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백건하의 팔을 뿌리치고 하은이 다시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건하가 세워놓은 차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대답 없는 하은의 뒤를 건하가 말없이 쫓았다.
“미안해, 그렇게 말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순간 화가 나서.”
건하의 말을 제대로 듣기나 한 건지, 하은은 걸음을 늦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네 옆에 다른 새끼가 들러붙어 있는데 순간 정신이 빡 돌아서. 말이 헛나갔어.”
하은은 순간 그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무엇 때문에 자신이 화가 났었는지 잊었다.
지금 이 순간 백건하가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변명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는 잠깐 사이 처음 백건하를 알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가 얼마나 많이 변했나를 실감했다, 그녀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조금씩 그가 변하고 있었다면 아마 그녀 자신도 그와 마찬가지로 변했을 것이다.
마음을 열었고 온전히 그에게 전부를 내주었다. 이제 몸도 마음도 전부 백건하의 것이 되어버렸다.
하은이 걸음을 멈췄다. 동시에 뒤를 따르던 건하도 멈춰 섰다.
“나는 한 번에 두 가지를 못 해. 너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래.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남자는 너뿐이야.”
이런 말도 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못 할 말이었다. 그럼에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었다.
낯간지러운 말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적절한 말이 분명했다. 백건하의 굳은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어떤 강한 느낌이 하은의 심장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사랑하는 마음을 넘어선 어느 지점, 이딴 게 사랑이 맞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분명히 사랑이었다.
평생 그녀를 따라다닐 것처럼 떼어지지 않던 우울이 사라졌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백건하가 웃기를 바라는 자신을 발견했다. 집이 비어있는 날에는 온종일 백건하를 떠올렸다.
그 무엇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 그녀가 욕심을 갖게 만든 사람.
하은의 눈에 물기가 번졌다. 하찮기만 했던 자신이 조금은 귀하고 빛나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백건하가 옆에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네온사인에 빛나는 하은의 눈물을 본 건하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머뭇대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미안해, 잘못했어. 울리려고 한 말이 아닌데, 다음부터 안 그럴게.”
백건하도 그리고 하은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거나 애쓰는 것이 어떤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온전히 백건하가 하은을 향해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그녀의 마음이 다쳤을까 염려하고 받은 상처에 눈물 흘리는 그녀를 신경 쓰는 마음이 온전하게 느껴졌다.
“밥 한 끼 하자는 말을 그냥 넘겼어. 너도 알겠지만 나는 관심 없는 사람한테 신경도 안 쓰거든.”
예상 못 한 하은의 말에 건하가 버벅댔다.
“어, 그래. 그렇지.”
그러다 다시 백건하와 눈이 마주쳤다. 무심하고 표정이 읽히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안에 들어와 절정을 오가던 그때처럼 뜨거웠다.
***
몸이 온통 울긋불긋했다.
붙잡힌 몸을 비틀대며 벗어나려 해도 우악한 손에 바싹 당겨졌다.
연약한 허벅지 안쪽을 베개 삼아 건하는 머리를 들이대고 젖은 음부에 바싹 붙었다.
할짝거리며 붉은 혀가 연신 좁은 질구 안을 넘나들었다.
물기가 고일라치면 금세 혀를 내밀어 핥아 넘겼다.
그의 입술에 음부를 틀어막힌 채로 하은은 온몸이 민감한 성감대처럼 움찔대며 반응했다.
“하아.”
집으로 돌아와 성급하게 서로를 부둥켜안은 뒤로 침실 안은 계속 신음 소리만 난무하고 있었다.
건하가 혀를 말아 날을 세우며 우물대는 붉은 속살을 건드리자 하은이 온몸을 부르르 떨며 신음을 흘렸다. 그의 입술과 손이 닿는 곳마다 그녀가 반응을 했다.
건하는 입 안에 가득 침이 고였다. 이내 질구는 단물을 토해내듯 물기가 고였다. 달큰하면서도 미지근한 물기를 건하가 혀를 내밀어 쓰윽 핥았다.
하은이 몸을 비틀자 좁은 질구가 엉덩이 틈새에 가려졌다. 건하가 다물어진 다리를 벌려 물기로 축축한 음부를 이리저리 지분거리자 하은이 습한 소리를 내며 초점 흐린 눈을 감았다.
이미 몇 번의 절정이 지난 뒤라 하은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그에게 빨리면 빨릴수록 밑의 샘은 마르지 않고 젖어들었다. 백건하는 지치지 않고 보채는 아이처럼 밑을 물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하은아.”
“흐응.”
몸을 가누지 못한 하은이 신음하듯 대답을 했다.
건하는 무자비하게 솟아오른 페니스를 손으로 움켜쥐고 하은의 좁은 입구를 할짝대며 빨았다.
이미 흐느적거리며 늘어진 몸은 더 이상 그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민감한 그녀의 몸은 그의 미세한 터치에도 반응하듯 떨어댔다.
그것이 그의 욕구를 더욱 부추겼다. 페니스 끝에 들러붙은 정액이 번들대며 끈끈해졌다.
거칠었던 삽입에 하은의 음부는 붉은색으로 부어있었다. 그러면서도 혀끝이 닿을 때마다 질구가 벌어졌다. 순간 건하는 사정감이 치솟아 페니스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머리가 띵해졌다.
머리끝까지 뻗치고 들어오는 욕구에 건하는 불끈 솟은 앞섶을 쥐고 흔들었다.
동시에 붉게 번진 사타구니를 핥으며 소리 나게 빨아당겼다. 연한 살점이 강한 흡입으로 그의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그의 입속에 뜨겁고 달큰한 애액이 흘러 들어갔다.
작은 돌기마저 혀끝으로 건드리자 하은이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였다.
인내심이 벽에 부딪혔다. 건하가 상체를 세우자 탄력 있는 젖가슴 위에 꼿꼿하게 세워진 유두가 울긋불긋했다. 빨기 좋게 일어선 두툼한 돌기에 입술을 내렸다. 뺨이 홀쭉해지도록 흡입하듯 젖을 빨아대자 하은의 몸이 흠칫거리며 떨었다. 그녀의 신경이 젖가슴에 몰려있는 사이 건하가 하은의 허벅지를 벌리고 부푼 욕망을 젖은 입구에 가져다 댔다.
하은의 젖은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며 경련이 일었다.
“아파…….”
그녀의 목소리에 어린애 같은 칭얼거림이 있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할게.”
달래듯 건하가 페니스를 음란하게 쥐고 젖은 질구를 비비며 삽입해 들어갔다.
“하응.”
삽입과 동시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본능적으로 페니스를 엉키며 바싹 조였다.
깊은 삽입으로 하은의 허리가 위로 튕기며 젖가슴이 출렁거렸다.
미세한 아픔이 곧장 쾌락으로 이어졌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그녀의 안에 들어찬 페니스를 사정없이 조여댔다.
곧 터질 듯한 쾌락과 흥분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건하가 그녀의 턱을 잡고 시선을 맞췄다. 겹쳐진 몸에서 느껴지는 온전한 쾌락을 확인하고 싶은 욕심에 건하의 불거진 눈이 곧장 하은을 향했다.
그의 시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건하가 다시 잡아채며 고집스럽게 눈을 맞췄다.
삽입이 깊어지며 강렬한 포만감으로 건하의 목울대가 거칠게 출렁였다.
“모르지? 너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예뻐.”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발그레한 눈가에 건하가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찌걱, 소리를 내며 페니스가 강하게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하아.
맞붙은 몸이 동시에 절정에 오르며 신음이 흘렀다.
***
중간고사 기간이라 도서관은 빈자리가 없이 꽉 들어찼다.
집에서는 일상과의 분리가 되지 않아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침대에 자꾸 눕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힘들었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에 자리가 없으면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퇴근길에 백건하가 하은을 데리러 왔다. 회사와 학교는 정 반대 방향이었지만 건하는 마다하지 않고 굳이 먼 길을 돌아 학교까지 데리러 왔다.
사실 하은도 은근히 그 시간을 기다리며 즐겼다. 집에 가는 길에는 식당에 들러 늦은 저녁을 함께했다.
백건하가 데리고 간 음식점은 대부분이 유명 맛집이라 평소 그녀가 싫어해서 입에도 대지 않던 요리인데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이를 테면 트러플이 들어갔다든지 향이 짙은 고수가 들어간 음식은 먹지도 않았는데 어느 사이 식성도 변했는지 즐기면서 먹고 있었다.
못 먹던 음식을 하은이 먹으면 건하는 꽤나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어느 틈엔가 백건하가 일부러 하은이 못 먹는 음식을 골라서 맛집만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덕분에 점점 하은은 못 먹는 음식이 줄어들었다.
가끔은 백건하가 그녀를 배불리 먹여놓고 무슨 짓이든 하려는 계획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식욕이 나지 않아 조금 먹을 때에는 일부러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 시켰다.
그러고 보니 백건하와 하루도 떨어져 잔 적이 없었다. 어쩌다 술자리가 있어 늦게 귀가하는 날에도 빼먹지 않고 하은을 안았다. 백건하는 지치지도 않았다. 밤새 그녀를 안고 몸 안의 에너지를 전부 쏟아부은 다음 날에도 아침 일찍 운동을 나갔다.
계속되는 삽입에 그녀의 밑이 헐지 않았다면 백건하는 아침까지 하은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가끔은 아프다는 핑계로 그를 밀어내지만 그럴 때 백건하는 삽입 없이 오럴만으로 욕구를 해결했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학교 안은 어수선했다. 대부분 수업이 없어 도서관에도 자리가 나지 않았고 학교 근처 카페도 자리가 없었다. 하은은 하는 수없이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길을 벗어날 때쯤 하은의 뒤로 바싹 붙어 오는 차 때문에 옆으로 비켜서자 운전석에 앉아있는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큰아버지였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하은에게 옆으로 타라는 눈짓을 했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한 명인데 그렇다고 모르는 척 지나갈 수도 없었다.
뒤에서 오던 차가 클랙슨을 울리는 바람에 하은의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은이 차에 타자 달칵, 소리가 나며 잠금장치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