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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612화 (611/629)

612

<-- 문명 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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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황은 중세시대와 비슷한 문명을 가진 행성을 돌아다니며 건물 양식과 의복, 몬스터 등 게임에 필요한 모든 사진을 찍었다. 디자이너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최대한 다른 행성들의 문화를 사용해 현실감 넘치고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세계관을 만들고 싶었다.

이걸 할 수 있는 자신뿐이었기 때문에 시황은 직접 최대한 많은 자료들을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그 중에서 확정을 지은 게 있다면 라비올라와 실피나, 로실린, 루펠린을 그대로 게임 상에 집어넣을 거라는 거였다. 그녀들이야 말로 더없이 게임에 어울리는 존재였다.

시황은 찍은 사진을 그림처럼 보이도록 보정을 했다. 찍은 그대로 디자이너에게 보여준다고 해서 이걸 실제로 찍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쪽이 좋았다.

데이터를 저장한 시황은 편안한 추리닝을 입고 직접 케즈론 빌딩으로 갔다. 존재감을 약하게 하는 마법을 가볍게 걸고 후드를 뒤집어썼다. 이번에 익힌 소멸 능력을 쓴다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너무 뜬금없이 나타난 게 돼버려서 상당히 부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도록 약하게나마 존재를 흐려지게 하는 마법을 걸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시황은 곧바로 게임 개발부로 갔다.

이번에 만드는 가상현실 게임은 9레벨에 이를 수 있는 기회이자 세계를 더욱 발전된 문명으로 이끌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런 만큼 능력 있는 개발자와 디자이너, 연출가 등을 루나모스가 직접 선별해서 뽑았다. 경력이 짧더라도 최대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뽑아서 최고의 게임을 만들 토대를 마련했다.

인테리어를 새로 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화사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개발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시황이 지금 찾아간 곳은 개발부 중에서도 캐릭터와 배경 등을 그리는 그래픽 팀이었다.

그런데 마침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안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한 명 뿐이었다. 프로필을 살짝 살펴봤다.

[윤지윤]

[23세]

[그림과 관련된 예술 쪽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

특성에 그림과 관련된 예술 쪽 능력이 높다고 되어 있는 걸 보면 그래픽 디자이너인 듯 했다.

“안녕하세요.”

“네? 아, 네. 안녕하세요.”

시황이 인사를 하자 그녀, 지윤은 크게 당황해 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불안한 눈초리로 시황을 쳐다봤다.

“식사 시간인데 식사하러 안 가셨어요?”

“배, 배가 아파서요...”

지윤은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황은 혹시 자신을 알아봐서 그런가 했지만 눈치를 보니 그건 아닌 듯 했다.

“그래요? 뭐하고 계셨어요?”

“제가 아직 입사한지 얼마 안 돼서 고, 공부 중이었어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공부 중이셨구나. 그런데 그래픽 디자이너 맞으시죠? 제가 여기에 아직 아는 분이 없어서요.”

“네? 맞긴 한데... 혹시 저처럼 얼마 전에 입사하신 거예요?”

“뭐, 그렇죠.”

시황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괜히 자기도 못 알아차리고 있는데 직책을 말했다가 소란이 일 것 같아서 대충 넘어갔기로 했다. 안 그래도 불안해 보이는 여자애한테 부담을 짊어주긴 싫었다.

“하아... 그렇구나. 전 처음 입사한 곳이 케즈론이라서 얼마나 긴장되는지 몰라요. 학벌이 좋지도 않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사원서를 넣어봤다가 붙은 거거든요. 아직도 케즈론에 입사한 게 꿈인 것만 같아요.”

“확실히 많이 긴장되시겠네요. 이해해요.”

“그렇죠? 사실 배가 아픈 것도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 거예요. 그래도 이렇게 편하게 말 나눌 수 있는 분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런데... 회사에 추리닝 입고와도 괜찮아요? 상사 분들이 뭐라고 하지 않아요?”

동지를 만났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지윤은 시황을 응시하더니 추리닝을 입고 있다는 사실에 살짝 놀라며 물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추리닝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괜찮아요. 그보다 제가 캐릭터하고 각종 원화 자료를 가지고 왔는데 좀 보실래요?”

“아, 정말요? 알겠어요.”

시황은 케즈론 제로를 꺼내서 컴퓨터에 연결했다. 시나리오와 원화의 토대는 전부 자신이 만들 예정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자료를 그래픽 디자인팀에 넘겨주고 세계관에 알맞도록 살짝 수정을 하게 할 생각이었다.

“앗, 케즈론 제로다. 이거 사신 거예요? 엄청 부자이신가 보다.”

“부자는 아니에요.”

시황은 가볍게 얼버무리며 그림처럼 수정한 각종 원화를 화면에 띄웠다. 막 입사한 애긴 해도 예술 쪽 재능이 뛰어난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평가할지가 궁금했다.

각종 몬스터 디자인과 로실린 등의 캐릭터가 나오자 지윤의 얼굴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 안절부절 못하던 모습에서 진지하게 변했다.

“직접 그리신 거예요? 엄청 현실감 넘치네요. 꼭 실제 사람이나 몬스터를 그림으로 옮긴 것 같아요.”

그 말 그대로였다. 실제로 직접 가서 찍은 거였으니까. 확실히 루나모스가 뽑은 만큼 경험은 없더라도 능력은 있는 듯 했다.

“제가 만드는 세계관에 이런 캐릭터와 몬스터 등을 넣을 거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현실감이에요. 과장되지 않은, 실재할 것만 같은 캐릭터와 몬스터를 구현하는 게 목적이에요.”

“아, 그렇구나. 전 아직 일을 막 배우고 있어서 그런 자세한 목표까지는 몰랐어요. 와, 근데 정말 잘 그리셨네요. 직접 그리신 거예요? 캐릭터의 개성이 확실하면서도 실존하는 듯한 느낌까지 완벽해요.”

“뭐, 그렇죠. 그리고 이어서 무구하고 건물 디자인인데...”

그래픽 디자이너는 캐릭터와 배경 등으로 나눠져 있긴 하지만 일단 시황은 다 보여주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멍하니 있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나누는 게 더 즐겁기도 했다.

“멋지다. 정말 대단해요. 하아... 저같은 애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잘 하시네요. 그러니까 케즈론에 뽑히신 거겠죠? 저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불안해요...”

시황이 가져온 그림을 보던 지윤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까지도 왜 자신이 케즈론에 뽑혔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케즈론 입사가 확정 됐을 때 부모님이 이제껏 본적도 없을 만큼 기뻐했을 땐 눈물이 흐를 정도로 좋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만 가득했다.

케즈론이 어떤 기업인가? 한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강시황 대표가 만든 기업이었다. 비록 그 강시황 대표의 얼굴을 잘 알지도 못하고 케즈론 제품을 써본 적도 없었지만 현재 한국에서 가장 대단한 기업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대단한 기업에서 극비리에 시행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잘 하실 수 있을 거예요. 면접 때 무뚝뚝하면서도 엄청 아름다우신 분 보셨죠?”

“아, 네. 봤어요. 그 분 때문에 얼마나 긴장 됐는지 몰라요. 꼭 제 속을 다 훑어보는 것 같았어요.”

“실제로도 그만큼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거든요. 그 분한테 뽑히셨으니 스스로의 능력에 자신감을 가지셔도 돼요. 설마 케즈론에서 능력 없는 사람을 뽑았겠어요?”

“그렇겠죠? 감사합니다. 그 말 들으니까 약간은 위안이 돼요.”

“근데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사실 어제 자려고 누웠는데 너무 걱정이 돼서 한숨도 못 잤어요. 다들 너무 자상하게 대해주셔서 제가 잘 할 수 있을지 불안해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하아...”

“그래요? 그러면 제가 가볍게 안마라도 해드릴게요. 아, 물론 기분 나쁘시면 안 받으셔도 돼요. 너무 피곤해보이셔서 해드리고 싶어서 그런 것뿐이지 다른 의도는 없어요.”

“네? 그, 그게 너무 죄송한데...”

“괜찮아요. 가볍게 주물러드릴게요. 그러면 피로가 좀 풀리실 거예요.”

시황은 어쩔줄 몰라 하는 지윤의 뒤로 가서 가볍게 안마를 해주었다.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 피로를 풀어줄 의도였기 때문에 치유력을 가볍게 끌어올렸다.

“하아... 감사합니다...”

피로가 풀리는지 지윤의 안색이 편안해지며 점점 의자에 등을 깊숙하게 기대었다. 저절로 숨이 흘러나올 만큼 기분 좋은 감각이었다. 몸의 피로가 풀리면서 마음속에 있던 불안감도 조금씩 사라졌다. 방금 만난 사람이긴 했지만 속에 있는 말을 조금 풀어놓고 나니 마음도 편해졌다. 자신의 얘기도 잘 들어주고 자상하면서 상냥한 미남이라 그런지 상당히 호감이 갔다.

이름이 뭔지 어느 부서에서 일하는지는 몰랐지만 이렇게 매력적이고 자상한 미남과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묘한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이제 조금 피로가 풀렸어요?”

시황은 가볍게 안마를 끝내고 지윤의 옆자리에 다시 앉았다.

“네? 아, 네. 감사합니다. 엄청 몸이 가벼워졌어요. 꼭 숙면을 취한 듯한 기분이에요.”

멍하니 딴 생각에 빠져있던 지윤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잠깐 안마를 받은 건데 몸이 정말 가벼워졌다. 거기다 불안감까지 사라져서 정신적인 부담감도 없어졌다. 잠깐 만났을 뿐이지만 남자에게서 이런 호의를 받은 건 처음인지라 지윤은 벌써 호감이 가득한 얼굴로 시황을 쳐다봤다. 지적인데다 상냥함이 가득한 미남인지라 가슴이 조금 두근거릴 정도로 호감이 갔다.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성함도 안 물어봤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텐데 통성명이라도 하고 싶어서...”

“제 이름이요? 음...”

지윤의 물음에 시황은 잠시 고민했다. 실명을 가르쳐주기도 조금 그랬고 그렇다고 다른 이름을 가르쳐주긴 더 그랬다.

조금 난처해질 무렵 식사를 마쳤는지 직원들이 차례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별 생각 없이 들어오다가 지윤의 옆에 앉은 남자를 보고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시황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스쳐 지나가면 모르더라도 잠시 쳐다본다면 알 수 있을 정도로만 존재감을 옅게 만들어 뒀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게 당연했다. 오히려 코앞에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지윤이 이상한 거였다.

“앗! 대표님!”

아트디렉터 홍명민은 시황이 사무실에 와 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며 곧바로 달려왔다. 얼마나 놀랐는지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네?”

하지만 모두가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도 지윤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죄송해요. 별 생각 없이 왔는데 식사 시간이라 잠깐 옆에 있는 지윤 씨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닙니다.”

소규모 회사의 대표도 아니고 시황은 케즈론의 대표였다. 평소에는 얼굴도 못 보다가 갑자기 나타나니 당혹스러워 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홍명민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멍하니 있는 지윤을 보며 도대체 무슨 얘기를 나눈 건지 크게 불안해했다.

“아직 점심시간이니까 편하게 쉬세요 라고 해도 제가 있으면 불편하겠죠? 죄송한데 홍디렉터님만 잠깐 따라 와주시겠어요? 게임 제작에 사용할 원화 자료를 가지고 왔거든요.”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윤 씨 다음에도 또 얘기해요.”

대표실로 가기 전에 시황은 지윤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아, 네.”

지윤은 당황해 하며 대답을 했고 멀어져가는 시황을 멍하니 바라봤다.

시황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지윤의 옆으로 모여들었다. 도대체 시황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대표님하고 무슨 얘기 하셨어요?”

“네? 벼, 별다른 얘기 안 했는데요... 그냥 자료를 보여주셔서 잘 그렸다고...”

“정말요? 계속 대표님하고 단 둘이 있었던 거예요? 긴장 안 됐어요?”

“사, 사실 대표님인지 몰라서... 어, 어쩌죠? 기분 나빠 하시지 않았을까요? 아... 진짜 왜 그랬지? 왜 몰랐지? 아, 정말 미쳤나봐.”

지윤은 혼란에 빠졌다. 설마 그 상냥하고 자상한 남자가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를 격동시킨 천재, 강시황일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케즈론 대표인지 알지도 못하고 마사지를 받고 너무 친절하고 착한 미남이라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기까지 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우면서도 크게 걱정이 됐다. 혹시 시황이 기분 나빴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지윤의 얼굴이 다시금 불안함으로 들어찼다.

“진짜 몰랐어요? 근데 대표님은 별 신경 안 쓰는 것 같던데. 나중에 또 얘기하자고 했잖아요. 그건 마음에 들어서 또 보러 온다는 말 아니겠어요? 부럽다. 나도 대표님하고 얘기해보고 싶은데. 엄청 자상하지 않았어요? 주변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엄청 자상하고 상냥하다고 소문났던데.”

“맞아요. 너무 상냥하고 자상하셨어요. 하아...”

지윤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나눌 때 느끼긴 했지만 그 자상함과 매력이 평범한 사람과 차원이 달랐다. 시황이라고 알고 나니까 가볍게 건넨 말 한마디조차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시황이 안마를 해준 기억을 떠올리자 지윤의 얼굴이 몽롱해졌다.

꿈만 같은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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