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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390화 (389/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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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그 여자는 오빠 좋아하지도 않잖아요. 계속 오빠한테 건성으로 대하고.”

고운이 수란에 대해 말했다. 썩 좋지 않은 얘기들이었지만 겉보기엔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이대로 단순히 좋아한다고만 얘기하면 고운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느낌이 들었다. 시황은 조금 더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사실 우리 사귀고 있어. 미안.”

“네? 거짓말이죠?”

고운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야. 그때 학교에서 데이트한 거고…….”

“못 믿겠어요.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귀찮으신 거죠? 그래서 그런 말 하시는 거죠? 오빠가 그런 여자하고 사귈 리가 없잖아요. 그 여자는 오빠 좋아하지도 않는데…….”

시황에 대해 고운이 뭘 아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시황이라면 절대 수란하고 안 사귈 거라고 확정을 짓고 얘기하고 있었다. 시황이 직접 사귄다고 말해줬는데도 고운은 전혀 믿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게 수란에게 상당히 화가 난 듯 했다.

“귀찮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이야. 사귄지는 얼마 안 됐지만…….”

“증거, 그러면 증거를 보여주세요. 보여주면 앞으로 오빠한테 귀찮게 안 할게요.”

시황은 고운과 그저 친한 대학교 친구로 지내고 싶었기 때문에 수란과 사귄다는 걸 직접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긴 했다. 다만 사귀는 걸 보여주고 나서도 고운과 친한 관계가 유지될지 의문이지만.

“증거?”

“네. 같이 찍은 사진 같은 거요. 사귄다고 하셨으니까 분명 있을 거잖아요.”

없었다. 수란과 같이 찍은 사진은 없었다. 찬미나 유미나 은비는 있었지만 수란은 없었다.

“아직 사귄지 얼마 안 돼서 사진은 없어.”

“그거 봐요. 거짓말 하신 거죠?”

사귀는데 사진 한 장 없다는 건 확실히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했다.

“아니야. 그러면 다음에도 수란이 학교로 마중 나오기로 했으니까 그때 확인시켜 줄게.”

“……좋아요. 그러면 그때 확인할게요.”

고운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반드시 둘이 사귀지 않는 다는 증거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시황과 미리 입을 맞췄다 해도 무리한 부탁을 하면 분명 사귀지 않고 있다는 걸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고운과의 술자리는 이걸로 끝났다. 분위기가 어색해져서 술을 그만 마시고 일어난 것이다. 고운만 술을 좀 마시고 시황은 술을 얼마 안 마셨기 때문에 운전하는데도 별 무리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황은 화장실에 들러 알코올을 없애주는 차를 마셔서 완벽하게 술기운을 제거했다.

고운이 사는 원룸까지 데려다 준 시황은 월요일에 보기로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두운 거리를 달렸다. 어쩐지 한숨이 나왔다.

술을 마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헤어진 거라 시간이 그렇게 늦지는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 다들 거실에서 TV를 보며 쉬고 있었는데 수란만 없었다. 방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는 듯 했다. 시황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수란의 방으로 들어갔다.

“만화 그리고 있어?”

“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죠?”

시황이 들어왔는데도 수란은 쳐다보지도 않고 만화를 계속 그렸다.

“부탁 좀 하려고. 잠깐 시간 좀 내줄래?”

시황은 침대에 앉아서 수란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수란이 평소처럼 무표정하게 되돌아봤다.

“또 여자 문제인가요?”

“뭐, 그렇긴 하지.”

“하아…….”

수란이 한숨을 쉬었다. 또 새로운 여자를 데려오는 건가 싶어 한심한 눈으로 시황을 쳐다봤다. 이전에도 온갖 여자 다 만나고 다닐 때도 한심했지만 자기하고 나름 밀접한 관계가 되어 놓고도 저러니 더 한심해 보였다.

“오해하지 마. 이번에는 내가 꼬신 게 아니라 그쪽에서 사귀자고 한 거니까.”

“그 여자인가요?”

시황의 말을 듣자 수란도 생각나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학교에서 시황과 만났을 때 잔뜩 노려보던 그 여자. 어쩐지 인상에 남아 있었다.

“그 여자? 누군지 알아?”

“전에 학교 갔을 때 저희 쳐다보던 여자애 아닌가요?”

“어? 맞아. 어떻게 알아?”

“느낌이 왔을 뿐이에요.”

수란은 역시라고 생각했다. 그때 노려봤던 건 이유가 있었다. 저런 한심한 남자의 어떤 점이 좋아서 사귀자고 말한 건지 의문이었고 저런 남자한테 끌리는 자신의 감정도 미스터리였다.

“어쨌든 내가 거절한다고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거든.”

“그게 저인가요?”

“응. 근데 고운이도 바로 널 지목하던데 둘이 뭔가 있었어? 나 몰래 만난 거 아니야?”

“아니에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때 잠깐 봤을 뿐이에요.”

“그래?”

잠깐 봐놓고 서로를 저렇게까지 인지한다는 게 신기했지만 시황으로선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중요한 게 그건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월요일에 직접 학교에 와서 우리 둘이 사귀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할 것 같아.”

“사귀는 걸요? 이젠 별 걸 다 시키는 군요.”

“미안.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내가 너랑 사귄다고 말하면서 거절했는데 직접 보기 전까진 절대 못 믿는다고 하니까.”

“하아……. 어쩔 수 없네요. 정말 저 없으면 오빠는 아무것도 못하네요.”

수란이 한심한 듯 말했다. 하지만 의외로 나쁘지 않은 기분. 그때 자신을 노려보던 눈을 생각하면 확실히 시황과 사귄다는 걸 각인시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수란이 프린을 가차 없이 공격했던 것처럼 이런 부분에선 상당히 냉혹했다.

“그러면 우리가 사귄다는 듯이 키스 연습을 해보자.”

“어째서 키스...”

수란이 어째서 키스를 하냐고 묻는 순간 시황이 침대에서 일어나 수란의 입술을 덮었다. 갑작스러운 키스였지만 수란은 눈을 감으며 시황의 입술을 음미했다.

덜컥.

“오빠.”

한창 수란과 키스를 하는데 으레 그렇듯 방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루였다.

시황이 곧장 자신의 방으로 가는 걸 본 아루는 드라마를 마저 다 본 뒤에 방으로 곧장 온 것이다.

아루인 걸 알아서인지 시황과 수란은 키스하던 걸 멈추지 않았다.

“저도 키스 할래요.”

그러자 아루가 갑자기 끼어들어 시황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 협소한 자리로 인해 아루의 입술이 수란과 어중간하게 겹쳤다.

제 삼자가 본다면 이 기묘한 광경에 큰 혼란을 느낄 정도로 이상한 모습이었다. 여자 두 명과 동시에 키스를 하는 남자. 그런데 그 여자 두 명이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웠다. 저 중 한 명과 키스를 해도 배가 아파 견디지 못할 사람이 많았는데 두 명과 그것도 동시에 키스를 하고 있었다. 시황이 갑자기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피습을 당해도 사람들이 이해해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일이 여기선 당연하다는 듯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수란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시황과 아루에게서 떨어졌다. 시황과 키스하는 건 몰라도 아루하고 입술을 맞대고 싶진 않았다.

“헤헷. 같이 키스하니까 재밌다.”

보통 여자라면 사랑하는 남자인 시황과 절친한 친구인 수란이 키스하는 모습을 보면 큰 질투심을 느낄법한데 아루는 그런 감정 자체가 없는 듯 했다.

“어쨌든 월요일에 부탁할게.”

“알겠어요.”

수란에게 다시 한번 당부한 시황이 방을 나갔다.

“응? 뭔데? 오빠랑 놀기로 한 거야? 아루도 같이 놀고 싶다.”

옆에서 아루가 수란에게 말했다. 하지만 수란은 아루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월요일에 어떤 식으로 해야 좋을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수란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수, 수란이 무서워…….”

수란의 미소를 본 아루가 몸을 떨었다.

**

월요일에도 시황은 여느 때처럼 차를 타고 등교했다. 오늘은 오후까지 수업이 있었다.

“학교가기 싫네.”

운전을 하며 시황이 중얼거렸다. 출근 시간은 지났기 때문에 차가 밀리진 않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학교에 가기 싫었다. 고운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의미 없이 수업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정말 싫었다.

학교에 도착하고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강의실로 가자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의 고운이 시황을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오빠.”

“응. 반가워.”

고운의 인사에 시황도 평소처럼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러니까 마치 금요일에 아무런 일 없었던 사이 같았지만 분명 오늘 고운에게 수란과 사귄다고 확인시켜 주기로 한 날이었다. 혹시 까먹었나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을 까먹었을 것 같진 않았다.

고운의 얼굴과 행동은 평소대로지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시황이 알 길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시황, 보영과 같이 점심을 먹고 나서도 고운은 그 날에 대한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이윽고 월요일의 수업이 전부 끝났다.

수업을 마치자 건물이 상당히 소란스러워졌다.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집으로 가거나 다른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을 옮겼다.

이쯤 되자 고운의 표정도 슬슬 굳어갔다.

시황과 고운, 보영은 건물을 나왔다. 건물을 나오자마자 단번에 눈에 띄는 대단한 미모의 여자가 앞에 서 있었다. 지나가던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자들도 한번씩 보고 지나갈 정도로 엄청난 미인이었다.

“수란아.”

당연히 그 미인은 수란이었다. 시황은 수란을 불렀다.

“아! 오빠. 이제 마쳤어요? 저 오래 기다렸단 말이에요. 저 여기 계속 서있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죠?”

수란이 시황을 발견하자 화사하게 웃으며 단번에 시황이 있는 곳으로 왔다.

“어?”

생각과 전혀 다른 수란의 반응에 시황은 당황스러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수란의 얼굴에 눈이 가 미처 못 봤는데 입은 옷도 평소와 다르게 노출이 조금 있는데다 상당히 예쁜 옷이었다. 옷이 날개가 아니라 수란은 얼굴 그 자체가 날개였기 때문에 옷에 조금 노출이 있는 것만으로 막대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오빠 친구 분들인가 봐요. 전 임수란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아, 안녕하세요. 김보영이에요. 시황 오빠 엄청 예쁘신 분하고 사귀고 계시네요.”

고운은 입술을 질끈 깨물뿐 대답을 하지 않았고 옆에 있던 보영이 수란에게 인사를 했다. 전에 봤을 때 여자 친구인가 생각만 했는데 진짜 여자 친구가 맞는 듯 했다.

“어머, 부끄럽게 그런 말씀을 하시고. 헤헷.”

수란은 평소와 다르게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표정을 평소에도 하고 다닌다면 시황이 만나는 여자의 수는 우스울 정도로 남자를 갈아치울 수 있었다.

“고운아, 내 여자 친구인 수란이야.”

겨우 정신을 차린 시황은 표정이 썩 좋지 않은 고운에게 수란을 인사시켜 주었다. 일그러진 고운의 표정과 다르게 지나는 남자들은 넋을 잃은 채로 수란을 쳐다봤다.

“거짓말. 제 눈에 지금 연기하고 있는 거 뻔히 다 보여요. 전에 만났을 때는 그렇게 무표정하게 해놓고 지금 와서 이러는 걸 믿으라고요?”

고운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정말 분한 것 같았다.

“거짓말? 오빠 무슨 말이에요?”

수란이 시황의 팔짱을 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물었다.

“가증스럽기는. 둘이 안 사귀는 거 다 알고 있어요. 지금 연기하는 거잖아요. 오빠 얼굴보고 접근한 주제에…….”

시황의 팔짱을 끼는 수란을 보고 고운이 화가 나서 험한 말을 내뱉었다.

“고, 고운아. 죄송합니다. 이런 애가 아닌데.”

화가 나서 수란을 계속 노려보는 고운과 다르게 평범한 상식인인 보영이 당황스러움에 대신 사과를 했다.

“네? 저랑 오빠가 안 사귄다고요? 이렇게 해도요?”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수란이 시황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힐끔 보며 지나가던 남자는 물론이고 주변에 서서 상황을 흥미롭게 보던 남자들이 깜짝 놀라 입을 벌리고 쳐다봤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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