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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391화 (3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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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사람들이 쳐다보는 대학가에서 혀를 낼름낼름하면서 키스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수란은 짧게 입만 맞추었다. 아주 잠시 입술이 붙었다 떨어졌지만 수란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수란처럼 예쁜 애가 남자와 키스한다는 사실 자체에 큰 충격을 받았고 고운은 수란과 시황이 정말 사귀는 것 같다는 기분 나쁜 느낌에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시황조차 그 수란이 여기서 키스를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부럽다. 저렇게 예쁜 애랑 사귀네.”

“진짜 부럽다……. 나도 저런 여친 갖고 싶다…….”

주변에서는 이미 시황과 수란이 사귀고 있다는 걸 단정 짓고 있었다. 입까지 맞췄는데 아무것도 아닌 관계라고 생각하는 게 더 말이 안 됐다.

고운도 그걸 느꼈기 때문에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래도 못 믿겠어요?”

“…….”

득의만만한 듯 웃는 수란을 보고 엄청난 표정으로 노려보던 고운이 아무런 말없이 가버렸다.

“고, 고운아.”

옆에 있던 보영이 당황해 하며 고운을 따라갔고 시황도 고운을 따라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수란이 시황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가지 말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주춤거리던 시황은 결국 고운을 보내고 수란의 옆에 남았다.

“따라가면 제가 이렇게 한 이유가 없잖아요.”

고운이 사라지자 수란의 표정이 평소처럼 돌아왔다. 아까 전에 지었던 그 귀엽고 앙증맞은 표정이 꿈인가 싶을 정도로 급변했다.

“그래도 좀 미안해서…….”

“오히려 여기서는 이게 당연한 거예요. 확실히 거절하지 못하고 여러 여자 다 사귀는 게 이 세계에서는 더 이상한 일인 거죠.”

다른 세계에서 온 수란이 오히려 시황에게 훈계를 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닌지라 시황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일단 가자. 사람들이 많이 보네.”

“네.”

주변에서 사람들이 시황과 수란을 보고 수군거렸기 때문에 시황은 수란을 데리고 주차장에 가서 곧바로 차에 탔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곳에서 할 얘기는 아니었다.

“좀 지나친 거 같기도 하네. 그냥 거절하고만 싶었는데.”

차에 탄 시황은 아까 봤던 고운의 얼굴이 떠올랐다. 잔뜩 일그러진 고운의 표정을 다시 생각하니 정말 미안했다. 여자가 호감이 있어 고백을 했는데 일방적으로 차버린 데다 눈앞에서 다른 여자하고 입을 맞추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만약 시황이 그런 일을 겪었다면 멘탈이 붕괴돼서 살아갈 의욕을 잃었을 것이다.

“오빠도 봤겠지만 그 여자는 그 정도까지 안 했으면 계속 못 믿고 오빠를 따라다녔을 거예요. 차라리 이렇게 확실히 관계를 한 번에 끊는 게 그 여자를 위하는 길이에요.”

“그런가.”

확실히 수란의 말대로 고운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고 말했는데도 못 믿은 데다 화가 나서 수란에게 험한 말을 하기도 했었다. 괜히 이 문제를 질질 끌 바에야 이렇게 깔끔하게 끝내는 게 자신에게도, 고운에게도 도움이 될 듯 했다.

“고마워. 그런데 수란이 그 정도까지 할지는 몰랐어. 처음에 내가 꿈을 꾸는지 알았다니까. 정말 대단하던데?”

“전 할 때는 확실히 하니까요. 오빠처럼 어중간하게 행동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런 음흉한 캐릭터도 만화에 나오니까 한 번 시험해 보기도 한 거고요.”

수란은 담담히 얘기했다. 프린을 패대기 칠 때부터 느꼈지만 수란은 같은 여자에게 가차 없었다. 아무래도 남자라면 여자라는 이유로 쉽게 못할 것도 수란은 같은 여자라 그런지 전혀 개의치 않고 행동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캐릭도 잘 어울리던데. 나랑 있을 때 그렇게 해주면 안 돼?”

“어머, 그렇게 또 해달라고요? 정말……. 오빠는 욕심쟁이.”

시황의 말에 의외로 수란이 아까처럼 귀여운 얼굴을 짓더니 앙증맞게 웃으며 말해주었다. 마지막에는 시황의 코를 살짝 건드리며 윙크까지 해줬다.

“오오.”

시황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어떻게 그 수란에서 저런 귀여운 캐릭터가 나올 수 있는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이에요.”

하지만 다시 원래의 수란으로 돌아가서는 삭막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엄청 귀여운데. 부끄러워서 그래?”

“그게 왜 부끄러운 거죠? 단지 그 좋아하는 얼굴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좋은 걸 어떡해. 또 해줘. 응? 또 해주라.”

“…….”

시황이 부탁했지만 수란은 무표정하게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쉽네. 정말 좋았는데…….”

이제 그 귀여웠던 수란은 못 본다는 생각에 시황은 상당히 아쉬워했다.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수란도 그 중얼거림을 들었지만 모르는 척 창 밖만 바라봤다.

벌써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해가 지며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

고운의 일은 수란덕분에 완벽하게 해결됐다고 시황은 생각했다. 다음날 고운을 만나면 시황은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해결을 해서 문제일 정도였다.

조금 긴장한 채로 시황이 강의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침울해져 있어야 할 고운이 마치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시황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시황은 고운의 옆 자리에 앉았다. 어째서인지 어제하고 전혀 다를 것 없는 고운의 반응에 혹시 타임 슬립이라도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안녕하세요.”

“어. 안녕.”

평소와 다름없는 고운의 인사.

시황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운의 옆에 앉은 보영을 봤다. 보영과 눈이 맞았다. 그러자 보영이 고개를 살짝 흔들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영의 반응을 보고 시황은 타임 슬립을 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를 했다.

“오빠.”

“어?”

고운이 부르자 시황이 조금 놀라며 대답했다.

“저 어제 생각을 해봤는데요.”

“응.”

침착한 고운의 표정을 보자 시황은 안도했다. 다행스럽게도 고운은 확실히 마음을 접은 듯 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침착한 표정을 지을 리가 없었으니까.

“오빠한테 여자 친구 있어도 저 계속 오빠 좋아할래요.”

“고운아…….”

고운의 고백에 옆에 있던 보영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시황도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거기다 어쩐지 주변에서 자꾸 힐끔 거리며 고운과 시황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 강의를 마치자마자 벌어진 일이라 과에 소문이 다 퍼진 듯 했다. 이런 식으로 주목을 받는 건 처음이라 시황은 가볍게 한숨이 나오려고 했다. 이대로라면 한교 전체에 소문이 퍼져 진아가 알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고운도 그렇고 시황 스스로도 곤란한 상황에 빠질 것 같아 특단의 조치가 내릴 필요성이 있었다.

시황은 고운을 쳐다봤다.

강렬하게 쳐다보는 시황의 눈길에 고운이 움찔했다.

“고운아 미안. 나 휴학하려고.”

“네?”

갑작스런 시황의 결정에 이번엔 고운이 놀랬다.

“저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그렇게 부담스러우세요? 흑…….”

결국 고운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안 그래도 힐끔 거리며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고운과 시황에게 쏠렸다. 강의실이 적막해졌다.

“자, 잠깐 나가자.”

시황은 고운의 손을 잡고 강의실을 나갔다. 강의실 밖을 나가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시황과 고운을 보더니 친구하고 뭔가를 중얼거리며 얘기했다.

전에 학교를 다녔을 때는 이런 관심은커녕 친구조차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 소문이 난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 수업을 마치면 PC방에 가서 게임만 했으니까. 그래서 어제의 일이 이렇게 퍼질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에서 얘기를 했어야 하는 건데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으니 의미 없는 후회일 뿐이었다.

최대한 사람이 없는 벤치에 앉았다. 강의실하고는 조금 떨어진 위치였다.

“흑…….”

제법 걸었는데도 고운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잠시만 내 얘기 좀 들어줘.”

“제가 싫어서 그러시는 거잖아요. 흑……. 전 오빠가 정말 좋은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휴학은 정말 예전부터 생각하던 일이었어. 안 그래도 일 때문에 바빠서 휴학할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어제 일도 있고 해서 내가 학교 계속 다니면 너한테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결정한 거야. 절대로 네가 부담스럽거나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자기 좋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매몰차게 대하겠는가. 시황은 고운에게 나름의 변명을 했다.

이 변명이 먹혔는지 고운이 눈물을 닦으며 시황을 쳐다봤다.

“정말 저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 일 때문이야. 그리고 너한테 미안해서기도 하고…….”

도대체 어떤 강철 멘탈이기에 어제 눈앞에서 그런 광경을 봐 놓고도 계속 좋아할 거라고 말하는지 시황은 고운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여자애들처럼 고운에게 특별히 뭔가를 해준 게 있나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받기만 받았지 해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 계속 오빠 좋아해도 돼요?”

“너도 봐서 알겠지만 나한테 이미 여자 친구가 있잖아. 그건 좀 곤란할 거 같아.”

“오빠가 곤란한 일은 절대 안 할게요. 그냥, 정말 그냥 좋아하기만 할게요.”

“하아…….”

시황은 한숨을 쉬었다.

여자 친구가 없었을 때는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걱정이었다면 지금은 지나치게 좋아하는 여자 애가 있어서 걱정이었다. 뭐든 과한 건 좋지 못하다더니 여자 친구 없는 것도,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문제였다.

“그런데 휴학하고 일을 할 거라서…….”

“오빠 시간 쓰는 일 없을 거예요. 그냥 제가 좋아하기만 하는 거라…….”

고운의 눈에 다시 눈물이 흘렀다. 웃으려고 노력했지만 커다란 눈에서는 눈물만이 계속 흘렀다.

저런 모습을 보니 시황도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알았어. 네가 편한 대로 해.”

시황은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고마워요. 오빠. 그러면 전 강의 들으러 갈게요.”

자리에서 일어난 고운이 잠시 머뭇거리다 시황의 볼에 입을 맞췄다.

“작별의 뽀뽀정도는 괜찮죠?”

“…….”

시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수란이 화사하게 웃으면서 강의실로 뛰어갔다.

고운에게 뽀뽀를 받았지만 시황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니, 우울했다. 고운이 불쌍해 보인다고 사귀자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게 최선이었다. 휴학을 하고 얼굴을 보지 않는다면 서서히 잊혀질 테고 고운도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시황은 잠시 벤치에 앉아 생각을 정리한 뒤에 수업 중인 강의실에 들어갔다.

고운은 언제 울었냐는 듯 빨간 눈으로 평소처럼 행동했다.

주변에서 시황을 쳐다봤지만 시황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평소처럼 고운과 헤어진 시황은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가자 마침 수란이 거실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가 우울한 표정의 시황을 봤다.

“무슨 일 있었어요?”

처음 보는 시황의 우울한 표정이라 수란도 궁금함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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