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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이쪽으로 오세요!”
실피나는 활기차게 말하며 시황을 데리고 나갔고 성녀 로실린과 루펠린이 뒤따라 나갔다.
시황이 떠나갔음에도 황제는 나간 곳을 바라보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고 황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루나모스의 주인을 바로 앞에서 뵙는다는 건 거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주었다. 자신들이 아무리 제국을 거느리는 황족이라고는 하나 손가락 몇 번으로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위대한 존재인 시황에겐 그런 권력 따윈 무의미했다.
방금 성의 발코니로 나가서 보지 않았는가? 하늘에서 떨어진 불덩이가 화염으로 변해 몬스터를 잡아먹고 거대한 구름에서 번개가 치며 수십만의 몬스터들을 벌하는 것을.
혹시라도 무례하게 굴었다가는 신벌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니 뻣뻣하던 목도 저절로 움츠려들었고 한 번도 꿇어본 적 없던 무릎도 본능적으로 바닥에 꿇게 되었다. 기묘한 체험이었다.
그런데 안도하는 황자들에 비해 황녀들은 방금 시황을 데리고 나간 실피나를 향해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눈으로 바라봤다. 더 먼저 시황의 눈에 들었어야 하는데 실피나가 먼저 선수를 치고 나가버렸다.
루나모스의 주인인 시황이 온 이상 세상은 곧 안정을 찾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시황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에 든 황녀야 말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존재가 될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 시황의 마음을 얻어내어 후손들에게 추앙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시황은 걸어가며 실피나의 뒤태를 감상했다. 조그맣게 달린 날개는 귀여운 반면 살짝 달라붙는 실용적인 옷은 폭발적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루펠린은 기사답게 건강한 아름다움을 가졌고, 로실린은 성녀인 만큼 때 묻지 않은 궁극적 순수함을, 그리고 로실린은 몸에서 색기가 흘러나오는 섹시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세 명 다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눈이 호강했다.
특히 평범한 인간과 다르게 투명할 정도로 흰 피부와 신비로운 날개를 지니고 있어 라무시아처럼 색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위대하신 분께 간곡한 청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어요?”
화려하고 거대한 복도를 걷던 실피나가 시황에게 돌아보며 물었다.
“청? 무슨 청?”
“저도 위대하신 분께 시황 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래. 편한 대로 불러.”
“감사합니다. 헤헷.”
실피나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시황을 바라보며 웃었다. 섹시하고 음란한 몸을 가진 것과 다르게 하는 행동이나 표정 자체는 순수하고 귀여운 면이 가득했다.
“뭐, 이정도야.”
“아, 이쪽으로 오세요. 시황 님.”
실피나는 갑자기 시황의 손을 붙잡더니 빠른 걸음으로 오른쪽으로 난 길로 갔다. 그 모습을 본 로실린과 루펠린이 인상을 조금 썼다. 여자 특유의 직감으로 일부러 시황에게 사랑 받으려고 저런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도 둘 다 입 밖으로 그런 말을 뱉을 정도로 속이 좁은 여자들은 아니었기에 군말 없이 시황의 뒤를 따랐다.
“여기에요. 여기가 저희 성에서 가장 자랑하는 곳이에요. 매우 특별하신 분이 와야만 문을 열어주는 곳이기도 해요. 자, 문을 열거라. 시황 님께서 머무르실 거란다.”
실피나는 화려한 복도의 끝에 있는 거대한 문 앞에서 말을 했다. 보기만 해도 웅장한 그 문 앞에 서서 말하자 뒤에 있던 하녀들이 재빠르게 문을 열었다.
관리를 잘했는지 기분 나쁜 마찰음이 나지 않고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호오.”
문이 열리고 드러난 풍경에 시황이 짧게 감탄했다. 실피나가 자신하던 이유가 있었다. 웅장한 성의 정원이 눈앞에 드러나는 거대한 창과 그 배경을 눈요기로 아늑하게 즐길 수 있는 목욕탕이 건물의 한쪽에 존재했다.
잠깐 훑었을 때 전반적인 문명은 썩 좋은 듯 보이진 않았지만 지금 눈앞에 드러난 거대한 방만큼은 여자애들을 데리고 놀러오고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마음에 드시나요?”
시황이 감탄하는 듯 하자 실피나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물었다.
“괜찮네. 생각 이상이야.”
시황은 걸어가서 침대에 앉았다. 푹신한 게 기분이 좋다. 케즈론의 성에 있는 것만은 못해도 상당한 품질의 침대였다.
“시황 님, 시황 님.”
실피나가 시황의 옆에 앉더니 팔을 붙잡고는 가볍게 흔들었다. 까다로운 성격의 사람이라면 무례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시황은 여자와의 스킨십이라 전혀 싫어하지 않았다. 실피나가 가까이 붙을 때마다 처음 맡아보면서 독특하게 풍겨오는 향기가 상당히 기분 좋았다.
“왜?”
“나중에 제가 저 목욕탕에서 씻겨드릴게요.”
“네가?”
“네. 저희를 구원하기 위해 강림하신 분이시기에 최선을 다해서 계시는 동안 불편함 없이 대접해드리고 싶어요. 아, 그리고 저는 이제껏 그 어떤 남자의 손도 타지 않았답니다. 위대한 존재이신 시황 님께 대접해드리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몸이에요.”
실피나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순결한 몸을 지녔다고 말했다.
시황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간만에 프로필을 확인했다.
[실피나 카필로니아]
[나이 : 23세]
[키 : 170.7cm]
[몸무게 : 55kg]
[가슴 사이즈 : 75D]
[섹스 횟수 : 없음]
[남자 : 남자와 연애 경험이 존재치 않는다. 좋아하는 남자 또한 존재치 않는다.]
확실히 실피나가 말한 대로 순결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간만에 프로필을 확인해서인지 남자라는 항목이 추가되어 있었다. 7레벨이 되면서 생긴 새로운 능력인 듯 했다. 이전까지는 섹스 횟수만 알 수 있었다면 이제는 남자와 연애를 했는지,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실피나는 남자관계에 있어서는 완벽한 순결을 가지고 있었다. 섹스는 물론이고 연애를 해본 적도, 좋아하는 남자조차도 없었다.
이어서 시황은 로실린과 루펠린도 살폈다. 역시나 이 둘도 실피나처럼 완벽한 순결을 가지고 있었다. 로실린이야 성녀이니 당연할 테지만 루펠린이나 황녀인 실피나가 그런 건 조금 의외였다.
“음, 정말이네. 그리고 실피나 말고도 로실린, 루펠린도 남자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몸을 지니고 있고.”
“그런 것도 아실 수 있나요?”
아무리 신이라도 순결을 지니고 있는지, 연애 경험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실피나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 그리고 시황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과도한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그 정도야 충분히 알 수 있지. 뭐, 그리고 네가 대접해준다는데 사양은 하지 않을게. 나도 남자니까 너처럼 예쁜 여자가 좋긴 하니까.”
“감사합니다. 시황 님. 최선을 다해서 대접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실피나는 기뻐하며 말했다. 물론 방금 만난 시황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루나모스의 주인이자 전능한 시황의 씨를 받아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야말로 카필로니아 황족의 가장 큰 영광이었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황녀라면 가장 바라는 영광이자 은혜인 것이다.
실피나가 시황의 옆에서 애교를 떨며 사랑을 받는 듯 하자 옆에 가만히 있던 로실린과 루펠린이 불안해했다. 남자를 만난 적조차 없는 둘이다 보니 실피나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한창 둘의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대한 존재시여, 카필로니아 제국 5황녀 라비올라 카필로니아입니다. 잠시 들어가서 몇 가지 말씀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시황의 말에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청순하게 생긴 여자가 한 명 들어왔다. 5황녀 라비올라 카필로니아였다. 그녀는 매우 조심스럽게 시황의 근처에 다가가서는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절대적인 존재 앞인지라 얼마나 긴장했는지 몸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휴식 중에 방해해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옵니다.”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 없어. 무슨 일인데?”
“다름이 아니오라, 오늘 저녁에 위대하신 존재를 위해 축제를 열고자 하옵니다. 모든 도시 사람들이 성 앞에 모여들 테니 가능하시다면 위대한 존재께서 잠깐이라도 시민들에게 얼굴을 비쳐주실 수 있는지 여쭙고자 합니다.”
어떻게든 시황하고 가까워지려고 귀엽고 발랄하게 다가오는 4황녀 실피나와 다르게 5황녀 라비올라는 몸까지 떨 만큼 극도로 긴장을 한 상태에서 말을 하였다. 얼마나 떠는지 목소리에까지 그 떨림이 묻어나왔다.
잠깐 시황이 프로필을 바라보니 라비올라 역시 그 어떤 남자의 손을 타지 않은 몸을 지니고 있었다. 올해로 20살이 된 만큼 청순하고 귀여운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실피나와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그 정도야 가능하지. 그러면 그전까지 여기서 쉬어도 돼?”
“그렇습니다. 연회가 시작되기 전에 제가 다시 와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귀하신 시간을 빼앗아 죄송했사옵니다. 5황녀 라비올라 카필로니아,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잠깐만, 너 여기로 와봐.”
“네?”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가려는데 갑자기 시황이 부르자 라비올라가 몸을 부르르 떨며 반문했다. 혹시 뭔가 실수를 한 거라도 있나 싶어 두려움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시황이 불렀지만 다리가 굳어버려 움직이지가 않았다.
그러자 루나모스의 주인이자 가장 고결하고도 위대하신 존재인 시황이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라비올라는 실피나처럼 용기도 자신감도 없어서 두려움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다가온 시황이 갑자기 끌어안더니 입을 맞추어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라비올라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 결례라도 범해 시황이 화가 났나 했더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되었다. 너무 예상 밖이라 아무런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
주변에 있던 실피나와 로실린, 루펠린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잠시 동안의 입맞춤이 끝났다.
“그냥 귀여워서 해보고 싶었어. 기분 나쁜 건 아니지?”
“아닙니다... 아...”
시황의 물음에 온 힘을 다해 대답한 라비올라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시황과 입을 맞췄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이게 현실일까? 방금 귀엽다고 해준 시황의 말이 머릿속을 계속해서 팽글팽글 돌았다. 가슴은 터질 것 같았고 정신은 아득해져갔다.
시황은 그런 라비올라를 바라봤다.
확실히 반응이 재미있었다. 본래의 세계인 한국으로 돌아가도 여자들이 자신을 좋아해주긴 했지만 여기처럼 신성하게 떠받들지는 않았다. 거긴 아이돌이나 배우처럼 열광을 한다면 여긴 신처럼 경건하고 경외심을 담아 대접해주었다.
그 차이가 시황을 즐겁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생전 처음 보는 세계에 마왕을 잡으러 와서 잔뜩 긴장했지만 지금은 어느새 이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과하게 뭔가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루나모스가 말한 대로 마왕을 잡는 만큼의 대우는 즐기고 싶었다.
“오늘 여기 있는 애들이랑 밤에 재밌게 목욕하면서 놀 건데 너도 나중에 올래?”
시황은 바닷가에서 여자들에게 헌팅을 하는 남자처럼 라비올라에게 밤에 같이 놀자고 권유했다. 귀여운 얼굴이 시황의 취향이었던 것이다.
“제, 제, 제가 끼여도 되겠습니까?”
“응. 괜찮아. 귀여우니까. 물론, 싫으면 안 해도 돼. 억지로 강요하는 건 절대로 아니니까.”
“절대 싫지 않습니다. 루나모스의 주인이시자 위대하신 존재이신 시황 님의 은혜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겨우 힘을 되찾은 라비올라가 주춤주춤 일어나서 시황에게 다시 예를 다해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살면서 가장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시황에게 입맞춤도 받고 밤에 같이 지내자는 권유까지 받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실피나가 그렇게 부럽고 질투가 났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은 사라지고 기쁨만 가득했다.
“뭐, 할 일 없으면 지금부터 여기 있어도 되고.”
“그러면 제가 시종장에게 시간이 되면 알려달라고 말을 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그래. 부담 없이 갔다 와.”
“감사드립니다.”
라비올라는 시황에게 인사를 하고 조심스럽게 나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실피나는 더욱 적극적으로 시황에게 달라붙어서 입맞춰주길 바랬고 로실린과 루펠린은 더 크게 당황해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건지 아니면 뭔가 해야 하는 건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저녁에 축제를 연다니까 그때까지 시간이 좀 남았네. 그 시간동안 재밌게 놀까?”
“재밌게요?”
실피나가 시황의 말에 어리둥절해했다.
“응. 이렇게.”
시황은 그런 실피나를 침대에 눕히고 그 위에 올라갔다. 그러자 방금까지 활기차던 실피나의 얼굴이 단번에 붉어졌고 로실린과 루펠린은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너무 부끄러워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혹시 조금이라도 싫으면 말해. 절대로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네...”
시황은 여러 차례 경고하듯 말했지만 실피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에 벌어질 일을 상상하며 얼굴이 빨개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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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