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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 발전 -->
집안일을 마치고 정원을 바라본 찬미는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시황을 발견했다. 잠깐 시황을 응시하던 그녀는 살며시 문을 열고 다가갔다.
“벌써 봄이 됐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웠는데.”
“그러게.”
시황은 정원에 핀 꽃을 바라봤다. 찬미가 좋아해서 케즈론의 성에서 가지고 온 꽃들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날이 되니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흘리며 달콤한 향기를 뿌리고 있었다.
“저도 따듯한 아메리카노 주시겠어요?”
“분부대로 하지요.”
시황은 마력 변환기로 리첼리아 원두를 사용한 아메리카노를 만들었다. 고급스러운 머그잔에 담긴 따듯한 아메리카노가 테이블 위에 생성되었다.
찬미는 시황의 맞은편에 앉아 신기함이 가득한 얼굴로 머그잔을 바라봤다. 시황이 특별한 존재이고 신비로운 능력을 가졌다는 걸 알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각종 물건들을 만드는 건 볼 때마다 신기했다.
“그거 아무거나 다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응. 아무거나 다 만들 수 있어. 신기해?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아니요. 별로 가지고 싶은 것도 없어요.”
찬미는 시황이 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풍미 가득한 맛이 퍼진다. 냉정하게 말하면 케즈론 카페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는 커피였다. 왜 이걸 안 파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보다 커피 이건 카페에서 안 팔아요? 제가 먹기엔 지금 주신 게 더 맛있는 것 같아요.”
“지금 마시는 게 제대로 된 커피거든. 케즈론 카페에서 파는 건 원두 비율이 달라서 가격을 낮춘 거야. 그리고 안 그래도 프리미엄 매장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야. 거긴 가격은 비싸도 그만큼 합당한 품질의 것들만 팔 거거든.”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저번에 오픈한 디저트 카페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거 봤어요. 잠시 마트 갔다 오면서 봤는데 사람들이 북적북적했어요.”
“시화 그룹 때문에 만든 건데 생각보다 더 장사가 잘 되더라고.”
시황은 이제 아련하기만 한 과거의 얘기를 했다. 케즈론 카페와 차별화된 디저트 전문 카페는 시화 그룹을 노리고 만든 거였는데 예상보다 더 큰 흥행을 하고 있었다. 우수한 인재들이 최고의 재료들로 만든 디저트는 먹는 사람마다 넋을 잃게 만들었고 가격 또한 괜찮다 보니 시화 그룹의 디저트 카페에는 파리만 날리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혹시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응? 왜?”
“표정하고 분위기가 평소랑 조금 다른 것 같아서요.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아요.”
“고민이 있기는 해. 조금 있다가 테스트할 게임도 걱정되기도 하고. 그런데 대단하네. 그런 것도 바로 알고.”
시황이 놀라워하자 찬미는 가볍게 웃기만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시황이 미묘하게 짓는 표정만으로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어떤 고민이에요? 제가 해결은 못할 그런 고민이겠지만 그래도 저한테 말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시지 않을까요?”
“그런가? 큰 걱정은 아니야. 알다시피 내가 보통 사람하고 조금 다르잖아? 그런데 언제까지 숨길 수도 없고 언젠가는 모두에게 고백해야 하는데 다들 혹시나 싫어하지 않을까... 뭐, 그런 고민이야.”
“싫어할 리가 없는 걸요. 오빠는 오빠인데요. 오히려 그렇게 생각해줘서 기뻐할 거예요. 그리고 혹시 부담되시면 지금처럼 계속 숨겨도 괜찮지 않을까요?”
“숨기고 싶어도 몇 년 뒤면 자연스럽게 발각날 거거든.”
“네? 어떻게요?”
“너희가 안 늙으니까.”
“네?”
찬미는 시황이 하는 말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다. 안 늙는다니? 그러고 보니 황미주나 임영선의 경우엔 시황과 관계를 맺을수록 젊어지던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너만 해도 지금 수명이 500살이 넘어. 그러니까 수백 년 동안은 지금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한다는 거지.”
“네? 제가요? 어, 어떻게...”
방금 커피를 만들던 것보다 더욱 현실성 없는 말에 천미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수명이 500살이 넘는다는 것도 믿겨지지 않을 만큼 놀랍지만 그걸 안다는 것도 놀라웠다.
“나랑 섹스해서. 사실 내 정액이 산삼 같은 거랑 비교도 안 되게 몸에 좋은 거거든. 그래서 섹스할 때마다 너희들 수명이 늘다보니까 그렇게 된 거야. 피부가 좋아지고 젊어지는 건 덤이고.”
“아...”
확실히 시황의 정액은 이때까지 알던 것과 전혀 달랐다. 역한 냄새는커녕 고급 디저트같은 달콤함만이 가득했다.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시황이니까 그냥 넘겼었는데 그게 그렇게나 몸에 좋은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기뻐요.”
“응?”
“정말 기뻐요.”
찬미는 순수하게 기뻐했다. 간혹 잠이 들 때, 시황과 자신도 늙을 테고 이 행복도 언젠간 사라질 거라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었다. 그게 언제일지도 모를 먼 미래이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런데 적어도 몇 백 년 동안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몇 십 년 뒤도 까마득한데 몇 백 년 뒤는 뭐가 어떻게 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거기다 시황과 섹스를 할수록 수명이 더 증가한다고 했다.
“찬미는 기뻐해줘서 고마운데 다른 애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조금 걱정이 돼. 싫어하진 않겠지?”
“오래 사는 걸 싫어할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그것도 지금처럼 행복하게 사는데요. 분명 나중에 밝히더라도 다들 기뻐할 거예요.”
찬미는 마시던 머그잔을 내려놓고 시황의 무릎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목을 끌어안고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러자 시황이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찬미는 시황의 머리를 매만졌다.
“고마워. 그 말 들으니까 조금 위안이 되네.”
“당연한 말인 걸요.”
기뻐할지 어떨지 알 수는 없었지만 찬미가 저렇게 말해주는 것 자체로 위안이 되긴 했다. 잠시 앉아서 응시하던 찬미가 다시 키스를 했다. 평소 자애롭고 순종적인 찬미답지 않게 대단히 적극적인 키스였다.
“오늘 평소랑 다르게 엄청 적극적이네.”
“몸으로도 위로해주고 싶어서 오빠를 유혹하는 중이에요.”
“그런 거야? 안 그래도 찬미 말 대로 그러고 싶은 기분이 되긴 했어. 느껴지지?”
시황은 키스로 발기한 성기를 올라탄 찬미의 엉덩이에 살짝 문지르며 말했다.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어요.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오빠랑 섹스해서 질내사정 받고 싶어요.”
“질내사정? 그거야 당연히 하는 거긴 한데... 갑자기 왜?”
“그래야 수명이 늘어서 오빠랑 더 오래 지낼 수 있으니까요. 방금 제 수명이 늘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앞으로 500년 동안 오빠하고 같이 지낼 수 있다는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쉽사리 변하기도 하고 사랑하던 마음이 일순 식어버리는 것도 흔한 일이지만 찬미는 500년이 아니라 5만 년이라고 해도 시황을 지금처럼 사랑할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시황에 대한 사랑은 끝을 찾기가 어려웠다.
“확실히 찬미하고 지내는데 500년도 짧은 거지. 그러면 방에 가서 수명 늘리는 놀이 할까?”
시황은 여기서 괜히 500년이나? 그건 좀 너무 길지 않나? 같은 분위기를 깨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해봐야 의미도 없는 말이었고 찬미와 사랑하는 여자애들이라면 평생토록 같이 지내고 싶기도 했으니까.
“네. 꼭 하고 싶어요.”
“좋아. 오늘 하루 종일 하자.”
시황은 그대로 찬미를 잡아들고는 단번에 공간을 건너 뛰어 찬미의 방으로 갔다.
침대에 눕히자 찬미는 평소와 다르게 볼이 발그레 져서는 색기를 가득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는 스스로 자신의 옷을 살며시 벗으며 은근슬쩍 노출을 했다. 유혹하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행동이었다.
이미 찬미의 몸 구석구석 모르는 곳 하나 없을 정도였지만 시황은 참지 못하고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워 찬미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고맙다면서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시황을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찬미는 자애로우면서도 열정적인 눈길로 시황을 바라봤다.
자신의 인생에서 시황을 만난 게 가장 큰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명문대학교, 사회에서 얻은 지위 같은 건 시황이라는 존재에 비하면 티끌 같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인기, 돈, 명성.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다. 그저 시황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남자이자 자신의 모든 걸 줄 수 있는 남자, 그게 바로 시황이었다.
찬미는 넘쳐나는 사랑을 참지 못하고 시황을 꼭 끌어안았다.
**
시황이 걱정하던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의 클로즈베타 신청이 시작되었다.
루나R을 산 사람들이 대규모로 접속해 클로즈베타를 신청했지만 홈페이지가 느려진다거나 접속이 안 되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를 하려면 루나R을 사야해서 망한 거 아니냐는 성급한 글을 쓰기도 했다.
클로즈베타는 한 달 동안 진행되고 처음 뽑히지 않았더라도 루나R을 산 사람이라면 전부 즐길 수 있도록 매일 추가로 클로즈베타 테스터를 뽑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전 세계에 수백만 명의 사람이 클로즈베타 테스트를 신청했고 그 중에서 10만 명의 사람이 뽑히게 되었다. 신청 인원수에 비하면 적다고 할 수도 있지만 10만 명이라는 숫자 자체는 대단히 많은 인원이었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테스트를 진행했고 모두가 같은 하나의 서버를 사용할 예정이었다.
클로즈베타 테스트는 오후 5시에 오픈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첨된 사람들은 몇 시간 전부터 대기하면서 도대체 어떤 식의 게임일지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다. 데모 버전이나 개발 중 공개된 영상은 현재 나온 게임 수준을 한참이나 뛰어넘다 보니 기대감이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았던 것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지나친 기대감은 금물이라고 냉철하게 말하기도 했다.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 데모 버전이 현실처럼 느껴질 정도로 대단하긴 하지만 실제 게임을 플레이하기엔 성능상 무리가 따르고 영화처럼 따라가는 형태의 게임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판단했었다.
물론 온라인 게임인데 그런 방식이 말이 되냐는 반박이 곧바로 잇따랐다. 온라인 게임인 만큼 자유도 있게 플레이가 가능할 테고 전용 조작 패드를 사야 할지도 모른다고 의견을 나누었다. 의견을 내는 쪽이나 반박하는 쪽이나 어찌됐든 다들 완벽하게 현실처럼 움직이는 가상현실 게임이 될 거라고는 쉽사리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시황이 만들고 있는 가상현실 게임은 현세대의 기술력을 아득히 초월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컴퓨터 택배를 기다리듯, 흘러가지 않는 시간을 버티고 버텨 이윽고 5시가 되었다.
미리 게임을 받아놓고 있던 사람들은 5시가 되자마자 곧바로 접속을 시작했다. 10만 명이나 되는 인원을 뽑았음에도 아무런 문제없이 게임이 시작되었다.
시황도 클로즈베타 첫날인 만큼 직접 플레이를 해보기로 했다. 혼자하면 적적하니 게임 폐인에 가까운 프린과 함께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에 접속했다.
고글처럼 생긴 루나R을 쓰고 잠깐 기다리자 로실린이 나오며 간단한 조작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아무래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출시되는 뇌파를 이용한 가상현실 게임이다 보니 확실하게 조작 방법을 알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면 마나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릴게요. 눈을 감고 집중해보세요.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와 다르게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시나요?”
화면에 눈을 감고 이질적인 기운을 느껴보라는 글이 떴다. 시황은 설명에 따라서 눈을 감고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자 곧바로 실제와도 같은 마나가 바로 느껴졌다. 현실에서는 이 마나를 느끼기 위해 수많은 수련을 요구했지만 게임이기 때문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로실린은 이어서 몇 가지를 더 가르쳐 주었고 시황은 간단하게 따라하며 튜토리얼을 완료했다.
“자,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어요. 이제부터 카필로니아 행성으로 모험을 떠나시게 될 거예요. 수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닥치겠지만 전부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믿어요. 무운을 빌어요.”
로실린의 말이 끝나자 오른쪽에 카필로니아 행성으로 가는 공간이동 게이트가 일렁거리며 생겨났다. 이것 또한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유저들은 모르겠지만 공간이동 게이트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는 실제로 존재하는 다른 행성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온 건 물론이고 마법 또한 실제로 존재하는 그대로 집어넣었다. 물론 유저나 만드는 개발자들도 몰랐지만 리얼 월드, 카필로니아는 또 다른 세계를 체험한다고 해도 될 정도의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었다.
잠깐 로실린을 응시하던 시황은 일렁거리는 게이트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