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381화 (380/629)

0381 ------------------------------------------------------

드래곤 루나모스

“으, 응.”

찬미는 어색한 표정으로 어머니에게 대답했다. 시황은 여전히 여유 있게 허리띠를 매었다.

“어머, 시황이도 있네.”

“안녕하세요. 심심해서 잠시 놀러왔어요.”

찬미의 어머니는 시황과 찬미를 봤다. 하필이면 허리띠를 매고 있는 시황과 얼굴이 잔뜩 붉어져 있는 찬미. 이정도면 둘이서 이전까지 뭘 했는지 자동적으로 바로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찬미의 어머니는 아주 흐뭇하게 웃었다.

“내가 너무 일찍 왔니? 너희들한테 미안하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머니의 의미심장한 말에 평소에 그렇게 침착하던 찬미가 당황했다.

“그래도 조금 조심하렴. 나는 괜찮은데 우리 그이는 찬미랑 유미를 워낙 아껴서 충격 받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나가서 얘기해.”

찬미가 아까부터 흐뭇하게 웃으며 말하는 어머니를 억지로 밀었다.

“어머, 얘가 평소엔 안 이러더니 왜 이래.”

“여기서 얘기해도 괜찮아.”

억지로 어머니를 끌고 나가는 찬미에게 시황이 괜찮다고 말했다.

“잠시만요. 오빠. 정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귀까지 새빨개진 찬미가 어머니를 기어코 거실로 데리고 나갔다. 시황이 얘기를 듣지 못하게 방문도 확실하게 닫았다.

“설마 벌써 애라도 생긴 건 아니지?”

찬미의 반응이 생각보다 격하자 찬미의 어머니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벌써 라고 말은 했지만 애가 은근히 생겼으면 하는 눈치였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무 일 없었으니까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러니? 그런데 혹시 임신하면 엄마한테 가르쳐 줘야 한다. 너희들끼리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아이참. 정말…….”

아무리 말로 해도 안 될 것 같아 찬미는 포기했다. 그냥 방에 단 둘이 가만히만 있어도 의심받을 텐데 시황이 허리띠를 매고 있으니 들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남녀가 단 둘이서 방안에 있으면서 허리띠 매고 풀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여튼 오빠한테 이상한 말 하지 마. 알겠지?”

“얘도 참. 내가 이상한 말을 왜 하니.”

“알았어. 난 다시 방에 간다.”

“그래. 재밌게 노렴. 엄마는 방에 있을 테니까 신경 안 써도 돼.”

“하아…….”

찬미는 한숨을 쉬고 방으로 돌아갔다. 불안했지만 이 이상 어쩔 방법이 없었다.

“무슨 얘기 했어?”

시황은 방에 들어오는 찬미에게 물었다.

“별 얘기 안 했어요. 그보다 저녁 뭐 드실래요? 나가서 먹을까요?”

“우리 둘만 먹기 조금 그러니까 어머님한테 물어 봐. 같이 드실 거냐고.”

“괘, 괜찮아요. 오빠랑 저만 먹으면 되죠. 엄마는 밥 먹고 왔데요.”

찬미는 시황과 어머니를 같이 붙여놓고 싶지 않았다. 방금 일이 없었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쩐지 시황에게 이상한 소리를 할 것만 같았다.

“그래? 그러면 나가서 가볍게 먹자.”

“네.”

찬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황과 찬미는 어머니에게 밥을 먹으러 나간다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2월이라 날이 상당히 쌀쌀했다. 거리는 이미 어두워져 주황빛의 가로등이 켜져있었다.

찬미는 시황이 준 케즈론 옷장에 있는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대단히 아름다웠다. 코트인데도 몸매의 아름다움이 은근히 부각되었다. 검은 스타킹과 조화되어 딱 봐도 평범한 여자 같아 보이진 않았다. 전문직 여성이거나 모델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손 잡을래?”

“네…….”

찬미는 수줍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황은 찬미의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시내로 나가자 가게들로 거리가 환해졌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과 직장인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지나가면서 찬미를 힐끔 쳐다봤다. 얼굴은 웬만한 연예인보다 예뻤고 몸매는 모델 이상이었으니 거리에서 찬미의 존재가 빛이 났다. 길을 가던 사람들조차 멈추고 찬미를 돌아 볼 정도였다.

이런 일은 찬미, 유미 등과 나갈 때마다 겪는 거라 시황은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시황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점을 찾았다.

대학교 앞거리라 그런지 의외로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고민을 하던 시황은 평범하게 먹을 수 있는 갈비탕 가게로 갔다. 냉면도 팔고 다양하게 파는 이 가게는 나름 맛집인지 저녁시간이 조금 지났음에도 손님으로 가득했다.

찬미가 가게에 들어오자 순간 가게에 정적이 흘렀다. TV에서나 볼법한 그런 엄청난 미모에 밥 먹는 걸 멈추고 쳐다봤던 것이다.

시황은 찬미와 테이블에 앉았다.

가게 직원인 아줌마가 곧바로 물을 갖다 주었다. 시황은 간단하게 갈비탕 두 개를 시켰다. 주문을 받은 아줌마는 잠시 찬미를 응시하다 주방으로 갔다.

“오빠, 여기요.”

찬미가 휴지를 한 장 꺼내 테이블에 깔고 그 위에 수저를 챙겨주었다. 그리고 물을 따라 시황에게 건넸다.

“고마워.”

시황은 웃으며 찬미의 볼을 살짝 꼬집어 주었다.

남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괜히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자지만 저렇게 예쁜 여자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어쩐지 짜증이 났던 것이다.

갈비탕은 금방 나왔다. 반찬과 갈비탕을 테이블에 차린 아줌마는 찬미를 다시 빤히 바라봤다.

“아가씨.”

“네?”

아줌마가 찬미를 불렀다.

“연예인이에요? 어쩜 그렇게 예쁘데?”

“아, 아니요.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갑작스런 아줌마의 물음에 찬미가 당황해 하며 부정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얼굴에 부끄러움이 가득 드러났다.

“연예인해도 될 거 같죠?”

시황이 아줌마한테 말하자 찬미가 더 당황했다.

“정말 연예인 해도 되겠네. 참 예쁘다.”

“제가 어떻게…….”

찬미를 한참 칭찬하고 나서야 아줌마는 돌아갔다. 찬미는 아까 섹스한 뒤에 갑자기 어머니가 들이닥쳤을 때만큼 부끄러워했다.

“정말 연예인 해볼래?”

시황은 찬미에게 물었다. 찬미가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진지하게 도와줄 생각은 있었다.

“아니요. 전 지금처럼 오빠한테 밥 차려주고 집안일 하는 게 좋아요. 연예인하면 오빠하고 같이 못 있잖아요.”

뒤에 말은 작았지만 귀가 좋은 시황은 단번에 알아들었다.

“응? 뭐라고?”

“아, 아니에요.”

하지만 일부러 못 들은 척 다시 묻자 찬미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까부터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던 주변의 남자들은 그런 시황과 찬미의 모습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둘이 웃으며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큰 분노가 생겼다.

시황과 찬미는 갈비탕을 먹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정말 맛집이 맞는지 상당히 맛있었다. 국물의 깊은 맛과 소고기의 부드러움이 일품이었다. 질기기는커녕 씹자마자 고기가 목으로 넘어갔다. 만 오천 원짜리 갈비탕이라 조금 비싸다고는 생각했는데 맛 자체는 대단히 뛰어났다.

갈비탕을 다 먹은 시황과 찬미는 다시 손을 잡고 길거리를 걸었다. 술집이 가득한 대학교 앞거리를 걷다 산책 삼아 옛날 시황이 다녔던 대학교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나 조그만 호수가 나왔다.

호수 근처에 마련된 벤치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찬미가 시황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사귀고 있는 사이 같았다.

“저쪽에 보이는 건물에서 내가 수업을 받았어.”

시황은 나무 너머 보이는 한 건물을 가리켰다. 특별할 거 없는 평범한 대학교 건물이지만 저기서 시황이 수업을 들었다 생각하니 찬미는 어쩐지 신기하게 느껴졌다.

“영어과였는데 정작 영어는 하나도 못했거든.”

“오빠 영어 엄청 잘하시지 않아요?”

의아한 표정으로 찬미가 물었다.

“너한테 배워서 잘해진 거지. 다 찬미 덕분이야.”

뭔가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찬미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걸로 만족했다. 시황을 유미가 잘 되기를 바라긴 했지만 시황을 사랑하는 마음까지는 없앨 수 없었다.

한동안 시황의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얘기했다.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에 얘기를 했고 찬미는 그 얘기를 조용히 들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한심했던 것 같아.”

드래곤의 유산이 큰 힘이 되기는 했지만 옛날에도 노력을 했다면 지금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성과를 냈을 수도 있었다.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을 지금 생각하니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지금의 오빠가 있는 게 아닐까요? 오히려 옛날에 오빠가 엄청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었으면 저랑 만나지도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전 그런 과거가 있는 게 다행인 것 같아요.”

“그런가? 그런데 찬미는 그렇게 내가 좋아? 나도 한심하게 생각하는 과거까지 옹호해주고.”

시황이 웃으면서 물었다.

“……네.”

잠시 머뭇거리던 찬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끄러워하는 게 역력히 보였다. 평소 무뚝뚝해 보이는 찬미가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상당히 귀엽고 예뻤다.

“그러면 날 사랑해?”

“…….”

찬미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시황은 찬미에게 키스를 해주었다. 다른 여자들도 다 좋지만 어쨌든 찬미가 제일 좋았다. 어쩐지 어제 밤에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마지막에 한명을 고르라고 하면 역시 찬미가 아닐까?

어두운 호숫가. 달빛만이 키스를 하고 있는 시황과 찬미를 비출 뿐이었다.

**

다음날 오전에 시황은 찬미, 유미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지방에 있는 집에 갔다 온 뒤로 찬미와 사이가 더 좋아졌다. 유미가 질투를 느낄 정도로 말이다.

방학이 끝나고 찬미와 유미는 물론이고 시황도 대학교에 다시 등교했다. 지금의 시황에게는 대학교 생활이 큰 의미가 없어서 자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다니는 시간 자체가 낭비에다 경험치 부분을 봐도 거의 이득이 없었다.

일단 고민만 한 상태로 시황은 수업을 들어갔다. 개강을 하기 전에 고운에게 연락이 와서 시간표를 거의 같게 맞추었기 때문에 강의실에는 고운과 친구인 보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여기요.”

고운이 시황을 보자 손을 흔들면서 외쳤다. 강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고운을 쳐다봤지만 정작 고운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안녕.”

시황은 고운의 옆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오빠.”

“안녕하세요.”

고운과 보영이 시황에게 인사를 했다. 유미와 같은 나이인 고운과 보영을 보자 파릇파릇한 느낌이 드는 게 시황은 자신이 대학생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오빠, 근데 있잖아요. 이거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응? 뭐가?”

갑자기 고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조용하게 말했다. 시황은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려고 하는 듯한 고운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귀 좀…….”

“응.”

고운은 시황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아주 조용하게 속삭였다.

“그 노을이랑 노래 부른 사람 오빠죠? 저 목소리만 듣고 바로 알았어요.”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