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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359화 (359/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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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좋아. 지금부터 노력해서 해보자. 만약 불편하거나 그만 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알겠지?”

“네. 알겠어요.”

이제야 조금 수월해질 것 같았다. 시황도 노을을 최대한 진짜 연인이 된 것처럼 사귀어볼 생각이었다. 잠재된 감정을 최대한 이끌어내서 감수성 있는 가사를 쓰고 싶었다.

“먼저 영화부터 보러 가자. 좋아하는 영화 있어?”

“아니요. 아무거나 잘 봐요. 무서운 것만 빼고요.”

시황은 강남에 있는 영화관에 가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아까 목도리 두르려다 말았지? 내가 다시 둘러줄게.”

“네? 아, 알겠어요.”

아까 전엔 사양했던 노을이 확실히 마음을 다잡았는지 이제는 허락해주었다. 하지만 눈가가 살짝 떨리고 긴장하는 걸 보면 이 상황이 긴장되고 익숙하지 않은 듯 했다.

시황은 노을이 두르고 있는 목도리를 풀었다. 목도리에 감추어져있던 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온 몸을 꽁꽁 싸매고 있어서인지 노을의 성감대가 목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더 목이 예뻐 보였다.

“이건 내가 두르고 다녀도 되지?”

“지금요?”

“응. 내건 노을이 하고 노을 건 내가 하고. 서로 선물로 주는 걸로 하자. 비싼 거라 곤란해?”

“아니요. 그거 엄청 싼 거예요. 오히려 오빠가 준 게 비싼 거라 제가 미안해서요.”

“노을이 착용한 것만으로도 비싼 거지.”

시황의 말에 노을이 부끄러워했다. 시황은 얼굴이 조금 상기된 노을의 목에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그런데 목도리를 거의 안 하다 보니 어떻게 둘러야 하는지 몰라 노을이 직접 두르다시피 했다.

“풋. 오빠 목도리는 잘 못 두르네요. 오빠 것도 제가 해드릴게요.”

“미안. 다른 사람한테 해주는 건 처음이라서.”

노을은 방금까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시황에게 둘러주었다. 처음에는 엄청 어색하기만 했는데 평소에 보지 못한 시황의 약한 부분을 보자 묘한 동질감에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완벽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과 같은 인간이긴 인간이었다.

목도리를 서로 두른 시황과 노을은 차에서 내려 영화관 예매층으로 갔다. 노을은 시황을 따라 같이 나오기는 했는데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고개를 숙이고 엄청 긴장하면서 걸었다.

“아무도 못 알아차릴 테니까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 온 건 오랜만이라…….”

마법 아이템에 대해 알 리가 없는 노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긴장을 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요즘 인기 있는 영화를 골라서 예매했다. 시작까지 대략 40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시황과 노을은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잠시 쉬었다.

“뭐 마실래? 커피?”

“저는 오빠 카페 아니면 커피 안 마셔요. 그냥 따듯한 레몬티 마실래요.”

아무거나 대충 마시는 시황은 추운 겨울인데도 딸기 스무디를 사서 노을과 함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아까에 비해 노을은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약간은 편해진 표정으로 레몬티를 홀짝였다.

“긴장돼?”

“네. 엄청요. 이런 경험도 처음이고 사람들 많은데 있는 것도 떨려요.”

“사실 나도 엄청 긴장되거든. 천천히 적응해가도록 노력해보자.”

“네…….”

시황은 그다지 긴장하진 않았지만 긴장된다고 말은 그렇게 해주었다. 시황은 오히려 어떻게 하면 처음 사귀는 연인 같을까 고민을 했다.

“앞으로 자주 만나서 데이트 하자. 놀이공원 같은 데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시간이 나면……. 그렇게 할게요.”

“응. 내가 밤마다 문자도 보내줄게. 원래 연인끼리는 문자도 자주하고 전화도 하잖아?”

“전 잘 모르겠어요…….”

정말 사귀는 사이라면 어색하더라도 서로의 애정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노을에게는 어색함과 시황을 연인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압박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말로는 연인처럼 하겠다고 해도 역시 제대로 된 마음이 뒤따라오지 않으니 남는 건 어색함 밖에 없었다.

시황은 노을의 마음을 대충 알았기 때문에 급하게 하지 않고 천천히 그런 감정이 생기도록 노력할 생각이었다. 지나치게 돌아가나 싶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재능 없는 자신에게서 제대로 된 가사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영화 시간이 다 돼가자 시황과 노을은 영화관에 가서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평일이기는 했지만 방학 기간이라 그런지 주변에는 남녀 커플들이 대부분이었다.

광고가 나오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인기 영화이다 보니 나름 재미는 있었다.

시황은 슬쩍 노을을 바라봤다. 노을은 제법 재미가 있는 건지 상당히 영화에 빠져있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남자가 긴장을 하면서 여자 손을 잡으려고 하기 마련이지만 시황은 얌전히 앉아서 영화만 볼 뿐이었다. 그런 행동도 서로 어느 정도 호감이 있어야 하는 거지 지금처럼 어색한 사이에 그랬다가는 더 어색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영화를 다보고 나와서 저녁밥을 같이 먹었다. 시황에게는 대단히 좋은 음식점에 갈 돈은 있었지만 무난하게 평범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피곤해?”

“아니요.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아요. 오늘은 쉬는 날이고 일도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요.”

“그래?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너무 오래 놀면 피곤하니까.”

오늘 당장 뭔가를 한다고 될 리가 없었다.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천천히 익숙해지고 애정이 서서히 생기게 만들어야 했다.

“네……. 목도리 감사해요. 잘 쓸게요.”

“그거 쓸 때마다 내 생각할거지? 나 하고 만날 때는 그 목도리 항상 하고 와야 돼.”

“새, 생각해보고요.”

노을이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지금은 처음 사귀는 연인다운 반응을 조금 보였다. 여전히 어정쩡하지만 처음 보단 나아진 것 같았다.

“다 먹었으면 가자. 숙소까지 데려다 줄게.”

시황은 노을을 숙소 앞까지 데려다 줬다. 가사를 짓는데 생각보다 일이 커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 재능이 없어서 그런 걸.

**

연인인 척 하기로 한 이후로 시황과 노을은 꾸준히 만나 데이트를 했다.

그 동안에 케즈론 화장품은 꾸준히 팔렸고 경매로 번 돈이 통장에 입금되었다. 돈이 생긴 시황은 진아에게 부탁해서 청담동에 괜찮은 건물과 집을 지을 괜찮은 땅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옛날과 전혀 다른 시황의 사정상 노을과 연인인 척 한다고 해서 그거에 모든 신경을 다 쓸 수가 없었다. 노을과 데이트를 하면서 일을 하기도 하고 찬미와 은비 등과 골고루 섹스를 하기도 하느라 상당히 바쁜 상태였다.

처음엔 만나서 소소하게 놀았다. 서울에서 못 가본 관광명소를 가본다든지 여의도 한강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한다든지 정말 평범한 연인처럼 지냈다. 그 덕분에 노을은 엄청 긴장했던 초기와 다르게 점점 편해졌고 만나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시황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후 3시.

평소처럼 시황은 노을의 숙소 앞에서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아파트에서 노을이 나와 곧바로 시황의 차에 탔다.

“오빠 안녕하세요.”

“응. 안녕.”

노을은 이제 자연스럽게 시황이 준 목도리를 풀고 입고 있던 코트를 벗었다. 차 안이 따듯하기 때문에 옷을 두껍게 걸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오빠. 오빠.”

“응?”

코트를 벗자마자 노을이 뭔가를 얘기하려고 했다.

“방금 큰일 날 뻔 했어요.”

“무슨 일 있었어?”

“이제 언니들이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얼마 전부터 그런 느낌이 있기는 했는데 오늘은 나오려니까 남자 친구 만나러 가냐고 엄청 캐묻지 뭐에요. 바쁘다고 하고 대답도 안 하고 나왔는데 조금 걱정이기는 해요.”

“나랑 사귄다고 해.”

“네? 정말요?”

어떻게든 숨기라고 말할 줄 알았던 시황이 스스럼없이 사귀고 있다는 걸 말하라고 하자 노을은 조금 감동받았다. 그것도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말해줬다는 게 더 감동이었다. 비록 가짜로 사귀는 거긴 하지만 시황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괜히 가슴이 울렁거렸다.

“계속 숨기면 노을이 힘들잖아?”

“전 괜찮아요. 오빠한테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까 최대한 노력해볼게요.”

“그래. 노을이 편한 대로 해. 어? 근데 머리 잘랐어?”

“네. 끝에만 조금 잘랐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평소 노을은 어깨정도까지 오는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보다 미묘하게 길이가 줄어들어 있었다. 시황이 아닌 평범한 남자라면 절대로 눈치 채지 못할 작은 변화였지만 항상 노을의 목덜미를 훑어보던 시황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냥 보면 알지. 어디 갈까?”

“노래방 갈래요? 오빠 노래 실력 보고 싶어요.”

“그래. 노래방으로 가자.”

시황은 노을이 원하는 대로 근처에 있는 노래방으로 갔다. 확실히 노을이 이전보다 시황을 대하는 게 편해지긴 편해진 듯 했다.

노래방에 도착하고 먼저 한 시간만 결제했다. 시황과 노을은 종업원이 가르쳐 주는 방으로 들어갔다.

“하아……. 긴장했다.”

노을은 목도리를 풀고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시황과 만나는 건 이젠 괜찮았지만 바로 눈앞에서 사람들과 마주보는 건 여전히 긴장되는 일이었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자 1시간이 충전되었고 조명이 꺼지며 방이 어두컴컴해졌다. 노을은 어두운 방을 슬쩍 둘러보다 시황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시황이 가볍게 웃어줬는데 노을은 가슴이 왠지 찌릿하는 느낌을 받았다.

“노을 먼저 불러.”

“그러면 전 저희 그룹 노래 먼저 부를게요.”

여전히 가슴이 조금 욱신 했지만 노을은 침착하게 핑크펫의 노래를 선택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자기 그룹의 노래인지라 상당히 매끄럽게 부르기 시작했는데 노래를 대단히 잘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노을의 노래가 끝나고 이어서 시황이 노래를 불렀다. 평소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서 예전에 유투브에 올렸던 천만년의 사랑을 불렀다.

마력 회로를 가동한 상태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은 노을조차 입을 벌리고 들을 정도였다. 단순히 잘 부른다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엄청난 가창력이었다.

노래를 완창하고 점수가 나왔는데도 노을은 중간에 노래를 찾을 생각조차 못하고 듣고 있었다.

“괜찮았어?”

“오, 오빠 이렇게 노래를 잘 했어요?”

“요즘 노래를 안 불러서 좀 못 부른 거 같은데, 나쁘진 않았나보네.”

“오빠 그 정도면 가사 대충 짓고 불러도 아무 문제없을 것 같은데요. 아니아니, 그 전에 오빠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면 제가 너무 비교가 돼서 안 될 것 같아요.”

설마 시황이 저 정도까지 노래를 잘할 거라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노을은 충격에 빠져있었다. 이대로 시황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가는 자신만 비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농담은. 자, 빨리 다음 노래 불러봐.”

“정말인데…….”

시황의 재촉에 노을은 어쩔 수 없이 다음 노래를 골라서 불렀지만 시황이 준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아까 전과 비교해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노래를 못 불렀다. 이대로라면 비웃음거리도 비웃음거리지만 시황에게 폐만 끼칠 것 같아 노을은 같이 노래 부르는 걸 사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노을은 중간에 취소버튼을 눌러서 노래를 종료시켰다.

“오빠. 죄송해요. 정말 전 안 될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해요.”

노을은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시황과 이렇게 실력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이런 시황과 비록 가까라 해도 연인인 척 한다? 그건 스스로가 참기 힘들었다.

“갑자기 왜 그래?”

“죄송해요. 같이 하면 오빠한테 폐만 끼칠 것 같아요.”

기어코 노을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볼을 타고 흘렀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시황도 상당히 당황했다. 일단 시황은 노을의 옆 자리에 가서 노을을 바라봤다.

여기서 노을에게 ‘너도 충분히 잘해.’ 같은 위로를 해봐야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괜한 말을 했다가는 노을이 더 상처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시황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이때까지 노을과 만나며 의외로 풋풋한 사랑이라는 느낌이 그다지 안 살았기 때문에 이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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