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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즈론 런칭
아이린은 아주 간단한 기초적인 한국어밖에 하지 못했지만 원어민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시황은 물론이고 유진아도 매우 능숙하게 영어를 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짐부터 옮기고 서울 관광이라도 할까요?”
“오랜만에 한국에 왔으니 당연히 그래야죠! 시황 씨가 안내해주는 건가요?”
아이린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시황을 바라봤다. 너무 도도해서 남자 친구가 생기기나 할까 의문이 들었던 유진아의 남자 친구라니! 호기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저도 서울 지리에 대해서 잘 아는 게 아니라서요. 진아가 안내를 좀 해줘야 할 거 같은데?”
“나만 믿어. 나도 잘은 모르지만 대충은 아니까.”
시황이 바라보자 유진아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 모른다는 점에서 믿기가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사실 그 부분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목적은 아이린 윈저 공주가 케즈론 화장품을 쓰게 하는 것.
하지만 유진아의 친구로 한국에 온 만큼 바로 그런 사업 얘기를 하기엔 조금 부담되었기 때문에 아이린과 조금이라도 친해지고 나서 화장품에 관한 얘기를 꺼낼 생각이었다.
“숙소는 전처럼 우리 호텔? 아니면 다른데 생각해둔 거 있어?”
“응. 이번엔 진아 집에서 지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호텔에서만 지내면 재미없잖아?”
“그, 그러게. 재밌겠다. 나야 언제든 환영이지.”
유진아는 순간 살짝 흠칫 하기는 했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린과 같이 지내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일주일 동안 시황과 섹스를 전혀 못할 걸 생각하니 많이 아쉬웠다.
“헤헤. 그럼 가자. 시황 씨도 빨리 와요.”
하지만 아이린은 그런 유진아의 마음도 알지 못하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으며 걸어갔다.
“제가 들어드릴게요.”
“고마워요.”
시황이 고급스러운 캐리어를 들어주자 아이린이 우아하게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빠른 걸음은 아니었지만 간만에 만난 아이린과 유진아가 끊임없이 얘기를 하며 걷고 있다 보니 시황은 어떻게 끼어들지도 못하고 여자들 뒤에 서서 걸어갈 뿐이었다.
유진아의 몸매는 163이라는 여성의 평균 키임에도 상당히 뛰어났다. 작은 얼굴과 마른 몸매, 그리고 B컵의 가슴은 주변에서 쉽사리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한 밸런스를 가지고 있어 남자라면 본능적로 눈이 갈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린은 그런 유진아를 그저 몸매가 괜찮은 동양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주근깨 하나 없는 매끄러운 피부에 170센티미터는 넘을법한 키와 몸매는 완벽함을 자랑했다. 보통 여자를 보면 여기를 조금 만져주면 더 예뻐지겠다라는 시황 나름의 느낌이 있는데 아이린은 손을 대면 그 아름다움을 망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미모는 아루와 맞먹을 정도에 완벽한 몸매. 이때까지 본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존재가 바로 아이린 윈저 공주였다.
시황은 유진아와 아이린을 뒤따라가며 프로필을 살폈다.
[아이린 윈저]
[나이 : ?세]
[키 : ?]
[몸무게 : ?]
[가슴 사이즈 : ?]
[섹스 횟수 : ?]
[임신 여부 : ?]
[성감대 : ?]
“어?”
“왜? 오빠?”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시황이 놀란 듯 신음소리를 내자 유진아가 뒤를 돌아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유진아에게 아이린의 프로필이 전부 물음표라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드래곤의 유산을 받은지 1년 조금 지났지만 이름을 제외하고는 모든 항목이 물음표로 뜨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잠시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시황은 정신을 차리고 몇 가지 가정을 추측해 보기로 했다.
첫째는 아이린이 공주인만큼 일반인인 자신이 프로필을 보는 게 제한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옛날에 로쉘린인가 로즈린인가 하는 제독의 프로필도 떴던 걸보면 딱히 계급적인 부분이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 거 같았다. 아이린이 영국에서나 공주지 한국에서는 공주가 아니었으니까.
둘째는 단순한 오류문제인가 싶었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의 프로필이 뜨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시황은 주차해둔 차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유가 뭘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지만 정보가 한정되다 보니 생각나는 추측도 별로 없었다.
“하아, 날씨 좋다.”
“정말. 아아, 햇빛 너무 좋아.”
공항을 빠져 나오자 밝은 태양빛이 제일 먼저 반겼다. 덥다 싶을 정도로 화창한 날씨에 유진아와 아이린은 기분 좋은 신음을 내었다.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닌 만큼 일단은 아이린을 지속적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마침 관광하러 같이 다니기로 했으니 아이린이 가진 이상한 점을 발견할 확률도 높았다.
아이린이라는 존재가 없다가 생겨난 것도 아니고, 이 지구에서 세계 전복을 꿈꾸는 악의 무리가 나타난다는 급격하고도 이상한 전개가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에 시황은 지나친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차에 타세요. 짐은 일단 차에 놔두면 되니까 진아 집에는 관광 대충 끝내고 가도록 해요.”
“알겠어요. 잘 부탁해요. 시황 씨.”
“아이린 씨를 안내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히려 제가 더 잘 부탁드려요.”
“영광까지야……. 헤헤.”
시황은 가볍게 웃는 아이린의 얼굴을 응시했다. 몸매만큼이나 완벽함을 지닌 얼굴은 고귀함이 서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와 대조적으로 붉은빛의 매혹적인 입술은 청순함보다는 섹시함이 가득 느껴졌다.
분위기면 분위기, 매력이면 매력, 아름다움이면 아름다움. 이때까지 본 그 어느 여자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완벽했다. 보고 있기만 해도 눈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였지만 시황이 그런 이유에서 아이린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이상 미묘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그 느낌이 뭔지 생각을 하느라 고개를 갸웃하며 아이린을 계속해서 쳐다본 것뿐이었다. 한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들이 주변에 워낙 많다 보니 예쁘고 몸매가 좋다라는 거에 마음이 흔들릴 시황이 아니었다.
“오빠! 난 아이린이랑 같이 뒷자리에 탈게.”
“아, 응. 편한 대로 해.”
“아이린 얼굴 너무 쳐다보지 말라고. 바보.”
유진아가 시황의 귓가에 낮게 속삭이고는 아이린과 함께 뒷좌석에 탔다. 시황이 아이린을 계속 보고 있으니 살짝 질투심이 생긴 것이다.
아이린이 탈 걸 생각해서 일부러 여러 명이 탈 수 있는 유진아의 차를 가지고 왔다. 아무래도 시황의 차는 3명이서 타기엔 좀 불편했으니까.
아이린과 유진아가 탄 걸 확인한 시황은 운전석에 앉아 곧바로 서울로 향했다. 일단은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명동을 가기로 했다.
시황은 운전을 하며 아이린과 유진아의 대화에 이상한 부분이 없나 살폈지만 영어로 대화를 한다 뿐이지 특별한 점은 전혀 없었다.
시황은 유진아의 안내대로 명동에 있는 유료주차장에 가는 게 아니라 큰세계 백화점에 가서 차를 맡겼다. 단순 VIP니 VVIP니 하는 걸 넘어 삼강그룹 회장의 딸이었기 때문에 평소와 비교도 안 되는 극진한 친절에 시황은 손쉽게 차 주차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쇼핑! 쇼핑하자! 나 요즘 쇼핑 못해서 너무 힘들어.”
“정말? 요즘 많이 바쁜가봐?”
아이린은 백화점을 보자 정말 쇼핑을 하고 싶어 하는 천진한 표정을 지었다. 시황은 슬쩍 아이린을 살폈지만 이렇게 보니 오히려 너무 평범한 여자 같아 딱히 의심할 거리도 없었다.
“응. 일하느라 죽을 거 같아.”
“그래 그러면 먼저 쇼핑부터 하자. 오빠 빨리 와.”
“어, 어. 그래.”
시황의 의견은 전혀 물어보지도 않고 여자 둘이서 쇼핑을 하기로 정하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시황도 남자다 보니 벌써부터 피곤해지기는 했지만 안 따라갈 수도 없는 일이라 서둘러 유진아와 아이린의 뒤를 따라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백화점 안은 조금 한산한 편이었다. 화려한 백화점의 인테리어 사이로 보이는 거라곤 쇼핑을 하기 위해 온 여자들뿐이었다.
유진아와 아이린은 명품매장을 거침없이 돌아다녔다. 한명은 대기업 회장의 딸이고 한명은 영국의 공주이다 보니 돈을 쓰는데 있어 거침이 없었다.
마음에 든다 싶은 옷이나 가방, 신발 등을 골랐는데 어느 하나 백만 원 이하인 게 없었다.
“술집 여자인가?”
“명품 저렇게 사는 거 보면 뻔 하지 뭐. 근데 둘 다 엄청 예쁘긴 하다. 텐프로인가 뭐 그런 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인가?”
유진아와 아이린처럼 눈에 확 띄는 미인들이 명품매장을 돌아다니며 구입하다 보니 제법 눈에 띠는 거 같았다. 그래서인지 유진아와 아이린을 본 남자들이 술집 여자라는 둥 막말을 내뱉었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잘 모르기는 하지만 유진아와 아이린이 술집에서 일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쇼핑 하니까 스트레스 풀린다. 스트레스 푸는 데는 쇼핑이 최고야.”
“아이린이랑 쇼핑 하니까 시간 가는지도 모르겠다. 벌써 점심시간이네.”
어느 정도 쇼핑을 마쳤는지 유진아와 아이린이 매장 한쪽에 서서 얘기를 나눴다. 중간에 백화점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유진아와 아이린의 짐을 들어주기 위해 왔지만 시황이 충분히 들 수 있어 일부러 돌려보낸 상태라 시황의 양손에는 옷이며 가방 등이 든 종이 가방이 가득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화장품만 보고 좀 가자. 내가 까먹고 쓰던 스킨, 로션이랑 화장품을 안 가지고 왔어.”
“정말? 그러면 이번에 내가 고급 기초 화장품을 런칭하거든? 그거 써볼래?”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이린이 먼저 화장품을 찾자 유진아는 이때다 하고 바로 케즈론 화장품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어머, 고마워. 진아야. 어떤 화장품일지 기대된다. 내가 써보고 감상평도 말해줄게.”
“그런데 이번에 파는 건 기초 화장품이라 메이크업 화장품은 집에 안 쓰고 남은 거 많으니까 그거 쓰면 돼.”
의도치 않게 화장품 관련 문제가 해결되자 시황도 한숨 놨다. 화장품을 쓰게 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기분 나쁘지 않게 화장품을 쓰게 하는 데는 약간 신경을 써야했다. 어찌됐든 화장품 홍보 목적으로 부른 건데 자칫 잘못해서 아이린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으니까.
“다 됐어? 그러면 이 짐 좀 차에 실으면 안 될까?”
“아! 오빠 미안. 깜빡하고 있었네. 아까의 벌이라고 생각해.”
시황이 종이 가방들을 들며 말하자 유진아가 웃으며 말했다. 짐을 들고 있는 것 자체는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지만 유진아와 아이린을 따라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지쳤다. 몸에 있는 혈맥을 뚫고 30년 이상의 마기를 쌓은 이후로 시황은 피곤이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여자들의 쇼핑은 시황조차 정신적으로 지치게 만들 정도였다. 시황이 이러니 일반 남성이 여자들 쇼핑을 쫓아다니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시황이 짐을 차에 두고 오는 동안 유진아와 아이린은 1층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아이린이 쇼핑을 하며 혹시 이상한 기색이라도 있을까 싶어 유진아가 모르게 끊임없이 살폈지만 이상한 점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왠지 찝찝한 느낌이 들어 시황은 직원을 따라 주차해둔 차에 짐을 실은 뒤에 근처 화장실에 가서 주변을 살핀 뒤에 문을 소환해 케즈론의 성으로 넘어갔다.
“콘즈야!”
“네. 시황 님.”
시황이 부르자 바로 콘즈가 서재에 나타났다. 프린은 라롤린이라도 따고 있는 듯 했지만 지금은 프린을 보러 온 게 아니 콘즈를 보러 온 거였다.
“나한테 사람들의 정보를 보는 능력이 있잖아. 콘즈도 알지?”
“네. 제가 직접 시황 님에게 그 능력을 드렸는걸요.”
“그런데 오늘 그 정보를 보려니까 전부 물음표가 뜨는 사람이 있던데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런 거야?”
“물음표요?”
콘즈가 고개를 갸웃했다.
============================ 작품 후기 ============================
몰랐는데 후원 쿠폰인가 뭔가 하는 제도가 생겼더군요. 후원 쿠폰은 물론이고 일반 쿠폰 주신 분들도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아이디를 말씀드리며 감사를 표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슬슬 글 쓸 의욕도 돌아왔으니 이제 다시 꾸준히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