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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네? 아루가 친동생이 아니에요?”
시황의 고백에 찬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미는 피곤한지 잠을 자고 있어서 이 얘기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진작 말하려고 했는데 이제야 말하네. 미안.”
“아니에요. 그걸 말씀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 걸요. 그러면 아루하고 정확하게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혹시 곤란하시면 말씀 안하셔도 괜찮아요.”
찬미는 혹시 시황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게 아닐까 싶어 상당히 조심했다. 부모님이 재혼을 했다든가 아니면 입양한 아이라든가, 어떤 거든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아루가 고아거든. 우리 부모님하고 관계없이 내가 아루를 데리고 와서 같이 지내는 거야. 단 둘이 사는 거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동생이라고 한 거고.”
“아…….”
찬미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루가 고아라니. 몰랐던 사실이었다. 시황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고아인 여자 아이랑 같이 살면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한다고 하면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 찬미는 시황을 잘 알았기 때문에 어떤 마음으로 아루를 보살폈을지 상상이 되었다. 착한 마음씨를 가진 시황이 분명 고생하는 아루를 그대로 두고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군요…….”
찬미는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나중에 집에 가거든 아루에게 더 잘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아루가 찬미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가혹한 환경에서 노예로 살기는 했지만 시황이 아루를 데리고 온 건 성적인 의미였지 불쌍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아루를 데리고 와서 잘 지내고는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동기는 그랬다. 아루를 데리고 와서 시황이 가장 먼저 시킨 게 발로 성기를 문질러 달라는 정말 수준 낮은 행동이었으니까.
“내가 일부러 부모님한테는 아루를 여자 친구라고 했어.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아루랑 나랑 결혼할거라고 알고 계셔.”
시황은 거의 모든 진실을 찬미에게 말했다. 언제까지고 숨길 수 없는 일이고 밝힐 건 밝혀야 후한이 없었다. 이걸 밝히지 않고 부모님끼리 식사를 했다가 아루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정말 곤란해졌을 것이다.
“…….”
“미안. 화났어?”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화를……. 오빠도 어려운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이잖아요. 오히려 이때까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을 오빠를 생각하면 괜히 눈물이 나요. 저한테 이런 거 말씀해주셔서 정말 고마운 걸요.”
“이해해줘서 고마워.”
“오빠는 마음이 정말 착한 것 같아요.”
“응? 내가?”
갑작스런 찬미의 칭찬에 시황이 조금 놀랬다. 여자들을 그렇게 만나서 섹스하고 다니는데 착하다고 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도 의문이었다.
“오빠 주변에 있는 사람들 보면 다 오빠한테 큰 도움을 받았잖아요. 저도 그렇고 아루도 그렇고 은지, 지숙도 그렇고요.”
찬미가 은지, 지숙과 같이 지내면서 시황이 도와준 것에 대해서 얘기를 들은 듯 했다.
“그런가? 내가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거지. 착한 사람은 아니야.”
“세상에는 어쩌다보니 그렇게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걸요.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괜히 저희들이 오빠를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오빠의 그런 점이 매력이에요. 다 저희를 생각해서 도와주지만 아무것도 아닌 척 하는 모습 말이에요.”
“그런 얘기 들으니까 부끄럽네.”
찬미의 계속된 칭찬에 시황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그랬나하고 생각했지만 잘 알 수는 없었다. 이후로도 찬미가 계속 시황을 칭찬해주었고 시황은 계속된 칭찬에 상당히 부끄러워했다. 아루 일을 밝히고 찬미에게 안 좋은 말을 들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찬미의 마음은 시황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듯 했다.
오전 6시가 안 돼서 출발 한 덕분에 11시 전에 도착했다. 먼저 찬미와 유미를 집에 데려다 줬다. 나중에 저녁에 다시 만나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
찬미와 유미를 내려주고 시황은 전에 부모님께 사드린 아파트로 갔다. 지금 시황이 사는 집에 비하면 대단히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아파트였지만 옛날에 살던 집에 비하면 대궐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 엘리베이트를 탔고 부모님이 사는 층으로 갔다. 간만에 집에 돌아가니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부모님이 사는 층에 내려서 벨을 눌렀다.
[어머, 시황이네. 빨리 들어와.]
인터폰 스피커로 익숙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어머니가 나왔다.
“밥은 먹었어?”
시황이 현관문에 들어가자마자 어머니는 밥을 먹었는지부터 물어봤다.
“응. 먹었어. 이거 받아.”
“어머, 이거 뭐니?”
거실에 가서 시황은 어머니에게 종이 가방을 건네주었다. 케즈론 화장품 신제품과 몸에 좋은 케즈론 목욕탕의 물이 담긴 페트병이었다.
“이번에 우리 화장품 신제품 나왔잖아. 그거 가지고 왔어.”
“어머, 이거 엄청 비싼 거 아니니? 우리 아들 정말 성공했다니까.”
어머니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시황이 건네준 종이 가방을 받았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화장품을 꺼내 살폈다.
“비싼 거라 그런지 종이 가방도 고급스럽네.”
“아빠는?”
거실을 두리번거리던 시황은 케즈론 화장품을 뜯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너네 아빠야 카페에서 일하고 있지. 카페에 재미 들렸는지 만날 출근해서 커피 만들고 있다니까.”
당연히 카페 매니저에게 일을 맡기고 쉴 거라 생각했는데 시황의 아버지는 직접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이런 얘기는 전화로 하지 않아서 시황은 오늘 처음에야 알았다. 하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 애써 말릴 이유는 없었다.
“어머, 정말 좋다. 이거 바르면 어디에 효과가 있니? 전에 준 그 화장품 쓰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젊어졌다고 하지 뭐야.”
“그거 바르면 주름 없어져. 오래 바르면 주름이 많이 줄어들 거야.”
시황이 준 화장품은 루카론 열매를 매우 희석시킨 거였다. 루카론 열매의 성분을 그대로 쓴다면 효과가 지나치게 강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오래 써야만 효과를 볼 수 있게 조절했는데 그럼에도 시중에 나온 제품들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주름 개선에 효과가 있었다. 꾸준히만 바르면 TV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그 나이로 보이지 않는 탱탱한 피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향도 참 좋네. 어머어머, 우리 시황이 정말 대단하다니까. 요즘 주변에 사람만 만나면 전부 우리 시황이 얘기 밖에 안 해서 엄마가 얼마나 좋은지 아니?”
“그런 얘기하면 부끄러운데.”
어머니는 화장품을 보며 연신 시황을 칭찬했다. 아까 찬미도 그랬고 어머니한테도 그렇고 칭찬만 받으니 왠지 조금 어색했다.
“시황아, 엄마 아는 사람이 샘플 좀 얻어 달라고 부탁하던데 샘플 조금 줄 수 있니?”
“샘플? 알았어. 올라가면 택배로 보내줄게.”
시황은 가볍게 얘기했다. 부모님에게 샘플 주는 것 정도야 수십 개도 더 줄 수 있었다. 어차피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하는 용도로 쓸 텐데 옛날 자신 때문에 고통 받았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 정도해주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랜만에 우리 시황이도 왔으니까 소고기 구워먹을까? 엄마가 어제 사놨거든.”
“나중에 나가서 저녁 먹을 건데 간단히 먹지 뭐.”
부모님에게 저녁에 나가서 먹을 거라고 미리 말을 해두었다.
“그런데 누구랑 만나서 먹는 거니?”
“찬미랑 유미. 전에 만난 적 있잖아. 근처에 사니까 같이 내려왔거든.”
“아, 걔네 말이구나.”
시황의 말에 어머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조금 있는 것 같았다. 근처에 살아도 꼭 같이 밥을 먹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걔네 부모님하고.”
“으, 응? 부모님도 같이? 혹시 너 우리한테 소개시키려고 하는 거니? 아루는 어떡하고? 아루랑 헤어졌어?”
왠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어머니가 바르게 시황에게 캐물었다. 갑자기 그쪽 부모님하고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한다는 건 결혼 허락을 받으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그 참하고 예쁜 아루하고 어쩌고 갑자기 시황이 이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아루랑 잘 지내니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그냥 같이 식사만 하는 거야. 찬미하고 유미가 날 많이 도와주니까.”
“정말이니?”
“응.”
어머니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듯 시황을 쳐다봤다. 하지만 시황이 아니라니까 더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이제 결혼만 잘 하면 되는데 이때까지 여자 하나 제대로 못 사귀어 본 시황이라 정말 걱정이 되었다. 드라마처럼 괜히 이상한 여자 데리고 와서 집안을 풍비박산 내놓을 까봐 무서울 정도였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시황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카페에 방문했다. 청담동에 있는 카페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손님이 많은 건 마찬가지였다. 카페 케즈론은 청담점과 이제 오픈한 명동점을 제외하면 전국에 유일하게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시황이 처음 카페를 운영했던 곳이기도 해서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아버지와 간단히 얘기도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에 시황은 대학가 주변을 돌아다녔다. 많이 변해있을 줄 알았는데 변한 게 거의 없었다.
시황은 옛날에 다녔던 대학에도 갔다. 방학이라 사람은 많이 없었지만 몇몇 대학생 커플들은 평화롭게 캠퍼스를 다니고 있었다.
서울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 대학에 다녔던 일이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졌다. 시황은 대학교에 있는 호수 근처에 앉아 옛 추억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와 함께 집에 돌아가 저녁 식사를 먹으러 갈 준비를 했다. 근처에 있는 고급 한식당에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오후 5시에 그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찬미, 유미 부모님과 만난다는 걸 알아서인지 시황의 부모님은 옷을 상당히 잘 차려입었다. 부모님을 태우고 한식당에 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예약된 룸에 들어갔는데 찬미와 유미 그리고 그녀들의 부모님이 미리 와 있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험, 반갑습니다.”
부모님들은 간단한 인사를 했고 찬미와 유미도 시황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했다. 시황은 아니라고 했지만 누가 봐도 결혼 상대를 서로의 부모님에게 소개 시켜주는 자리였다.
“이거 쓰세요. 이번 저희 화장품에서 신제품 나왔거든요.”
“이렇게 비싼 거 받아도 될까 모르겠네.”
찬미의 어머니는 시황이 건네주는 화장품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시황이 화장품 CF에 나온 애도 있네. 유미 맞지?”
“네. 오빠 화장품 모델도 하고 CF도 나왔어요.”
시황의 어머니 말에 유미는 평소와 다르게 조신하게 대답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부모님이 앞에 있으니 유미도 평소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유미도 그렇고 찬미도 그렇고 참 예쁘네. 어쩜 둘 다 이렇게 예쁘니.”
“허허. 우리 애들 예쁘긴 예쁩니다.”
시황의 어머니가 찬미와 유미를 칭찬하자 찬미의 아버지가 웃으면서 얘기를 했다. 어쨌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상에 반찬이 차려지고 시황과 찬미의 가족은 식사를 시작했다. 가볍게 웃으며 얘기를 하며 좋은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시황이 이런 자리를 만든 건 부모님에게 자꾸 전화가 올 때마다 아루하고 언제 결혼할 거냐는 말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면 곤란한 상황이 생길 것 같아 아예 찬미와 유미, 그녀들의 부모님을 만나 식사를 하면서 아루 외의 다른 존재를 보여주고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서였다. 부모님의 간섭이라는 건 단순히 알아서 한다고 말해도 해결 되는 게 아니었다. 끈질겨도 정말 끈질겼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괜찮은 여자가 있다는 걸 보여주면 조금 덜해질까 싶어서였다.
“아들 참 잘 키우셨어요. 저렇게 젊은 나이에 벌써 대단한 화장품 회사하고 카페도 차리고. 대단하십니다.”
찬미의 아버지가 시황의 아버지에게 칭찬을 했다. 찬미의 부모님들로서도 시황은 놓치고 싶지 않은 사윗감이었다. 이미 부모님들은 단순 식사 자리가 아닌 결혼을 하기 위한 소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허허. 아닙니다.”
시황의 아버지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찬미와 유미는 연신 시황의 부모님에게 신경을 썼고 식사는 잘 마무리가 되었다.
분위기가 좋았던 만큼 다음에도 또 만나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시황과 찬미의 가족이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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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