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9
<-- 문명 발전 -->
“혹시 모르니까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 잠시만 옷 줄게.”
시황은 라비올라와 실피나가 입기 편한 옷을 찾기 위해 검색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유산 레벨이 올라서 그런지 또 이전과 다르게 시야에 반투명한 모습의 옷장이 나타났다.
마치 직접 케즈론의 성에 가서 옷을 찾는 듯 의지력만으로도 옷을 구분하고 살펴볼 수가 있었다. 반투명한 창을 없애고 검색을 할 수도 있었지만 디자인을 살펴보기엔 확실히 이게 나았다. 시황은 먼저 검색으로 최대한 필요 없는 옷들을 거른 뒤에 라비올라와 실피나가 입기 가장 적합한 옷을 찾아냈다.
[렉슐트 초정밀 마법 공학 의상 : 렉슐트 사에서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만든 초정밀 마법 공학 의상은 절대적인 방어력을 지니도록 설계되어 있다. 천문학적인 소재와 렉슐트 사의 정밀한 마법 공학 기술로 만들어진 이 의상은 여성 전용으로, 단 한 벌만 존재한다.]
[델트롬 황녀의 갑옷 : 아름다운 문양의 쇠붙이로 엮인 델트롬 황녀의 갑옷. 드래곤의 축복으로 대부분의 물리력과 마법 피해를 흡수해 마력을 만들어낸다.]
8레벨까지 오르니 의상 자체도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보물이라고 표현을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웬만한 행성이라면 8레벨 의상을 가지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할 만큼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주었다.
시황은 마력 변환기로 옷과 갑옷의 능력을 추출한 뒤에 라비올라에겐 렉슐트 마법 공학 의상을, 실피나에겐 델트롬 황녀의 갑옷을 건네주었다. 특이점이 있다면 절대적인 방어력을 자랑한다면서 둘 다 노출 또한 절대적이라는 거였다. 노출이 많을수록 방어력이 증가한다는 공식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옷들이었다.
“자, 이거 입어.”
“이, 이걸 말인가요? 알겠습니다.”
손바닥만한 옷을 보고 잠시 당황하던 라비올라가 렉슐트 마법 공학 의상을 입었다. 신기할 정도로 쉽게 늘어나는 상하의의 천 쪼가리는 면적이 너무 좁아 가슴과 음부만을 겨우 가릴 뿐이었다. 거기다 심하게 밀착되어 민망한 부분이 그대로 드러났다.
델트롬 황녀의 갑옷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행성은 황녀가 이런 갑옷을 입는지 몰라도 화려한 문양과 보석으로 치장된 갑옷은 가슴과 음부만을 겨우 가렸다. 물론 훨씬 정상적이면서도 좋은 성능을 가진 옷들이 있었지만 시황은 이게 마음에 들었다.
“그게 보기엔 그래도 엄청 좋은 거야.”
“전 마음에 들어요. 시황 님께서 준 옷인데 어떻게 마음에 안 들겠어요.”
부끄러움에 움츠려든 라비올라와 다르게 실피나는 시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자, 준비 끝났으니까 이제 가자.”
시황은 라비올라와 실피나를 데리고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순간이동했다. 루나모스가 준 순간이동 반지는 정말 유용했다.
시야가 변하고 기괴한 나무들이 뒤틀려 있는 숲으로 이동했다. 어두침침하고 음침한 분위기가 풍기는 숲은 딱 몬스터들이 돌아다닐 법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대충 감각을 통해 몬스터가 있을 법한 곳으로 온 거였는데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드는 장소였다.
거미줄처럼 뻗어나간 용신의 감각은 주변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어디에 얼마나 크고 강한 몬스터들이 있는지 눈으로 보지 않았음에도 감각적으로 전부 느꼈다.
“시, 시황 님. 여긴 악마의 숲이에요.”
주변을 둘러보던 라비올라와 실피나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뒤틀린 나무들을 보고 악마의 숲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악마의 숲은 끔찍한 괴수들이 서식하는 서식지로 들어가는 것조차 금기시 되는 장소였다.
얼마 전 마왕 때문에 세계가 멸망할 뻔 한 적이 있었는데 악마의 숲에는 그런 마왕에 비견될만한 몬스터들이 산재한 곳이기도 했다. 다만 그런 강력한 몬스터들이 악마의 숲을 벗어나지 않고 자기들 끼리 싸워서 다행이지 만약 마왕처럼 몬스터 군대를 만들어 침략했다면 세상은 진작에 멸망했을 것이다.
“그런 이름이야? 마음에 드네. 잠깐만 여기 사진 좀 찍고.”
시황은 악마의 숲에 온 사람답지 않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아공간에서 케즈론 제로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음침한 분위기와 기괴한 형태의 나무들은 좋은 자료들이었다.
그리고 시야에 뜨는 각종 나무와 풀들의 특성 또한 간단하게 메모를 해서 저장했다. 이런 세세한 설정은 세계관을 풍부하게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시황이 즐거운 듯 뭔가를 하고 있자 라비올라와 실피나가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 시황의 옆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숲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대단히 음란한 옷과 갑옷을 입고 있어 대단히 야하게 느껴졌다.
“시황 님...”
“잠깐만 금방 끝나.”
자료로 저장할 게 워낙 많아서 시황은 계속해서 기묘한 형태의 식물과 나무 사진을 찍고 메모했다.
그런데 이렇게 악마의 숲에 사람이 와있는데 강대한 힘을 가진 몬스터가 눈치 못챌 리가 없었다.
어느새 시황과 라비올라, 실피나의 뒤로 늑대처럼 생긴 크게 괴이한 몬스터가 섬뜩한 검처럼 흉악한 이빨을 드러내며 몸을 낮추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하더니 섬광과도 같은 속도로 라비올라를 습격했다.
“크르릉!”
“꺅!”
뒤에서 갑자기 몬스터가 나타나 공격을 하자 라비올라가 비명을 질렀다. 순식간에 몸이 허공에 붕 뜨더니 거대한 몬스터의 입에 물려 잘근잘근 씹혔다. 라비올라는 이대로 자신의 생이 마감한다는 걸 느끼고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시황을 서글픈 눈으로 바라봤다.
“시황 님... 죄송해요. 먼저 루나모스 님의 곁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비록 저는 이걸로 생을 끝내지만 부디 시황 님은 실피나 언니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사세요...”
기어이 라비올라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사랑하는 시황과 더 이상 지내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 슬플 따름이었다. 조금 더 시황과 지내고 싶었다. 라비올라는 마지막으로 시황의 체온을 느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뭐하는 거야?”
“네?”
한참 눈물을 흘리던 라비올라가 어리둥절해 하며 되물었다. 생각해보니 죽어도 벌써 죽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고통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슬쩍 고개를 돌려보자 끔찍하게 생긴 몬스터와 눈이 마주쳤다. 라비올라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역시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라비올라를 씹고 있던 몬스터가 퉤하고 내뱉었다. 아무리 씹어도 강철조차 쉽게 우그러뜨리는 날카로운 이빨이 인간 하나 씹질 못하자 그대로 뱉어낸 것이다.
몬스터가 라비올라를 뱉어내자 그대로 시황은 쾌속하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기를 끌어올려 몬스터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거대한 몬스터에 비하면 자그마한 손이었지만 그 안에 함유된 힘은 측정하기 조차 어려웠다.
목덜미를 붙잡힌 몬스터는 단번에 힘의 차이를 느끼고 두려운 눈빛을 했다. 시황의 몸에서 절재자의 기백이 퍼져 나와 저항할 의지조차 잃은 것이다.
몬스터가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달은 시황은 손을 놓았다. 그러자 늑대처럼 생긴 흉측한 몬스터가 곧바로 배를 보이며 항복 의사를 밝혔다.
“이, 이게 무슨...”
라비올라와 실피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장비 없이 너희들을 데리고 왔을 리가 없잖아. 지금 입은 옷이면 아무리 몬스터가 공격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 없어.”
“아...”
그제야 시황이 보기보다 좋다고 말한 의미를 이해했다. 겉만 보면 방어력은커녕 속옷보다 노출이 심한 옷이었는데 시황이 건네준 옷답게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애완동물처럼 시황에게 엉겨 붙는 저 몬스터는 펠틴이라는 이름으로 흉폭하고 사납기로 유명했다. 저렇게 길들일 수도 없는 몬스터이고 기사단은 투입해도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였다. 시황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걸 볼 때마다 감탄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시황은 펠틴을 세워놓고 케즈론 제로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시야에 뜨는 각종 특성을 저장하고 마력 변환기에 펠틴을 추가했다. 작업은 금방 끝이 났다.
“많이 당황했어? 몸이 더러워졌네. 깨끗하게 해줄게.”
시황은 모든 작업을 끝내고 라비올라에게 가서 물으며 몸도 청결하게 만들어 주었다.
“죽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시황 님께서 저희를 죽게 내버려 둘 리가 없는데 저의 믿음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부끄러운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까진 아니고. 오히려 라비올라가 얼마나 착하고 귀여운지 알게 돼서 유익했어. 정말 예쁘더라.”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시황이 살짝 안아주며 말하자 라비올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보통 실피나라면 이때 끼어들기 마련이지만 라비올라가 자신을 생각해서 시황과 행복하게 지내라는 말에 크게 감동을 해서 얌전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몬스터 자료 찾으러 온 거니까 더 돌아다녀보자. 너희들이 절대로 다치거나 할 일은 없을 테니까 너무 부담 가질 필요 없어.”
시황은 라비올라와 실피나에게 일러두고는 둘을 데리고 악마의 숲을 관광을 했다. 처음에는 긴장을 하며 따라다니던 라비올라와 실피나도 아무리 흉포한 몬스터도 시황의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을 하며 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숲에 이변이 생겼다. 시황의 주변에서 애완동물이라도 된 것처럼 뒹굴 거리던 흉측한 몬스터들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두려움에 떨다가 도망을 친 것이다.
동시에 폭풍 같은 바람이 몰아쳤다. 뒤틀린 나무들이 뽑혀져 나갈 만큼 거대한 광풍이었다.
“꺄악!”
“보호막.”
실피나와 라비올라도 휩쓸려 날아가려고 하자 시황이 낮게 읊조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시황의 주위로 바람이 잦아들었다. 마치 집 안에서 태풍이 오는 걸 보는 듯 보호막 밖에는 여전히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감히 나의 숲에서 얼쩡거리느냐!”
짙은 그림자가 시황을 감싸며 하늘에서 거대한 드래곤이 나타났다. 잔혹할 정도로 붉은빛의 한 드래곤은 오만한 눈으로 시황과 실피나, 라비올라를 응시했다.
“아, 악룡 키실리프!”
라비올라가 창백해진 얼굴로 외쳤다. 저 핏빛과 같은 드래곤을 모르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악룡 키실리프. 단순히 인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나라를 파괴시킨 끔직한 드래곤이었다.
저 드래곤을 잠재우기 위해 수많은 공물을 갖다 바쳤는데 설마 악마의 숲을 돌아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분노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악룡? 무서운 드래곤이야?”
“마,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 무서운... 빨리 도망가야 돼요. 아, 아니. 도망가면 저 분풀이를 할 텐데...”
라비올라는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했다. 그에 비해 실피나는 약간 덤덤한 얼굴로 시황의 옆에 붙어있었는데 손이 살짝 떨리고 있기는 했다. 어찌됐든 저 드래곤이 대단히 무서운 존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여기 오면 안 돼?”
시황이 드래곤을 보며 외쳤다.
“뭐? 방금 뭐라고 했느냐?”
“여기 오면 안 되냐고. 그냥 돌아다녔는데 왜 그렇게 화가 나서 그러는 거야?”
“인간,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을 모르는 것이냐?”
친구한테 하듯 반말로 소리치는 시황을 보며 악룡 키실리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외쳤다. 마이크 볼륨을 한껏 올린 듯한 키실리프의 소리가 숲을 진동시켰다.
“이상한 드래곤이 하나 나타난 것뿐이잖아? 대충 볼일 보고 갈 테니까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주제를 모르는 미물이!”
시황의 버릇없는 말에 키실리프는 크게 분노했다. 날개짓을 하자 다시금 거대한 광풍이 몰아쳤다. 숲에 있는 나무와 풀들이 태풍에 휩쓸리듯 허공으로 치솟았다.
키실리프는 곧바로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핏빛처럼 붉은 숨결을 토해냈다. 그 무엇이라도 녹일만한 열기가 포함된 키실리프의 숨결이 숲을 휘감았고 동시에 시황과 실피나, 라비올라도 덮쳤다.
“꺄악!”
핏빛의 숨결이 자신들을 덮치자 라비올라와 실피나가 비명을 질렀다. 한참 비명을 지르던 그녀들은 자신들의 몸이 멀쩡하자 두려워하면서도 살짝 주변을 살폈다.
시황의 일정 영역을 넘어선 곳은 풀 한포기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문헌에 적힌 것만큼이나 끔찍할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시황은 여유롭게 사진 촬영을 하며 뭔가를 기록했다. 케즈론 제로를 집어넣은 시황이 하늘을 보고 다시 외쳤다.
“너무 성대하게 맞이해주는 거 아니야? 그러면 나도 반겨줘야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황이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치솟았다. 번개와도 같은 번뜩임이 일어나며 바람이 몰아쳤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