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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361화 (629/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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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손을 잡은 채로 코엑스에 갔다. 특별히 볼 건 없었지만 이렇게 같이 손을 잡고 돌아다닌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대충 코엑스를 둘러보고 옆에 있는 백화점에도 갔다. 시황은 평범한 남자답게 백화점에 가봐야 할 것도 없고 보고 싶은 것도 없었지만 노을이 은근히 가고 싶어 하는 눈치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뭐, 살 거 있어?”

“그냥 구경 좀…….”

노을의 머뭇거리며 조그맣게 대답했다. 아까 이후로 왠지 시황을 마주 보기 부끄러워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시황과 노을은 백화점 1층을 둘러봤다. 1층에는 보통의 백화점이 다 그러하듯 다양한 명품 매장과 화장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노을이는 어떤 명품 좋아해?”

“네? 전 명품 안 사요. 너무 비싸서요.”

“그래? 연예인들은 명품 많이 사지 않아?”

“전 아직 돈을 많이 못 벌어서 더 열심히 해야 돼요. 제인이는 개인일이 많아서 저랑 다르긴 하지만요.”

노을의 말을 들어보니 아직까지 큰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핑크펫 정도면 나름 수입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듯 했다.

1층을 대충 둘러보고 2층으로 갔다. 2층에는 주얼리 매장이 많이 있었다.

“커플링 맞출래?”

주얼리 매장을 보기 전엔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주얼리 매장을 보자마자 커플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네? 커, 커플링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연인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일단 아무데나 들어가 보자.”

시황은 머뭇거리는 노을을 데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아무 매장이나 대충 들어갔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커플링 좀 보려고요.”

“아, 커플링이요. 커플링은 이쪽에 보시면…….”

시황과 노을은 직원을 따라 가서 유리 안에 있는 다양한 커플링 반지들을 봤다.

“마음에 드는 거 골라봐. 돈은 내가 낼 테니까.”

“아니에요! 오빠. 그러면 제가 죄송해서…….”

노을은 갑자기 강력하게 거부하다 시황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난 괜찮은데. 어차피 얼마 하지도 않고.”

시황과 노을이 보는 반지의 가격은 대략 10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였다. 아무데나 들어온 건데 매장이 고급스러운 만큼 반지 가격이 상당했다.

가격이 가격이다 보니 노을은 더 미안한 마음에 계속 자기도 돈을 내겠다고 했다. 노을이 돈을 내면 오히려 시황이 미안해져서 뭔가 거래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러면 일단 반지는 내가 사고 너는 다른 걸 선물해줘. 어때?”

“……네. 그러면 제가 꼭 가격 비슷한 걸로 선물해 드릴게요.”

유미라면 당장에 골라서 샀을 텐데 노을은 이런 부분에서 이상할 정도로 완고했다. 어쨌든 합의를 봤기 때문에 노을은 조금 머뭇거리면서 반지를 고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골라도 되나 하는 표정이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마음에 드는 반지를 확실히 고르기 시작했다.

시황의 눈에는 다 비슷비슷해 보였는데 노을은 한참을 고심해서 반지를 선택했다. 노을이 선택한 반지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가운데 조그맣게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는데 가격은 대략 200만 원 정도였다.

시황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 얼마 안 되는 돈이었지만 노을은 지나치게 비싼 걸 고른 것 같아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반지를 구입하고 매장을 나왔다. 포장은 나중에 풀기로 하고 백화점을 조금 더 돌아다녔다.

밤에 잠을 자지 않아도, 그 어떤 노동을 해도 피곤해 하지 않는 시황이었지만 여자들의 아이쇼핑을 따라다니는 건 그 시황조차 심신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냥 지나가도 될 곳을 느닷없이 멈춰서 옷을 몇 번 들춰보고 천천히 확인한 뒤에 다시 걷는 패턴의 반복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그나마 노을은 시황을 생각해서 적당히 보고 아이쇼핑을 마무리했다. 제대로 옷을 입어보면서 하는 쇼핑은 얼굴이 들키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고 지금은 눈으로 훑어보기만 했다.

주차장에 돌아와 차에 탑승했다.

시황은 기지개를 켜고 싶은 걸 참으며 아까 산 커플링 가방을 노을에게 건네주었다.

노을은 포장을 뜯고 커플링을 꺼냈다.

“줘봐. 끼워줄게.”

“네…….”

시황은 부끄러워하는 노을에게서 반지를 받아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줬다. 노을도 마찬가지로 시황에게 반지를 끼워줬는데 상당히 부끄러운지 어두운 주차장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런데 노을은 왼손 약지에 끼면 팬들이 의심하지 않아? 아이돌 팬들은 그런 거에 민감하잖아?”

“아, 맞다. 아마 의심할 것 같아요. 어쩌죠?”

노을은 그 생각을 못했는지 상당히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오른손 약지에 끼면 되지. 이러면 팬들이 의심 안 하겠지?”

시황이 노을의 왼손을 잡고 반지를 뺀 뒤에 오른손 약지에 다시 끼워줬다.

“네. 오른손을 괜찮을 것 같아요. 제인도 오른손 약지에 반지를 끼고 있거든요. 죄송해요. 기껏 사주셨는데…….”

“괜찮아. 노을은 아이돌이니까 스캔들 같은 거 조심해야지. 그리고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커플링인 건 마찬가지니까.”

“……그렇구나.”

시황의 말에 노을이 상당히 부끄러워하며 수긍을 했다.

“오빠. 제가 어떤 거 사드릴까요?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그건 나중에 같이 생각해보자. 지금 크게 급한 건 아니니까.”

시황은 정말 아무것도 안 받아도 상관없는데 노을은 뭔가를 꼭 사줘야 한다는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필요 없었는데 꼭 사준다면 적당히 커플 티 같은 걸 사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 반지로 포즈 취해봐. 이런 건 사진을 찍어둬야지.”

“부끄러…….”

시황의 부탁에 노을은 부끄러워하면서도 목도리를 벗지 않은 채로 포즈를 취했다. 반지를 낀 손을 얼굴까지 들어 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시황은 휴대폰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네 폰으로도 찍어줄까?”

“네. 제 걸로도 찍어주세요.”

노을에게서 폰을 건네받은 시황은 사진을 찍어주었다. 폰을 돌려받은 노을은 말 없이 시황의 모습을 찍었다.

“이제 돌아가자.”

오늘의 데이트는 이쯤하고 시황은 노을을 숙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감사합니다.”

“응. 들어가. 나중에 문자할게.”

시황이 떠나고 노을은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14층을 누르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슬금슬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시황과 데이트를 하면서 점점 더 호감이 생겨서 정말 시황을 좋아하는 건가 긴가민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까지 되었다. 이건 호감이 증가했다는 거지 좋아한다는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시황을 보기 힘들 정도로 긴장이 됐다. 이 느낌은 마치 시황을 짝사랑하게 된 것만 같았다.

띵동.

“가짜긴 해도 사귀고 있는데 짝사랑이라니 뭔가 이상하잖아.”

엘리베이터가 14층에 도착하자 도착음이 울렸고 동시에 노을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노을은 바로 숙소로 갔다. 그렇게 크지 않은 숙소지만 새로 생긴 걸그룹에 비하면 대궐과도 같은 곳이었다.

“노을 왔어? 너 요즘 바쁘다?”

거실로 가자 TV를 보고 있던 같은 멤버이자 큰 언니인 소호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노을을 쳐다봤다.

“그러게. 쉬는 날만 되면 누굴 만나는지 오후에 나갔다 밤에 오네.”

옆에 있던 제인도 의심을 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난 좀 씻을게.”

“잠깐!”

노을이 피곤한 얼굴로 방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제인이 소리쳤다. 그리고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노을에게 오더니 오른손을 잡아서 들어올렸다. 제인의 눈은 정확하게 방금 시황이 사준 커플링에 고정되어 있었다.

“언니, 이거 봐. 약지에 아까까지 없던 반지가 있어.”

“대박. 진짜네.”

소호도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전광석화 같이 다가왔다.

“왜, 왜 이래. 나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쉴래.”

“어허, 이 반지의 정체부터 말해야지. 이거 느낌이 커플링 같은데? 오른손에 낀 건 안 들키려고 그런 거 같고.”

노을은 제인의 손을 뿌리치고 들어가려 했지만 제인은 놔주지 않고 반지를 계속 살펴보며 완벽한 분석을 했다.

“내가 산거야. 반지가 없어서. 내가 커플링을 왜 해.”

“거짓말. 이거 엄청 비싼 브랜드 반지잖아. 몇 백만 원 하지 않나? 돈 아까워서 그런 건 하나도 안 사는 애가 갑자기 이런 고가의 반지를 산다? 솔직히 말하시지?”

노을은 대충 넘기려고 한 거짓말이 제인에게 전부 들통 나자 조금 당황하기 시작했다. 제인이 이런데 관심이 많아서 인터넷으로 매일 찾아본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 사람이지? 케즈론 화장품 사장? 그 비싸 보이는 목도리도 그 사람이 준거지? 뻔하지.”

“아, 아닌데…….”

노을은 설마 소호가 정확하게 맞출지 몰라 정말 당황했다. 아니라고는 말했지만 누가 봐도 진실을 들켜서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박이다. 야, 너 완전 부럽다. 어떻게 사귀기 시작한 거야? 전엔 그런 기미가 전혀 없었는데.”

“너 조심해. 기자들한테 들켜서 기사화라도 되면 엄청 피곤해지니까. 근데 진짜 부럽긴 하다.”

제인과 소호가 시황과 노을이 사귀는 걸 확신하자 빠르게 한마디씩 했다. 둘 다 얼굴에 부러움이 가득했다.

“몰라. 하여튼 난 들어갈래.”

노을은 제인의 손을 뿌리치고 방으로 갔다. 목도리를 풀어서 옷걸이에 걸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제인과 소호 때문에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저 둘이야 원래부터 몰래 연애를 해왔으니까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닐 걱정은 없었다. 그저 시황과 가짜로 연애하는데 진짜라고 생각하는 게 민망한 게 문제였을 뿐.

“씻고 쉬어야겠다.”

옷을 벗고 욕실에 가서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씻으니 몸이 나른해진다.

방으로 돌아와 추리닝으로 갈아입은 노을은 컴퓨터를 켜서 자신의 SNS에 접속했다. 노을은 SNS에 글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좋아했다. 우울하거나 걱정이 있을 때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으면 그나마 기분이 풀리곤 했다.

지금 왠지 조금 우울해져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조금 받고 싶었다.

잠깐 고민을 하던 노을은 SNS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

지금의 마음을 나타낸 글이었다. 시황만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다가도 답답해진다. 아까 전에 시황의 품에 안겼을 때 느꼈던 그 야릇한 감정의 정체도 모르겠고 짝사랑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 옥죄는 가슴의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정말 시황을 좋아하는 걸까? 만약 정말 시황을 좋아하게 된다고 해도 어차피 사귈 확률은 0%에 가까웠다. 지금이야 이유가 있으니 시황이 사귀는 척이라도 해주는 거지 이 일만 끝나면 그걸로 끝일 게 분명했다.

“하아…….”

한숨을 내쉰 노을은 시황이 사준 반지를 만지작거리다 작성한 글을 SNS에 올렸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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