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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한 겨울이기는 하지만 젊음의 열기엔 그런 추위 따위 의미가 없었다.
토요일 오후.
시황은 벤틀리 트렁크에 짐을 싣고 노을과 은비에게 입힐 옷을 뒷좌석에 실었다. 홍대에 가기 전에 노을과 은비를 데리러 가야 했다.
지금 출발한다고 연락을 하고 시황은 차를 끌고 노을의 숙소로 갔다. 평소라면 노을이 내려왔겠지만 오늘은 옷을 미리 입고 가야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황은 뒷좌석에 있는 옷과 하이힐 등을 집어 들었다. 이 옷을 가지고 숙소로 가야했다.
저번에 와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트를 타고 올라갔다. 숙소의 현관문 앞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노을이 아닌 핑크펫의 다른 멤버였다.
“안녕하세요. 강시황입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바로 문 열어드릴게요.”
노을이 미리 말을 했는지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내며 핑크펫의 멤버가 대답을 했다. 바로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안 그래도 노을이 기다리고 있어요.”
핑크펫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소호였다. 아까 전에 누구냐고 물을 때와 정 다른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자꾸 냈다.
“죄송합니다. 바쁘다 보니 아무것도 못 사왔어요.”
“괜찮아요.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돼요.”
시황이 현관으로 들어가며 말했고 소호는 손까지 흔들며 괜찮다고 했다.
거실에 가자 거기에 노을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집에 소호와 노을 둘 뿐인 듯 했다.
“안녕하세요.”
“자, 이거 입고 나와.”
노을이 인사하자 시황은 바로 옷을 건넸다. 노을은 시황이 옷을 준비해 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별다른 말없이 바로 옷을 받아들고 방으로 갔다. 시황이 고른 옷이 궁금했는지 노을은 들어가며 옷을 슬쩍 봤다.
“여기 앉으세요.”
소호가 시황을 거실 소파에 앉으라고 했다. 시황이 들어올 때부터 목소리도 변하고 얼굴도 계속 미소 짓고 있었다. 시황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게 누가 봐도 느껴질 정도였다.
“여자 분들만 사는 숙소에 와서 죄송합니다.”
“어머, 아니에요. 언제든지 오셔도 괜찮아요. 음료수나 과자라도 드시겠어요?”
“괜찮습니다. 이제 곧 나갈 거라.”
소호는 과하게 친절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돌 숙소에 언제든 와도 된다는 건 조금 이상했다.
“노래 잘 들었어요. 정말 잘 부르시던데요. 서울대 다니시죠?”
“네? 아, 네.”
뜬금없이 소호가 대학교를 물어봤다. 시황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소파 옆에 앉아서 계속 뭔가를 물으니 시황은 불편했다. 하지만 말없이 어색하게 가만히 있는 것 보단 그나마 이게 나은 것 같긴 했다.
“공부도 잘하시는데 노래도 그렇게 잘하시는 건 반칙 아니에요? 저 정말 노래 듣고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다니까요.”
“하하. 아니에요.”
소호는 확실히 과했다. 지나치게 친절했고 지나치게 칭찬했다. 이정도로 칭찬하니 시황이라도 조금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탈칵.
시황이 한창 소호와 부담스럽게 얘기하고 있는 사이 노을이 옷을 다 입었는지 문을 열고 나왔다.
“어머, 웬일이니. 정말 예쁘다. 옷 엄청 잘 어울려.”
노을이 나오자 소호가 과장된 목소리로 소파에서 일어나며 칭찬했다.
“윽, 어, 엄청 부끄러워.”
노을이 얼굴을 새빨갛게 한 채로 거실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서 옷을 살폈다.
시황이 가져온 옷인 만큼 평범한 옷은 아니었다. 고풍스러우면서 아름다운 메이드 복이었다. 성인 쇼핑몰에서 파는 어설픈 노출용 메이드 복이나 코스프레 쇼핑몰에서 파는 어설픈 코스프레용 메이드 복과 질적으로 달랐다. 고급스러움이 옷에 잔뜩 묻어났다. 메이드 복과 고급이라는 단어가 조금 어색하기는 해도 다른 행성에서는 고급 메이드 복도 제작해서 팔고 있었다.
[디자이너 루폴론의 역작. 메이드 복의 최고봉. 메이드 복을 최고급 패션의 영역으로 이끌어 냈다. 단순하지만 절제되고 세련된 아름다움이 가득한 이 루폴론의 메이드 복은 남성이라면 그 누구라도 욕정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제작되었다. 단 천벌만 제작된 이 메이드 복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키는 신마법 소재로 만들어졌다.]
여자들은 단순히 예쁘다고 하겠지만 남자가 노을의 메이드 복을 보게 되면 자연스레 욕정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헐떡거리며 덮칠 정도로 강렬한 느낌은 아니었고 은근히 야한 사진을 보는 것처럼 은근하게 욕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노출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상의는 가슴을 잘 덮고 있었고 스커트는 무릎의 살짝 위로 와 있었다. 하지만 검은 스타킹과 잘 매치되는 빨간색의 하이힐, 은근히 속살이 비치는 시스루처럼 남자를 자극시키는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잘 어울리네.”
“다른 거 입으면 안 될까요? 정말 부끄러워서 이대로 못 나갈 거 같아요.”
빨간색 하이힐까지 신은 노을이 울상을 지었다. 아무래도 코스프레나 그런 문화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안 부끄러울 수가 없는 옷이기는 했다.
노을은 평범하게 울상을 지었지만 루폴론의 메이드 복 효과 때문인지 묘하게 야릇했다. 왠지 가슴이 묘하게 뛰고 성기가 간지러운 느낌. 취향에 맞는 은근히 야한 사진을 볼 때의 그런 느낌이었다.
이거라면 남자들에게 먹힐 게 분명했다.
“정말 예뻐. 내 생각에는 이 옷을 입으면 노을도 은비처럼 엄청 인기를 얻게 될 걸? 은비가 요즘 부쩍 인기가 많아진 것도 우리 케즈론 카페 유니폼을 입은 뒤잖아.”
“정말요? 그래도 옷이 좀 부담스러워서요. 이런 옷은 처음이라서…….”
시황의 말에 조금 혹했는지 노을이 다시 옷을 살폈다. 여전히 부끄럽기는 했지만 옷 자체는 예뻤다. 특히 머리에 쓴 카츄사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자꾸 보니까 어쩐지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정말이라니까. 이제 가자. 시간 없으니까.”
“네? 그,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
시황은 여전히 망설이는 노을의 팔을 잡고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소호에게 인사를 했다.
“네. 공연 잘하세요.”
소호는 시황을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을 해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차에 탈 때까지도 노을은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시황이 옷을 가져온다고 했을 때 평범한 옷을 가져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메이드 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불안해하는 노을을 데리고 은비의 집으로 갔다. 노을은 차에 두고 시황만 은비의 집에 올라가서 옷을 가져다주었다. 은비는 평범하게 카페 케즈론의 유니폼을 입었다. 금방 옷을 입고 갈아입고 내려왔다.
시황이 운전석에, 은비가 보조석에 탔다. 보조석에 탄 은비는 인사를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뒷좌석에 앉은 노을을 바라봤다.
“어? 옷 예쁘네.”
노을이 메이드 복을 입고 있자 은비가 조금 놀라며 말했다.
“정말?”
노을이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응. 예뻐. 의외로 잘 어울리네. 네 얼굴이랑 잘 맞는 것 같아. 이건 또 몰랐네.”
은비도 칭찬했다. 노을은 이상하다고 느낄지 몰라도 확실히 예쁜데다 노을과 잘 어울렸기 때문에 칭찬을 안 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은비도 어울린다고 하니까 크게 걱정하지는 마. 그리고 노을이 입은 거랑 은비가 입은 거랑 그렇게 차이 나는 옷도 아니야.”
은비가 입은 케즈론 카페의 유니폼도 정상적인 패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맛이 있기 때문에 좋은 거였다.
“네.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죄송해요. 오빠가 신경 써서 가지고 와 주셨는데.”
“충분히 이해하니까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 이제 홍대로 가자.”
대충 노을도 옷을 받아들인 것 같기 때문에 시황은 홍대로 출발했다.
홍대 거리로 벤틀 리가 들어오자 길을 걷던 젊은 사람들이 슬쩍 쳐다봤다. 가격이 가격이니 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좀 끌었던 것이다.
옷을 입고 홍대까지 오느라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아직까지 날이 밝기는 했지만 금방 어두워질 듯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이거 써.”
시황은 은비와 노을에게 가면을 주었다. 눈과 코를 가리는 가면이었다. 이대로 나갔다간 가는 길에 노을과 은비를 보고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곤란을 겪을 게 분명했다. 일단 가는 길까지만이라도 가면을 쓰고 나가야 했다.
무슨 의도로 쓰라고 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은비와 노을은 군말 없이 가면을 썼다. 이 가면도 케즈론의 성에서 가지고 온 거라 인식 저하를 일으키는 마법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이거.”
다음으로 시황이 건네준 푸른색의 목걸이였다. 한겨울 이 추운 날씨에 조금이나마 한기를 막아주는 마법 아이템이었다. 효과가 대단히 뛰어난 건 아니라 여전히 춥기야 하겠지만 그럭저럭 버틸만한 정도는 됐다.
시황도 가면을 쓰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번 공연의 주인공은 은비와 노을이었기 때문에 시황은 평범한 옷을 입은 데다 가면도 벗을 생각이 없었다. 얼굴이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준비를 마치고 시황과 은비, 노을이 차에서 내렸다. 벤틀리에서 가면 쓴 사람들이 내리자 주변에 길을 가던 사람들이 슬쩍 쳐다봤다. 메이드 복과 케즈론 카페의 유니폼만으로도 눈에 띄는데 가면까지 쓰고 있으니 노을과 은비의 정체를 모르더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트렁크에서 앰프와 스피커, 마이커 등을 꺼냈다. 무거운 건 시황이 다 들고 가벼운 마이크만 은비와 노을이 들었다.
젊음의 거리답게 길거리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겨울인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홍대 입구부터 이미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기타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시황은 지하철 입구 쪽에 있는 넓은 길가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다 공간도 제법 넓었다. 자리를 잡고 도구를 세팅하자 벌써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었다. 단순히 은비와 노을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잡아 끈 것이었다.
“아, 어색해. 넌 안 부끄러워?”
이렇게 공연을 하는 건 처음이라 옆에 있는 은비에게 노을이 슬쩍 물었다.
“조금 어색하기는 한데 나름 재밌을 거 같아. 나야 노래도 안 부르니까 부담도 덜하고.”
은비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단순한 얼굴마담이지만 노래에 맞춰서 시황과 풋풋한 사랑을 나누는 간단한 동작정도는 해야 했다. 이런 것들도 이미 사전에 다 맞춰보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건 아니라서 좀 어색하기는 했다.
사람들이 은비와 노을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인식 저하 마법이 걸린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은비와 노을을 알아보지는 못하고 단순히 옷과 몸매에 대해서만 수군거리며 얘기하고 있었다.
“저 옷 메이드 복 아냐? 평소에 보던 거랑 좀 다르긴 한데 예쁘긴 예쁘다.”
“야, 저런 옷 입어도 쟤처럼 몸매가 받쳐줘야 예쁜 거지. 근데 쟤 가면 쓴 거 보면 몸매만 예쁘고 얼굴은 별로인 거 아닐까?”
인식 저하 마법 때문에 케즈론 카페의 유니폼을 입은 은비보다 노을에게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옷이 워낙 예쁘기도 했지만 메이드 복이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튀었던 것이다.
노을은 그런 분위기를 알았는지 부끄러움에 얼굴을 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황이 세팅을 마쳤다. 노래 준비도 했고 마이크도 제대로 잘 나왔다. 먼저 노래를 부르기 전에 간단한 리허설부터 해야 했다. 한곡만 부르고 바로 떠나면 사람들이 안 모이니까 시간을 조금 끌 필요성이 있었다.
노을이 먼저 핑크펫의 노래를 한곡 부르기로 했다. 시황이 복사해준 마력 회로 덕분에 노을은 노래 부르는데 조금 자신감이 생긴 상태였다.
시황이 핑크펫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노래를 틀었다. 가장 유명해도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웬만한 젊은 사람은 알만한 노래였다.
값비싼 스피커에서 깔끔한 음질로 음악이 흘러나오고 노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력 회로가 가동되자 노을의 발성부터 달라졌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