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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고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항상 고객 분들에게 최고 품질의 제품만을 제공해드리고자 노력하였으나 이런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겨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제품을 사용해 문제가 생긴 분에게는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문제가 생긴 분에게는 피부가 나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해드리는 것은 물론, 더욱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해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피부에 큰 문제가 생긴 분에겐 제가 직접 진심 어린 사죄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시황은 이렇다 저렇다 변명은 하지 않고 무조건 죄송하다고만 했다. 이런데서 괜히 변명을 늘어놔봐야 해결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다시 사과하라는 비난만 받게 된다.
사과문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찬미와 진아가 시황의 집으로 왔다. 마치 일부러 그런 듯 거의 동시에 찾아와 시황을 조금 놀라게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당연히 일부러 같이 온 건 아니기 때문에 찬미가 먼저 진아에게 인사를 했다. 둘이 사이나 나쁘면 나빴지 친해질 이유도 없고 친할 리도 없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황은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내 방에서 얘기하자.”
시황은 찬미와 진아를 데리고 방으로 갔다. 찬미와 진아가 방 안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시황은 보기 쉽게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노트북 화면에 방금 사이트에 올린 사과문을 띄웠다. 방에 들어와 시황이 노트북을 조작하기까지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무거운 침묵이 생겼다.
“너희도 알겠지만 우리 제품을 산 고객 중 한명에게 문제가 생겼다나봐. 일단 내가 사과문을 올리긴 했는데 여론이 좋지는 않아.”
시황은 즐겨찾기에 추가해놓은 사이트들을 확인하며 말했다. 이미 문제가 생겨 화가 난 상태인데 죄송하다고 한마디 한다고 여론이 바뀌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정말 우리 제품 쓴 건 맞을까요? 전 솔직히 믿을 수가 없어요. 저도 쓰고 주변에서도 다 우리 화장품 쓰는데 피부가 다들 얼마나 매끄럽고 좋아졌는지 오빠도 알잖아요.”
굳은 표정을 한 진아는 지금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알지. 그래도 그 사람한테 피부가 안 맞을 수도 있는 거니까.”
시황은 느긋하게 말했다. 모르고 당했으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겠지만 비장의 한수를 손에 쥐고 있는 만큼 여유가 있었다.
“사과문에 사과만 한 건 좋은 거 같아요. 제가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문제가 생겼는데도 변명으로 일관하는 건 사실 여부는 둘째 치고 기업에서 문제를 회피하는 것만 같아 분명 화가 나는 일이거든요.”
찬미는 시황이 올린 사과문을 보며 일반적인 소비자의 입장에서 얘기했다.
“아니, 변명이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건 사실이잖아요. 솔직히 저희 쪽 문제라는 확신도 없는데 사과부터 하는 건 모두 우리 책임이라는 것 같아서 솔직히 좋은 대책은 아닌 것 같아요.”
“진아 씨 말대로 우리 문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과를 해야 그나마 여론이 더 나빠지는걸 막을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우리 문제가 아니라면 분명 나중 조사에서 드러날 테고 그때 이미지를 만회하는 게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이라고 봐요.”
“우리 문제인지 알 수 없으면 먼저 사건의 진실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이미 손상된 이미지를 회복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이미 지나간 일에 사람들은 큰 관심이 없어요. 이미지 회복은커녕 우리 화장품을 쓰면 문제가 생긴다는 이미지를 고착화 시킬 뿐이에요”
진아와 찬미가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보니 첨예한 대립을 이루고 있었다. 시황은 바라보지도 않고 진아와 찬미는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99분 토론 느낌 나는데. 하하.”
시황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했다. 진아의 말대로 우리 쪽 문제는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찬미의 말대로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건 시황도 어느정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런데 다시 진아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문제도 아닌데 바로 사과를 한다는 건 문제를 인정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 참 어려운 문제기는 했다. 정말 문제가 생겼으면 사과를 하고 보상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지만 지금 발생한 문제는 사과를 할 이유가 없는 조작극이었다.
시황의 농담에도 진아와 찬미는 굳은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지금 둘을 화해시키기는 좀 힘들 거 같고 밤에 위로를 해줘야 할 거 같았다.
진아와 찬미가 얘기를 하는 동안 시황은 노트북으로 이런 저런 사이트들을 돌아다녔다. 여론이 어떤지 직접 확인을 하고 있는데 한 사이트에서 상당히 눈길을 끄는 제목의 글이 보였다.
[케즈론 화장품 썼다가 피부 안 좋아졌다고 글 올린 분 알고 보니 전에 카페 케즈론에서 진상 피웠던 파워 블로거였다네요.]
어떻게 찾았는지 카페 케즈론에서 진상을 부렸던 파워 블로거와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아낸 사람이 등장했다. 글을 올린 사람의 스크린 샷에는 동일 인물임을 증명하는 증거들이 몇 가지 있어 안 믿기가 어려웠다.
[헐 정말인가요? 그러면 설마 전에 진상 부렸다 까인 거 때문에 복수하려고 일부러 그런 짓이라도 한 걸까요? 이거라면 좀 소름인데요 ㄷㄷㄷ]
약간의 정보가 주어지자 진실에 접근하는 글도 생겨났다.
[확실히 글에 뭔가 의도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전 일단 좀 지켜보렵니다.]
시황은 가진 패를 꺼내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여론이 조금 반전되기 시작했다. 아직까진 미미한 정도였지만 무작정 욕만 먹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얘기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한 것 자체가 큰 변화였다.
[메시지를 공격 할 수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더니. 딱 그 모습이네요. 저 분이 카페 케즈론에서 진상을 부렸던 사람이던 아니던 뭐가 중요한가요? 결국 케즈론 화장품을 써서 피부가 엉망이 됐고 쓰레기 수준의 화장품을 비싸게 팔아먹는다는 게 지금 비판의 포인트입니다.]
[벌써 알바들 출동한 건가? 천만 원짜리 화장품 팔아서 알바들 월급 주나보네 ㅋㅋ]
아직 화장품 판매한 돈도 안 들어왔지만 그 부분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찌됐든 일방적인 비난에서 흐름이 약간 변화했고 이제는 네티즌들끼리 싸우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솔직히 저 분이 화장품을 썼다는 증거가 전혀 없잖아요? 그냥 사용 흔적이 있는 케즈론 화장품 병만 사진으로 찍은 거지. 그리고 제 주변에도 저 화장품 몇 분 쓰는데 여드름 많이 났던 고등학생 여자애 피부가 엄청 매끄러워지는 거 보고 진짜 놀랬습니다. 천만 원이라는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피부 때문에 큰 고민이 있는 사람이면 사서 쓸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피부과 가도 천만 원이 안 되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저 화장품이 피부과 보다 더 좋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네 ㅡㅡ]
처음에는 단순 비난뿐이었는데 파워 블로거의 정체가 밝혀지자 여기저기 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파워 블로거로만 싸우는 게 아니라 케즈론 화장품을 천만 원이나 주고 살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글도 끊임없이 올라왔다. 한국 인터넷 사이트가 케즈론 화장품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시황은 흥미진진하게 그 싸움을 관람하며 찬미와 진아에게도 얘기해줬다. 한참 열을 띄며 얘기를 나누던 찬미와 진아도 시황이 보여주는 글을 보자 얼굴이 조금 풀렸다.
“역시 내 예상대로 뭔가 있는 여자였네. 이럴 줄 알았어.”
“오빠, 그래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같은 글을 보고도 진아와 찬미의 반응이 조금 달랐다.
시황은 진아와 찬미를 슬쩍 쳐다봤다. 원래는 그저 약간 껄끄러운 상대였다면 오늘을 기점으로 서로 좋은 감정은 가지기 힘든 상대가 된 거 같았다. 시황은 설마 이 정도까지 서로의 생각이 다를지 몰라 조금 놀라긴 한 상태였다. 나중에 둘을 화해시킬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생겼지만 일단 지금 발생한 중요한 일부터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이미 글을 올린 여자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에 시황은 전에 연락했던 것과 다른 아이디로 파워 블로거에게 쪽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케즈론 화장품 사장 강시황입니다. 저희 제품을 사용하고 큰 불편을 겪으신 점 가슴 깊이 사과드립니다. 직접 만나 뵙고 얘기하고 싶으니 010-xxxx-xxxx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파워 블로거에게 연락이 오든 안 오든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연락이 온다면 통화녹음으로 더 깊은 수렁으로 빠트릴 수 있었고 연락이 안 온다면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았다.
“이번 일은 내가 잘 해결할 테니까 너희는 크게 걱정 안 해도 돼.”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저와 도와드릴게요.”
진아와 찬미가 거의 동시에 물었다. 둘이 싸우기는 해도 걱정되는 마음은 같기 때문에 서로를 슬쩍 쳐다봤다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시황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뭐, 잘 해결 될거야.”
시황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몰라 진아와 찬미는 걱정이 될 뿐이었다.
밤늦게까지 머물던 진아가 돌아갔다. 진아가 돌아갈 때까지 찬미와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아 오히려 이 부분
시황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루를 제외하고는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의 분위기가 상당히 무거웠다.
분위기가 어떻든 간에 시황은 인터넷을 계속 살피며 어느 타이밍에 카드를 꺼낼지 계속 살펴보고 있었다.
논란은 밤늦게까지 지속됐지만 시황이 자고 일어난 다음날엔 조금 관심도가 떨어진 상태였다.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다들 평소대로 흘러갔고 띄엄띄엄 케즈론 화장품에 대한 글이 올라올 뿐이었다.
타이밍을 노리던 시황은 사람들이 북적거릴 저녁이 아닌 오후 1시에 글을 올렸다. 시황이 글을 올린 곳은 여자들이 고민 상담을 많이 하는 사이트였다. 이 사이트는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 시황의 마음을 들게 했다.
시황은 직접 글을 쓴 뒤에 수란을 불러 한번 퇴고를 했다. 여자의 손길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래도 글이 어색해져서 수란의 도움이 필요했다.
[케즈론 화장품 사건의 진실을 말해드립니다.
어제 올라온 글을 보고 이 글을 쓸까말까 정말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행동을 그대로 놔두기엔 제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케즈론 화장품이 아닌 제 양심을 위해 올리는 글입니다....
며칠 전 저는 공동구매 문의를 위해 그 분과 직접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도중 어쩌다보니 피부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전 뜻하지 않게 진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무서운 말을 들었는지... 지금도 두려움에 손이 벌벌 떨립니다...]
이런 저런 포장을 하기는 했는데 그건 시황이 의도적으로 뿌린 게 아니라 정말 양심고백을 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시황은 편집을 한 녹음 파일을 유투브에 올린 뒤에 링크를 했다.
[이 건 제가 의도가 있어서 녹음한 게 아니라 평소 습관대로 저도 모르게 녹음을 했고 나중에 일을 마치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가방 안에 넣어두고 있어서 음질이 크게 좋지도 않고 저희 회사명이 안 나오게 편집을 했지만 절대 그 어떤 조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황은 파워 블로거와 연락을 나눈 쪽지, 통화한 흔적 등을 하나 하나 캡쳐해서 이어붙인 뒤에 작성 완료 버튼을 눌렀다.
시황은 혹시 어제 쪽지의 답변이 왔나 확인을 해봤는데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아무래도 직접 연락을 하기보다는 이 부정적인 여론인 상태대로 놔두는 게 나을 거라 판단한 듯 했다.
당연하게도 시황이 올린 글이 단번에 이슈가 되었다. 평일 오후라 대부분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해서 오후 늦게 쯤 이슈가 되도록 미리 올린 건데 다들 일하면서 인터넷이라도 하는 건지 반응이 상당히 빨랐다.
파워 블로거가 케즈론에 복수를 하기 위해 일부러 피부를 망쳤다고 고백하는 음성 녹음 파일은 식었던 열기를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어제 사람들이 카페 케즈론에 진상을 부렸다 비난을 받은 것 때문에 일부러 그런 글 쓴 게 아니냐는 글이 사실로 드러났고 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와, 어제 일부러 그랬다는 사람 보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 하지 말라고 했는데 진짜였네. 대박이다. 진짜.]
[이게 사실이면 사이코패스 수준인데요. 정말 소름끼치네요.]
여론이 완벽하게 반전되었다. 단 하루 만에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상황이 변했다.
이 기세를 몰아 시황은 진아에게 연락해서 관련 기사를 뿌리도록 했다. 직접 연락을 취하려고 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는 부분도 넣도록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도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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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