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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554화 (553/629)

554  문명 발전  ====================

사람들이 부러워하든 말든 시황은 루나모스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왔다. 루나모스와 데이트를 했던 적은 없다 보니 같이 돌아다니며 저녁이라도 먹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대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자신을 보고 사람들이 모여들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라 루나모스에게 말해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마법을 미리 걸어두었다.

루나모스와 손을 잡고 오피스 빌딩이 하늘 높이 치솟은 대로변을 걷자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물론 시황을 보는 게 아니라 찬란한 태양처럼 빛나는 미모를 가진 루나모스를 쳐다보는 거였다. 사람들에게 시황은 루나모스의 옆에 있는 친하거나 연인으로 보이는 남자 이상으로는 인식되지 않았다.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듯 길을 걸었다. 차를 가지고 오긴 했지만 주변을 돌아다닐 거라 필요는 없었다. 아니면 루나모스의 능력으로 차와 자신들이 공간이동을 해버려도 됐고. 확실히 루나모스가 가진 능력은 전능하다시피 하니 여러모로 행동의 제약이 없었다.

길을 걷다 시황은 케즈론과 비슷한 외관을 가진 카페를 하나 발견했다. 프리메로라는 이름을 가진 프리미엄 카페였다. 최근 케즈론을 따라한 카페가 늘었다더니 이 프리메로라는 카페도 중세 황실 풍의 화려한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었다.

“여기 잠깐 들어가 보자.”

조사도 할 겸 루나모스를 데리고 카페에 들어갔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답게 내부는 깔끔했지만 케즈론만큼의 고급감은 덜했다. 그리고 가격도 케즈론 만큼이나 꽤나 높았고 벽 여기저기에는 최상급 원두를 사용해 유럽풍의 커피를 만든다는 홍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시황은 자신이 마실 아메리카노와 루나모스가 마실 그린티 라떼를 가지고 루나모스가 기다리는 창가 쪽 자리에 가서 앉았다. 유럽풍이라더니 그냥 평범하게 커피를 만들어줬다.

그린티 라떼는 루나모스에 건네주고 시황은 아메리카노를 조금 마셨다. 최상급 원두를 사용했다지만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다. 평범한 커피 맛이었다. 케즈론과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차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카페에는 손님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오히려 본사에서 온 건지 말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더 많았다. 그들은 점장에게 뭔가 설명을 들으며 카페를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조사를 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여기서 비싼 돈 주고 평범한 커피를 마실 바엔 케즈론에 가서 마시거나 가격이 싸고 인기 있는 커피점에 가는 게 훨씬 나았다. 이 정도라면 염두에 둘 필요도 없을 만큼 경쟁력이 없었다.

“개발 상황은 어때? 잘 되고 있어?”

“문제없이 진행 중이에요.”

루나모스는 기술적인 얘기를 했지만 시황은 잘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루나모스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였다.

“루나모스를 볼 때마다 신기해. 난 드래곤이라고 하면 영화나 소설에서 보던 것처럼 입으로 화염을 쏘고 인간들과 싸우는 존재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케즈론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마치 신처럼 행성을 관리하고 꿈도 못 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잖아?”

“주인님께서 말한 드래곤들도 있지만 저희는 진룡이에요.”

“진룡? 그게 뭐야?”

“말씀하신 대로 행성을 관리할 만큼 신과 필적한 능력을 가진 드래곤을 일컫는 말이에요. 몇몇 행성들에도 드래곤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있지만 그들은 외형만 비슷할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드래곤은 아니에요. 드라루크나 드루키아 등 정확한 명칭이 있지만 외형이 워낙 비슷하고 능력 또한 인간을 초월한 존재들인지라 보통은 잘 구분하지 못하고 적당히 드래곤이라고 불러요.”

“아, 그런 의미구나.”

드래곤에 대해 전혀 몰랐던 개념들이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부인이 드래곤인만큼 이런 건 알아두는 게 예의일 듯 했다.

“그러면 난 신이나 다름없는 드래곤으로 부인으로 둔 거네? 자랑스러운 걸?”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시황의 말에 루나모스가 수줍은 표정으로 가볍게 웃었다. 만약 루나모스를 아는 존재들이라면 사랑에 빠진 미소를 보고 놀라서 까무러칠지도 몰랐다.

“그러면 나도 10레벨 되면 루나모스처럼 되려나?”

“케즈론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남겨뒀기 때문에 10레벨의 유산을 받는다면 겉모습은 인간일지 모르나 저와 다름없는 능력을 가지게 돼요. 그때가 된다면 행성을 하나 골라 주인님만의 생명체를 생성해 생태계를 조성할 수도 있어요. 그들이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상당히 흥미롭고 즐겁거든요.”

거의 신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능력이었다. 로실린은 자신의 능력을 보고 전율했지만 루나모스에 비하면 꼬맹이나 마찬가지인 수준이었다. 물론 빠르게 10레벨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언제가 되든지 꼭 도달하고 싶은 목표점이었다.

“이제 7레벨 중간쯤인데 언젠가 10레벨 찍을 수는 있겠지?”

“어떤 퀘스트들이 남으셨나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거면 도와드릴게요.”

“어? 그래? 잠깐만.”

시황은 사람들을 슬쩍 본 뒤에 아공간에서 조심스럽게 타블렛을 꺼냈다. 그리고 어떤 퀘스트들이 있는지 확인해나갔다.

이젠 경험치 1000정도 주는 자잘한 퀘스트들은 해봐야 의미가 없었다. 적어도 50만의 경험치를 얻어야 8레벨이 되는데 언제 1000짜리 퀘스트들을 하며 경험치를 모으겠는가?

그래서 경험치를 대량으로 얻기 위해 유튜브 조회수와 스마트폰, 가상현실 개발 등을 하고 있지만 이것들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에 반해 9레벨 검사나 9서클 마법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 30만이라는 경험치를 줬고 세계를 위협하는 몬스터를 퇴치해도 제법 괜찮은 경험치를 줬다.

“음... 할 만한 게 이전에 했던 마왕같은 몬스터 퇴치나 9레벨 검사, 9서클 마법사한테 승리를 거두는 거네. 아, 그리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도 경험치를 많이 주고. 퀘스트만 보면 꼭 게임 같다니까.”

“제가 살펴보고 주인님께서 할 만한 것들은 말씀드릴게요. 먼저 이종족들과 섹스하는 퀘스트는 간단하니까 그것부터 완료하실래요?”

“이종족하고?”

“전 우주의 행성들에는 수많은 이종족들이 존재하거든요. 제 성에도 수많은 이종족들이 있으니까 저번처럼 부인이나 연인으로 삼으실 필요 없이 섹스만 하셔도 괜찮아요.”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요. 다들 순결한 아이들이니 주인님께서도 만족하실 거예요.”

시황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는 루나모스가 말했다. 시황은 민망한 듯 가볍게 웃으며 전에 갔었던 루나모스의 성을 떠올렸다. 확실히 다양한 이종족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이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고마워. 아, 잠깐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갔다 오면 맛있는 저녁 먹으러 가자.”

“알겠어요.”

시황이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 루나모스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별다르게 하는 건 없었지만 시황과 같이 있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시황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무료한 일상 가운데 지식을 습득하는 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면 지금은 시황과 같이 있기만 해도 이전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행복과 기쁨을 느꼈다. 특히 시황에게 도움을 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까지 저릿할 정도로 만족스럽고 기분이 좋았다.

“저기요.”

한참 유리창을 바라보며 시황을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루나모스는 고개를 돌려 말없이 말을 건 남자를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전 프리메로 사업본부장 한강규라고 합니다. 저희카페를 이용해주셔서 고마워요. 자주 오시나요?”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20대 후반의 남성이 부드럽게 웃으며 루나모스에게 말을 걸었다. 상당히 운동을 했는지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남성미 넘치면서도 깔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카페 얘기를 하기는 했지만 누가 봐도 루나모스에게 관심 있어 하는 모습이었다.

“...”

하지만 루나모스는 흥미조차 없는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여자들이라면 카페에 대해 물었기 때문에 뭐라고 대답을 해주거나, 남성미 넘치고 능력 있는 모습에 호감을 조금 가졌을 수도 있지만 루나모스에겐 시황 이외의 남자는 생명체라는 점에서 벌레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존재였다. 거기다 이미 결혼도 한 자신에게 음험한 마음을 품고 온 남자라면 벌레 이하의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아, 오늘 처음이신가 봐요? 어떠세요? 케즈론인가 하는 수준 낮은 곳보다 인테리어가 훨씬 고급스럽고 커피 맛도 만족스럽지 않으신가요?”

“음험한 마음을 가진 너에겐 관심이 없으니 다른데 가보렴.”

루나모스가 귀찮은 어린애 다루듯 다른데 가라고 하자 미소를 지으며 말하던 한강규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일 때문에 들렀다가 이렇게 예쁜 사람이 세상에 존재 하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를 발견하고는 잠깐 타이밍을 엿보다가 말을 건 거였다.

그런데 보통의 여자라면 이런 식으로 말을 걸면 호기심이라든가, 자신의 능력을 보고 살짝 호감을 나타내기 마련인데 그녀는 아무런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여자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반응이었다.

“저런, 입이 험하시군요. 괜찮습니다. 전 입이 험한 여자도 감당할 수 있는 남자거든요. 어때요? 저 같은 남자랑 알고 지내면 재미있을 거 같지 않나요?”

한강규는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이런 미인을 놓칠 수는 없었다. 조금 까칠하고 사납더라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외모였으니까. 그리고 약간 까칠하기는 해도 이런 여자가 더 정복하는 맛이 있었다. 아무리 예쁜 여자라 해봐야 자신이 가진 돈 맛을 보게 되면 보나마나 여느 여자들처럼 쉽게 몸과 마음을 줄 게 뻔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계속 까칠하게 굴어도 상관은 없었다.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여자를 차지해 섹스를 해버리면 되니까. 오히려 그게 더 즐거울 듯 했다.

“...”

루나모스는 무시했다. 시황처럼 순수치 않고 악하고 음험한 마음만 가득한 남자 따윈 마법으로 간단히 처리해버릴 수 있었지만 시황이 사는 세계인만큼 그 어떤 소란도 일으키기 싫었다. 루나모스는 흥미 없는 표정을 지으며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요. 그렇게 자꾸 무시하시면 저 조금 화낼지도 몰라요. 당신 같은 여자한테는 아까 그런 평범한 남자보다 저같이 능력 있는 남자가 어울려요.”

자꾸 루나모스가 무시하자 한강규가 결국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런 아름다운 여자는 어떻게든 차지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과거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였다. 자신은 남들과 다른 신분을 가진 존재였으니까. 하찮은 남자 따위가 이런 미녀를 차지하는 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야?”

그때 화장실에 갔던 시황이 돌아왔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빠, 이제 가요.”

사람들 앞이라 주인님이 아니라 오빠라고 부른 루나모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시황에게로 갔다.

“잠깐만요. 야! 잠깐! 얘기 좀 하자니까!”

그러자 한강규가 떠나가려는 루나모스의 어깨를 잡으려고 했다.

귀찮은 남자의 치근거림에 루나모스가 남자를 어떤 식으로 처리할까 고민하는 찰나, 제법 거리가 있던 시황이 순간이동을 하듯 단번에 공간을 좁히고는 루나모스의 어깨를 잡으려는 한강규의 팔을 붙잡았다.

“제 여자 친구한테 무슨 볼일이시죠?”

“무, 무슨...”

갑자기 시황이 팔을 잡자 한강규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갑자기 다가와 팔을 잡은 것이다. 거기다 손 아귀힘이 어찌나 강한지 팔을 빼려고 힘을 줘도 꼼짝도 하지 않고 팔목에 진득한 고통이 느껴졌다.

시황은 한강규의 팔을 가볍게 내팽개쳤다. 그런데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한강규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꼴사납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민망한 표정을 지은 한강규가 시퍼런 멍이 든 팔목을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런 볼일이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황은 루나모스와 함께 카페를 나섰고, 마치 보란 듯이 시황과 팔짱을 낀 루나모스가 한강규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저, 저년이...”

마치 한심하다는 듯 비웃는 루나모스를 본 한강규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했다. 살면서 오늘처럼 자존심이 상한 적은 처음이었다. 이때까지 원하는 건 못 가진 적이 없었고, 마음에 드는 건 어떤 방식으로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그게 불법적인 일이더라도. 그는 갖고 싶은 건 무조건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좋아. 어떻게든 널 가지겠어. 너하고 네 남자 친구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너희들의 모든 걸 무너트리고 나서 강제로 널 차지하고 말테니까 지금 잘 행복하게 지내라고. 둘 다 파멸해가는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걸?”

삼류 악당이 할법한 대사를 읊으며 한강규가 루나모스를 뜨거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대기업 회장의 아들로 태어나 이제껏 고생하나 하지 않고 쉽사리 모든 걸 가진 한강규의 다음 타깃 루나모스로 정해졌다.

평범한 여자였다면 한강규가 타깃으로 지정한 순간, 대기업의 압박으로 끝없는 고통을 받으며 지조를 지키지 못하고 모든 것을 내줘야하겠지만 안타깝게도 한강규는 목표를 잘못 잡고 말았다. 인지 저하 마법 때문에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남자는 케즈론 대표인 강시황이었고, 목표로 한 여자는 신적인 능력을 가진 루나모스였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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