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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즈론 런칭
“응. 물음표. 이름 말고는 전부 물음표야.”
“그 정보도 마법적 힘으로 알게 되는 거라 그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간혹 마법 저항력을 올려줘서 정보를 교란시키는 보석이나 도구도 있거든요.”
“마법 저항력?”
“네. 그게 아니라면 단순 오작동일 수도 있는데……. 죄송해요.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확실히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어요.”
“으흠…….”
확실히 가능성이 있었다. 아이린 본인은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겠지만 마법 저항력이 있는 보석이나 도구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영국의 공주이기도 하니 그런 보석을 하나 쯤 물려받았다 해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대충 의문이 풀렸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거 말고는 딱히 다른 이유가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고마워.”
“아니에요. 시황 님.”
시황은 열려진 문으로 재빨리 넘어간 뒤에 소환을 해제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기는 했지만 화장실을 갔다 온 정도의 시간 밖에 안 돼서 크게 의심을 살 정도는 아니었다.
백화점 1층으로 가서 두리번거리며 유진아와 아이린을 찾았다. 둘이 워낙 눈에 띠다보니 전화를 걸지 않고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응시하거나 대놓고 쳐다보고 있는 곳을 향해 가기만 하면 됐다.
“오빠! 여기야.”
시황이 다가가자 유진아가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시황이 차에 다녀오는 그 사이를 못 참고 유진아와 아이린은 명품 매장 안에서 구두를 신어보고 있었다. 쇼핑이 끝난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계속해서 쇼핑을 더 해야 할 거 같았다.
“하아…….”
시황의 입에서 한숨이 나오며 얼굴이 급격하게 지쳐가기 시작했다.
“진아가 신은 구두 어때요? 예쁘죠?”
“어때? 오빠? 예뻐?”
여자 둘이 시황이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지속해서 유진아와 아이린을 주시하고 있던 남자들 표정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여자 둘만 온 건가 했는데 딱 봐도 남자 친구로 보이는 시황이 있으니 기분이 나빠졌던 것이다.
물론 유진아와 아이린은 이 백화점에 있는 그 어떤 남자와 접점이 없고 친해질 일도 없는, 흔히 말하는 못 먹는 감이었지만 그런 거랑 상관없이 미인을 차지한 남자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남자가 부러움과 동시에 질투를 느끼기 마련이었다.
괜히 유명 여자 연예인이 결혼하면 댓글로 남편 욕을 하는 게 아니었다. 유머러스하게 표현들은 하지만 그만큼 부럽고 배가 아프기 때문에 쓰는 댓글이기도 했던 것이다.
“음…….”
유진아가 신은 하이힐은 시황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디자인이었다. 굵은 가죽 스트랩들이 발등을 감싸고 있어 하이힐 특유의 매력이 전혀 살지 않았다.
“이게 더 예쁘지 않아?”
시황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하이힐은 하나 집어서 유진아에게 보여줬다. 뒷 굽이 아주 가는데다 발등이 잘 드러나는 하이힐이라 단순히 이걸 신는 것만으로도 여성이 우아하고 매력적으로 보일정도였다.
“오빠는 그런 스타일 좋아하는 구나. 그러면 하나 사야지.”
“으엑, 스틸레토 힐. 정말 그거 살 거야?”
“응. 오빠가 좋아하는데 사야지.”
유진아가 시황이 집어든 하이힐을 받아 신자 아이린이 매서운 눈으로 시황을 쳐다봤다.
“시황 씨는 남자라 잘 모르겠지만 저거 신으면 30분만 걸어도 발이 엄청 아파요. 거기다 시황 씨가 보여준 건 굽이 엄청 높아서 저거 신을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걸요?”
“그, 그런가요?”
“스틸레토 힐이 예쁘긴 해요. 여자라고 저거 예쁜 거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안 신을까요? 정말 너무 예쁘고 신고 싶은데 발이 너무 아파서 못 신는 거예요. 저 스틸레토 힐을 편하게 만드는 사람은 정말 어마어마한 부자가 될 정도로 말이에요.”
“죄송해요. 그 정도일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아이린이 혐오물건이라도 보는 듯 강력한 어조로 얘기하자 시황이 사과를 했다. 그냥 예뻐 보여서 집었던 건데 엄청 발 아픈 하이힐인 거 같았다. 남자들이야 하이힐을 안 신으니 이런 게 얼마나 아픈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예상외의 곳에서 좋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하이힐을 신을 때 발이 편하다는 부분이 상업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 듯 했다. 이 부분을 잘만 살린다면 패션 브랜드인 케즈론도 굉장한 인기몰이를 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괜찮아. 오빠가 예쁘면 그걸로 됐지.”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이 힐을 신으면 절대 오래 걷지 않게 해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알겠죠?”
“아이참, 괜찮다니까. 꼭 밖에 신고 나가지 않더라도 다 쓸데가 있어.”
“안 신으면 어디다 쓰게? 장식 해두게? 진아는 구두 모으는 취미 같은 거 없잖아?”
“그, 그런 게 있어.”
유진아는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시황이 집어 들었던 스틸레토 힐을 바로 계산했다. 다음에 섹스를 할 때 시황이 좋아하는 이 구두를 신고 할 생각으로 구매를 했던 것이다.
“어디다 쓸건데? 궁금하잖아.”
그런데 그런 속사정도 모르고 아이린은 계속 유진아에게 달라붙어 어디다 쓸 건지 물어보고 있었다.
“오, 오빠. 이제 쇼핑 다 했으니까 밥 먹으러 가자.”
“어, 어. 그래. 에스컬레이터로 갈까?”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빨리 가자.”
아이린의 말을 무시하고는 하이힐이 담긴 종이 박스를 든 유진아가 시황과 팔짱을 끼고는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괜히 부끄러워 귀까지 새빨개져 있었다.
“안 신으면 도대체 어디다 쓴다는 거지?”
이쯤하면 어디다 쓸 건지 눈치를 채야할 텐데 아이린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유진아와 시황을 뒤쫓아 갔다.
백화점에서 밥을 먹고 차에 구입한 하이힐을 실은 뒤에 본격적인 관광을 하기 위해 명동으로 갔다. 평일 오후였지만 명동에는 중국과 각종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로 거리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명동 자체가 쇼핑을 하기 위한 곳이다 보니 거리에 화장품과 옷가게들이 상당히 많았다.
방금 전에 유진아와 아이린이 백화점에서 잔뜩 쇼핑을 해놓고는 명동에 오자마자 눈을 빛내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나마 방금 전 백화점과 다르게 시황은 명동을 처음 와 봤기 때문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유진아와 아이린을 따라다닐 수 있었다.
분명 한국임에도 주변에서는 중국어와 일본어, 정체를 모를 이색적인 언어가 들려왔다. 대부분의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일본어는 언어 습득용 알약 덕분에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명동 거리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갑자기 유진아가 남산 타워를 보러가자고 했다.
명동에서 조금 걸어 케이블카를 타는 곳으로 갔다. 명동만큼은 아니었지만 평일임에도 케이블카가 가득 찰 정도로 외국인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잠시 기다린 뒤에 케이블카에 올라탔는데 사람이 상당히 많아 몸을 움직이기가 조금 불편했다. 유진아와 아이린이 유리창 쪽에 서 있어서 시황은 유진아와 아이린에게 밀착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호해주었다.
유진아와 아이린의 외모가 워낙 눈에 띠다보니 한국인은 물론이고 여자 친구가 있는 서양인까지 힐끔 거리며 쳐다봤던 것이다.
시황이 밀착해있자 유진아가 슬며시 시황에게 달라붙었다. 서울 시내를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이런 곳에서 시황의 품에 안기는 게 더 좋았으니까.
“나도 나도.”
그런데 옆에 있던 아이린까지 시황에게 달라붙었다. 시황을 좋아해서 붙은 게 아니라 유진아가 하는 게 재미있어 보여 따라 해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보통 이럴 때는 눈치껏 빠져줘야 하는데 의외로 아이린은 남녀 관계에 대해서 눈치가 별로 없는 듯 했다.
시황은 그런 아이린을 조심스럽게 훑었다. 혹시 마법 저항력을 가진 목걸이라도 차고 있나 해서 살폈던 건데 의외로 쉽게 목걸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래된 목걸이 같지는 않고 명품 매장에서 산 듯한 냄새가 짙게 풍기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목걸이였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라 시황은 나중에 확실히 저 목걸이에 대해 조사해 보기로 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계단을 조금 오르자 금방 남산 타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진아는 남산 타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시황과 자신의 이름이 음각된 자물쇠를 꺼내더니 자물쇠가 주렁주렁 걸린 벽면에 매달았다.
그리고는 상쾌한 웃음을 가득 지었다.
아무래도 남산에 오자고 한 이유가 이거 때문인 거 같았다. 미리 자물쇠까지, 그것도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자물쇠에 이름까지 음각한 거 보면 며칠 전부터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를 한 거 같았다.
“그건 언제 준비한 거야?”
“남산에 오면 걸려고 며칠 전에 주문 제작했어.”
“진아는 그런 거 안 믿지 않았어?”
“헤헤. 그랬나?”
유진아는 살짝 민망한 웃음을 짓더니 시황의 팔짱을 끼고 서울 시내를 내려다 봤다.
“세상에. 경치 정말 좋다. 진아야, 저기 보이는 큰 건물 이름이 뭐야?”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옆에서 서울 시내를 바라다보고 있는 아이린이 이것저것 끊임없이 물었지만 유진아는 건성건성 대답하며 시황과 이 순간을 즐겼다. 간만에 본 아이린이 반갑고 좋기는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시황과 오붓하게 보내고 싶었다.
남산을 적당히 다 둘러본 뒤에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다. 남산을 내려오자 유진아와 아이린은 다시 쇼핑을 하기 위해 명동을 돌아다녔고 급격히 힘이 빠진 시황은 지친 표정으로 쫓아다녔다. 육체적으로 지친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지쳤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이 제법 흘러 슬슬 해가 지려고 하고 있었다.
명동에서 저녁을 먹은 뒤에 강남에 있는 백화점에 가서 밤에 먹을거리와 술을 구입했다. 요즘 한창 인기 있다는 일본산 생크림 롤이 마침 딱 한 개가 남아 바로 구입하기도 했다.
평소엔 항상 한정적인 곳만 돌아다니다가 오늘 처음으로 명동과 남산 등을 가봐서 상당히 즐겁기는 했지만 아이린이라는 존재가 신경 쓰여 시황은 아이린이 하는 행동 등을 지속적으로 살펴봤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프로필을 확인했었는데 여전히 물음표로만 가득할 뿐이었다.
시황이 자꾸 아이린을 쳐다보자 유진아가 눈치를 몇 번 주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무난하게 첫날 관광을 마칠 수가 있었다.
강남에 있는 백화점과 유진아가 사는 빌라가 그렇게 멀지는 않아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시황은 먹을거리와 술, 그리고 쇼핑한 물건들을 양손 가득 들고 유진아의 집으로 올라갔다.
“하아, 피곤하다. 다리 아파 죽을 거 같아.”
“나도. 엄청 힘들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진아와 아이린이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오전부터 계속해서 돌아다닌 만큼 웬만한 남자도 지쳐서 쓰러질 정도였지만 시황이야 넘쳐나는 마기로 인해 피곤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먼저 씻고 와.”
“아아……. 너무 힘들어. 오빠가 옷 벗겨주면 안 될까?”
“나야 괜찮기는 한데…….”
“아!”
시황 아이린을 힐끔 쳐다보며 말하자 유진아가 깜빡했다는 듯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무 피곤해서 아무 생각 없이 평소에 시황에게 하던 말을 했던 것이다.
“전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밤에 섹스 하셔도 모른 척 할 테니까요.”
성에 대해 개방적인 유럽 사람이라 그런지 아이린은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섹스 얘기를 꺼냈다.
"하하……."
“정말 괜찮아요. 어차피 전 다른 방에서 잘 거니까 신음 소리를 크게 내도…….”
“아, 아니야. 방금은 그냥 농담한 거야. 빨리 씻으러 가자.”
이럴 땐 눈치껏 넘어가주는 게 보통인데 아이린은 오히려 계속 섹스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했다. 그러자 민망함을 견디지 못한 유진아가 재빨리 아이린을 데리고 욕실로 갔다.
그 사이에 시황은 사가지고 온 먹을거리들을 탁자 위에 올려서 세팅을 하고는 어지러워진 방도 정리했다. 그리고 시황도 씻기 위해 방에 딸린 욕실에 들어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씻으며 시황은 생각했다.
단순히 아이린에게 마법 저항력이 가진 물건이 있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가도 되겠지만 혹시 모르니 확실한 증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너무 예민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지구에서 프로필이 물음표로 나오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왠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시황은 아이린과 유진아를 깊이 재운 뒤에 아이린이 가진 보석들을 확인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잘 때 몰래 아이린의 몸에 있는 보석들을 조사해야 돼서 약간 위험하기는 했지만 보석을 몸에서 떼어둘 리가 없을 테니 어쩔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같이 불성실한 작가를 위해 쿠폰 주신분들도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힘내서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