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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573화 (572/629)

573  문명 발전  ====================

멍하니 소파에 있던 임영선은 시황이 준 선물을 뜯었다. 뭔가 했더니 화장품 세트였다. 케즈론 대표라더니 케즈론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화장품이나 패션 브랜드 쪽은 큰 관심이 없어서 사실 얼마 전까지 케즈론이라는 브랜드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테이블에 화장품 세트를 올려두고 다시 멍하니 있자 폰에서 문자가 왔다는 소리가 났다. 확인을 하니 시황이었다.

[교수님하고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보고 싶어요. 언제 스케줄 되세요?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교수님.]

문자를 읽는 내내 임영선의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가 않았다. 벌써 자기를 보고 싶어서 칭얼거리는 시황의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만 해도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스케줄 보고 알려줄게.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려. 알겠지?]

[알겠어요. 교수님 빨리 보고 싶어라...]

시황에게 웃는 이모티콘을 마지막으로 보냈지만 임영선은 폰에서 눈이 떠나질 않았다. 문장을 읽으면 읽을수록 시황이 가진 자신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졌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가슴이 울렁일 정도로 기분이 좋은 건 인간인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안 되지. 정신 차려야지.”

임영선은 고개를 흔들었다. 시황과의 야릇한 관계는 오늘로 끝이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뇌파를 이용한 상호작용 시스템을 검증하는 교수, 그리고 장미의 어머니일 뿐이었다.

일단은 스케줄부터 확인하고 이틀 뒤에 다시 시황과 만나기로 했다. 그날은 강의가 별로 없어 일찍 집에 갈 수 있었다. 이틀 뒤에 만나자고 시황에게 문자를 보내자 곧바로 기뻐하는 시황의 문자가 도착했다. 문자를 읽고는 슬며시 웃던 임영선은 다시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다.

멍하니 소파에 있다 보니 어느새 강의 시간이 되었다. 임영선은 책을 챙겨 강의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교단에 서자 학생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이 속닥이듯 말했지만 그 대화 내용이 그대로 귀에 들어왔다.

“교수님 젊어진 거 같지 않아?”

“진짜네. 훨씬 젊어지고 우아해 보인다. 케즈론 화장품이라도 쓰는 건가? 교수 정도면 케즈론 화장품도 사다 쓸 수 있겠지? 부럽다. 나도 케즈론 화장품 쓰고 싶어라.”

임영선은 학생들이 하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곧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업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시황에 관한 걸로 가득 차 있었다. 젊은 애랑 섹스를 해서 그런 건지, 시황과 상성이 잘 맞는아서 모르겠지만, 학생들에게도 확실히 젊게 보인다고 하니 괜히 시황이 더 사랑스럽고 귀엽게 느껴졌다.

수업을 마친 임영선은 교수실에 돌아와 뇌에 관한 각종 자료들을 찾으며 시황이 만든 것들이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 건지 연구했다. 하지만 아무리 관련 자료를 찾아도 뇌파를 이용해 상호작용 시스템을 만들기란 불가능 가까웠다. 도대체 이걸 어떤 식으로 구현했는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똑똑.

그때 누군가 노크를 했다.

“들어가도 돼?”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친한 김미순 교수가 들어왔다. 한 번씩 이렇게 와서 차를 마시며 간단한 잡담도 나누는 사이였다.

“어머, 너 왜 이렇게 젊어졌어? 젊은 애인이라도 사귄 거야?”

“무, 무슨 말씀이세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렇지? 남자한테 관심도 없고 일밖에 모르는 애가 그럴 리가 없지. 그냥 농담해본 거야.”

가볍게 웃으며 농담을 한 김미순 교수는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고급스러운 상자가 올라와 있어서 뭔가 봤더니 케즈론 화장품 세트였다.

“너 케즈론 화장품 샀니? 이거 제일 비싼 거잖아? 너 왜 이렇게 젊어졌나 했더니 케즈론 화장품 발랐구나. 나 이거 구경해도 돼?”

“네. 하세요. 그런데 그거 좋은 거예요?”

갑자기 김미순 교수가 부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자 임영선은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당연히 좋지. 세계 최고의 명품 화장품인데. 해외 유명 스타들도 한국에 와서 직접 사간다잖아. 넌 그것도 모르고 샀니? 1억 원이나 하는 걸 누가 선물 줬을 리는 없을 테고.”

“1억 원이요? 이 화장품이요?”

“어디서 받은 거야? 부럽다. 도대체 누가 이런 비싼 선물을 줬데? 딸이 아이돌 한다더니 돈 많이 번거야? 근데 넌 어떻게 된 게 케즈론 화장품도 몰라? 너무 일만 하지 말고 좀 다른 거에 관심도 가지고 그래라. 좀.”

그 뒤로 김미순은 임영선에게 케즈론에 관한 지식을 줄줄이 늘여 놨다. 화장품부터 패션 브랜드까지 명품 중의 명품이라고 끝없이 칭찬했다. 그러자 기묘하게도 임영선은 마치 자기가 칭찬을 듣는 듯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면서도 시황이 그렇게나 능력 있는 남자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김미순이 돌아가고 임영선은 컴퓨터로 케즈론에 대한 것들을 검색했다. 인터넷에 가득한 칭찬을 읽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웃음이 나왔다. 기사를 읽다가 시황의 고화질 사진이 나오자 임영선은 멍하니 쳐다보다가 저장버튼으로 손이 살짝 움직였다.

“아, 안 되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민망해라.”

그러다 지금 자기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닫고는 황급히 기사 창을 닫았다. 하마터면 시황의 사진을 저장할 뻔했다.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 거렸다.

일을 마친 임영선은 늦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장미가 일찍 왔는지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평소라면 장미를 불러서 잔소리를 하며 시황과 헤어지라고 설교를 할 테지만 불과 하루 전에 장미의 남자 친구인 시황과 만나서 섹스를 해버렸던지라 도저히 장미를 볼 낯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가려는데 장미가 문을 열고 나왔다. 임영선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어제 뭐했는데 안 들어 온 거야?”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어제 임영선이 안 들어온 게 걱정이 돼서 장미가 물었다.

“으, 응. 일이 있어서. 별로 신경 안 써도 되니까 들어가서 쉬어. 엄마도 피곤해서 오늘은 일찍 잘게.”

임영선이 방으로 들어가자 장미는 갸우뚱했다. 평소라면 시황과 헤어지라고 잔소리를 해서 또 싸웠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나긋나긋하고 상냥하기까지 했다. 시황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기에 저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직 불안하기는 해도 어쨌든 시황과 만나는데 더 이상 뭐라고 할 거 같진 않아서 장미는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장미가 기뻐하는 사이에 방에 들어온 임영선은 침대에 드러누웠다. 장미를 보는 것만으로도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눈을 마주칠 수도 없었다. 장미의 남자 친구인 시황과 섹스를 했다는 걸 들키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도대체 어제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죄책감마저 느껴졌다.

“하아...”

한숨만 연신 나왔다. 시황이 정말 착하고 사랑스럽고 귀엽긴 하지만 그래도 장미를 생각해서라도 거리를 둬야 했다.

임영선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몇 번이나 다짐했다.

**

이틀 뒤, 시황은 늦은 오후에 임영선을 만나기 위해 차를 타고 대학교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집에서 나올 때 확인했지만 오늘은 항상 있던 한강규가 고용한 파파라치가 없었다. 원하는 사진을 찍었거나 아니면 더 은밀한 사생활을 찍으려고 대기를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큰 문제였겠지만 시황에겐 별다른 흥미도 주지 못하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한강규를 봐줄 생각은 없었지만 이걸 어떤 식으로 해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밖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이것보단 임영선과의 관계가 훨씬 더 흥분되고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임영선이 있는 학과 건물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운 시황은 바로 문자를 보냈다.

[저 지금 도착했어요. 교수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1시간이나 빨리 와버렸어요.]

[벌써 왔니? 어쩌지 나 아직 일이 안 끝나서 좀 기다려야 할 텐데.]

[그러면 교수님이 있는 교수실에 가도 될까요? 아무 짓도 안 하고 얌전히 교수님만 보고 있을 게요.]

[교수실에 온다고?]

[가면 안 될까요? 곤란하시면 그냥 차에서 기다릴게요.]

[괜찮긴 한데... 알았어. 그러면 교수실로 와.]

[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이내 스마트폰으로 어디로 오면 되는지 문자가 왔다. 시황은 용언으로 존재를 감추고 임영선의 교수실로 갔다. 학생들을 헤치고 올라가 노크하자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임영선이 들어오라고 했다. 시황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용언을 곧바로 해제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보고 싶었어요.”

“왔니? 거기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렴. 아직 일이 남아서 처리할 게 있거든. 차라도 마시면서 기다릴래?”

“감사합니다. 있는 거 아무거나 주세요. 교수님이 만들어서 주는 것만으로도 맛있으니까요.”

“알았어. 그러면 녹차로 줄게.”

임영선은 덤덤한 척 말했지만 사실 시황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자신을 만나서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감정이 솟아났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됐다. 이래선 절대로 안 되는 관계였다. 임영선은 계속해서 마음을 다잡았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녹차 티백을 넣은 컵에 물을 부어 소파에 앉아 있는 시황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에 돌아가 일을 하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시황이 끌어안았다.

“교수님, 사랑해요.”

“뭐, 뭐하는 거니. 이거 못 놓니?”

갑작스럽게 시황이 끌어안자 임영선은 당황하면서도 기분 좋은 시황의 체취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러면 안 된다고 계속 되뇔수록 이상하게 더 시황의 따스한 품과 향긋한 체취가 그리웠었다.

“죄송해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교수님만 보고 있으려고 했는데... 하아... 정말 죄송해요. 그런데 막상 교수님을 보니까 너무 좋아서 도저히 못 참겠어요.”

“이러지마. 시황아. 응? 우리 이러면 안 되는 사이잖아. 이러면 정말 곤란해.”

“이틀 동안 하루 종일 교수님 생각 밖에 안 났어요. 이렇게 교수님을 끌어안는 것만으로도 너무 흥분되고 기분 좋아서 벌써 발기까지 해버렸는걸요.”

“바, 발기를 했다고?”

야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겨우 뒤에서 안는 것만으로도 발기를 하다니. 도대체 얼마나 좋기에 이렇게 매번 발기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자기를 좋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시황을 보자 임영선은 마음 깊이 세워둔 벽이 급격히 허물어지는 걸 느꼈다. 살면서 이렇게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은 시황이 처음이었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에 임영선은 마치 처음 연애를 하는 것처럼 두근거렸다.

“사실 교수님 만나기 전부터 너무 좋아서 계속 발기하고 있었어요. 지금은 너무 흥분돼서 아플 정도에요. 보여드릴까요?”

“무,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다른 사람이 보려면 어쩌려고.”

“아무도 없잖아요. 창문도 커튼이 쳐져있고요. 괜찮아요. 잠깐만 보여드릴게요.”

시황은 바지와 팬티를 살짝 내려 성기를 꺼냈다. 그리고 임영선을 돌려서 발기한 성기를 보여주었다. 우람한 성기는 잔뜩 흥분해서는 쿠퍼액까지 흘리고 있었다.

야한 걸 해준 것도 아니고 자기를 보고, 끌어안는 것만으로도 쿠퍼액까지 흘릴 정도로 잔뜩 흥분한 성기에 임영선은 홀리기라도 한 듯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시황이 얼마나 좋으면 이러는 건지 시각적으로 단번에 느껴졌다.

“하아, 네 마음은 알겠어. 그래도 이런 관계는 이제 끝내자. 응? 제발 부탁할게. 이러면 우리만 힘들어져.”

“네... 알겠어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마음에 실례를 한 거 같아요. 제가 정말 교수님을 좋아한다면 여기서 그만 두는 게 맞는 거겠죠? 하아... 교수님은 절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너무 저만 좋아했나 봐요. 부담스럽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짓 하지 않을게요.”

당연히 그래도 좋아한다면서 끌어안을 줄 알았던 시황이 순순히 바지를 올리고 소파에 앉자 정작 임영선이 당황했다. 설마 정말 그만둘지는 몰랐다. 거기다 한숨까지 쉬며 안타까워하고 있는 시황을 보니까 당연히 이게 맞긴 한데 왠지 마음이 너무 아팠다.

“시황이를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런 관계가 되면 곤란하다는 말이었어. 넌 장미의 남자 친구잖아. 딸의 남자 친구하고 성적인 관계가 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시황의 옆에 앉은 임영선이 다정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시황의 손을 잡고 쓰다듬어 주었다. 슬쩍 바지 부분을 보니 아직까지 성기가 불룩하게 솟아있었다.

“그러면 교수님도 절 좋아한다는 말이죠? 제가 너무 귀찮게 해서 교수님이 싫어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아...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시황은 다시 임영선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싫어하긴. 귀찮지도 않으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시황이 마음 다 알고 있어. 시황이도 내 마음 이해하지?”

이번엔 임영선은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시황을 달래듯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그러면 장미에게 우리 관계를 허락받으면 되지 않을까요?”

“뭐? 그게 가능 할 리가 없잖아. 아무리 우리 장미가 착한 애라도 자기 남자 친구가 엄마하고 성적인 관계인 걸 이해해주진 않을 거야. 그게 당연한 거고.”

“안 되면 장미하고 헤어질게요. 그러면 사랑하는 교수님하고 야한 거 해도 되죠? 지금 바로 장미한테 문자 보낼게요. 헤어지자고.”

“아, 안 돼. 시황아. 그러면 장미가 슬퍼하잖아.”

갑자기 장미하고 헤어진다고 하자 임영선은 화들짝 놀라 시황을 말렸다. 장미하고 헤어지면서까지 자기하고 관계를 가지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다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시황의 사랑에 임영선은 가슴이 떨릴 정도로 기쁘면서도 장미를 생각하면 차마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황이 좋아서 안 헤어질 거라는 딸의 남자 친구를 빼앗는다니. 모녀 관계가 파탄날 일이었다.

“아무것도 안 되면 도대체 전 어떻게 해야 돼요. 너무 괴로워요. 교수님. 마음이 아파요.”

“하아...”

시황이 괴로워하자 임영선도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뭔가를 결정한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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