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完)
<-- 에필로그 -->
케즈론이 한국의 어느 지방에 카페를 열고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지 20여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세계는 케즈론의 기술력으로 인해 빠른 발전을 거듭하며 찬란한 문명을 피워내려고 하고 있었다.
특히 대략 10여 년 전, 케즈론의 오랜 연구 끝에 발견된 첨단 에너지원인 마나는 미래를 극적으로 변화시킬만한 무궁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의 기술력으로는 고도로 집약된 에너지원인 마나를 컨트롤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모든 학자들이 판단했지만, 케즈론에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마나와 관계된 연구 결과를 족족 발표하였다.
그 중 뇌파를 이용한 정보의 이해와 전기적 신호를 통한 정보 송신 논문을 발표하고 노벨상까지 수여받은 임영선 교수가 새롭게 발표한 논문인, 마나를 제어하는 전기적 신호의 특성은 인류가 첨단 에너지원을 자유자재로 다루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역사에 길이길이 등장하는 이 논문과 케즈론의 꾸준한 연구로 인류는 첨단 에너지원을 극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마나를 다루는 핵심 기술은 케즈론에서밖에 생산을 하진 못했지만, 어찌됐든 이 과정을 통해 인류는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나아갔다.
마나를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지어지고 자동차와 우주선의 엔진을 가동하는 연료 또한 마나로 자연스럽게 대체되었다.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공해물질이 전혀 생기지 않는 마나는 세계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변화시켜 나가고 있었다.
*
아루는 평소처럼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창문으로 보이는 청명한 하늘은 오늘 하루도 상쾌한 날씨가 될 거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하암~”
가볍게 기지개를 켠 아루는 방에 딸린 샤워실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샤워를 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상쾌한 아침이었다.
간단한 샤워를 끝내고 욕실에 걸린 수건으로 몸을 닦고 나왔다.
“아루 님, 오늘은 이 속옷 어떠세요?”
그러자 언제부터 있었는지 귀여운 하녀복을 입은 한 여자애가 아루에게 속옷을 건네주었다. 그 속옷은 아루가 좋아하는 귀여운 고양이가 잔뜩 그려진 앙증맞은 디자인이었다. 별 거 아닌 듯해 보이는 얇은 속옷이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가치 있는 패션브랜드인 케즈론에서 만든 거라 그 가격이 상상을 초월했다.
“고마워.”
아루는 하녀복을 입은 여자애가 건네주는 속옷을 받아서 입었다.
“시황 님께서는 일 때문에 일찍 나가셨어요.”
“힝, 알았어.”
아루가 아쉬워하자 하녀복을 입은 여자애는 눈을 반짝이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여자마저 감동시킬 정도로 귀여운 아루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식사 준비할까요?”
“아니. 오늘은 내가 만들게. 루미는 옆에서 조금 도와주기만 하면 돼.”
“앗, 알겠습니다.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놓을게요.”
“응.”
루미가 나가자 아루도 뒤따라서 1층으로 내려갔다.
루미와 다른 여자애들은 집안일을 담당하는 아루의 수발을 들기 위해 5여년쯤에 루나모스가 데리고 온 거였다. 오랜 세월 고생만을 한 아루를 위해 시황이 부탁해서 특별히 다른 행성에서 데리고 온 거였다.
처음에는 아루가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과거의 자신처럼 불운한 시절을 보낸 그녀들의 사정을 알고 공감한 덕에 지금은 자매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루미와 다른 하녀들이 올 때의 아루 나이가 30대 중후반이었는데, 어느덧 지금은 40대에 이르렀다.
물론 아루나 다른 여자들이 40대에 이르렀다고 해서 중년의 아줌마가 된 건 아니었다. 시황 덕분에 500년이 넘는 수명을 지니게 된 그녀들은 2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찬란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시황에 의해 큰 폭으로 발전해 나가는 현대 의학 기술로도 40대의 중년이 20대의 생생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기란 불가능했지만, 시황이 가진 거대한 힘 덕분에 다들 크게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당연한 일이라는 듯 가볍게 넘어갔다.
아루가 1층에 내려가자 거실에는 유미가 드러누워서 TV를 보고 있었다. 실제 공간이 펼쳐진 듯 입체감이 느껴지는 TV에는 가상현실에서 촬영된 뮤직 비디오가 나오는 중이었다. 그 뮤직 비디오에는 국민적 가수가 된 혜미와 장미가 매혹적인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유미야, 오늘 엄청 일찍 일어났네?”
“이상하게 일찍 일어나졌어. 나도 모르게 긴장했나?”
아루가 말을 걸자 누워있던 유미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평소라면 아직도 늘어지게 자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특별한 날이라 그런지 오늘은 일찍 일어나고 말았다.
아직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아루는 소파에 앉아 유미하고 간단한 얘기를 나누었다. 옛날부터 지내던 집이었지만 몇 번의 확장으로 거실이 더욱 넓어져 모두가 모여 앉아도 비좁지 않았다.
그때, 2층에서 진아가 걸어 내려왔다.
“아루, 유미 일어났어?”
여전히 무표정하고 도도한 얼굴을 한 진아가 아루와 유미를 보자 살며시 웃었고, 화사한 꽃이 피듯 매력적인 미소가 드러났다.
“응. 난 방금 일어났어.”
“일 하러 가는 거야?”
아루와 유미가 진아를 향해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오랫동안 같이 지낸 그녀들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 지내고 있었다.
“아니. 오늘 같은 날에 일하러 갈 수는 없지. 나중에 가려고.”
“그렇지?”
진아의 대답에 유미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세계 최고이자 최대의 기업이 된 케즈론을 이끄는 만큼 진아는 여전히 바쁘게 활동했지만 오늘 같은 날까지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난, 이제 밥 해야겠다.”
“루미랑 애들이 안 하고?”
유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오늘은 내가 하고 싶어서. 간만이잖아. 헤헤.”
아루는 가볍게 웃으며 부엌에 가서 아침을 준비했다.
커다란 소파에 유미와 진아가 앉아서 TV를 보고 있자 차례로 한두 명씩 내려왔다.
“하암, 피곤해라. 어제 밤새서 그런가? 시황이한테 기분 좋은 마사지라도 받아야겠다.”
“언니는 옛날보다 더 젊어 보이는데 꼭 나이든 티를 내려고 한다니까. 그러면 애들이 보면 웃는단 말이야. 겉으로 티가 안 나도록 더 젊게 행동을 해야지.”
“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많지 않니?”
이전보다 더 젊어져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임영선과 황미주는 가벼운 농담을 하며 소파에 앉았다. 60세가 넘은 그녀들이지만 그렇다고 하는 행동이 할머니 같지는 않았다. 젊은 여성이 흉내 내기 힘든 특유의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긴 해도 겉모습 때문에 평범한 20, 30대 여성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루가 아침밥을 차리는 동안 여전히 소심함이 겉으로 드러나는 현주와 무뚝뚝한 수란, 가상현실 게임에서 최고의 딜러로 활약하는 프린도 내려왔다.
그리고 장미와 혜미, 연예계에서 은퇴하고 주변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가을과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은비 또한 이어서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아, 나중에 오빠 오면 케즈론 성에 가서 놀자고 할까? 어때?”
유미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자 모두 마음이 동하는지 눈을 빛냈다. 몇 번 가보지는 못했지만 케즈론의 성에 있는 정원이야 말로 한가롭게 피크닉을 즐기기 가장 좋은 곳이었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그곳은 몇 번이나 가도 감동할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지니고 있었다.
다들 케즈론의 성에 가서 놀 궁리를 하고 있을 때, 은지와 지숙, 루나모스와 미나까지 내려왔다. 그녀들은 행동거지나 겉모습이 10년 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시간을 초월한 듯 느껴지기도 했다.
“모두 밥 먹어.”
다들 모여서 시끄럽게 떠들며 놀 때 아루가 외쳤다. 평소라면 반절은 없었겠지만 오늘은 다들 모여서 함께 식사를 했다.
조미료의 힘이 있긴 하지만 아루가 간만에 만든 식사를 즐겁게 마치고 다들 다시 소파에 앉았다. 잠깐 소파에서 잡담을 하고 있자, 갑자기 시황의 침실 문이 열리며 네 명의 여자들이 등장했다. 마치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로실린과 루펠린, 실피나, 라비올라였다.
“안녕하세요.”
“어서와.”
그녀들은 익숙한 듯 거실에 있는 여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평범하게 소파에 앉아 주변의 여자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이제 올 때 안 됐나?”
가볍게 하품을 하며 유미가 시계를 바라봤다.
벌써 오전 10시가 다돼가고 있었다.
“오고 있어. 5분 뒤면 도착할 거야.”
“앗, 정말요? 헤헷. 좋아라.”
루나모스가 덤덤히 말하자 아루가 크게 기뻐하며 눈을 빛냈다. 다른 여자들도 얼굴에 두근거리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5분 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한 적막 속에 모두의 시선이 현관문으로 향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시황이 들어오고, 그 뒤를 이어서 찬미가 따라 들어왔다.
“앗!”
깊은 적막을 깨듯 아루가 자기도 모르게 찬미가 안고 있는 무언가를 보고 소리쳤다.
그리고 동시에 찬미가 품에 안고 있는 한 존재에게 시선이 쏠렸다. 방금까지 긴장을 하고 있던 모두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놀람과 기쁨어린 감정이 피어났다.
그녀들이 향한 시선에 갓 태어난 조그만 아기가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찬미의 품에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시황의 표정 또한 숨길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했다.
“축하해, 언니!”
유미가 벌떡 일어나면서 외치자 모두가 일어나서 찬미에게 다가가 축하 인사를 건네며 조그만 생명체를 바라봤다. 믿겨지지 않을 만큼 조그만 생명체에 모두 눈을 떼지 못했다.
찬미가 가장 처음이었지만 이미 가을의 뱃속에도 시황의 아이가 자라나고 있었다. 가을은 아이를 위해 연예계도 은퇴하고 불우한 이웃을 도우며 소박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간의 소란이 진정되고 모두가 다시 소파에 앉았다. 하지만 소란만 진정 되었을 뿐, 모두의 시선은 여전히 찬미가 안고 있는 아기에게 집중 되어 있었다.
시황은 여전히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두를 바라봤다.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그녀들을 보자 절로 흐뭇한 미소가 감돌았다.
다시금 적막이 내려앉은 듯한 공간에 시황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무 기뻐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차례로 시선에 모여들었다.
“나와 결혼해줘서 고마워.”
시황의 부인들에게서 기쁨이 가득한 미소가 생겨났다.
새로운 사랑 이야기가 적혀나갈 그런 아름다운 미소였다.
-END-
========== 작품 후기 ==========
이걸로 드래곤의 유산은 끝입니다.
중간에 잦은 연중으로 많은 민폐를 끼쳤음에도 계속해서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중간 중간 연중을 하기는 했지만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날 동안 써왔던 글인지라 완결을 내고 나니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기는 합니다. 글을 쓰며 지치기도 하고 능력 부족으로 좌절을 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완결을 낼 수 있게 됐다는 사실 자체가 저로선 큰 기쁨입니다.
다만 수많은 설정 오류나 오타, 미흡한 부분은 차후에 낼 e북에서 수정하여 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이드 스토리는 언제고 생각날 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저의 작품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