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2 ------------------------------------------------------
드래곤 루나모스
“무슨 일 있어? 장미랑 싸웠니?”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찬미가 혜미에게 물었다. 같은 그룹으로 지내면서 싸우는 건 좋지 않았다. 그 분위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만 힘들어지니까.
“싸운 건 아닌데... 하아...”
혜미의 한숨이 더욱 짙어졌다. 장미와의 일을 말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됐다.
“잠깐 사람 없는 데로 가자.”
확실히 뭔가 있는 걸 느낀 찬미는 혜미를 데리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갔다. 마침 연습실 중 하나가 비어 거기에서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너희 둘이 싸우면 그룹 전체에 피해가 와. 알고 있지?”
“네... 죄송해요.”
“무슨 일인지 말해볼래? 내가 들어보고 최대한 너희 둘이 화해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그게, 사실 싸운 건 아니고요...”
주저주저하던 혜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싸운 게 아니면?”
“대표님하고 스캔들이 난 후로 저렇게 저한테 쌀쌀맞게 대해요.”
“오빠하고 스캔들 직후에?”
“네... 제가 왜 그러는지 물어봐도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아까 전에 언니하고 같이 대표님 만나러 가려고 하니까 장미가 엄청 화난 표정 지었어요.”
“그래?”
가을은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냉랭한 분위기의 원인이 시황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보니까 혜미가 시황에게 귀여움을 받고 스캔들까지 나자 장미가 그걸 질투해서 혜미에게 냉랭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저도 화해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겟어요.”
“그런데 장미는 그런 내색 없지 않았어?”
시황을 좋아하는 티를 잔뜩 냈던 혜미와 다르게 장미는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었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게 보통인 걸 생각하면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게 조금 신기한 일이긴 했다.
“저도 몰랐어요. 그래서 갑자기 저러니까 많이 당황스러워요.”
혜미가 근심어린 표정을 짓는 게 이해가 갔다.
“이건 직접 장미한테도 물어봐야겠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봐.”
“네.”
가을이 장미를 데리러 나가자 혜미는 구석진 곳에 가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사진 앱을 켜서 늠름한 시황의 사진을 감상했다. 우울하고 힘들 땐 역시 시황을 보는 게 최고였다.
방금 있었던 시황과의 섹스를 떠올리자 다시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우울해졌다. 콘서트 때 사건 이후로 장미와는 정말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장미가 시황의 여자가 되길 원한다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쉽지도 않았고 자신이 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장미가 시황에게 고백을 해도 거절당할 게 확실했다. 자신조차도 시황이 다시 생각해보라는 걸 몇 번이나 괜찮다고 하고서야 겨우 시황의 여자가 될 수 있었으니까. 시황은 너무 착한 마음씨를 가졌기 때문에 주변의 여자들이 자기 때문에 상처 받는 걸 원하지 않았다.
시황의 늠름한 성기를 보며 기다리자 연습실 문이 열리며 무표정한 얼굴의 장미와 가을이 들어왔다.
혜미는 움찔하며 스마트폰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혜미야, 여기로 와봐.”
혜미는 가을이 있는 곳으로 갔다. 장미와 있으려니 마치 죄를 진 것 같았다.
“장미야, 요즘 왜 혜미한테 화가 난 거야? 언니한테 말해 줄 수 있니?”
가을은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장미에게 물었다.
단발머리를 한 장미가 가을의 말은 차마 무시 하지 못하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사실 혜미가 잘못한 건 없는데 제가 너무 나쁜 애라서...”
장미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혜미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장미도 알고 있었다. 그저 시황과 갑자기 연인처럼 친해지고 사랑을 받는 게 너무 질투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때까지 남자를 좋아하게 된 게 처음이라 일부러 더 관심 없는 척 했던 건데 결국 시황은 혜미만 좋아해주고 자신은 존재 하는지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장미도 시황 오빠 좋아하는 거야?”
“네...”
가을의 물음에 장미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고 혜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장미는 오빠 좋아하는 티 전혀 안 내지 않았어? 나도 그런 사실 전혀 몰랐는데.”
“저도 여자라서... 여자라서 그 날 이후로 대표님 생각만 했어요. 그런데 좋아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한 건데... 다들 제가 대표님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고, 흑...”
결국 장미는 눈물을 흘렸다.
처음 느껴본 사랑이 부끄러워 숨긴 것뿐인데, 그게 이런 식으로 될지 몰랐다. 만약 자신이 용기가 있었더라면 혜미처럼 시황과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분함에 괜히 아무 상관없는 혜미한테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런 거니?”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가을도 난감했다. 핑크펫 멤버 중 3명이나 시황을 좋아하는 걸 떠나서 장미가 좋아한다고 시황이 무조건 받아주는 건 또 아니었다. 거기다 장미는 시황을 좋아한다는 의미가 얼마나 막중한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수많은 여자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더 사랑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그 부담감은 보통의 각오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죄송해요. 흑... 혜미야 미안해...”
“아니야... 나도 몰라서 미안해...”
장미가 울자 혜미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저렇게 시황을 좋아했는데 그걸 전혀 몰랐던 게 미안했다. 가능하다면 장미도 시황의 여자가 돼서 이전처럼 친한 사이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지금 화해를 하긴 했지만 계속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분명 또 큰 문제가 생길 건 안 봐도 뻔했다.
“장미야.”
가을은 진지하게 장미를 불렀다.
“네.”
“시황 오빠랑 그저 친해지고 싶은 것뿐이야? 그거라면 내가 오빠한테 말해서 만날 수 있게 해줄 수는 있어.”
“저도 가을 언니나 혜미처럼 대표님하고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어요. 사랑받고 싶어요. 흑...”
“하아...”
가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전적으로 시황의 판단에 달린 일이었다. 거기다 순진하고 착한 장미가 치열한 여자들의 세계에 잘 적응할지도 의문이었다.
“장미야, 너도 알겠지만 오빠 주변에는 나도 그렇고 혜미도 그렇고 수많은 여자들이 있어. 오빠는 그 누구와도 확실히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녀들과 전부 사귄다고도 할 수 있어. 너도 알겠지만 시황 오빠는 참 상냥하고 착하잖아?”
“네...”
장미도 시황이 착하다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기 목숨까지 내던지면서 자신과 혜미를 구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오빠는 항상 주변에 호의를 베풀어. 나도 그렇고 지금 오빠들과 스캔들이 난 여자들도 그렇고. 그러다 보니까 모두가 오빠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오빠는 그런 우리들의 마음을 알고 상처 받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써줬어. 우리들이 마음대로 굴어도 한 번도 화내지 않고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서 말이야.”
“...”
장미와 혜미는 가을의 얘기를 경청했다.
“장미가 알아야 할 건, 우리 모두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 진정으로 오빠를 사랑한다는 거야. 인터넷에서 가볍게 말하는 것처럼 오빠가 여자라면 다 좋아서 우리를 유혹한 게 결코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네가 만약 가벼운 마음으로 오빠 좋아해서 혼자만의 연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그냥 지금 포기해. 그게 널 위해서도 좋은 일이야. 모두들 오빠의 사랑을 받기 위해 필사적인데 거기에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끼어들었다간 상처만 받게 될 거야.”
“그, 그런 가벼운 마음을 가지진 않았어요. 저도 대표님을 너무 좋아해서... 그 날 이후로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서 그냥 다른 분들처럼 대표님에게 사랑을 받는 게 꿈이었어요. 저도 언니나 다른 여자 분들을 제치고 대표님의 연인이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어요.”
장미도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시황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이미 시황이 스캔들이 무수히 났음에도 경멸스럽기 보단 오히려 스캔들 난 여자들처럼 사랑 받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장미야.”
그때 가만히 있던 혜미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네 마음 잘 알아. 미약할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대표님의 여자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
“저, 정말?”
장미는 깜짝 놀라 혜미에게 되물었다.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 혜미에게 질투를 해서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 자신을 위해 도와준다고 하자 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정말 너무 고마웠다.
“어쩔 수 없네. 그러면 나도 오빠한테 말해줄게.”
“감사합니다. 언니. 흑... 정말 기뻐요.”
가을까지 도와준다고 하자 장미는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잘 안 우는데 어째서인지 자꾸 눈물이 났다. 가을과 혜미가 도와준다면 시황의 여자가 될 가능성이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명심해둬. 우리가 도와줘도 결국 결정하는 건 시황 오빠야. 네가 마음에 들면 오빠도 허락하겠지만 만약 네가 처신을 잘 못해서 오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걸로 끝난 거나 마찬가지야.”
“아, 알겠어요. 대표님의 마음에 드는 여자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그리고!”
가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오빠의 여자가 된다는 건 오빠에게 자신의 모든 걸 준다는 말이기도 해. 네 첫 경험, 오빠를 위해 줄 자신 있어?”
“첫 경험이요?”
갑작스러운 섹스 얘기에 장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저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 시황이 좋아서 혜미처럼 사랑을 받고 싶었던 거지, 성적인 것과 연관해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걸 본 적도 없었고 관심도 크게 없었다.
“그건 힘들 거 같아?”
“대표님께서 원하시면 당연히 드릴 수는 있는데, 제가 사실 그런 거 어떻게 하는 줄을 몰라서요...”
혜미처럼 음란 팬픽을 보는 것도 아니라서 장미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물론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 건진 알았지만 그 걸로는 첫 경험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장미, 너 자위도 안 해봤어?”
맨날 시황의 팬픽을 보면서 음란한 상상을 하고 자위까지 했던 혜미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자위? 그런 거 안 해봤는데...”
“진짜?”
놀라는 혜미와 더불어 약간 심각성을 느꼈는지 가을의 표정도 조금 굳어졌다.
“장미야,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되는 비밀을 알려줄까?”
“비밀이요?”
“그래. 네가 정말 오빠의 여자가 될 마음이 있으면 알려줄 테지만 그게 아니면 그냥 여기서 다 포기하고 없었던 일로 하는 게 나을 거 같아.”
“알려주세요. 저도 대표님께 사랑받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사실 전 태어나서 누굴 좋아해본 것도 대표님이 처음이라 어떤 식으로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 열심히 할게요. 제발 가르쳐 주세요.”
장미의 다짐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그저 가벼운 마음에 시황을 좋아하는 거면 적당히 포기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그럴 단계는 아득히 넘어선 거 같았다. 마치 옛날에 시황을 좋아하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가을은 기분이 묘했다.
“후우... 알겠어. 사실 오빠하고 우리들은 전부 몸을 섞은 사이야. 당연히 우리 둘 다 처음은 오빠에게 줬고. 그리고 방금 우리가 오빠 만나러 갔잖아? 그때도 섹스를 했어.”
“그, 그, 그런...”
장미는 너무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그 많은 여자와 시황이 몸을 섞은 사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방금 시황과 만났을 때 섹스를 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설마 대표이사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 줄이야.
“정말 혜미 너도 한 거야?”
장미는 혜미에게 물었다.
“응. 했어. 그런데 난 첫 경험한 건 얼마 안 됐어. 대표님하고 스캔들 난 날 있잖아. 그 전 날에 대표님 집에서 같이 잤거든. 그때 첫 경험했어.”
“아...”
너무 충격적이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섹스가 혐오스럽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설마 자신이 전혀 모르는 사이에 시황과 혜미가 그런 걸 했을지는 몰랐다. 충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부러웠다. 자신도 시황과 그런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었다. 혜미처럼 단 둘이 누워서 사랑을 속삭이고 싶었다.
“사진 보여줄까?”
“사진? 무슨 사진?”
갑작스러운 사진 얘기에 장미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사진. 잠깐만.”
혜미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저번에 찍은 시황의 알몸 사진을 장미에게 보여주었다.
조그만 스마트폰 화면 속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시황이 성기를 드러내고는 밝게 웃고 있었다.
장미는 거의 넋을 놓은 채로 그 사진들을 넘겨봤다.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외설적이고 야한 사진은 처음 보는 거였지만 더럽다거나 징그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반대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