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95 문명 발전 ========================================================================= Reg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는 곧바로 SNS에 요트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을 업로드했다.
가을도 평소 즐겨하는 자신의 SNS에 요트 여행을 갔다 왔다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보통 분위기를 낸답시고 시퍼렇거나 핑크빛이 가득한 색으로 보정을 하기 마련이지만 가을은 시황이 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아무런 보정도 하지 않고 가장 잘 나온 사진 몇 개를 올렸다.
흔히 화보에서 보는 사진이었다. 비키니를 입고 바다를 배경으로 호화로운 요트 난간에 걸터앉아서 분위기를 잡은 모습이었다. 흔하디흔한 구도의 사진이었지만 묘하게 사람의 감성을 자극했다.
분명히 보정을 하지 않은 그대로의 사진이었지만 아름답고 분위기 있는 색채와 감각적인 감성은 전문가가 찍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뛰어났다.
사진을 본 여러 나라의 팬들도 가을의 아름다운 사진에 감탄을 터트렸다. 그것도 평범한 사진이 아니라 시황의 손에 의해 황홀한 몸매를 가지게 된 가을의 비키니 사진이었기 때문에 남녀 할 것 없이 눈을 떼지 못했다.
충격적이기까지 한 가을의 몸매에 남자들이 감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여자들은 현실성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몸매를 보고 한없이 부러워했다.
[어떻게 몸매가 저렇게 예쁠까ㅠㅠ 지금 피자 먹고 있는데 죄책감 든다 ㅠㅠ]
[저 다리 봐 ㅠㅠㅠㅠ 각선미 너무 예뻐]
[저 허리 가능한 거야? 어떻게 저 허리에 저 골반을 가질 수 있는 거야 반칙이잖아 ㅡㅡ]
[저 요트 강시황이 자기 연인들 태워주려고 산거래. 부럽당 ㅠㅠㅠㅠ]
이미 시황이 요트를 샀다는 사실도 뉴스로 나갔기 때문에 여자들은 요트에 타서 아름다운 몸매를 뽐내는 가을의 모습에 부러워 죽으려고 했다.
[근데 사진 진짜 예쁘다. 평범하게 찍은 건 아니고 꼭 화보같은 거 보니까 전문 사진작가가 따라간 건가?]
[어떻게 찍으면 사진이 저렇게 예쁘게 나오는 거야 ㅠㅠㅠㅠ 금손들 너무 부럽다 ㅠㅠ]
[나도 이런 사진 보면 카메라 사고 싶음... 근데 내가 찍으면 이렇게 안 나오겠지...]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잘 찍힌 사진에 혹시 화보를 찍으려고 전문 사진작가가 따라간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놀러간 여자애들이 스마트폰으로 대충 찍은 사진이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문가가 찍은 것처럼 잘 나왔던 것 이다.
가을 외에도 은비, 유미, 효정 등 시황의 연인들이 자신의 SNS에 예술과도 같은 사진을 올리자 네티즌들은 전문가가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했다. 아무리 봐도 잡지에나 나올 법한 수준의 사진을 평범한 사람이 저렇게 대량으로 찍을 수는 없었다.
평범한 사진이 아니라 카메라처럼 선명하면서도 감각적인 사진인지라 사람들이 큰 관심을 드러낼 때, 케즈론에서 공식적으로 발표 행사를 가진다는 발표를 홈페이지에서 했다.
뜬금없는 케즈론에서 무언가를 발표한다고 하자 사람들은 큰 흥미를 드러냈다. 스마트폰이라고 정확하게 알려준 게 아닌지라 네티즌들은 뭘 발표할지 흥미롭게 얘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평범하게 새로운 옷을 예상했지만 케즈론이 큐인 사를 인수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시기적으로 스마트폰 발표회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했다.
[발표회 홍보 사진을 보면 세상을 바꿀 케즈론의 새로운 도전이라고 적혀 있잖아요. 이건 기존의 패션 브랜드와 관련된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카테고리인 스마트폰을 발표하는 게 맞다고 봐요. 몇 달 전에 큐인 사도 인수한 거 보면 더 확실해지죠.]
->[오, 그러게요. 케즈론이 큐인 사 인수했었죠. 근데 케즈론에서 스마트폰이라... 좀 어색한데. 큐인 사의 스마트폰 품질이 썩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기나 할까요? 그냥 다른 회사처럼 평범한 제품 내고 망해서 사업 접을 것 같은데...]
->[아마 케즈론은 적당한 품질의 스마트폰을 내면 이름 값 때문에 비싸게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근데 사실 이건 큰 착각이죠. 패션 브랜드는 브랜드 마크 하나로 가격의 단위가 바뀌는 시장이지만 스마트폰은 전혀 달라요. 전자제품 특성상 1년, 길어야 2년이면 구형으로 느끼는 시장이기 때문에 비싼 돈을 주고 아무런 특장점이 없는 제품을 살 의미가 없어요. 물론 케즈론 쪽에선 스마트폰 사업과 연계에서 사업을 더 확장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솔직히 가망 없다고 봅니다.]
->[확실히 웬만큼 제품을 잘 만들어도 망하는 레드오션 시장인데 패션 브랜드인 케즈론이 겨우 큐인을 인수한 걸로 잘 될 것 같지는 않네요.]
당연하게도 네티즌들은 케즈론의 스마트폰 사업 진출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각했다. 기존의 강자들도 망하는 판국에 패션 브랜드에 가까운 케즈론이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서 잘 팔 거라는 생각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것도 품질과 디자인이 나빠서 망한 큐인 사를 인수했으니 더욱더 부정적인 평가가 잇따랐다.
이렇게 사람들이 케즈론에서 어떤 스마트폰을 출시할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핑크펫 멤버들은 일본 콘서트를 위해 공항으로 갔다.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출국을 위해 공항에만 가더라도 기자들이 따라와서 공항패션이라며 사진을 올리기 때문에 옷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신경을 크게 안 쓴 척 가장 예쁘게 보일 수 있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핑크펫 멤버들은 기자들을 지나쳐 공항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가을과 장미, 혜미는 마치 일부러 그러기라도 한 듯, 한 손에는 시황이 준 스마트폰을 들거나 전화를 하는 척 했다. 시황이 스마트폰 사진을 직접 올리지만 않으면 마음껏 써도 된다고 했기 때문에 다들 부담 없이 출시도 하지 않은 신제품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기자들은 시황의 연인인 가을과 혜미, 장미의 사진을 가득 찍어서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올렸다. 평범하게 그 사진을 보던 사람들은 가을과 혜미, 장미의 손에 들린 정체불명의 스마트폰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가을 손에 든 거 무슨 스마트폰이죠? 저런 디자인 처음 보지 않나요?]
[헐, 진짜네요? 근데 그렇게 막 예쁘지는 않네요.]
고화질의 사진에 출시도 안 한 신제품 스마트폰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처음 보는 디자인의 스마트폰을 보며 궁금함을 드러냈다. 가을과 혜미, 장미의 사진에 살짝 나온 거라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까지 디자인이 뛰어나 보이지는 않았다.
이어서 유미, 효정 등 시황의 연인들이 전부 생전 처음 보는 스마트폰을 같이 쓰고 있자 사람들은 이번에 케즈론에서 출시할 신제품이라는 걸 확신했다.
각 커뮤니티에 [케즈론에서 출시할 스마트폰 디자인.jpg]라는 이름으로 나름 자세하게 스마트폰 디자인이 나온 사진들이 올라갔다.
[예쁘다 ㅠㅠ 케즈론 거라 그런지 디자인 너무 예쁘네요~ 사고 싶어요... 물론 제가 살 가격으론 안 나오겠지만요...]
[저게 괜찮나요? 너무 반짝여서 좀 싼 티 나지 않나요? 케즈론에서 스마트폰 만든다고 해서 디자인은 기대했는데 영 실망인데요?]
[윽, 유광 싼 티 나서 엄청 싫네요 ㅠㅠ 도대체 저런 디자인 누가 좋아한다고 번쩍번쩍하게 만들었는지... 강시황 센스도 참...]
[디자인 개구림... 줘도 안 씀]
의외로 비판적인 얘기가 상당히 많았다. 호불호를 떠나서 못생겼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도 사진으로 보이는 케즈론의 새로운 스마트폰은 특별할 것도 없는데다가 싼 티 나듯 반짝 거려서 누구라도 별로라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평소 케즈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케즈론 스마트폰 디자인 사진을 올렸고 실망감 어린 댓글이 달리자 흐뭇하게 웃기도 했다.
사람들이 수없이 실망감을 나타내자 인터넷 기사로도 뉴스가 올라왔다. 케즈론에서 출시할 걸로 보이는 스마트폰의 모습이 가을 등에게서 유출됐고 사람들은 못 생긴 디자인에 큰 실망감을 나타냈다는 내용이었다.
[헐, 디자인 개실망. 지금 쓰는 내 폰이 훨씬 예쁘네 ㅎㅎ]
[저런 폰 몇 백만 원에 파는 거면 케즈론 진짜 양심 없는 거임. 어떻게 저런 싼 티 나는 폰을 만들지?]
[큐인 인수했을 때부터 난 망할 줄 알았음 ㅋㅋㅋㅋㅋㅋㅋ 큐인이 왜 망했는지도 모르고 그걸 인수해서 저런 허접한 폰을 만드네 ㅋㅋㅋㅋㅋㅋ]
기사가 뜨자 케즈론에서 출시할 스마트폰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워낙 싼 티 나고 별로인 디자인이었던지라 네티즌이라면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온 사이트로 퍼져나갔다. 누가 뭐래도 현재의 케즈론은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기업이다 보니 그만큼 큰 파급력을 가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크게 실망하는 와중, 어느새 케즈론의 스마트폰 발표일이 되었다.
발표회는 한국의 케즈론 사옥 1층 홀에서 열렸다. 케즈론 빌딩 앞에는 [세상을 바꿀 케즈론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글귀가 적힌 홍보물이 여기저기 부착되어 있었다.
발표는 오후 2시에 시작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발표 시간이 다가오자 초대를 받은 각종 언론사와 국내외 IT사이트 기자들이 참석해서 자리에 착석했다. 그런데 여기에 모인 사람들조차도 사실 케즈론의 스마트폰 진출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치열한 시장이었고 아무리 위세 높은 케즈론이라도 스마트폰 사업까지 성공적으로 이끌 거라고 쉽사리 믿기가 어려웠다.
2시가 되자 웅장한 노래와 함께 전면에 잇는 거대한 스크린에서 [세상을 바꿀 케즈론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문구가 흘러나왔다.
옆에서 시황이 걸어 나옴과 동시에 스크린에는 케즈론 대표 강시황의 이름이 아름다운 효과와 함께 선명하고 크게 적혀져 나왔다.
시황을 본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대의 가운데 선 시황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잠시 응시한 뒤에 얘기를 시작했다.
“케즈론의 발표회에 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희 케즈론은 처음 카페로 시작해서...”
시황은 간단하게 케즈론의 역사를 읊어나갔다. 흔히 그렇듯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통해 큰 성장을 이루어 나갔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스크린에서는 케즈론의 성장에 관한 표가 시황의 말에 따라서 흘러나왔다.
간단한 소개를 마친 시황은 본격적인 스마트폰 발표를 시작했다.
“저희 케즈론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게 비록 힘이 들고 넘어질 수도 있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걸 알지만 용기가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게 용기가 될지 만용이 될지는 여러분들께서 직접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소개합니다. 이번 발표회의 주인공인 케즈론 제로입니다.”
시황의 소개와 동시에 거대한 스크린에서 케즈론 제로라는 네이밍과 함께 아름다운 모습의 스마트폰 디자인이 공개되었다. 천천히 흘러가는 화면으로 나오는 초현실적인 디자인의 모습에 자리에 앉아 있던 여러 사람들이 큰 감탄을 터트렸다.
대부분 가을과 혜미 등의 사진으로도 디자인을 얼핏 보기는 했지만 그때는 분명 싸구려 같은 재질감에 못생긴 디자인이었는데 막상 와서 보게 되니 눈이 호강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것이다.
유려한 라인을 가진 케즈론 제로의 디자인은 전면이 모두 스크린으로 채워져 있었고 후면은 보석처럼 고급스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몇 년의 시간을 단번에 뛰어넘은 듯한 대단히 새로운 감각의 스마트폰이었다.
제품 소개 영상이 끝이 나고 시황은 직접 주머니에서 케즈론 제로를 꺼내 들었다. 영상에서도 아름다웠지만 실물은 상상을 초월했다. 과연 저게 스마트폰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디자인과 압도적인 존재감에 사람들은 큰 박수를 쳤다.
“케즈론 제로는 제로라는 이름답게 새로운 시작점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스마트폰들이 시장에 존재하지만 저희는 그런 스마트폰을 넘어 세상을 변화시킬 시작점이 될 만한 스마트폰을 만들었습니다.”
시황은 본격적인 케즈론 제로에 대한 설명을 읊어나갔다.
“저희 케즈론 제로는 기존의 딱딱하기만 하던 유리 재질이 아닌 완벽한 피드백을 전달해줍니다. 화면에 키패드가 올라오면 마치 실제 키패드를 누르는 것처럼 완벽한 질감을 선사합니다.”
시황의 말에 따라 그런 기술이 어떻게 구현됐는지 간략하게 스크린으로 나왔다. 새로운 형태의 유리를 사용해 화면에 나오는 것과 같은 질감을 유리 표면에 구현하는 기술로, 이것도 시황이 다른 행성의 기술력을 마력 변화기에 저장해서 적용한 기술이었다.
사람들은 시황의 설명에 웅성거렸다. 단순히 좋다기에는 너무 먼 미래적인 기술이라 설명한 것처럼 제대로 작동을 할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희 케즈론 제로는 기존의 DSLR 카메라를 넘어선 선명한 화질의 카메라를 탑재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실제와도 같은 카메라 버튼을 누르게 되면 전문가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사진을 손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수많은 사진을 찍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케즈론 제로만 있다면 그 어떤 전문가보다 뛰어난 사진을 간편하게 찍을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는 더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가 어떻게 DSLR 카메라 보다 더 좋을 수가 있단 말인가? 분명 DSLR 카메라처럼 선명한 사진이 찍힌다는 표현이겠지만 그걸 너무 지나치고 과장되게 말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조금 찡그려졌다.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시황의 케즈론 제로 자랑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케즈론 제로로 얼마나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전면 카메라로도 DSLR을 뛰어넘는 얼마나 대단한 셀카를 찍을 수 있는지 설명했지만 사람들은 박수는커녕 말없이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케즈론 제로는 완벽한 방수를 자랑합니다. 케즈론 제로만 있다면 전문적인 장비가 없더라도 깊은 바닷속 사진을 선명하고 아름답게 찍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여름 해수욕장에서 바닷물에 스마트폰이 고장 나지 않을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완전 방수를 자랑하는 케즈론 제로는...”
“말도 안 돼.”
누군가 중얼거렸다. 크지는 않은 목소리였지만 주변에서 들은 사람들은 전부 공감했다. 어느 정도 과장되게 말을 해야지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DSLR 카메라를 능가하고 완전 방수라고?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도대체 저런 거짓말을 해서 뒷수습은 어떻게 하려는지 의문이 들었다. 처음 디자인을 봤을 때만 해도 기대했던 그 마음이 차갑게 식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