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386화 (38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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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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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황의 충고대로 수란은 웹툰에 쓸 소재와 스토리를 짰다. 시황의 말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첨부했다. 중세 시대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에 살던 공주가 사악한 마법사에 의해 지구에 있는 한국으로 오고 진정한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수란은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인 연애를 그려보고 싶었다. 이번에는 전처럼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사전 검증을 할 생각이었다.

시황의 교육을 받기로 한 다음날.

수란은 긴장 때문에 잠을 얼마 못 잤다. 눈만 감으면 시황과 키스 했던 생각이 떠오르고 내일 받을 교육에 대한 떨림 등이 뒤죽박죽 섞여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여자애들이 다들 학교를 가거나 출근을 한 시간에 맞춰 수란은 바로 시황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금 샤워를 했는지 팬티만 입고 있는 시황이 테이블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왔어?”

“네.”

수란은 왠지 민망함에 고개를 살짝 돌려 시황을 쳐다보지 않도록 노력하며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대략적으로 해야 할 것들을 적은 공책을 시황에게 건넸다.

공책을 받은 시황이 읽기 시작했다. 수란은 시황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어쩐지 데이트 계획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엄청 부끄러웠다. 이런 민망한 짓을 스스로 하기로 했다는 거에 수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이 이런 거였구나. 몰랐네.”

공책을 읽으며 시황이 말하자 수란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역시 민망했다.

“아니에요. 그냥…… 그냥 만화 스토리에요. 저랑 연결 짓지 말아주세요.”

수란이 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하고 싶은 것들을 적기는 했다. 왠지 민망함에 시황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코스프레 행사 구경, 책방에서 만화 데이트라……. 지나치게 매니악한 취미들인 것 같지 않아? 만화에 이런 걸 넣을 거야?”

“설정이 만화를 좋아하는 거예요.”

수란이 조그맣게 얘기했다.

“만화를 좋아한다고? 정말 그대로 썼구나. 그러면 주인공인 공주는 한국으로 와서 만화를 좋아하는 매니아가 된 거야? 설정이 좀 난해한 거 같은데.”

“처음 한국으로 왔을 때 만난 남자 호의로 그 사람의 집에서 그 남자의 여동생하고 같이 지내는데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요. 만화는 그 아르바이트하는 곳의 언니에게서 추천받아서 좋아하게 된 거구요. 어쨌든 처음엔 같이 지내는 남자하고 티격태격 하다가 점점 사랑에 빠지는 에피소드를 다양하게…….”

수란은 만화 얘기가 나오자 스토리에 대해서 자세하게 얘기했다.

시황은 저런 스토리가 제대로 먹혀들기나 할까 조금 의문이었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전엔 뭐라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카페 아르바이트는 우리 카페에서 하루 정도 경험해보면 되겠네.”

공책을 다 본 시황이 수란에게 건네주었다.

“네. 그걸 고려해서 카페 아르바이트로 한 거예요.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오빠처럼 돈 많고 바람기가 다분한 남자가 주인공인 공주를 유혹하는 삼각관계가 스토리를 이끌어 갈 거예요.”

“난 별로 바람기 없는데.”

“…….”

시황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수란의 얼굴이 찡그러졌다. 이 만화 스토리는 대부분 시황과 자신을 생각하면서 짠 거였다. 시황을 보면서 수란은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남자가 이상형이 되었다. 시황 같이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는 남자는 절대 이상형의 근처도 갈 수 없었다. 주인공은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자상한 시황을 상상했고 유혹하는 남자는 현재의 시황을 생각하며 설정했다.

“일단 나가자. 나가서 네가 짠 대로 해보자. 지금 내가 할 건 같이 지낸다는 남자 역인거지?”

“네. 맞아요. 그러면 전 옷 갈아입고 올게요.”

“알겠어.”

수란은 자신의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아루가 어디 가냐고 물어봤지만 수란은 일 때문에 나간다고 간단히 대답했다. 평소 일 안 하고 매일 놀기만 했던지라 아루가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봤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시황과 일 때문에 나가는 거지 절대로 데이트가 아니었으니까.

거실로 가자 이미 시황이 옷을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깔끔한 자켓을 입은 캐주얼한 복장이라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나가자. 그런데 지금 하는 건 정확히 어떤 장면이야?”

“같이 사는 남자가 공주를 데리고 처음으로 서울 구경을 다니는 장면이에요.”

“초반부구나.”

대충 이해한 시황은 수란과 함께 집을 나왔다. 그리고 차를 타고 서울역 근처에서 내렸다. 수란의 설명에 따르면 나름 서울에서 상징성 있는 곳들을 돌아다니는 설정이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시황과 수란은 서울역 앞으로 갔다. 넓은 도로와 거대한 건물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했다.

“아…….”

수란은 서울역에 처음 와보는지라 주변을 정신없이 둘러봤다. 쾌청한 하늘 덕분에 돌아다니기 좋은 날씨였다.

“너 여기 처음 와보는구나?”

“네. 평소엔 집에만 있으니까요.”

수란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사실 나도 처음이야. 항상 차타고 서울에 왔으니까 이쪽은 올 일이 없었거든.”

“여자들하고 이 근처에 자주 오지 않아요?”

“이 근처야 자주오지. 매장이 명동에 있기도 하니까.”

여자하고 왔다는 걸 전혀 부인하지 않는 시황을 보고 수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란은 서울역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만화에 쓸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중간 중간 시황이 기념이라면서 같이 셀카를 찍기도 했는데 어쩐지 주변에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아 수란은 상당히 부끄러워했다.

서울역을 다 둘러보고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으로 가기로 했다.

“차 있는데 왜 지하철을 타고 가?”

1호선을 타기 위해 가던 중 시황이 수란에게 물었다.

“주인공인 공주하고 남자는 차가 없거든요. 지하철을 타야 좀 더 정확하게 묘사를 할 수 있으니까 직접 경험을 해보려고요. 그런데 오빠가 경험이 중요하다고 직접 가르쳐주시지 않았어요?”

“으음, 그렇구나. 이게 청출어람이라는 건가.”

수란을 교육한지 하루 만에 벌써 경험의 중요성을 깨닫고 응용까지 했다. 시황은 이렇게까지 수란이 정성스럽게 할 거라곤 생각 안 했는데 정말 진심으로 제대로 된 만화를 그리고 싶어 하는 듯 했다. 이렇다면 시황도 어설프게 할 수 없었다.

플랫폼으로 가서 지하철을 기다렸다. 이 사람 많은 플랫폼에서도 수란의 외모가 단연 눈에 띄었다. 168센티미터의 키와 C컵의 가슴은 아무리 옷을 입어도 그 우월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키 높이 깔창 없이 단순히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었음에도 비율이 어찌나 좋은지 170센티미터가 넘는 듯한 착각이 생길 정도였다.

“남자들이 너 쳐다본다.”

시황은 주변 남자들이 아까부터 힐끔거리며 수란의 얼굴과 가슴을 몰래 보고 있는 걸 일부러 수란의 귀에 속삭여줬다.

“알고 있어요.”

수란은 그 말을 들었음에도 무표정하게 있었다. 수란이 워낙 예쁜데다 무표정하게 있으니 감히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도도해보였다. 그런데 단순히 예쁘고 도도해서 말을 붙이기 어려운 것 이전에 뭔지 모를 위압감 섞인 아우라가 수란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왠지 말을 걸면 벌레 보듯 할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그 공주도 너처럼 엄청 예쁘겠지? 그러면 지금 남자들을 잘 봐둬. 그래야 만화에 공주를 봤을 때 남자들의 반응을 넣을 수 있지.”

“아…….”

이번엔 수란이 깨달았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것들도 만화의 현실감을 살리고 풍부한 재미를 만들어준다. 남자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최대한 시선을 안 마주치려고 할 게 아니라 어떤 표정으로 보고 있는지 살펴야했다.

수란은 시황의 말을 겸허히 수렴했다. 직접 얼굴과 몸을 돌리며 남자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폈다. 대놓고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힐끔 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수란이 남자들을 확인하다 평범해 보이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수란과 눈이 마주친 그 남자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뒤로 물러서다 발이 꼬여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얼굴이 새빨개진 그 남자는 민망함에 플랫폼 저 멀리 가버렸다.

“봐. 수확이 좀 있었지?”

“네.”

수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시황에게서 배울 것들이 조금 있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지하철이 플랫폼에 들어왔다. 시황과 수란은 사람들에 섞여 지하철을 탔다. 이미 앉을 자리가 다 차서 시황과 수란은 대충 끝부분에 섰다. 제대로 서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을 시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서서 가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한정거장 만에 내렸다. 시황과 수란은 5번 출구로 올라가 서울 시청을 감상했다. 큰 건물들 말고는 특별히 볼 게 없어 시황은 금세 지겨워졌지만 수란은 뭔가를 생각하며 시청을 바라봤다.

“이 세계에 사는 인간은 대단해요. 저렇게 큰 건물들을 손쉽게 짓는 걸 보면 말이에요.”

“문명이 발달했으니까. 너희 세계에는 저렇게 큰 건물 없었어?”

“없지는 않지만 많지도 않았어요. 그만큼 많은 인력과 돈이 들어가니까요.”

제대로 서울을 둘러본 적이 없는 수란이었기 때문에 거대한 건물들을 바라보며 새삼 감상에 젖은 듯 했다.

시청을 보고 난 뒤에 바로 근처에 있는 덕수궁도 갔다. 앞에서 표를 끊고 궁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덕수궁 안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의 시황이 아니라 과거의 시황이 이 장면을 봤다면 엄청난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덕수궁 안에는 별 다른 게 없어서 볼 게 없었다. 하지만 수란은 사진을 찍어가며 하나 하나 기록을 남겼다. 덕수궁을 나와 돌담길을 걸었다. 잘 만들어진 길이라 수란과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의외로 즐거웠다.

“의외로 재밌지 않아? 이렇게 나와서 노는 거.”

“나쁘지 않네요.”

수란은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시황의 말대로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같이 나갈 사람도 없고 나갈 이유도 없어서 집에만 있었는데 시황과 같이 얘기를 하면서 돌아다닌다는 게 이렇게 즐겁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 감정도 만화에 잘 넣어야 되기 때문에 수란은 머릿속에 잘 기억해두었다.

돌담길을 다 걷고 이어서 광화문 광장으로 갔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관광을 하고 있었고 시황과 수란도 외국인처럼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을 구경을 했다.

경복궁도 둘러보고 청계천도 돌아다녔다. 단순히 걷고 사진 찍고 쓸데없는 얘기를 나눴을 뿐이지만 수란은 상당히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광장시장에 가서 시황과 밥을 먹기도 했다. 처음에 정말 일한다는 기분으로 나왔는데 어느 순간 일이 아니라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는 걸 수란도 깨달았다. 그저 시황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하루 만에 서울의 모든 곳을 다 돌아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보고 저녁 늦게 되어서야 수란과 시황은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집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황과 수란은 집 앞으로 나왔다. 드라마나 만화에서 흔히 쓰이는 길거리에서의 키스를 연습해보기 위해서였다.

어두운 길에는 가로등이 밝히고 있었다. 드문드문 사람이 지나가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지는 않았다.

시황은 문 옆의 벽에 수란을 세웠다. 손으로 어깨를 쥐었다. 수란이 긴장하고 있다는 게 손으로 느껴졌다. 몸이 떨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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