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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 발전 -->
잠시간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형태 없는 인형이 검은 공간에 생겨났다.
[캐릭터를 생성해 주십시오. 지금 생성하시는 캐릭터는 앞으로 카필로니아 행성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자신의 모습입니다. 캐릭터 변경은 차후 유료화 서비스를 통해 가능하니 신중히 선택해 주십시오.]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는 루나R을 사면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에 부분 유료화 서비스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물론 게이머 생활을 오래했던 시황이기에 게임의 몰입을 방해하고 밸런스를 망치는 아이템을 팔아먹을 생각은 없었다. 게임을 할 때 그게 얼마나 불만 요소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시황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평범하게 생긴 캐릭터를 하나 만들었다. 특별한 미남은 아니지만 호감이 생긴 얼굴이었다. 간단하게 캐릭터를 만들고 어떤 아이디를 할지 고민했다. 캐릭터를 만드는 것보다 아이디를 짓는데 더 많은 고민이 되었다.
온갖 멋진 이름들이 스쳐지나갔지만 평범하게 시황으로 하기로 했다. 아이디를 적는 란에 시황이라고 입력하자 등록 가능한 아이디라고 떴다.
준비를 끝낸 시황은 캐릭터 생성 버튼을 눌렀다.
다시금 시야가 환하게 밝아졌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빛이 잠시간 머물더니 순식간에 소멸했다. 그리고 신성한 분위기가 어려 있는 루나모스 대성당이 시야에 드러났다. 이전 시황이 카필로니아 제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 왔던 바로 그 장소를 게임 상에 그대로 구현했다.
드래곤 루나모스의 형태를 한 신성한 조각상 앞에 초월적 미모를 가진 미녀가 서있었다. 시황에겐 익숙한 얼굴, 루펠린이었다. 갑옷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을 한 그녀는 냉혹한 성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반갑다. 난 루나모스 님을 받드는 성기사 루펠린이라고 한다. 카필로니아 행성은 드래곤 루나모스 님의 자비와 자애로 이루어진 곳이니, 항상 그분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도록!”
“반가워.”
시황은 루펠린을 보고 웃으며 인사했다. 하지만 현실의 루펠린이 아닌, 가상현실 속의 루펠린이기에 얼굴을 붉히지 않고 냉철한 모습을 시황을 바라봤다.
“이곳은 모험자들의 도시, 펠론트. 여기서 자신의 적성을 익히고 세 개로 갈라진 대륙을 향해 나아가 다양한 모험을 즐길 수 있다. 일단 도시로 나가 가볍게 둘러보고 오도록 해라. 그 뒤에 네가 선호하는 적성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루펠린의 말이 끝나자 시야에 [모험자들의 도시 펠론트를 둘러보자]라는 퀘스트가 생겨났다. 레벨별 퀘스트로 이루어진 직선적 게임은 아니었지만 초보자들의 도시이니 만큼 시스템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주는 퀘스트였다.
“알았어. 잠시 다녀올게.”
루펠린이 직접 음성 녹음까지 해서 그런지 정말 루펠린이 말하는 듯했다. 가볍게 대답을 해준 시황은 루나모스 대성당을 나갔다.
거대한 대성당의 문을 열자 모험자들의 도시 펠론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산처럼 불룩 솟은 언덕에 위치한 대성당 아래로 펠론트의 성과 시장, 각종 건물과 돌아다니는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건 마치 다른 세상에 직접 방문한 듯한 리얼리티를 지니고 있었다. 바람이 살짝 불며 짙은 꽃향기를 풍겨왔고 머릿결이 자연스럽게 흔들렸다. 부자연스러움 따윈 존재치 않는 세계는 또하나의 완벽한 현실이 되어 있었다.
“볼수록 놀랍네.”
몇 번 테스트를 해본 시황이지만 볼 때마다 놀라웠다.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현실감과 자연스러움이 세상에 존재했다.
가볍게 걸음을 옮겨서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시황처럼 언덕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두 다른 루나모스의 대성당에서 시작하지만 언덕으로 내려오게 되면 이렇게 만나게 되는 것이다.
“와, 미친. 이게 게임이야?”
언덕에서 내려오던 한 유저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쳤다.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가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기대를 하긴 했지만 설마 이정도로 리얼한 세계를 구현해 낼지는 꿈에도 몰랐다.
겨우 루나R이 컴퓨터에 연결만 돼 있을 뿐인데 모든 것이 인지되고 실제와도 같은 의지에 따라 몸이 움직였다. 분명 가상현실인 걸 알지만 잠깐만 시간이 지나도 어느새 세계에 빠져들어서 꼭 현실처럼 느껴지곤 했다.
“꺅! 경치 진짜 예쁘다. 진짜로 여기 온 것만 같아.”
여성 플레이어로 보이는 귀여운 여자애가 비명을 지르며 놀라워했다. 그런데 얼마나 열심히 얼굴과 신체를 커스텀 했는지 현실에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와 매력적인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이건 비단 여성 유저만이 아니라 천천히 언덕을 내려오는 남성 유저들도 한껏 커스텀을 해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한 명도 존재치 않았다. 유일하게 시황만이 평범한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잠시 유저들을 둘러본 시황은 루펠린이 지시한 대로 도시를 돌아다녔다. 언덕을 내려가자 곧바로 상가가 몰려있는 상가구역이 나타났다. 2층, 높으면 3층의 고풍스러운 건물로 구성된 이 구역엔 약재를 파는 건물과 무기, 방어구, 마법 물품 등 다양하다 못해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많은 상점들이 존재했다.
같이 도시를 구경하는 유저들은 걸을 때마다 비명 같은 감탄을 내질렀다. 친구와 같이 플레이를 하는 유저는 마치 관광이라도 온 것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기존의 MMORPG에선 시작을 하자마자 전투부터 하며 몬스터를 잡는데, 그것과는 완벽하게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상가 구역을 벗어나가 공원이 나타났다. 공원의 정 중앙에는 화려한 분수대가 있었다.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울 만큼 보석으로 치장된 값비싼 분수대가 유리처럼 투명하고 맑은 물을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분수대 주위로는 고풍스러운 의자와 깔끔하게 치장된 나무, 정갈하게 정비된 길이 사방으로 뻗어있었다.
시황은 편안한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중세시대에 온 것처럼 느껴지는 고풍스럽고 고급스럽게 치장된 도시는 이질적이면서도 쉽사리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화려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커플로 보이는 어느 남녀 플레이어도 공원으로 걸어오면서 끝없이 감탄했다.
“여기 진짜 예쁘다. 꼭 게임이 아니라 관광 온 것 같아.”
“그러니까. 난 바로 몬스터 때려잡을 줄 알았는데 게임에서 관광을 하고 있네.”
“분수 봐. 너무 예쁘다. 앞으로 여기서 데이트해도 괜찮겠다.”
“맞아. 그냥 앞으로는 여기서 데이트하자. 피곤하게 돌아다닐 필요 없잖아. 관광지 가는 것보다 여기가 훨씬 좋네.”
“너, 지금 나랑 돌아다니기 귀찮아서 좋다고 한 거지?”
“어? 아니. 아닌데.”
“맞는 것 같은데. 뭐 믿어는 줄게. 근데 진짜 여기 예쁘다. 케즈론에서 만들었다더니 게임도 엄청 고급스럽네. 역시 케즈론이라니까.”
“강시황 대표가 천재긴 천재인가 봐. 이런 것도 만들고. 뭐라더라 뇌파 어쩌고 하면서 엄청 만들기 어렵다던데. 어떻게 루나R 쓰는 것만으로 이렇게 현실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는지 신기하다니까.”
커플로 보이는 남녀는 연신 감탄하며 시황을 지나갔다. 바로 옆에 시황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시황을 칭찬하기 바빴다.
그만큼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는 접속한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출시 전만 해도 영화처럼 감상하는 느낌의 게임이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전혀 아니었다. 루나R을 쓴 것만으로 캐릭터가 현실의 몸처럼 움직였고 위화감 하나 없이 현실 같은 가상현실에 녹아들었다.
시황은 벤치에 앉아서 유저들이 감탄하고 놀라는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루나모스가 이끄는 게임 개발부가 만든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는 자신조차 깜짝 놀랄 완성도로 만들어졌다. 충분한 개발기간과 무리 없는 일정 덕분에 더욱 더 열정적으로 직원들이 개발에 임했고 놀라운 수준의 게임이 완성되었다.
사실 이 게임은 10년 뒤에 나오더라도 경쟁 상대가 전혀 없을 정도로 오버테크놀로지를 적용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출시하기 위해 잦은 야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높은 연봉과 안정된 출퇴근 시간, 뛰어난 복지야 말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잠시 공원에 앉아서 여유를 만끽하고 있으니 아까 전 커플이 옆에 앉아서 뭐가 그렇게 좋은지 끝없이 웃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근데 이거 가슴도 만져지나 궁금하지 않아?”
“아, 진짜 엉큼하다니까. 만져지면 어떻게 할 건데?”
“궁금하잖아. 잠깐만 진짜 손만 대볼게.”
남자는 하지 말라고 하는 여자 친구의 말을 무시하고 슬쩍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려고 했다. 그런데 가슴 주변으로 보호막이 생기며 야한 접촉을 금지했다.
“어? 경고문 뜬다.”
“경고문? 뭐라고?”
“민감한 부위의 신체접촉은 금지돼 있다네. 계속 시도하면 정지시킨대. 헐, 무섭네.”
“엉큼한 짓 하려고 하니까 그러지. 나중에 우리 집에서 하면 되는데 왜 게임에서도 하려고 그래.”
“궁금하잖아. 그러면 키스는 해도 되나?”
“진짜 엉큼하다니까.”
“잠깐 있어봐.”
남자는 이번에 여자 친구를 붙잡고 빠르게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런데 이번에도 보호막이 생기며 뽀뽀하는 걸 막아냈다. 불과 3센티미터 정도 되는 틈이었는데 어떻게 해도 닿지가 않았다.
“봐. 안 되잖아. 너 같은 애들 많아서 못하게 막아놨나 봐.”
“어? 근데 이건 좀 경고문이 다른데? 결혼식을 하면 입을 맞추는 수준의 접촉은 가능하대. 야한 건 안 돼도 뽀뽀는 되나봐.”
“결혼을 한다고? 여기서 결혼도 돼? 별게 다 되네. 근데 재미는 있겠다.”
“이 겜 완전 대박이라니까. 안 그래도 너 엄청 캐릭터 예뻐서 키스 하고 싶었는데 우리 빨리 결혼하고 키스하자.”
“뭐래. 그러니까 내 원래 모습보다 캐릭터가 예뻐서 키스 하고 싶다는 거야? 아, 짜증나.”
“아,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평소랑 달라서 좀 새롭잖아. 진짜 현실 같기도 하고. 그리고 너도 내 캐릭터 멋지다며?”
“몰라. 나 짜증나서 게임 그만할래.”
“혜영아, 잠깐만.”
로그아웃을 했는지 순식간에 여자 캐릭터가 사라졌다. 남자친구는 크게 당황을 했는지 캐릭터가 금세 사라졌다. 좋지 않은 장면을 봐버린 시황은 안타까움에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방금 연인들이 대화를 나누었듯이 이 게임은 결혼도 할 수 있었다. 야한 신체접촉은 어떤 식으로든 완벽하게 차단되었지만 결혼을 한다면 팔짱을 끼거나 키스를 하는 등의 가벼운 스킨십은 가능했다. 즉, 가상현실 게임에서 현실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아름다운 캐릭터를 가진 여성과 실제처럼 연애가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이건 더욱 가상현실 세계의 몰입감을 높이기 위한 기능이기도 했고, 방금 본 남녀 커플의 반응도 대단히 좋았다.
조금 더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본 시황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시야의 우측에는 [펠론트를 둘러보자] 퀘스트가 완료됐다는 글이 써져있었다. 특별히 의식을 하고 퀘스트를 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완료가 돼있었다.
시황은 루펠린이 기다리는 언덕 위의 대성당으로 갔다. 거대한 문틈으로 들어가자 루나모스의 석상 앞에 루펠린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왔는가? 도시가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군. 어찌됐든 도시 구경도 했으니 본격적으로 자네가 선호하는 적성의 직업을 찾아주겠네. 시야에 생겨나는 목록을 보고 선택을 해주게.”
루펠린 앞으로 다가가니 시야에 글이 생겨났다. 선호하는 적성을 최대 3개까지 선택해 달라고 했다.
적성에는 평범한 검, 창, 마법, 치유부터 여행, 약초, 꽃, 광석, 채집, 건축 등 셀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존재했다.
시황은 검과 치유, 채집을 선택했다. 처음의 적성 선택은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이정표의 개념으로 선택을 안 한 적성이라도 별다른 문제없이 익히고 배우는 게 가능했다. 아예 아무런 적성 없이 벤치 누워서 놀기만 해도 되는 게 바로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였다.
현실에서 모험을 즐기는 것과 같은 극한의 현실성을 느끼게 하면서도 캐릭터가 성장하는 게임의 즐거움까지 챙기도록 많은 신경을 썼었다.
“적성을 모두 선택한 것 같군. 내가 추천서를 써주도록 하지. 이 추천서를 가지고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가면 된다네.”
시황은 루펠린이 건네주는 추천서를 받아들고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이 게임에도 아공간이 구현되어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물건을 넣고 뺄 수가 있었다. 자세한 목록을 확인하고자 하면 인벤토리를 열어 직접 리스트 확인도 가능했다.
추천서를 가지고 대성당을 다시 나선 시황은 지도에 표시된 적성 훈련소에 가서 검과 치유, 채집 능력을 익혔다.
그리고 훈련소에서 주는 몇 가지 퀘스트를 수행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이 상당히 흘러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는 게임이었다. 게임을 하는데 방해되는 고통, 힘듬, 지침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모두 배제 되어 있었다. 다만 약간의 한계치를 두어 오래 뛰면 스태미너가 부족해 잠시 호흡을 고르게 하는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 만큼 한 번 빠져들게 되면 고통스러운 현실과 다르게 일조차 즐겁게 행하며 직접적으로 자신의 성장을 감각과 시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몰입해서 게임을 즐긴 시황은 잠시 클로즈베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게임을 종료하고 루나R을 벗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