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48 드래곤 루나모스 =========================================================================
당연히 시황이나 되는 존재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겠지만 그토록 힘들게 싸워오던 마왕을 한 번에 죽였다고 하니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황제는 힐끔 로실린을 쳐다봤다.
“시황 님의 말씀대로 마왕을 처리하였습니다. 마왕은 완벽하게 파괴되어 다시는 살아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로실린이 설명을 해주었다.
“오오! 드디어,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세상의 평화가 도래하였구나. 정말 감사드립니다. 세계의 평화를 되찾고 멸망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건 전부 시황 님 덕분입니다.”
당연한 말이었다. 시황이 혼자 마왕군을 처리하고 마왕의 성, 마왕까지 전부 없애버렸으니 여기 있는 존재 중 제대로 도움이 되거나 한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그야 말로 세계를 구한 영웅이었다. 다만 그 과정이 너무 간단한 게 좀 그랬지만.
“감사드리옵니다.”
주변에 있던 황자들과 황녀들도 처음엔 안 믿겨진다는 표정을 짓다가 로실린의 설명을 듣고는 시황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로실린하고 루펠린도 마왕을 잡는데 많이 도와줬어.”
“오! 그렇습니까? 성녀님과 성기시단장은 저희가 자랑하는 최고의 인재들입니다. 시황 님의 도움이 되었다니 저까지 기쁘군요.”
황제가 긍지 가득한 얼굴로 그녀들을 쳐다봤다.
시황은 일부러 공을 로실린과 루펠린에게도 일부 돌렸다. 이 세계에 와서 즐겁게 지낸 건 그녀들 덕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스스로가 아무것도 하지도 않았던 로실린과 루펠린은 괜히 민망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뭐, 이걸로 할 건 다 했으니까 오늘 하루만 더 쉬고 돌아갈게. 아, 그리고 내가 전에 말한 미스릴하고 소정의 보상 잊지 않았지?”
미스릴 때문에 온 거라 다른 건 몰라도 미스릴은 꼭 받아야 했다. 소설 속에 표현되는 영웅들이면 마왕을 잡고 준다는 것들도 마다하겠지만 시황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멸망할 뻔한 세계를 구해줬는데 소정의 보상 정도는 받고 싶었다.
“이미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가지고 오라 이르겠습니다. 여봐라. 시황 님에게 건네어 줄 보물 상자를 가지고 오라 하여라.”
“알겠습니다.”
황제가 외치자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잠시 기다리시는 동안 차라도 드시며 담소라도 나누시겠습니까?”
“그럴까?”
시황은 황제가 권유하는 호화로운 의자에 앉아 차를 마셨다. 씁쓸한 맛이 입안을 감돈다. 자연스럽게 이틀간의 여정이 떠오른다. 마왕군과 마왕을 잡기는 했지만 항상 그렇듯 대부분 섹스를 하며 보냈었다.
시황이 앉아 차를 마시자 자연스럽게 실피나와 라비올라가 가까이 다가와 괜히 어깨를 주무르고나 팔을 만지작거렸다. 시황과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하는 걸 본 황자들은 깜짝 놀랐고, 황녀들은 부러움과 질투심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봤다.
그에 비해 황제는 흐뭇하게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실피나와 라비올라가 시황의 씨를 받아 아이를 낳는다면 그건 이 세계의 축복이었다. 부디 시황이 실피나와 라비올라를 마음에 들어 하고 어여삐 여겨주길 바랬다.
시황과 황제가 간단한 담소를 나누는 사이에 시종들이 보물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런데 시황은 소정의 보상을 원했을 뿐인데 장정 넷이 들어야 하는 거대한 보물 상자가 끝없이 쌓여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은빛의 미스릴이 차곡차곡 쌓여 방을 가득 채웠다.
“너무 많은데?”
“멸망할 뻔한 세계를 구해주신 시황 님께 어찌 이정도도 못 드리겠습니까. 저희가 가진 가장 귀하고 귀중한 보물들만 모아왔습니다.”
“음, 일단 구경은 해볼게.”
시황은 무수하게 늘어선 보물 상자 중 하나를 열었다. 창문을 넘어서 들어온 햇볕이 보석에 반사된다. 현란하고 강렬한 빛에 시황은 눈살을 찌푸렸다.
상자 안에는 단순한 금 쪼가리가 아니라 대충 훑어도 대단한 값어치를 지닌 듯해 보이는 액세서리들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디자인 또한 장인의 손길이 닿은 듯 예술적 아름다움마저 가지고 있었다.
다음 상자를 열자 지구에서 수백억 원에 거래되는 거대하고 희귀한 보석들이 있었고, 그 다음 상자엔 화려하게 장식된 무기들이 담겨 있었다.
상자는 종류별로 구분되어 있었고 그 양이 어찌나 많은 지, 상자 하나에 담겨있는 보석만 갖다 팔아도 수천억 원은 우스운 수준이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사업을 확장하면서 케즈론 이름을 가진 제대로 된 빌딩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했다.
시황은 수십개는 족히 돼 보이는 상자 중 아름답게 장식된 무기가 담긴 상자, 고급 액세서리 상자, 값비싼 보석들이 담긴 상자 3개만 가져가기로 했다. 이정도면 멸망할 뻔한 세계를 구해준 보답으로 충분했고 멸망할 뻔한 제국의 부담도 최대한 덜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거만 가져갈게.”
“아닙니다. 이 모든 건 시황 님을 위해 준비한 것이니 전부 가져가셔도 괜찮습니다. 여기 있는 것들이 귀중한 보물들이라고는 하나 어찌 멸망할 뻔한 세계에 비교하겠습니까? 부디 저희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전부 가져가 주십시오.”
덜 가져가겠다는데 오히려 황제가 다 가져가 달라고 사정했다. 시황이 괜찮다고 해도 하도 황제가 사정해서 상자 2개를 더해 총 5개를 가져가는 걸로 어떻게 합의를 봤다.
“그리고 저희 황가의 보물인 실피나와 라비올라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거기다 황제는 실피나와 라비올라도 시황에게 주려고 했다.
“실피나하고 라비올라를?”
“그렇습니다. 가능하시다면 꼭 데려가 주십시오.”
“예쁘고 귀여운 실피나와 라비올라를 데려가 달라고 해서 정말 기쁘긴 한데,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거든. 그래서 실피나하고 라비올라와 같이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시황은 조금 부담이 됐다. 아무리 여자가 좋다지만 무한정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자신의 몸은 하나였다. 여자가 무수히 늘게 되면 그만큼 기존에 있던 여자애들을 신경 쓰지 못할뿐더러 아예 다른 행성에서 사는 실피나와 라비올라를 한국으로 데리고 가는 것 자체가 상당히 큰 부담이었다.
시황의 말을 들은 실피나와 라비올라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미 시황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었는데 이렇게 훌쩍 가버리면 그 외로움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이미 그 쾌락을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지금은 시황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동시에 로실린과 루펠린도 근심어린 얼굴을 했다. 막상 조금 있으면 시황이 떠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울적해졌다. 특히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음란함을 알게 된 로실린은 다시는 그 쾌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 슬프고도 너무 슬퍼 눈물이 살짝 흘러나왔다.
“위대하고 또 위대한 시황 님, 부탁드립니다. 시황 님과 같이 있고 싶어요. 부디 절 버리지 말아주세요.”
“저도 시황 님이 없으면 안 되는 몸이 되었단 말이에요.”
라비올라가 눈물을 글썽이며 간곡히 부탁했고 실피나도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시황의 팔에 엉겨 붙었다.
라비올라와 실피나, 거기에 로실린과 루펠린의 반응까지 살펴본 시황은 약간 난처함을 느꼈다. 마음 같아서야 데리고 가고 싶긴 했지만 적응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 난관이 상당히 많았다. 그렇다고 순결까지 받아놓고 그대로 도망치듯 떠나버리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시황은 잠깐 고민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내가 너희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게이트를 설치해줄게. 그리고 그 게이트를 통해서 언제든지 내가 있는 곳으로 오거나 내가 한 번씩 여기로 올 수 있게. 어때? 이정도면 괜찮지?”
“저, 정말요? 감사드려요. 시황 님.”
실피나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시황을 끌어안았다. 어제 섹스를 하면서 시황과의 신체접촉도 어느 정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이참에 시황 님께서 원하는 아이들과 결혼을 하는 게 어떻습니까?”
“결혼이라니?”
아직 현실에서도 해보지 못한 결혼 얘기에 시황이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저 가볍게 왔다 갔다 하며 여자애들을 만나려고 한 건데 결혼이라는 단어는 너무 무거웠다.
“이미 그 아이들은 시황 님의 여자가 되었는데 결혼조차 못하고 평생 늙어죽기엔 안쓰럽지 않습니까? 허허.”
“아니, 사람 마음은 변할 수도 있는 거고 미래는 모르는 거잖아. 나랑 비교도 안 되게 좋은 남자가 찾아올지도 모르고. 평생 나만 보며 늙어죽을 필요 전혀 없어. 그리고 겨우 하루 만났는데 결혼은 너무 빠르지 않아?”
“허허. 죄송합니다, 시황 님. 저희는 한 번 순결을 바친 남자와는 평생을 같이 지내야 한다는 규율이 있습니다. 물론 시황 님께서 받아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지만 그렇게 되면 저 아이들은 평생 시황 님만을 기다리다 늙어죽게 되겠지요.”
황제는 덤덤히 말했다. 하지만 시황에겐 그 어떤 협박보다 압박감이 느껴졌다. 만약 이 상태로 떠나면 확실히 여자들만 어정쩡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자신과 결혼이라도 하면 신과 결혼한 여자들이라는 타이틀이라도 가지게 되지만 그냥 가버리면 그런 것조차 없어진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이야.
“알았어. 그러면 결혼할게. 그런데 결혼했다고 자주 와서 만나긴 조금 어려울 거야. 그래도 괜찮아?”
“저, 정말이요? 감사해요. 시황 님.”
설마 시황이 허락할 줄 몰랐던지라 실피나가 놀라면서도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신의 부인이 되다니.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았다. 물론 라비올라도 감격한 표정을 짓고 몸을 떨면서도 감사하다고 공손하게 말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로실린과 루펠린만 불안해졌다. 자신들은 놔두고 실피나와 라비올라와 결혼을 할 것만 같아 불안함에 가슴이 떨렸다.
황제의 말대로 이미 순결을 잃은 몸, 시황이 받아주지 않는다면 평생 혼자 살아가야 했다. 다만 루펠린과 다르게 성녀인 로실린은 애초에 평생을 루나모스를 받들며 살아야했지만 시황이라면 결혼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었다. 이미 시황에 의해 음란해진 몸. 시황과 같이 지내며 그 쾌감을 더욱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데 둘과 결혼이 가능하다는 건 여러 명하고 결혼을 할 수 있다는 말인데... 최대 몇 명까지 가능한 거야?”
“특별한 제한은 없습니다. 원하는 대로 하시지요.”
“그래? 그러면 로실린하고 루펠린하고도 할게. 괜찮지?”
“그 누가 시황 님의 뜻에 거부를 하겠습니까. 원하신다면 마음에 드는 여자들을 더 선택하여도 상관없습니다. 세계를 구해주신 위대한 존재시여, 다시 한 번 감사드리옵니다.”
황제가 말하던 중에 또다시 깊게 예를 차리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황제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그만큼 세계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대규모로 몰려왔던 마왕군의 공세가 대단해서 모두가 이기지 못할 거라는 걸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시황이 나타나 한 번에 마왕군을 쓸어버리고 마왕까지 처리해버리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시황이 원하게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갖다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아... 감사합니다. 시황 님.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불안에 떨던 로실린이 시황이 같이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감격에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어떻게 이렇게 자상하고 아량이 넘칠까. 역시 루나모스의 주인다웠다.
루펠린도 감격해서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훌쩍거리기만 했다. 시황이 미천한 자신에게 신경을 써줬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뭐, 결혼식은 여기서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까 적당히 간소하게 준비해줘.
시황은 황제에게 결혼준비를 해달라고 했다. 설마 결혼을 이런 식으로 하게 될지는 몰랐다. 그런데 한국에서 하는 결혼이 아니라 어딘지도 모르는 행성에서 하는 결혼이라 그런지 실감이 잘 나지가 않았다. 책임감도 있었지만 의외로 큰 부담이 느껴지지 않아서 결혼한다고 수락한 걸지도 몰랐다.
이래도 될까 싶었지만 뭐 어차피 10명이 넘는 여자들도 있었고 거기에 4명이 추가되나 안 되나 큰 차이는 없었다.
시황은 황제와 대화를 나누며 결혼 계획을 세웠다. 결혼식은 오늘 저녁에 황제의 주관으로 성의 예배당에서 간소하게 하기로 했다. 여기의 결혼식이라고 해봐야 루나모스에 대한 존경을 내비치고 결혼의 허락을 구하는 의식 정도가 끝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스드메니 뭐니 하는 준비나 각종 결혼 스트레스를 전혀 받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마왕을 잡은 시황을 기리기 위해 도시에 거대한 동상을 세우고 앞으로 루나모스와 함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겠다고 하였다. 낯 뜨겁긴 했지만 시황은 알아서 하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깔끔하게 결론이 났기 때문에 시황은 가져가기로 한 보석 상자 5개와 대량의 미스릴 판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여자들을 자신의 머물던 방으로 데리고 갔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그런지 정신적으로 조금 지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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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