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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요즘 트렌드에 잘 맞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물론 이 트렌드는 시황이 기준이라 현실은 다를 수 있긴 하겠지만 음 자체로 보자면 상당히 좋기는 했다.
노을은 진지하게 노래를 들었다. 시황이 작곡을 한다고 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외로 상당히 매력적인 노래가 흘러나왔다. 뭐라 잘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한번 듣자마자 음이 뇌리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단순 반복도 아닌데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노을은 노래를 들으면서 어떤 식으로 노래를 불러야할지 대충 머릿속으로 그렸다.
2분쯤 듣고 시황은 노래를 껐다.
“어때? 괜찮은 거 같아?”
“네. 아직 가이드도 안 나와서 확실히 말하긴 어렵지만 제가 듣기엔 상당히 좋은 것 같아요. 노래만 잘 부르면 의외로 잘 될 수도 있겠는데요?”
“노을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자신감이 생기는데?”
시황은 조금 안심했다. 이런 건 처음해보는 거라 조금 불안하기는 했다. 시황은 스스로가 예술 쪽 재능은 아예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이게 안 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다른 노래 찾아서 만들면 되기는 했지만 가능하면 빠르게 노래를 흥행시키고 경험치를 받아먹고 싶었다.
“제가 아이돌 가수이기는 하지만요. 노래도 잘하는 편이 아니고 춤도 잘 못 춰서 오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이에요.”
“노을이 나한테는 과분하지. 하하.”
똑똑.
둘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중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오빠 들어가도 괜찮아요?”
“응. 들어와.”
문이 열리고 찬미가 과일과 음료수를 가지고 들어왔다. 손님이 와서 준비해온 것 같았다. 찬미가 과일을 들고 오는 걸 보고 노을이 급하게 일어나서 받아왔다.
“감사합니다.”
“편하게 얘기 나누세요.”
노을이 감사하다 말하자 찬미가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찬미라고 노을이라는 저 아이돌 가수가 신경 안 쓰이는 건 아니었다. 설마 저 여자도?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마음을 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찬미가 나가고 잠시 침묵이 생겼다.
“먹어. 딸기 맛있더라.”
“아, 네. 감사합니다.”
시황의 말에 노을은 딸기를 집어서 그대로 먹었다. 그에 비해 시황은 딸기를 설탕에 찍어서 먹었다. 입맛이 어린건지 딸기 자체보다 설탕에 찍어먹는 걸 좋아했는데 찬미는 그런 시황의 입맛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설탕하고 같이 가져다주었다.
“이제 가사를 만들어야 하거든. 노래 듣고 대충 떠오른 이미지 있어?”
“음……. 경쾌한 노래니까 사랑 얘기를 재밌게 풀어나가는 건 어떨까요?”
“재밌게? 예를 들자면?”
“그, 그게……. 으음…….”
노을은 괜찮은 이야기를 생각해내려고 끙끙거리며 고민을 했다. 천장을 바라보면서 묘한 소리를 내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다.
“죄송해요. 제가 아직 경험이 없어서 지금 바로 생각이 안 나네요.”
“괜찮아. 같이 생각해보면 되지.”
시황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며 노을의 정보를 다시 살폈다.
[강노을]
[나이 : 22세]
[키 : 163.4cm]
[몸무게 : 48kg]
[가슴 사이즈 : 75A]
[섹스 횟수 : 없음]
[임신 여부 : 안함]
[성감대 : 목]
전에 만나서 확인한 이후로도 여전히 섹스경험은 없었고 아이돌답게 키에 비해 몸무게가 별로 안 나갔다. 그래서인지 가슴도 작았다. 지금 슬쩍 보기엔 B컵은 돼 보이는데 보형패드의 힘이 아닌가 싶었다.
“으음…….”
노을은 뭔가 계속 생각하려고 노력했지만 정말 경험이 없어서 그러는 건지 한참을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러면 이렇게 해보자.”
“네? 어떻게요?”
시황이 뭔가 생각난 것 같자 노을은 궁금한 표정으로 시황을 바라봤다.
“사랑해.”
“네?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을…….”
“널 사랑하게 된 것 같아.”
갑작스러운 시황의 사랑 고백에 노을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순간적으로 언니들이 해준 말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황이 관심이 있어서 자꾸 문자를 보내는 거라고 했는데 정말로 시황이 자신의 방에서 사랑 고백을 할 줄이야.
“죄, 죄송해요.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이런 식으로 나한테 고백 받아서 사귀는 걸 상상해보는 거야.”
노을은 지나치게 갑작스러운 일이라 일단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려했다. 그런데 노을이 말을 꺼내는 것과 동시에 시황이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네?”
당황한 노을이 바로 되물었다.
“응? 설마 내가 진짜 사랑 고백 했다고 생각한 거야? 하하.”
“아, 아니요. 그,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정말 그런 생각 하나도 안 했어요.”
노을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극구 아니라고 부인했다. 가사에 관계된 얘기인데 정말 사랑 고백을 했다고 착각하다니.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그런 고백을 하면 누구나 사랑 고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도.
“미안. 미안.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우리가 서로 사귄다고 생각하면 좀 더 쉽게 가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한 말이야.”
“오, 오해 안 했어요. 화,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면 가사가 조금 더 쉽게 써지긴 하겠네요.”
노을은 아직까지 당황스러운지 말을 조금 더듬고 약간 흥분을 하며 말했다.
“으음, 나랑 사귄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가봐? 반응이 너무 격렬한데.”
“아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순간 조금 당황했을 뿐이에요. 하여튼 빨리 가사부터 생각해보죠. 오빠랑 저랑 사귄다고 생각해보라고요? 알겠어요. 생각해볼게요.”
노을은 당황하면 말이 빨라지는 타입이었다. 노을은 뭐가 뭔지도 모르는 말을 내뱉고는 가사를 생각하는 척 했는데 아까 전 일 때문에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시황은 그저 가사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건데 오해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그 순간이면 누구나 그런 착각을 했을 것이다. 혹시 이건 시황이 고백 아닌 고백을 해서 자신의 의중을 떠보려고 한 걸까? 노을은 가사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방금 전 일만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말 나온 김에 처음 사귄 남녀의 풋풋한 사랑을 가사로 써보자. 곡이랑 잘 어울릴 거 같지 않아?”
“네? 네. 어울릴 거 같아요.”
“방금 네 반응도 가사에 넣자. 처음 고백한 날, 넌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지. 이런 식으로.”
“엑? 그걸 넣게요? 그리고 당황 안 했거든요.”
“하하. 그냥 가사일 뿐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마.”
“아, 네…….”
노을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지만 가사일 뿐이라는 말에 수긍하고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더 부인해봐야 진짜 당황했다는 걸 밝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으음, 집에서 생각하려니까 뭔가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네. 노을이는 어때?”
“저도 좋은 가사가 잘 안 떠올라요.”
방금 일 때문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가사가 잘 안 떠오르기도 했다. 사랑이라는 걸 안 해봐서 그런지 가슴에 박히는 가사가 없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거라곤 ‘널 사랑해. 나의 모든 걸 줘서라도.’ 같은 진부하고 유치한 가사 뿐이었다.
“안 되겠다. 나가자.”
“네?”
“나가서 데이트라도 하면 가사가 떠오르지 않을까?”
“데, 데이트요? 또 놀리는 거죠?”
“응? 아니. 이때까지 놀린 적도 없는데. 일단 나가서 한강을 가든 노래방을 가든 밥을 먹든 나가서 같이 뭔가를 해보자.”
시황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노을도 주춤주춤 일어났다. 장난으로 한 말이 아니라 정말 밖에 나가서 뭔가를 하려는 것 같았다.
“가자.”
시황이 나가자 노을도 따라서 방을 나갔다. 노을은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거실로 나갔는데 아까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소파에 앉아서 놀고 있었다.
“찬미야, 나가면 좀 늦게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저녁은 알아서 먹어.”
“네. 오빠. 오늘 추우니까 밖에 너무 오래 있지는 마세요.”
“응. 알았어.”
찬미와 시황은 마치 결혼한 사이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딸기 잘 먹었어요. 안녕히 계세요. 전 가볼게요.”
“네. 잘 가요.”
노을이 인사하자 찬미가 웃으며 배웅을 했다. 노을은 시황과 함께 주차장으로 나와 차를 탔다. 이 모든 게 눈 깜짝할 사이에 결정되고 벌어진 일이라 노을은 아직까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데이트라니.
시황은 조수석에 앉은 노을을 바라봤다. 그러자 노을이 고개를 슬쩍 돌린다.
“어디 갈까? 가보고 싶은데 있어?”
“벼, 별로 없는데요.”
시황이 묻자 노을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러지 말고. 나랑 이제 처음 만나서 사귄다 생각하고 가고 싶은 곳을 상상해봐. 어디가 괜찮을까? 요즘 연인들은 데이트 코스가 어떻게 되지?”
“모르겠어요…….”
“먼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자. 다들 극장에 많이 가니까. 괜찮아?”
“네……. 전 괜찮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조금 걱정되는데요.”
“잠시만.”
시황은 뒷좌석을 뒤적거리는 척 하면서 아공간에서 목도리를 꺼냈다. 눈에 잘 안 띄게 만들어주는 케즈론 옷장의 목도리였다.
“자, 이거. 지금 쓰는 목도리 말고 이거 써. 이게 잘 안 들킬 거야.”
“감사합니다.”
똑같은 목도리인데 왜 잘 안 들킨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가기는 했지만 일단 시황이 쓰라고 준 거니 일단 썼다가 나중에 돌려주려고 했다.
“잠깐만. 내가 직접 해줄게. 선물이니까 이대로 가지고 가면 돼.”
“아, 안 그러셔도 괜찮아요.”
노을은 선물이라는 말보다 직접 목도리를 해준다는 말에 더 당황을 했다.
“쯧, 이래서는 하루종일 이러다가 끝나겠다. 지금 정하자.”
“네? 정하다니 어떤 걸요?”
“일단 가사가 제대로 써질 때까지 나랑 진짜 사귀는 걸로 하자. 어때? 물론 진짜로 사귄다고 너한테 이상한 걸 해달라거나 그런 건 안 할 테니까 그런 부분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
“진짜로 사귀자고요?”
노을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시황이 노래 가사 때문에 그러는 건지 정말 자신한테 마음이 있어서 이러는 건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시황은 분명 좋은 남자이고 누가 봐도 사귀고 싶을 만큼 매력 있고 돈 많은 남자였다. 오히려 그렇게 대단해서인지 노을은 쉽사리 시황과 자신이 사귄다는 상상이 되질 않았다. 왠지 현실적으로 큰 벽이 서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응. 가사가 써질 때까지만. 그런데 진짜로 사귄다는 건 말만 그런 거고 처음 사귀는 연인의 감정을 가져보자는 거지. 서로 만나서 데이트도 하고. 그런 경험을 가사로 적어보면 잘 되지 않을까? 내가 이런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안 하고는 가사를 잘 적을 자신이 없거든. 네가 조금 이해를 해줘.”
그 말 그대로였다. 시황은 노을에게 장난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런 마음으로 가사를 쓰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이런 재능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노을도 직접적으로 가사를 쓰는데 도움을 줬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대충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어떻게 할래? 괜찮겠어?”
“으음……. 괜찮아요. 그런 거라면 저도 노력해볼게요.”
노을은 일단 허락했다. 아직까지 시황의 마음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황이 싫은 것도 아니고 호감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진짜 사귀는 척을 해보기로 했다. 실제로 사귀는 건 시황이라는 존재가 부담이 돼서 꺼려졌고 가짜로 사귀는 척을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재미는 있을 것 같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