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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홍대 거리에 노을의 노래가 퍼져나갔다. 주변에 길을 가던 사람들도 노을이 노래를 상당히 잘 부르자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지하철 입구라 어느새 사람들이 노을의 주변에 둥글게 모여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정체를 밝히지도 않았는데도 이 정도였다. 만약 노을과 은비의 정체를 밝히게 된다면 생각 이상의 사람이 모일지 모르겠다고 시황은 생각했다.
노을의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감사합니다.”
노을이 감사의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공연을 많이 했음에도 이렇게 사람들과 가까이 하는 길거리 공연은 처음이었다. 부끄러움에 가면 속 얼굴이 붉어졌다.
“오, 노래 잘한다.”
“메이드 복 입은 애, 몸매도 괜찮은 거 같은데 얼굴 진짜 궁금하다. 가면 안 벗겠지?”
노래가 끝나자 남자들이 노을의 얼굴을 궁금해 했다. 겉으로 보이는 몸매가 제법 괜찮아 보여 얼굴을 더 보고 싶어 했다.
시황이 마이크를 들고 앞으로 나갔다.
“다들 바쁘실 텐데 부족한 노래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황이 멘트를 했다. 이런 길거리 공연을 할 때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생각처럼 만족스러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부족하지만 다음엔 제가 노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다음 노래를 하기로 했다. 홍보할 생각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그걸 말할 생각은 없었다. 홍보는 은비라는 카드와 함께 꺼내야 했다.
시황은 적당히 유명한 노래 아무거나 틀었다. 전주가 흘러나왔다. 미리 마력 회로를 가동해 노래를 부를 준비를 했다.
전주가 끝나고 시황이 노래를 불렀다.
“와…….”
겨우 첫 소절 불렀을 뿐인데 사람들에게서 큰 감탄이 터져 나왔다. 방금 노을도 잘 부르긴 했지만 시황과 비교하긴 무리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전부 발걸음을 멈추고 시황에게로 모여들었다.
이정도로 노래를 부르는데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더 말이 안 됐다.
“노래 미쳤다. 와, 저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 처음 본다.”
“진짜 대박이다. 저런 사람이 있구나.”
감탄과 함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어 시황을 찍었다. 노을과 은비마저도 시황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주변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떠나는 사람은 없고 모이는 사람만 있었다.
시황의 노래도 마무리가 되었다. 몇 분이 아닌 몇 초처럼 느껴질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와아!”
시황이 노래를 끝내자 사람들이 우레와도 같은 박수를 쳤다. 처음과 비교하면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몰려있었다.
“가면 벗어요!”
어떤 여자가 시황보고 가면을 벗으라고 외쳤다. 하지만 시황은 가면을 벗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미흡한 노래를 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희가 이번에 음악 사이트에 신곡을 내서 여러분께 노래를 알려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노래 뭔데요!”
또 어떤 여자가 소리쳤다. 목청이 얼마나 큰지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여러분 제 옆에 있는 이 여성분들이 누군지 아시나요?”
“몰라요!”
젊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호응이 상당히 좋았다. 시황이 얘기할 때 마다 사람들이 소리치며 대답했다. 사람들이 얼마 없으면 부끄러워서 보통 안 이럴 텐데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몰리다 보니 분위기를 상당히 탄 것 같았다.
“그러면 지금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메이드 복을 입은 분부터 가면을 벗어주세요!”
시황의 말에 사람들이 노을에게 모든 이목이 다 쏠렸다. 사실 시황의 노래가 아니었다면 가면에서 누가 나오든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흥미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을과 시황의 노래가 이어졌고 큰 호응을 받았기 때문에 가면을 쓴 사람의 얼굴이 어떤지 그 자체가 궁금해졌던 것이다. 저정도로 잘 부르면 혹시 유명한 가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노을이 잠시 뜸을 들였다. 고조된 긴장감. 그리고 노을이 가면을 벗었다.
“안녕하세요. 핑크펫의 노을입니다.”
“우와! 노을이다.”
핑크펫이 대단히 유명한 건 아니라도 나름의 인기는 있었다. 노을을 알아본 사람들이 큰 소리를 냈다.
무명의 신인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노을이 나오자 분위기가 상당히 혼란스러워졌다.
“대박. 노을 저렇게 예뻤나?”
“와, 노을 별로 안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실물로 보니까 개쩐다. 메이드 복 엄청 잘 어울리네.”
해가 지고 주위가 어두워졌다. 가로등이 들어오며 거리를 밝혔는데 그 조명 때문인지 노을이 평소보다 더 예뻐 보였다.
“왠지 노을 엄청 꼴릿하지 않냐? 저런 옷 입었는데도 색기가 엄청나네.”
루폴론 메이드 복 때문에 노을을 보고 발기한 사람도 있었다. 노출이 심하지 않은데 왠지 모르게 남자들의 욕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노을과 제가 인터넷 음악 사이트에 사랑의 엇갈림이라는 노래를 냈습니다. 그 노래를 홍보하러 온 건데 저희만 오면 재미가 없잖아요?”
말을 계속 해서 그런지 시황도 슬슬 입이 풀렸다.
“그래서 이 분을 모셨습니다. 가면을 벗어주세요!”
노을이 있는데도 저렇게 말할 정도면 유명 연예인이나 가수일 거라고 사람들이 예상했다. 모든 이목에 은비에게 쏠리고 은비가 머뭇머뭇하다 가면을 벗었다.
“와아! 은비다!”
“정은비다!”
“은비가 나타났다!”
노을 때도 호응이 대단했는데 은비는 그것과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소리를 치자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은비는 마이크를 쥐고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금씩 조용해지자 그제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안녕하세요. 정은비에요. 전 노래하러 온 건 아니에요. 이번에 노을이 노래를 냈다고 해서 절친한 친구니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여기에 왔습니다. 노을과 옆에 있는 분이 부른 사랑의 엇갈림, 정말 좋은 노래니까 다들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유명 연예인답게 은비는 말을 아주 잘했다. 연예인들이 뭔가를 홍보할 때 하는 그런 말투라 평소의 은비다움이 전혀 없었다. 시황은 새삼스레 은비가 유명한 연예인이라는 걸 느꼈다.
“저희의 신곡 사랑의 엇갈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와 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길게 끌고 갈 이벤트는 아니었기 때문에 시황은 빠르게 말을 하고 노래를 틀었다. 시황이 작곡하고 노을이 작사한 사랑의 엇갈림의 전주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첫 시작은 시황이었다.
“오오!”
시황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가지고 온 DSLR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다들 이목이 은비에 쏠려있었는데 시황이 노래를 부르자 큰 감탄이 터져나왔다.
은비가 가면을 벗은 이후로 사람들이 순식간에 불어나 주변에 발 디딜 틈도 없어졌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홍대에 소문이라도 난 건지 계속해서 사람들이 불어나고 있었다. 길거리 공연이 아니라 콘서트라도 하는 듯한 착각이 생길 정도였다.
특별한 춤을 추지는 않았지만 시황이 은비와 사귀는 듯한 동작을 했고 은비도 그에 맞춰 조금 어색하게 움직였다. 어차피 은비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 거였지 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색한 은비의 춤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는지 은비가 춤을 출 때마다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노을은 그런 시황과 은비를 보며 질투하는 듯한 동작을 했다. 노래가 이어지며 사람들은 어느새 노래에 빠져들었다. 다른 행성의 인기 노래를 그대로 따라 만든 반주와 마력 회로를 이용한 엄청난 가창력으로 불러대니 사람들이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가사를 그렇게 지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가사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정작 가사 이상의 일이 시황과 은비 그리고 노을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건 꿈에도 모를 것이다.
이윽고 노래가 끝났다. 길지 않은 노래였지만 이 주변은 지나다니기 버거울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감사합니다. 저희 사랑의 엇갈림 많이 사랑해 주시고요. 저희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가지 마요!”
“앵콜!”
단 세곡. 겨우 온지 20분 조금 넘어서 간다고 하자 사람들이 앵콜을 외쳤다. 열렬한 반응에 시황은 마지막으로 사랑의 엇갈림을 한 번 더 불러주었다.
그 옛날의 시황은 앵콜을 받아 자신이 노래를 부르게 될 거라고는 꿈조차 꾸지 못했을 것이다.
앵콜곡까지 마무리가 되고 이번엔 정말 시황과 은비, 노을이 돌아갈 준비를 했다. 사람들은 또 앵콜을 외쳤지만 계속 여기 있어봐야 좋을 게 없었다. 더 이상 혼잡해지면 아예 여길 벗어나가지도 못할 수준이라 시황은 바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짐을 챙기고 다시 가면을 쓴 노을과 은비가 떠나려고 하자 사람들이 노을과 은비 근처로 다가왔다. 이럴 때 보통 경호원들이 연예인을 보호해주는데 지금은 시황밖에 그럴 역할을 할 사람이 없었다.
시황은 스피커와 앰프 등을 든 채로 노을과 은비를 감싸 주변에 밀려드는 사람들에게서 보호했다. 사람들이 많아 뚫고나가기 힘들어서 그렇지 지나칠 정도로 달려드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떻게 겨우겨우 사람의 무리를 뚫고 빠져 나가 주차장에 있는 차에 탈 수 있었다.
극성인 사람 몇몇이 주차장에도 쫓아왔지만 시황은 무시하고 바로 출발했다.
방금 전에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은비와 노을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한참 지나서야 가면을 벗었다.
“하아, 엄청 무서웠네.”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은비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진짜. 사람들 그렇게 몰릴지 몰랐어. 마지막에 못 빠져나오는지 알았다니까.”
노을도 동의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드니 시황을 놓치고 혼자 고립될까봐 오싹했었다. 다행스럽게 시황이 사람들을 잘 막아줘서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오늘 둘 다 고생 많았어.”
“진짜 고생했지. 너 도와준다고 그 추운데 나가서 춤까지 췄으니까.”
은비가 새침하게 말했다. 아까 그 은비는 사라지고 원래의 은비가 돌아왔다. 시황은 아까 전 적응 안 되는 연예인 은비보다 새침한 은비가 더 좋았다.
“다음에 다 같이 밥이나 먹자. 내가 사줄게. 아, 그리고 그 메이드복은 노을이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입어.”
“네. 알겠어요.”
시황이 메이드 복을 준다고 하자 노을이 순순히 받았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어쩐지 나중에 사랑의 엇갈림으로 행사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은 그때 입을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칭찬하는 말을 직접 들어서 그런지 옷이 조금 마음에 들기도 했다.
시황과 노을이 얘기를 하자 은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야! 너희 집에 나 월요일에 갈 거니까. 알아둬.”
“응. 알았어. 언제 와도 괜찮아.”
“네가 데리러 와야지! 난 운전도 못한단 말이야.”
“하하. 알았어.”
은비가 일부러 월요일에 시황의 집에 간다는 말을 했다. 노을이 아직까지 상당히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은비는 계속 자신과 시황의 관계를 노을에게 어필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노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고 뒷좌석의 창문으로 밤거리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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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는 예고대로 월요일에 시황의 집에 방문했다. 시황이 데리러 오기 몇 시간 전부터 기분이 상당히 들떴는지 계속 문자를 보냈다.
시황은 직접 은비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차에서 내린 은비는 조금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 방에 방문하는 게 의외로 떨렸던 것이다.
과일 바구니를 든 은비는 시황과 함께 집에 들어갔다.
“아, 안녕하세요.”
거실에 제법 많은 사람이 있자 은비는 당황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방학이다 보니 찬미는 물론이고 유미, 아루, 지숙이 거실에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유일하게 은비와 아는 은지는 일하는 중이라 집에 없었다.
“앗! 안녕하세요. 항상 TV에서 잘 보고 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유미가 바로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은비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유미를 시작으로 이어서 찬미와 아루 등도 간단히 인사를 했다.
“이, 이거 드세요. 그리고 제가 그냥 놀러온 건 아니고 모델 일 때문에 왔어요.”
여전히 긴장한 표정의 은비가 과일 바구니를 건네주며 어색하게 모델 일 때문에 왔다는 걸 덧붙였다.
“고마워요. 불편해하지 마시고 편하게 있다 가세요.”
찬미가 가볍게 웃으며 은비에게 말했다.
“우린 방에 들어갈게. 가자. 은비야.”
“으, 응.”
시황은 은비를 데리고 방으로 갔다. 은비의 말대로 단순히 놀러온 건 아니고 모델 일과 관련해서 할 게 있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