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7 ------------------------------------------------------
드래곤 루나모스
“계산해주세요.”
당황해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은비가 말했다.
“아, 네, 네.”
아르바이트생은 떨리는 손으로 빠르게 콘돔을 찍었다.
혹시 다른 사람하고 착각한 건가 했지만 목소리를 들으니 완벽히 은비가 맞았다. 인기 없는 배우나 아이돌도 아니고 은비라면 누구나 알법한 존재이다 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은비에게 받은 카드로 계산을 마치고 봉투에 칫솔과 콘돔 등을 넣고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봉투와 카드를 받아든 은비는 시황과 팔짱을 끼고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검은 속옷이 비치는 시스루 블라우스를 입고 가을과 열애설이 난 케즈론 대표와 팔짱을 끼고 가는 은비를 바라보며 아르바이트생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봤다.
가게에 있던 커플도 물건을 사는 건 뒷전으로 하고 끊임없이 은비와 시황에 대한 얘기를 했다.
“대박이다. 방금 콘도 산 거 맞지? 은비랑 케즈론 대표랑 그런 사이였어? 미쳤다 완전. 그럼 가을이랑 스캔들 난 건 뭐야?”
“그 남자 누군데? 케즈론 대표?”
여자에 비해 남자는 정보에 밝지 못했는지 시황이 누군지 전혀 몰랐다.
“왜 있잖아. 가을이랑 스캔들 난 사람. 케즈론 브랜드 몰라? 요즘 여자들한테 인기 최고인데. 가격이 비싸도 그 값을 하거든. 하여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빨리 사진 찍어야지.”
여자는 가방에서 빠르게 최신 스마트폰을 꺼내서 편의점 밖으로 나가 팔짱을 끼고 차로 가는 은비와 시황을 찍었다.
요란한 카메라 소리가 밤거리에 퍼져나갔다. 은비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여자가 다시 사진을 찍으려 할 때 뒤를 돌아봤다.
빠르게 촬영 버튼을 터치하다 보니 은비가 돌아보는 장면도 그대로 찍혔다. 최신 스마트폰인만큼 비록 밤이긴 해도 가로등과 주변 가게의 환한 불빛 덕분에 은비라는 게 충분히 인식이 되었다.
은비는 차에 다와 가서 한 번 더 편의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다시 사진 촬영음이 들렸다. 이번엔 아르바이트생까지 나와서 같이 찍었다.
충분히 자료를 제공한 은비는 마스크 속으로 만족한 듯 웃으며 차에 탔다.
“우리 사진 찍는 거 같던데 그냥 둬도 괜찮아? 가서 사진 지우라고 할까?”
시황은 은비를 보고 조금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아니. 괜찮아. 어차피 마스크 써서 봐도 모를 걸? 신경 안 써도 돼.”
시황이 당장 차에서 나갈 듯 말하자 은비가 당황하며 만류했다. 시황이 나가서 사진을 지우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 된다. 사진이란 증거가 없는 인터넷 글은 의미가 없으니까.
“그런가? 그러면 그건 그렇다 치고 콘돔은 왜 샀어? 우리 콘돔 안 쓰잖아.”
“그건 그런데... 그래도 안에 사정하면 임신할 수도 있고... 아, 임신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난 상관없기는 한데... 일단 일도 계속 해야 되니까 조금 곤란한 것도 있고... 아 몰라. 하여튼 빨리 모텔로 가자. 나 너무 피곤해.”
은비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하려니 입이 꼬여 말이 자꾸 이상하게 나왔다.
콘돔 안 쓰는 건 알지만 아르바이트생에게 둘이 그런 사이라는 티를 내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만약 오늘 사진이 안 찍혔으면 내일 낮에 아예 사람 많은 곳을 시황과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할 생각이었다. 시황과 키스도 하고 스킨십도 하면서 연인처럼 굴면 가을과 비교도 안 되는 완벽한 스캔들이 날 테니까.
“그래? 그러면 괜찮고.”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같지만 은비가 괜찮다고 하니 시황은 특별하게 신경 쓰지 않았다. 둘이 같이 있는 사진이 찍혔으니 가을의 루머가 바로 반박 될 거라 가을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대신에 은비의 이미지가 상당히 떨어질 테지만 오히려 본인이 그걸 원하고 있었다.
“빨리 가자. 나 빨리 눕고 싶어.”
“벌써 피곤해? 가서 바로 잘 거는 아니지?”
“으이그, 변태. 머릿속에 야한 거 밖에 없다니까.”
“하하. 어디로 갈까? 은비 피곤해서 자기 전에 빨리 가자.”
“저 앞에 있는 데로 가자. 저기가 괜찮아 보이네.”
시황은 은비가 가리키는 고급스러운 모텔로 갔다.
모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시황이 직접 카운터에서 가장 비싼 방으로 구했다. 아무래도 여기까진 은비도 부담스러운지 얼굴을 가리고 조심해서 방으로 갔다.
그럼에도 뿜어져 나오는 초미녀 포스에 일하는 사람도 힐끔 쳐다봤지만 은비인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방에 들어간 은비는 달라붙는 시황을 떼어내고 샤워부터 했다. 머리를 감고 화장을 지우고 나가려고 하자 커다란 성기를 벌떡 세운 시황이 못 참고 욕실에 들어왔다.
은비는 가볍게 핀잔을 주고는 애무를 해주듯 시황의 몸까지 씻겨주었다. 가을을 의식해서인지 은비는 평소와 다르게 더 적극적으로 시황의 몸을 쓰다듬었다.
샤워를 끝내고 몸까지 닦고 나서 당연하다는 듯 침대에 드러누워 본격적인 섹스를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둘 다 콘돔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시황이 허리를 움직여 거대한 성기를 자신의 몸에 넣을 때 마다 은비는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태풍과도 같은 거대한 쾌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도 이상하게 머릿속에서는 가을도 시황과 섹스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물론 가을과 시황이 스캔들이 난 날, 밥만 먹고 섹스를 안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은비에게 있어 가을은 자신에게서 시황을 빼앗아가려는 여자로 인식되어 있어 자꾸 부정적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만약 섹스를 했다면 시황은 누가 더 기분 좋다고 느낄까? 정말 이러다 은비에게 시황을 빼앗기는 건 아닐까?
가을에게 질투심이 느껴졌다.
은비는 모든 남자들이 사귀고, 결혼하길 염원하는 인기 배우답지 않게 시황을 만족시키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다했다.
**
이렇게 은비가 시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 새벽, 인터넷에는 아까 은비가 콘돔을 사 갔다는 글이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왔다.
[저 아까 말도 안 되는 일 봤습니다. 편의점에서 알바하고 있는 중에 엄청 예쁜 여자 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몰래 힐끔 보니까 딱 은비인 거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마스크를 쓰긴 했는데 그 예쁜 얼굴이 가려지겠습니까? 여기까지는 뭐 운 좋으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근데 이 다음이 대박입니다. 은비가 케즈론 대표랑 같이 물건을 골랐는데 거기에 콘돔이 있는 게 아닙니까. 와, 진짜 눈앞에서 보고도 믿겨지지 않아서 은비한테 진짜 은비 맞냐고 물어볼 뻔 했습니다. 가게에 있던 손님들도 케즈론 대표하고 은비가 콘돔 사간 거 엄청 놀라했고요. 케즈론 대표 가을하고 스캔들 났는데 정작 사귀는 건 은비인 거 같았습니다. 서스럼없이 팔짱끼고 다니던데 진심 대박 부러워서 죽을 뻔 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 사진 없이 글만 올렸다. 하지만 이런 글을 사람들이 단번에 믿을 리가 없었다.
[네. 다음 개소리. 은비하고 케즈론 대표가 새벽에 편의점 가서 콘돔을 사갔다고요? 어느 정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죠.]
[ㅋㅋㅋ 아진 엔터테인먼트에서 알바 보냈나 보네요. 가을 열애설 나니까 은비로 물타기 하라고 하던가요?]
[캡처했습니다. 은비 소속사에 보내서 꼭 고소하라고 할 겁니다. 은비 같은 스타 여배우가 편의점에서 콘돔을 산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수십 개의 댓글이 순식간에 달렸지만 전부 부정적이고 비난조였다.
너무 거짓말을 한다는 식으로 몰아가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욱하는 마음에 은비가 사간 물품 리스트를 찍어서 올렸다. 거기엔 칫솔과 치약, 초박형 콘돔이 적나라하게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응은 좋지 않았다. 아니, 엄청난 비난밖에 없었다.
[이거 보고 믿으라고요? 이런 주작에 속을 정도로 여기 있는 사람들 바보가 아닙니다.]
이쯤 되니 아르바이트생은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사진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글입니다. 저 말고도 옆에 다른 손님들도 다 봤고요. 같이 서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밤이라서 좀 흐릿하지만 은비하고 케즈론 대표라는 거 충분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이것도 캡처했습니다. 사람들이 안 믿어주니까 이제 자료까지 조작하네요. 이거 범죄인 건 아시죠?]
[이런 거에 누가 속냐? ㅂㅅ]
아르바이트생의 휴대폰은 출시된 지 2년 정도 된 거라 사진이 뿌옇고 어둡게 나왔다. 그럼에도 은비인가? 싶은 여자와 시황인가? 싶은 남자가 고급스러운 외제차에 타는 모습이 찍혀져 있었다.
밤이다 보니 선명치 않은 화질의 사진이었지만 은비가 맞는 듯하자 여론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은비 맞는 거 같은데요. 케즈론 대표하고 은비 키 차이가 20센티미터가 넘으니까 딱 저 정도 차이 나는 게 맞습니다. 저랑 제 여자 친구도 키 차이가 저쯤 나서 잘 알고 있거든요.]
[저기 저도 아는 곳이네요. 저 부근 모텔들 엄청 많거든요. 저기서 콘돔 사갔으면 뭐 뻔 한 거죠.]
사람들은 각가지 자료로 분석을 했다.
특히 어떤 사람은 사진에 나온 차와 이전 가을의 스캔들에 나온 차 종류가 완전히 같다는 걸 찾아내서 엄청난 추천을 받았다.
그런데 시황과 은비의 글이 여기만 올라온 게 아니라 여자들이 많이 가는 대형 커뮤니티에도 올라왔다.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고 사진은 훨씬 선명하게 찍혀 마스크를 썼음에도 누가 봐도 은비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인터넷은 새벽임에도 활화산처럼 열기를 뿜어냈다. 온갖 전문가가 다 등장해서 사진의 진위를 가렸고 최종적으로 은비와 시황이 맞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렇게 되자 아르바이트생이 올렸다 치욕적인 비난을 받은 콘돔이 찍힌 영수증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저 초박형 콘돔을 은비가 직접 고른 거면 한 두 번 섹스해본 게 아닌가 본데?]
[아, 진짜 더러워 ㅡㅡ]
[은비야 ㅠㅠ]
[케즈론 대표 부럽다... 은비하고 섹스하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겠지?]
[그럼 가을은 뭐임? 사귀지도 않는데 스캔들 난거임? 은비 대박 어이없었겠네? ㅋㅋㅋ]
[차에 타서 이미 하나 썼을지도요 ㅋㅋ]
콘돔과 관련해서 온갖 말이 다 나왔다. 의도적으로 성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전하게 콘돔까지 사서 섹스하는 거면 칭찬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완전 소름 돋아. 저런 거 왜 공개함? 사생활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님?]
[가을은 밥만 먹었다가 스캔들 나서 엄청 피해봤네. 기레기 고소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단순히 콘돔을 보고 성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과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했다는 사람, 그리고 기쁨에 찬 가을의 팬들로 인터넷이 달아올랐다.
이제 가을과 시황의 열애설은 이제 아무도 신경 쓰지도 않았다.
이제는 은비와 시황의 열애로 게시판에 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은비가 원하는 대로 된 것이다.
날이 밝아오자 시황과 은비의 열애설이 뉴스로 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 열애설을 접한 사람들의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남자들은 분노라는 짙고 어두운 감정을 느꼈다.
가을과의 열애설 때는 수많은 네티즌과 팬들 사이에서 맞다, 아니다 싸움이 일어났다면 은비와의 열애설에는 시황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만이 존재했다.
한국 최고의 미녀라 일컬어지는 은비와 사귀며 섹스까지 하는 사이라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남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런 맥락 없이 시황이라는 이름만 적혀도 온갖 욕설이 날아들었다. 은비라는 별은 저 먼 하늘에 달려있어 시황처럼 매우 빠른 로켓을 만들 돈이 없다면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다들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을과 은비의 연이은 열애설로 시황의 이름이 단번에 유명해졌다. 이전까지는 케즈론 대표라고 해야 다들 누군지 알았지만 이제는 시황이라고만 적혀 있어도 남자들이 바로 욕을 했다.
시황과 헤어진 은비는 뉴스 기사와 네티즌의 반응을 보고 크게 만족한 반면 유미와 은지 등은 연이은 스캔들 기사를 보고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이대로라면 시황이 가을이나 은비 같은 스타들과 결혼을 할 것만 같았다.
찬미조차 평정심이 흔들릴 정도니 집에 있는 다른 여자들은 척 보기만 해도 우울한 그림자가 감돌고 있었다.
새벽에 은비와 끈적한 섹스를 즐긴 시황은 집에 오자마자 바로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