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01 문명 발전 ========================================================================= Reg
이 논문은 해외에도 소개되었다. 뇌 공학의 권위자로 유명한 존 맥트리버 교수는 임영선이 발표한 논문을 보고 영어로 가능한 모든 찬사를 보내며 인류의 미래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논문이라고 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커뮤니티인 푸딧에서도 임영선이 발표한 글에 관련 댓글만 수천 개가 달릴 정도로 열렬한 흥미를 드러내곤 했다.
이런 와중에 몇몇 사람들은 어떻게 찾아냈는지 케즈론에서 게임과 관련된 개발자들을 구인하고 있다는 정보를 찾아서 커뮤니티에 올렸다. 거기엔 분명하게 여러 종류의 개발자를 구하고 있다는 정보가 적혀있었다.
재미로 케즈론에서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지도 모른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개발자 구인 정보를 보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케즈론이 게임 개발자를 모으고 있다네요. 강시황 대표가 새로운 개념의 뭔가를 보여준다더니 그게 게임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케즈론에서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요? 사실 최근 한국 게임들 보면 상태가 영 아니다보니 케즈론이 어떤 게임을 만들지 상상도 안 가네요.]
[강시황 대표가 인터뷰로 임영선 교수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고 했죠. 그리고 임영선 교수는 뇌로 정보를 받거나 보내는 혁신적인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게 시사 하는 바가 뭘까요? 다들 처음엔 장난으로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케즈론에서 게임 개발자들을 모으는 걸 보면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가상현실 게임은 너무 현실성이 없어요. 논문도 이제 막 발표된 거라 관련된 기술력도 없을 테고 이제 막 개발자 뽑는데 제대로 된 게임이 나오는 게 이상하죠. 제 생각엔 케즈론에서 미래를 보고 개발자들을 뽑는다고 봅니다.]
[그래도 케즈론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저도 안 될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케즈론이니까 이제까지와는 개념자체가 다른 게임을 만들 거라고 봅니다. 외계인이라도 납치한 거처럼 기술력은 진짜 세계 제일이거든요. 케즈론 제로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누가 폰 카메라 화질이 dslr을 넘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마 그런 글 썼으면 웃음거리 됐을 걸요? 전 케즈론의 미친 기술력을 믿습니다.]
[다들 오바하지 맙시다. 케즈론이 엄청난 기술력을 가진 건 맞지만 가상현실 게임은 구현 난이도의 차원이 다릅니다. 관련 논문 나왔다고 뚝딱 만들 수준이 절대 아니에요. 앞으로 수십년은 발전해야 가능할까 말까한 건데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케즈론이니까 가능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 엄청 많네요. 케즈론이라고 해도 가상현실 게임은 현재 만들기 불가능합니다.]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데요. 현시점에서 가상현실 게임은 지나친 오버테크놀러지에요. VR기기가 아니라 소설처럼 뇌로 직접 인식하는 실제 같은 가상현실 게임을 개발한다는 건 내일 공중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다른 행성으로 여행 간다는 말이랑 비슷합니다. 아무런 기술 개발도 없이 개념만 나온 상태에서 가상현실 게임 만드는 건 불가능해요.]
[그래도 케즈론이면 가능할 수도 있죠. ㅡㅡ; 케즈론에서 뭐 낼 때마다 불가능 하다고 욕은 다 해놓고 막상 다 만들었잖아요? 케즈론에서 스마트폰 만든다는 정보 나오니까 기술력이 없어서 허접한 거나 만들 거라고 하더니 결과는 어땠나요? 해외 언론에서도 50년은 앞선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폰이라고 극찬을 하잖아요. 케즈론이라면 가상현실 게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가상현실 게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 보면 전부 근거 없이 케즈론이니까 가능하다는 믿음뿐이네요. 케즈론이 좋은 제품 만든 건 인정하지만 논리적으로 만들기 불가능해요. 케즈론이라고 불가능한 것까지 못 만드니까 현실을 좀 보세요.]
[아니, 근데 그런 말들 스마트폰 나올 때도 했잖아요? 또 창피 당하시려고 그러시나]
[창피는 그쪽이 당하겠죠]
커뮤니티에서는 벌써부터 케즈론이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 수 있다, 없다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예전과 다르게 케즈론이라도 불가능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외계인을 납치한 듯한 기술력 자체는 다들 인정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인터넷에서 싸우든 말든 시황은 가상현실 게임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넘쳐나는 돈으로 세계에서 우수한 개발자를 뽑고 임영선과 함께 뇌에 정보를 수신, 송신하는 장치를 만들면서 안정성 의뢰까지 했다.
아직까지 가상현실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선 지나가야 하는 길이 멀고 험난하긴 했지만 차근차근 그 단계를 밟아나갔다.
침대에 드러누운 시황은 타블렛으로 커뮤니티 반응을 보다가 퀘스트 아이콘을 눌렀다.
[문명을 발전시킬 논문을 발표하세요.][완료][경험치 100000]
단번에 10만에 이르는 경험치를 획득했다. 스마트폰 개발과 여러 퀘스트를 통해 8레벨에 더욱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만 더 경험치를 획득하면 8레벨이라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시황은 퀘스트를 살펴보면 뭐를 더 해야 8레벨에 이를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지 살폈다. 가상현실 게임을 개발하는 것 자체로도 상당한 경험치를 줬고 플레이어 수에 따라 또 막대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이제 막 시작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언제쯤 게임이 완성되고 플레이가 가능할지 조차 아직 알 수 없었다.
이쯤 되니 경험치를 얻기 위해선 전 지구인을 대상으로 하는 거나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 아니면 막강한 적과 싸워서 이기는 것 정도는 해야 괜찮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마치 온라인 게임의 고레벨이라도 된 것처럼 레벨 낮은 몬스터를 잡아서는 경험치가 차는 것 같지도 않았다.
역시 현재로서는 아루의 유튜브를 키워서 누적 조회수를 늘리는 쪽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꾸준하게 아루의 영상을 업로드해서 이미 상당한 구독자를 확보해둔 상태였다. 아루가 워낙 예쁘다 보니 아루를 보러온 사람도 있었고 고양이가 귀여워서 고양이를 보러오는 사람도 있었다. 예쁜 여자가 귀여운 고양이와 노는 영상은 실패할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그리고 또 가능성이 있는 건 현주의 팬픽 소설과 수란의 웹툰이었다. 현주가 제대로 된 스토리를 쓰고 수란이 웹툰을 그린다면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잘 되면 영화화까지 가능했기 때문에 이쪽도 무궁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시황은 타블렛을 보며 8레벨에 도달하기 위해 수행해야할 퀘스트들을 살펴본 뒤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넓은 창문을 바라보자 따사로워 보이는 태양이 중천이 떠있었다.
거실에 나가자 평소와 다르게 조용했다. 이른 오후인지라 대학에 가거나 일을 하러 갔기 때문에 적막한 것도 있는데 아루도 거실에 없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보통은 거실에서 만화를 보거나 TV를 보는 게 아루의 평범한 일상이었으니까.
의아함을 느낀 시황이 2층에 있는 아루의 방으로 올라갔다. 2층에 가자 근처에 있는 프린의 방에서 게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황이니까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소음이긴 했는데 무슨 게임을 하는 건지 정신없이 몰입해 있었다.
프린이야 말로 일도 안 하고 집에서 게임만 하고 밥만 축내는 백수였지만 게임을 저렇게 열심히 하면 나중에 분명히 활용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싫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익숙지 않은 세계에 와서 외로움 없이 저렇게 뭔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다른 행성에서 데리고 온 만큼 그녀들을 책임질 의무가 있었으니까.
시황은 아루의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혹시 잠이라도 자는 건가 했는데 침대에 앉은 아루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우울한 얼굴로 뭔가를 보고 있었다. 슬픈 만화라도 본 걸까?
“아루야, 뭐해?”
“오, 오빠.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루가 보고 있던 타블렛을 뒤쪽으로 숨겼다. 그냥 보고 있으면 모르겠는데 뒤쪽으로 어색하게 타블렛을 숨기는 모습에 시황은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다.
“무슨 일 있어?”
시황은 아루의 옆에 앉아서 다정하게 물었다. 커다란 아루의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아루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울 듯 말 듯한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오빠... 있잖아요. 저는 오빠랑 같이 있으면 안 돼요?”
“응? 무슨 말이야?”
“제가 오빠랑 같이 있는 거 싫어하는 것 같아서요...”
갑작스러운 아루의 말에 시황은 곧바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 누가 아루에게 뭐라고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집에 있는 여자애들 중에서 아루에게 그런 나쁜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다들 아루를 동생처럼 아껴줬으니까. 그런데도 만약 있다면 정말 큰 충격을 받을 것만 같았다.
“누가? 누가 그런 말을 해?”
“사람들이요. 사람들이 저보고 남자 친구 사귀면 안 된대요...”
“사람들? 유튜브 댓글 같은 거 본 거야?”
“네. 그거 봤어요.”
“그래? 다행이네.”
시황은 일단 안도했다. 설마 하는 마음이었는데 역시나 여자애들이 아루에게 그렇게 나쁜 말을 할리가 없었다. 누구보다 여자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존재가 바로 아루였으니까. 유미를 항상 나무라는 찬미조차도 아루에겐 그 누구보다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전 오빠랑 평생 같이 있고 싶어요. 오빠랑 떨어지기 싫어요. 오빠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은 걸요.”
아루는 시황을 끌어안으며 얼굴을 묻었다. 귀엽고 순수한 소녀가 평생 같이 있고 싶다는 귀여운 말에 시황은 기분 좋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는 도대체 누가 아루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아루에게 웃음을 지어줬던 시황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한강규에게 당했을 때보다 훨씬 분노한 눈빛이었다.
“당연히 평생 같이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아루야. 그리고 타블렛 줘볼래? 무슨 글있나 내가 확인해볼게.”
“네. 여기 있어요.”
아루가 타블렛을 건네주자 시황은 곧바로 유튜브를 확인했다. 최근 올라간 영상의 조회수가 60만이나 되었다. 댓글도 2천 개가 넘게 달릴 정도로 대단한 인기의 영상이었다.
영상 댓글을 확인했다. 귀엽다거나 예쁘다, 고양이랑 잘 어울린다 등의 칭찬이 대부분이긴 했는데 중간 중간 눈에 거슬리는 댓글들이 있었다.
[귀여운 척 하는 거 역겹네. 전부 보정 빨이면서 ㅋㅋ]
[귀여운 척 나만 짜증나는 건가? 남자들이 저런 귀척 좋아하는 이유 1도 모르겠음]
[솔직히 안 예쁘지 않나? 쟤보다 예쁜 애들 훨씬 많은데 인기 많은 이유가 뭐지?]
[쟤 돈 많음? 케즈론 제로 쓰네?]
[근데 영상 누가 찍어 주는 거임? 남친이 찍어주는 거 아님? 1분 24초 부분 보셈. 남자 목소리 남.]
[진짜네;; 남친 있는 거는 좀 아니지 않나;;; 남친 있으면 바로 구독 끊음 ㅅㄱ]
[케즈론 제로 쓰는 거 보면 강시황이 남친인 거 아님?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시황이 남친인 건 용서 못함.]
댓글에 나온 대로 1분24초 부분을 보니까 아직 살짝 시황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갔다.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 대부분은 신경도 안 쓰는 반면 몇몇 사람들은 남친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게다가 아루의 얼굴이나 행동을 본 사람들이 심한 댓글을 쓰기도 했지만 아루에겐 남자 친구가 있으면 안 된다는 글이 가장 충격적인 듯 했다.
아무래도 아루가 워낙 예쁘고 귀엽게 생기다 보니 과도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혹시 있을지 모를 남자 친구라는 존재가 상당히 신경 쓰이는 듯 했다. 꼭 아이돌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면 논란이 되는 것과 비슷했다.
시황은 매너 없는 댓글을 달아서 아루를 우울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큰 분노가 생겼다. 아루야 다른 심한 댓글은 신경 쓰지 않고 남자 친구 사귀면 안 된다는 글에만 충격을 받은 듯 했지만 그래도 감히 사랑하는 아루에게 심한 말을 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리적인 행사를 할 수는 없었다. 살짝 친답시고 쳤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들어가면 일반인이 사망하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조회수가 높은 만큼 거슬리는 댓글이 존재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황의 머리가 빠르게 움직였다. 벌써부터 몇 가지 상황이 구체적으로 연상되었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서 유튜브 조회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방안을 고민했다. 문득 현주의 팬픽이 떠올랐다. 현주의 팬픽이 인기가 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을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고 대리만족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다.
아루를 통해 자신과 연애를 하는 듯한 대리만족을 전해준다? 수많은 생각을 해봤지만 어쩐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처럼 인기를 끌 때가 아니면 활용하기 어려운 방법이었다. 그리고 아루의 외모를 욕하거나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을 줄 수 있었다. 스스로 말하긴 조금 그렇지만 남자 친구가 시황이라는 건 그 무엇보다 부러움을 받을만한 일이었으니까. 이거야 말로 더없이 대단한 복수방법이었다.
어떤 점이 여자들이 부러워하고 남자들이 원하는 상황일지는 평범녀인 현주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하고 차근차근 그 과정을 준비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면 아루야, 오빠랑 서로 좋아하는 사랑하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릴까? 그러면 사람들이 아루랑 나랑 좋아하는 거 알게 될 거잖아.”
그런데 그것보단 지금 당장 아루를 위로해주는 게 먼저였다. 우울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루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웠다.
“오빠랑 좋아하는 모습이요? 오빠 성기 빠는 거 올리는 거예요?”
“아니, 그런 건 안 되고 밖에서 데이트하거나 뽀뽀하는 것 정도는 괜찮아.”
아루가 당연하다는 듯이 야한 행위를 언급하자 시황이 조금 당황했다. 유튜브에 그런 걸 올렸다간 바로 계정 정지였다.
“아루는 오빠랑 뽀뽀하는 것도 너무 좋아요. 빨리 올려서 사람들한테 오빠 보여주고 싶어요.”
방금까지 시무룩하던 아루의 얼굴이 밝아졌다. 시황과 서로 좋아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사실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인터넷을 보면서 유미나 다른 여자들이 시황과 같이 찍은 사진이 올라오는 게 상당히 부러웠었다.
아루는 시황을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시황이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