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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루나모스
시야가 차단되자 자연스레 청각과 후각이 확장되어 미나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머릿속에서 그대로 시뮬레이션이 되었다. 스타킹을 신기위해 미나가 침대에 앉아 다리를 들어 올리자 달콤하면서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은은한 향기가 시황의 코를 간지럽혔다.
검은색의 스타킹이 미나의 다리를 감싼다. 물론 시각이 차단된 상태라 스타킹의 색깔까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전에 준 스타킹일 테니 검은색일 게 분명했다.
스타킹을 다 신은 미나는 이내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깔끔하게 차려 입었다.
소리와 냄새만으로도 흥분을 해버린 시황은 잔뜩 발기를 해 바지가 부풀어 올라 있었다.
“다 입었으면 마법 풀어줄래?”
“알겠다.”
미나의 대답이 끝나자 시황의 시야가 복구되었다. 빛이 찾아들고 사물이 인식된다.
시야의 한편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매혹적인 모습의 미나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임에도 순백의 눈처럼 뽀얀 피부를 가지고 있어 견디기 힘든 청순함이 피어올라 있었다.
“잠시 기다려. 프린 데리고 올게.”
시황은 문을 소환해 침실에서 자고 있는 프린을 바로 데리고 왔다. 여기로 데리고 오기 전에 지구와 관련된 수많은 책을 읽게 하고 지속적인 교육과 더불어 언어도 영어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거였다.
“어? 어?”
잠이 덜 깬걸까? 시황에게 말을 들었지만 평범한 성의 침실에서 한걸음 걷자 갑자기 이상한 방으로 변해버리자 프린은 눈을 비비며 이 이상하고 오묘한 느낌으로 가득한 방을 연신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여기가 내가 사는 세계야.”
“그, 그러면 그 성의 주인은 다른 분인가요?”
“그 성은 내거 맞아. 이 방은 잠시 빌린 거고.”
“프린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프린의 상식으로는 지금 이 상황이 뭐가 어떻게 되고 어떤 원리로 이렇게 됐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갔지만 애초에 그런 거에 크게 연연하는 성격도 아니고 알고 있는 지식 자체가 극히 한정적이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시황이 그렇다니까 그냥 그런 줄 알면 된 거였다.
시황은 방에서 쓰는 물건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귀찮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잠시 동안은 여기서 지내야 하니 확실히 가르쳐 주는 게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덜했다.
“자, 이제 나가야 하니까 이쯤하고 프린은 이걸로 옷 갈아입어.”
시황은 프린에게 청바지와 니트로 구성된 평범한 스타일의 옷을 건네주었다. 평소 시황이 프린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음부에 로터를 넣은 채로 길거리를 돌아다니게 하는 이상한 변태 플레이를 할 법 했지만, 시황은 그런 식으로 수치심을 들게 하거나 고통을 주는 변태적인 행위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호텔 근처에 있는 명동으로 갔다. 아까 유진아의 차를 타고 학교에 가서 차가 유진아의 빌라 주차장에 있다 보니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청바지와 니트를 입고 명동을 돌아다니는 프린은 한국 대학교에 공부하러 온 외국인 학생 같은 느낌이 풍겼다. 이런 스타일도 은근히 매력적이라 나중에 이 옷을 입힌 채로 프린과 섹스를 해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시황은 미나와 프린을 데리고 호텔을 나갔다. 미나는 뒤에서 따라오게 했고 프린은 혹시 길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손을 잡고 걸었다.
“와……. 세상에 건물들 이렇게 크다니. 오빠 저거 뭐에요?”
프린은 길을 걸을 때마다 어린애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감탄했다. 그리고는 신기해 보인다싶은 건 시황에게 지겹도록 질문을 했다. 미취학 아동을 키우면 이렇게 되는 걸까? 시황은 어린애들에게 가르쳐 주듯 쉽고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일단 프린이 빠르게 지식을 갖추는 게 중요했다.
가을의 밤은 금방 찾아온다.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어느새 해가 저물고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둡게 물든 거리도 미나와 프린의 아름다움을 감추지는 못했다. 보통 연예인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미나와 누가 봐도 매력적인 프린이 지나가자 주변 사람들이 힐끔 거리며 쳐다봤다.
아루든 찬미든 유미든 누구와 가든 항상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왔기 때문에 시황은 이제 신경조차 쓰지 않고 프린과 돌아다녔다.
완전한 어둠이 찾아들고 길거리에 있는 가로등이 켜졌다. 슬슬 배가 고팠기 때문에 시황은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미나는 고기 먹을 수 있다고 했지?”
“그렇다.”
“엘프는 보통 고기 못 먹지 않아? 채식만 하든가 과일을 먹든가 하는 거 같던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단백질을 섭취는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어 꼭 필요한 행위다. 단지 인간들처럼 맛을 음미하기 위해 동물을 좁은 곳에서 사육하지는 않는다. 음식이란 필요한 정도만 먹는 걸로 충분하다.”
왠지 시황이 상상하던 그런 엘프의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아름답다는 부분은 상상하던 그대로의 모습이니까.
“그러면 평소에도 과자나 간식 같은 건 잘 안 먹어? 그런 거 먹으면 맛있잖아?”
“그런 의미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전에 일하던 곳에서 밥이 맛있게 나와서 그런 거야?”
“식사는 내가 알아서 한다. 영양 잡힌 식사를 할 뿐 맛은 중요하지 않다.”
도대체 뭘 어떻게 먹는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음식 쪽으로 충분히 파고들어갈 여지는 있어보였다. 미나를 서울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워 돌아가기 싫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 저 무뚝뚝하고 감정 없어 보이는 엘프의 마음에 침투할 수 있을 테니까.
“주인님. 전 맛있는 거 먹는 거 좋아해요.”
“그래? 그러면 고기 먹으러 가볼까?”
시황은 미나와 프린을 데리고 삼겹살 가게로 갔다. 초심자도 쉽게 먹을 수 있는 한국 음식하면 역시 삼겹살이 최고 아니겠는가? 김치 같은 난이도 있는 음식을 먹일 생각은 없었다.
미나와 프린이 삼겹살 가게에 들어가자 순간적으로 시끄럽던 가게에 누가 음소거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묘한 정적이 생겨났다.
가게가 조용하든 시끄럽든 시황은 신경도 쓰지 않고 구석진 자리에 미나와 프린을 앉혔다. 프린은 처음 외식을 나온 어린애처럼 눈을 빛내며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에 비해 미나는 아무런 흥미조차 없는 표정으로 시황을 바라볼 뿐이었다.
“주, 주문하시겠어요?”
잠깐 기다리자 남자 직원이 다가와서는 프린과 미나를 보자 정신을 못 차리고 말을 더듬었다.
“주인님, 저 사람이 와서 말 거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요.”
영어만 할 줄 아는 프린이라 한국어로 얘기하는 직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시황에게 영어로 얘기했다. 프린이 쓸데없는 소리를 방지하기 위해 영어만 하게 해놨는데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먼저 삼겹살 5인분주세요.”
“알겠습니다.”
직원이 멀어지자 프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음식 시켰으니까 조금 있으면 나올 거야.”
“엄청 기대돼요. 근데 여기 있는 성하고 땅들 전부 주인님 거예요?”
“하하. 아니. 전부 다른 사람 거야. 내가 사는 곳은 여기서 좀 가야 있어.”
“프린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프린이 고개를 갸웃했는데 그 모습이 치명적일 정도로 귀여웠다.
이내 반찬이 나오고 고기까지 불판에 올라갔다. 프린은 빨리 고기를 먹고 싶어 안절부절 못했고 미나는 보석처럼 빛나는 검은 눈동자로 시황만을 쳐다보다 입술을 살짝 움직였다. 그리고 시황에게 말을 건다.
“유산을 얻어서 뭘 할 거지?”
“응? 여기서 얘기하기는 조금 그런데.”
안 그래도 미나와 프린 때문에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가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들어봤자 게임이나 그런 쪽 얘기라고 생각하기야 하겠지만 어쨌든 비밀이라는 건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게 중요했다.
“우리들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한다. 마법으로 막아두었다.”
“그래?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야?”
“개인적으로 흥미가 생겼을 뿐이다.”
“흥미라, 흥미……. 그렇군.”
흥미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던 시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또 당첨된 사람이 뭘 할지 흥미가 생기는 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감정이었다.
“…….”
“별로 뭔가를 할 생각은 없어. 설마 내가 지구 정복이라도 하길 원하는 거야?”
“그건 당신의 선택일 뿐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유산 레벨을 올릴 생각이 없는 것인가?”
“당연히 유산은 다 얻어야지. 크게 뭔가를 하진 않을 거지만 유산은 다 얻고 싶거든. 오히려 중간에 그만두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시황은 고기를 구우며 대답했다. 유산을 다 얻는다면 지구 정복이라는 말이 마냥 허황된 게 아니라 지나치게 현실적인 문제로 변할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구를 정복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성격적인 문제인지 남들이 떠받들어 주며 피곤한 일을 하는 것보다 그저 이렇게 원하는 대로 사는 게 더 나았다. 스스로 그렇게 피곤한 일을 만들다니. 시황으로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가? 알겠다.”
“궁금한 건 그거 뿐? 내가 지구 정복하려면 막으려고 감시하는 건 아니지?”
“지구 정복 같은 건 관심 없는 일이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자, 고기 다 구워졌으니까 이제 먹자.”
시황은 프린에게 고기를 먹는 방법을 설명해주자 프린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마, 맛있다! 입에 넣자마자 녹아내리는 이 부드러움과 고소함.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고기가 존재할 줄이야!”
프린은 고기를 먹으며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로 감탄하며 먹었다. 고기를 사줬는데 저렇게 맛있게 먹어주니 시황까지 흐뭇해졌다.
그에 비해 미나는 가르쳐 준대로 먹기는 하나 크게 맛있어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맛없어?”
“나쁘지 않은 맛이다.”
혹시나 하고 시황이 물어봤지만 미나는 간단하게만 대답할 뿐이었다. 맛있는 건지 맛없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일단 삼겹살은 안 먹히는 듯 했다.
그에 비해 프린은 고기가 구워지자마자 곧바로 입안에 집어넣었다. 마치 블랙홀처럼 고기와 반찬을 한없이 빨아들였다.
“하, 배부르다. 정말 맛있었어요. 주인님. 다음번에 또 먹어요.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봤어요.”
삼겹살을 다 먹고 나오자 프린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러면서 뭔가 아쉬운지 연신 삼겹살 가게를 쳐다봤다. 미나가 저랬으면 좋을 테지만 그렇게 쉬운 상대일 리가 없었다.
길을 걸으며 뭘 먹어야 미나가 좋아할까 시황은 연신 고민을 했다. 팥빙수는 왠지 아닌 거 같아 무난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여보기로 했다.
“간단한 후식이나 먹을까?”
“네!”
옆에서 프린이 바로 대답한 것과 다르게 미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미나는 어때?”
시황이 뒤를 돌아보며 미나에게 말했지만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뒤에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자 시황은 약간 당황해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저긴가?”
사람들이 둘러싸고 웅성웅성 거리는 곳에 왠지 미나가 있을 거 같아 시황은 프린을 데리고 그쪽으로 갔다.
거기엔 미나가 평소에 보지 못한 그런 표정으로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듯 매우 작고 어린 동물들이 길거리에 있었다. 펫 카페 홍보라도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작고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가 미나에게 다가가 얼굴을 비비자 미나가 주저앉아 강아지와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설마 인간에게는 무뚝뚝하고 냉정하지만 작고 귀여운 동물은 좋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평범한 캐릭터는 아니겠지?”
“네? 잘 못 들었어요. 주인님.”
“아니야. 아무것도.”
시황이 중얼거리자 프린이 자기한테 무슨 말을 했나 싶어 되물었지만 시황은 가볍게 웃었다. 평범한 캐릭터든 뭐든 미나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았다는 사실 자체로 만족스러웠다.
“더 구경할 거야?”
웬 남자들이 미나에게 다가가서 수작을 걸려고 하자 시황은 재빠르게 미나를 일으키며 말했다.
“괜찮다. 그만 가지.”
미나와 동물들을 구경하려고 모인 사람들을 뚫고 그나마 한적한 거리로 나왔다. 명동에 외국인과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지 걷는 거 자체가 너무 피곤했다. 다음부터는 명동이 아니라 조금은 한적한 곳에 가는 게 나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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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