 것 같은 그런 날.
하지만 이제는 알아버려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심장을 맞대고 있으면 활어처럼 팔딱거리며 뛰는 여자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건하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설렘과 몇 번이고 가지고 또 가져도 자꾸만 솟아나는 여자에 대한 갈증이 자신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남자임을 깨닫게 했다.
그녀가 수도 없이 그를 밀어내도 그가 돌아올 곳은 결국 이 여자 옆인 이유였다.
얼마 가지 않아 하은의 집이 보였다.
차를 타면 20분도 채 안 걸리는데 오늘은 그 두 배가 걸린 셈이다. 그런데도 짧게만 느껴졌다. 곤히 잠든 하은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차가 정차한 후에도 건하는 그대로 앉아있었다.
자세가 불편한지 하은이 희미하게 몸을 비틀며 눈을 떴다.
잠에서 덜 깬 눈으로 건하의 눈과 마주치자 몸을 바로 세웠다. 익숙한 주변을 보며 집 앞이라는 것을 깨달은 하은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잠에서 깨고 급하게 움직인 탓에 현기증으로 하은이 차체를 짚었다.
하은을 따라 차에서 내린 건하가 하은의 가방을 손에 쥔 채로 하은의 옆으로 다가왔다.
“적당히 마셔. 취해서 비틀대니까 시답잖은 새끼들이 옆에 붙지.”
건하의 말이 신경에 거슬린 하은은 빈정대듯 웃으며 건하를 쳐다보았다.
“너는 뭐 다를 것 같아?”
건하에게서 가방을 빼앗듯 거머쥔 하은이 오피스텔 출입구를 향해 걸었다. 현관 입구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선 하은은 뒤에 바싹 붙어서 있던 건하를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술기운으로 무뎌진 감각이 건하를 의식하지 못했다. 하은의 뒤를 따라 들어온 건하가 놀란 눈으로 멈춰선 하은을 무시하고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승강기 문이 열리자 건하가 먼저 탄 뒤 층수 버튼을 눌렀다. 하은이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건하를 노려보았다. 열림 버튼을 누른 채로 건하는 모르는 척 하은이 타기만을 기다렸다.
“내려!”
“물 한잔 얻어 마시고 가려고.”
누구라도 믿지 않을 말을 건하는 능청스럽게 하고 있었다.
위층에서 승강기를 두드리는 희미한 소음이 들리자 하은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이내 도끼눈을 하고 승강기에 올랐다. 그리고 곧장 1층 버튼을 눌렀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흡.”
순간 부딪치듯 건하의 입술이 하은의 말을 막았다.
열린 입술을 가르고 들어온 젖은 혀가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하은의 혀를 빨아당겼다.
짧은 순간 허점을 파고들며 습격한 사람처럼 건하는 하은을 놓지 않았다.
경쾌한 음이 울리며 승강기가 멈추자 짧은 입맞춤이 순식간에 끝나며 건하가 얼굴을 들었다.
“안 내려?”
다리에 힘이 풀려 미끄러지듯 꺾이는 하은을 부축하며 건하는 승강기에서 내렸다.
“놔줘, 혼자 할 수 있어.”
“그렇겠지.”
복도 양옆을 확인하던 건하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고 하은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집이 어디인지, 몇 호에 살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건하는 익숙하게 복도를 걸었다.
복도 중간쯤 멈춰 선 그가 하은의 손을 잡고 지문 키에 가져다 댔다.
“너, 지금 뭐 하는…….”
문을 열고 하은을 안으로 밀어 넣듯 들어가며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어두운 실내에 현관 센서 등이 깜박이며 켜졌다.
하은이 몸을 빼기 위해 가볍게 틀자 건하의 단단한 중심이 맞물리며 촘촘하게 붙었다.
건하가 손에 들고 있던 하은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하은의 허리를 감고 바싹 당겼다.
“알겠지만 나는 염치도 없고 뻔뻔해.”
하은의 상의를 들추고 파고든 손이 맨살을 스윽, 쓰다듬었다.
“그리고 나는 부끄러움도 모르지.”
흐트러짐 없는 그가 하은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센서 등이 꺼지며 실내는 다시 어두워졌다. 그리고 이내 밝아지며 건하의 얼굴을 비췄다.
“알아, 그래도 사람이 말을 했으면 알아 처먹어, 백건하. 지금 나한테 하는 거 폭력이야.”
“훗, 그래. 뭐든 네가 하는 욕은 다 받아줄게. 나를 죽이든 뭘 하든 네 맘대로 해. 대신 지금처럼 나한테도 숨 쉴 구멍은 만들어주고.”
건하의 손이 미끄러지듯 하은의 바지 안으로 들어와 탄력 있는 엉덩이를 거머쥐었다.
바싹 붙어선 남자의 중심이 하은에게로 달라붙어 겹치며 단단하고 뭉툭한 것을 뭉개듯 비벼왔다.
밀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맞닿은 중심이 뜨거워지며 쉴 새 없이 젖어들었다.
이미 남자에게 익숙해진 몸이 본능적으로 알아챈 모양이었다.
잠깐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가슴의 정점이 단단해지며 아랫배가 뭉쳐졌다. 온몸이 그의 손길을 기다린 것처럼 예민하게 반응했다.
급하게 마신 알콜 때문이라고 탓하기에는 그의 손이 닿은 몸이 너무 뜨거웠다.
하은의 망설임을 알아챈 건하가 맹수처럼 달려들며 하은의 입술을 덮쳤다.
건하가 하은의 뒷덜미를 받치자 목이 뒤로 젖혀지며 혀가 더 깊숙이 들어왔다.
달큰하고 젖은 숨이 하은의 얼굴을 덮쳤다. 쉴 틈도 주지 않고 침입한 혀가 입 안을 샅샅이 훑으며 비벼댔다.
어느 순간 바지 안으로 들어온 손이 속옷을 젖히고 들어와 젖은 살점에 맞물리듯 닿았다.
은밀한 부위에 닿은 감촉으로 건하에게 붙들린 입술 안쪽에서 깊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은이 손을 들어 건하의 단단한 팔을 움켜쥐었다.
벌어진 입술의 도톰한 살점을 흡입하듯 빨아당긴 그가 그녀의 목덜미를 타고 내려왔다.
온몸에 솜털이 돋아나며 건하의 손이 스친 곳마다 열기가 번졌다. 몸이 가눌 곳 없이 흐물거렸다.
건하에게서 옷이 벗겨지는 동안에도 하은은 건하의 팔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이대로 놓아버리면 정말 그가 가버릴까 봐,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그를 놓고 싶지 않아 바둥거렸다.
이 남자가 주는 쾌락이 어떤 건지 이미 알아버려 곧이어 자신에게 닥칠 쾌감을 기대했다.
몸과 마음이 이율배반적으로 따로 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본능이 정신을 이기며 애써 붙들고 있던 끈이 한꺼번에 풀어졌다.
옷과 브래지어가 한꺼번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몸이 허공으로 번쩍 들렸다.
머리 위의 센서 등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며 좁은 실내를 비췄다. 건하는 본능적으로 침대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위치한 침대에 하은을 눕히고 몸을 붙여왔다. 목덜미에 젖은 혀가 들러붙어 이내 가슴을 덮쳤다.
예민한 가슴이 그의 입 안으로 사정없이 빨려 들어가며 젖은 소음을 냈다. 난생처음 달콤한 사탕을 입에 문 아이처럼 요령 없이 젖가슴을 세게 빨아댔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감각에 하은의 엉덩이가 저절로 들렀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이미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몸이 건하의 입술이 달라붙을 때마다 반응하며 신음을 흘렸다.
그의 집을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매일 밤 지치지도 않고 그녀를 안았던 그였다. 어떤 날은 한 번도 떨어질 줄 모르고 침대에 붙어 밤새 몇 번이고 섹스를 했다. 이미 익숙해진 손길임에도 처음인 것처럼 설레었다. 건하의 입술이 양쪽 젖가슴을 반복해서 옮겨 빨고 물었다.
“하아.”
온몸에 감겨들며 휘몰아치는 선득한 감각에 견딜 수 없어 저절로 신음이 쏟아졌다. 하은은 건하의 짧은 머리칼에 손가락을 넣고 움켜쥐었다.
다리 사이를 파고들며 젖은 부위를 자극하는 손가락이 제멋대로 휘저었다.
가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던 건하의 입술이 아랫배를 지나 거뭇한 음부를 헤집고 들어왔다.
축축한 숨이 살갗에 닿자 음부가 움찔거리며 수축했다.
“네가 아무리 도망쳐도 이것 봐, 네 몸은 누가 주인인지를 알아보잖아.”
거만하게 뱉어내며 건하가 하은의 사타구니를 벌리며 입술을 내렸다.
손을 들어 밀어내려고 했지만 건하는 꿈쩍도 하지 않고 등을 빳빳하게 세웠다.
오므려 힘주는 다리를 더욱 넓게 벌린 그가 갈라진 틈을 혀로 한번 쓱 훑었다. 미세한 터치에도 살점이 움찔하는 게 육안으로도 보였다. 하은은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이미 몸의 모든 세포가 건하에게 반응하고 있었다. 온몸이 세포가 그의 입술에 빨려 들어간 살점에 집중된 것 같았다. 온몸이 달아올라 뜨거워졌다. 아래가 뭉근하게 젖어들며 한꺼번에 젖은 애액이 울컥하고 쏟아지며 사타구니가 흥건했다.
하지만 이내 건하가 젖은 부위를 혀로 핥아 남김없이 받아 넘겼다. 음부에 맞붙은 짜릿한 쾌감에 그에게 붙들린 몸이 제멋대로 움찔댔다. 신음을 삼키지 못하고 뱉어내며 건하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었다. 첫 번째 절정이 그녀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