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그의 안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한 감각에 하은의 젖가슴을 주무르던 손이 멎었다.
전부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쾌감에 하은의 목덜미에 들러붙은 건하가 젖은 숨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하아.”
건하의 손이 맞붙어 연결된 부분을 더듬더니 빳빳한 살점을 문질러댔다. 하은이 고꾸라지듯이 몸을 비틀며 신음했다. 시야가 흐려지고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페니스가 젖은 살덩이 틈 속을 강하게 치대며 삽입했다.
“하윽.”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극한 쾌감에 맞붙은 두 개의 몸이 떨렸다.
“하아, 미치겠네.”
한계 직전까지 오르며 강렬한 오르가슴이 건하를 뒤덮었다. 건하는 땀이 진득하게 배인 손으로 여자의 허리를 잡아챘다. 심장이 거칠게 요동치며 뜨거운 피가 그의 안에서 튀어오르는 것 같았다.
극한의 쾌락으로 절정에 오른 하은이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몸에 붙은 채로 떨어지지 않은 페니스가 질꺽대며 질구를 울렸다.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은 채로 동시에 절정을 맞았다.
건하가 하은의 어깨를 감싸며 몸을 바싹 붙였다. 뜨거운 숨이 그녀의 맨살에 닿았다.
휘이익.
나무 사이로 건너온 바람이 두 사람의 몸을 감싸고 돌았다.
건하가 땀에 젖은 하은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하은아.”
목덜미에 붙은 채로 말하는 건하의 목소리가 낮았다.
여전히 밑이 붙은 채로 건하의 페니스가 그녀의 몸 안에 담겨있었다.
아직도 절정에 올라 있는 것처럼 하은은 몸이 붕 떠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우리 결혼식 할까?”
“뭐?”
“왜? 싫어?”
그녀와 붙은 건하의 팔 근육이 꿈틀대며 긴장하는 듯 보였다.
“나는, 지금도 좋아.”
성나게 일어서 있던 건하의 팔 근육이 다시 꿈틀댔다.
“그래, 별로 재미없어 보이기는 해.”
건하는 담담한 어조로 말하며 안고 있던 그녀의 몸에서 팔을 내렸다.
***
길고 긴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건성건성 학교를 다녔던 1학기와 다르게 학교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처럼 하은은 전에 없이 생기가 흘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침 등굣길에 학교 근처에 그녀를 내려주고 그녀를 태운 차는 곧장 떠났다. 학교 마치기를 종일 죽치고 기다리지 않아 마음이 한결 편했다.
방만 따로 쓸 뿐 백건하와는 부부처럼 지냈다.
잠만 잤던 전과 다르게 건하는 퇴근 후 대부분의 시간을 하은의 방에서 보냈다.
간혹 퇴근 후에 집에 회사 일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하은의 책상을 두고 소파 테이블을 차지했다.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리고 모니터를 골똘히 보고 있으면 가까운 침대에 누워 하은은 잠든 척하며 건하를 보았다.
테이블 위의 스탠드 불빛이 건하의 얼굴을 비출 때면 희미한 음영에 비친 백건하의 얼굴이 완성도 높은 조각상 같았다. 미간을 모으고 집중하는 모습, 간혹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콧등에 주름을 세우고 버릇처럼 손끝으로 문질렀다.
매일 밤 변태에 가까울 정도로 그녀의 습한 음지를 파고들던 남자와 동일인물 같지 않게 단정한 얼굴이 지킬 앤 하이드를 연상하게 했다.
재미없고 지루한 수업이 있는 시간에 간혹 백건하를 떠올렸다. 그저 생각만으로도 밑이 젖어들었다. 어떤 날은 백건하의 모든 것이 그녀를 지배한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그녀의 모든 생활에 걸쳐 백건하가 존재했다.
웅성웅성.
수업이 끝난 줄도 모르고 한참 앉아있는데 강의실 문을 나가는 교수의 뒷모습에 하은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루한 교양 수업에 지친 학생들 몇몇이 잠에서 깬 것 같은 얼굴로 가방을 챙기는 모습이 보였다.
하은도 들고 있던 펜을 놓고 펼쳐져 있던 책을 덮었다.
“저기, 장하은 맞지?”
낯선 목소리에 하은이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
하은이 아무런 표정 없이 무슨 일인가 싶은 얼굴로 쳐다보자 남자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몇 번 봤는데, 이름도 말해줬는데 기억 안 나?”
하은이 대답 없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하은은 남자를 처음 본다는 표정이었다.
“아, 내가 좀 인상적인 얼굴은 아니지? 그래도 과 대표라 다른 애들보다는 익숙할 텐데.”
남자가 서운한 기색을 보이자 하은이 그제야 아, 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럼, 조별 과제 있는 건 알지? 지난번 수업 때 네가 일찍 나가는 바람에 조 편성에서 빠졌어. 마침 우리 조에 한 사람 비었고. 단톡방 확인 안 하는 것 같아서.”
남자의 시선이 책상 위 하은의 휴대폰을 향했다.
마침 휴대폰 문자 알림음이 울리며 화면에 짤막한 문자 한 줄이 떴다.
<정문 앞이야.>
백건하에게서 온 문자였다.
하은의 휴대폰에 뜬 문자 한 줄에 남자의 시선과 하은의 시선이 한꺼번에 겹쳤다.
“오늘 조별 모임 있는 날인데, 이번에도 참석 안 하면 곤란해지는 건 너야.”
“언제? 지금?”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은이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어디서 하는데?”
하은의 말에 남자가 재빨리 하은의 앞을 막아서더니 앞서 걸었다.
“과방에서 하기로 했어.”
어딘지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 들떠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은은 남자의 뒤를 따르며 휴대폰에 짤막한 문자를 입력했다.
<과제 때문에 늦어. 먼저 들어가.>
애초에 건하가 학교에 온다는 말은 없었다. 미리 말했다고 해도 달라질 것 없다고 생각했다.
단톡방 확인을 안 한 건 그녀의 잘못이고 조별 과제라고 하니 그녀가 빠지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 게 뻔했다.
조별 모임이 있는 과방에 들어가기까지도 건하에게서 별다른 답장은 없었다.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려놓고 각자 해야 할 과제를 나누고 정하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하은을 포함해 여자가 두 명에, 과대를 포함한 남자 두 명.
과 대표는 몇 번이고 하은에게 자신을 김선우라고 소개했다. 이번에는 잊어버리지 말라는 듯 과 대표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하은에게 자신을 어필했다.
누가 보아도 하은에게 관심이 있다는 행동으로 보였다.
과제 중에도 김선우는 책상 위에 턱을 괴고 노골적으로 하은을 쳐다보았다. 불편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하은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몇 번 모른 체 무시하고 넘기면 자신에 대한 관심이 수그러든다는 것을 경험했던 터라 김선우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조별 과제가 끝난 뒤 과방을 나오는 하은의 뒤를 김선우가 따라왔다.
“저녁 같이할래? 음식 뭐 좋아해?”
“미안, 선약이 있어서.”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말투로 하은이 말했다.
“아, 그래? 그럼 언제 시간 돼? 내일은 어때?”
“과제 끝난 거 아니었어?”
“맞아.”
“그럼 굳이, 저녁 먹을 필요 없는 거지?”
두 번째는 하은의 말투가 조금 차갑게 변했다.
“개인적인 관심, 그걸로 저녁 먹을 이유 충분하지 않아?”
남자는 좀 더 과감하고 뻔뻔한 얼굴을 했다. 마치 하은에 대한 관심으로 그의 뻔뻔한 행동에 면죄부를 받은 것마냥 굴었다.
“남자 있어.”
갑작스러운 하은의 말에도 남자는 별로 놀랍지 않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짐작은 했어. 그래도 뭐 어때서? 밥 한 끼 먹는데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남자의 끈질김에 뭐라 말을 하기에도 지치는 것 같았다. 정문까지 내려오는 길에 김선우는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정문을 나오자 한적한 도로에 주차하고 있던 차에서 시동이 켜지고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헤드등이 하은을 비췄다.
곧이어 운전석 문이 열리고 낯익은 모습이 바닥에 내려섰다.
이미 갔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기다린 모양이었다. 무심한 눈이 하은과 나란히 선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건하가 자동차 문을 연 채로 차 기둥에 손을 걸치고 비스듬히 섰다.
스윗한 편은 아니지만 평소 같았으면 하은을 위해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15도 각도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고개를 보며 하은은 그의 심기가 얼마쯤 뒤틀려 있다는 것을 느꼈다.
“덕분에 고마웠어.”
하은이 옆에 선 남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빠르게 지나쳤다.
그제야 백건하가 운전석 문을 닫고 느린 걸음으로 보닛을 돌아 조수석 문을 열었다.
여전히 건하의 시선이 하은의 뒤를 따라붙은 남자에게 고정한 채였다.
하은이 차에 오르자 건하가 탁, 소리 나게 문을 닫았다.
두 사람이 탄 차가 도로 위를 얼마쯤 달린 뒤에도 건하는 말이 없었다.
신호에 차가 멈췄을 때에야 건하가 아니꼽게 하은을 쳐다보았다.
“그새 남자 붙었어?”
나직한 말투가 기분 나쁘게 울렸다.
하은은 대답 없이 손에 들고 있던 폰의 화면을 건성으로 넘겼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쉽다는 거, 알아챘나?”
지독히 비꼬는 말투에 하은이 눈썹을 발끈 세우고 고개를 돌려 건하를 보았다.
“무슨 뜻이야?”
건하가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몇 번 숨을 몰아쉬다가, 또 몇 번쯤 건하를 노려보던 하은이 별안간 차 문을 벌컥 열었다.
이제 막 빨간불이 꺼지고 주황색 불이 들어오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뭐 하는 짓이야?”
건하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하은이 차에서 내려 차도를 벗어나 인도로 올라섰다.
짧게 욕설을 뱉어낸 건하가 다시 차에 올라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이미 빠른 걸음의 하은이 벌써 저만치 거리를 두고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타닥타닥.
건하의 구둣발 소리가 빠르게 다가갔다.
이내 하은의 팔을 낚아채며 돌려세웠다.
“미쳤어?”
당황함과 그리고 읽어내지 못한 복잡한 여러 개의 감정이 백건하의 눈에 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