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4 ------------------------------------------------------
케즈론 런칭
시황은 그런 남자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유미 화면빨 좀 받던데? 첨에 보고 난 누군지도 몰랐어.”
주변에 있던 남자 중 하나가 유미에게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오빠도 보셨어요? 부끄럽다.”
“오늘은 동영상이 더 많이 퍼질 걸? 이러다 유미 엄청 유명해지는 거 아냐? 지금 싸인 받아둘까?”
“에이, 그럴 일 없어요. 제가 어떻게 연예인이 돼요.”
“그렇지? 나도 말하고도 아차 했어. 하하.”
남자의 농담에 주변에서도 가볍게 웃었다.
유미의 성격이 워낙 좋다 보니 주변에 남자든 여자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시끌벅적 떠들고 웃고 있었다.
남자애들은 농담을 하며 살짝 유미의 어깨를 건드리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했는데 여자애들처럼 아무런 사심 없이 하는 행동이 아니라 스킨십 전에 눈동자가 흔들리고 침을 삼키는 게 의도적으로 터치를 한다는 게 시황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순간 인상이 찡그려질 정도로 기분이 나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유미에게 집적거린 수준도 아니고, 유미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기 너무 민감하게 행동하는 것도 썩 좋지는 않았다. 어찌됐든 유미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간섭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유미와 친구들이 웃고 떠들고 있는 중에 교수가 들어왔고 다들 자기자리로 뿔뿔이 흩어졌다.
시황은 학교생활을 했을 때 항상 혼자 다니고 친구라 할 만한 사람도 없었는데 유미는 자신과 완전히 반대되는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자 유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교수의 말을 들으며 필기를 했다.
평범한 대학생처럼 옷을 입었지만 미모와 몸매가 워낙 뛰어나 단번에 유미가 눈에 들어왔다. 닭의 무리 중 한 마리의 학이라……. 군계일학이라는 표현을 많이 듣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그 의미가 와 닿은 적도 별로 없는 듯 했다.
드륵!
한창 유미가 수업을 듣고 있는 중에 진동으로 해둔 시황의 폰이 잠깐 강렬히 흔들렸다.
루비에게서 온 문자였다.
[야! 오늘이 마지막 날 인거 알고는 있지? 내가 오늘 재봤더니 가슴 1센티미터도 안 자랐더라. 막 찡그려지고 우울해질 네 표정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기분 엄청 좋다. ㅋㅋㅋㅋ]
오늘 가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혹시 안 올까봐 문자까지 보냈다.
[걱정 마세요. 오늘 또 특별한 기술로 정말 가슴 크게 해드릴 테니까요. 깜짝 놀라실 거예요.]
[맘대로 해보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루비는 정말 기분이 좋은지 키읔으로 된 초성을 엄청나게 이어 붙었다. 이후로도 몇 번 더 키읔으로 도배된 문자가 왔지만 시황은 피식 웃고 말 뿐이었다. 오히려 가슴에 관한 것보다 루비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데 이렇게 마음대로 쉬는지 약간 궁금해졌다.
나이를 보면 학생일 거 같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황은 포털 사이트에 정루비라고 검색을 해봤다.
[정루비] [영화배우, 모델]
[소속사 : 아진 엔터테이먼트]
[가족 : 동생 정은비]
[학력 : 동덕여자대학교 아동학과]
영화배우, 모델이라는 글에 눈이 갔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다 싶었더니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 영화배우를 지망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영화 출연작을 봐도 엑스트라 수준이 다였고 틈틈이 모델 활동을 조금 했을 뿐 별다른 건 없었다.
적막한 강의실에서 시황이 폰을 꺼내서 놀고 있었지만 강의를 하는 교수는 시황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시황이 입은 옷에 걸린 인지왜곡마법으로 인해 특별하게 크게 소음을 낸다든지 하는 등의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시황이 여기 있다는 걸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존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투명하지 않은 투명인간이 된 거라고나 할까? 다만 기계장치에는 걸리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기는 해야 했다.
몇 번의 강의가 끝나고 쉬는 시간마다 유미의 주위에는 항상 서녀명의 여자애들이 몰려들었다.
“그럼, 너 오빠랑 키스는 해봤어?”
“키, 키스? 비밀이야.”
“꺅! 어쩜 좋아. 진짜 해본 거야?”
키스라는 말이 나오자 주변에 유미의 주변에 있던 서너 명의 여자애들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유미를 쳐다보다가 유미가 비밀이라고 하자 꺅꺅 소리를 지르며 부끄러워했다.
“비, 비밀이라니까.”
“그럼 키스하면 기분이 어때? 만화나 영화에서 나오는 거처럼 엄청 기분 좋고 그래? 입 냄새 나지는 않아?”
“입 냄새? 난 입 냄새는 못 느꼈는데, 진짜 기분 좋기는 해. 하…….”
유미는 어제 했던 시황과의 그 키스와 진득했던 섹스를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깊은 숨을 쉬었다. 시황과 키스를 하고 스킨십, 섹스를 할 때 느껴지는 그 짜릿한 육체적, 정신적 쾌감은 기분이 좋다는 단순한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꺄악! 기분 좋데. 막 혀도 넣고 그래?”
“아이참, 부끄럽게. 자꾸 그 얘기하면 나 화낸다.”
“꺅! 유미 대단하다.”
자꾸 키스에 대한 걸 묻자 유미가 부끄러운지 귀여운 얼굴 표정을 지으며 더 이상 묻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에 오히려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더 큰 비명소리를 냈다.
겨우 키스를 해봤냐는 물음에 부끄러움 표정을 짓었는데 얼굴이 워낙 청순하고 예쁘게 생기다 보니 마치 유미가 성적인 건 하나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순진한 표정을 짓는 소녀가 어젯밤에 시황의 손을 묶고 몸의 구석구석을 유린할 줄을 그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적극적이고 자극적으로 섹스를 할 줄은 시황도 몰랐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 유미의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다시 자기 자리로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강의가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강의 시작할 때쯤에 들어온 한 남학생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유미에게 종이쪽지 하나를 주고는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시황의 눈이 번뜩였다.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종이쪽지를 펴보는 유미의 옆에 서서 그 내용을 같이 읽었다.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이 강의 끝나고 잠깐 만날 수 있어? 정말 잠깐이면 돼.]
유미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갸우뚱하고 있었지만 시황은 저 남자가 유미에게 고백을 하려고 한다는 걸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원래 유미에게 관심이 있었을 텐데 어제 방송도 나오고 인기도 훨씬 더 많이 생기자 급한 마음에 쪽지라도 써서 보낸 듯 했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까 해서, 혹은 유미에게 나쁜 마음을 품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따라온 건데, 막상 생각한 일이 벌어지자 잘 왔다는 싶었다.
남자의 인상은 크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제법 잘생기기도 했고 옷도 잘 차려 입은 게 여자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을 거 같았다. 뭐, 그래봐야 유미에게도 인기가 있을 거 같지는 않았지만.
시황은 다시 자리에 앉아 유미가 어떤 반응을 할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강의가 끝나고 남자와 유미가 어색한 거리감으로 건물 밖에 나가 근처에 있는 한적한 벤치로 갔다.
따스한 봄 날씨이기도 하고 날도 화창해서 몸이 나른해질 정도였다. 주변에 가득한 나무들이 이젠 제법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막아주고 있었다.
“앉으세요.”
“아, 네.”
벤치에 유미가 앉자 남자는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았다.
시황은 유미의 바로 옆에 서서 남자를 응시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안 좋은 상황이 생기면 바로 나서기 위해서였다.
“저기……. 중요한 얘기를 하신다고 해서…….”
유미가 어색하고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네. 돌려서 안 말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남자가 약간은 굳은 표정으로 유미를 응시하며 말했다.
“유미 씨 좋아합니다. 지금 당장 대답해 달라고는 안 하겠습니다. 제가 누군지도 모를 테고. 일단은 친구부터해서 조금씩 알아가면서…….”
“저, 저기. 정말 죄송한데요.”
남자가 약간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고 있는데 유미가 안절부절못하다 중간에 말을 끊었다. 더 이상 계속 들었다가는 거절할 타이밍을 놓칠 거 같아서였다.
“네?”
“정말 죄송한데 제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오빠가 있거든요. 저희 가족도 다 알고요. 마음은 고마운데 정말 죄송해요. 저보다 더 좋은 여성분 만나시길 바랄게요.”
유미는 안절부절못하기는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 꾸벅 인사를 하고 강의실로 되돌아갔다. 거절을 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저렇게 단호하게, 그것도 결혼 얘기까지 꺼내면서 말을 할 줄은 시황도 몰랐다.
시황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어리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옛날 시황도 은지에게 고백했다가 차여봤기 때문에 저 마음을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지만 뭔가 통쾌하고 유쾌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 젠장. 괜히 고백했다. 그냥 가만히 있을 걸. 미친. 아오 이제 학교 어떻게 가냐.”
유미에게 차인 것도 충격이지만 혹시 유미가 소문이라도 내면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까 걱정이 돼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캠퍼스 커플도 사귈 때는 좋지만 헤어지고 나면 안 좋은 소문이 나는 경우가 많아서 보통 남자 쪽이 군대를 가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고백했다 차인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추후에 생길지 모르는 불미스러운 일에 정신적인 붕괴를 겪고 있는 남자를 보며 가볍게 웃은 시황은 강의실로 돌아가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이젠 유미를 따라다닐 필요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던 건데 유미가 결혼까지 말하며 거절하는 걸 보고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20살인 유미가 결혼 생각을 할 정도면 어느 남자가 고백하더라도 지금처럼 무자비하게 차버릴 게 분명했다.
그래도 사귀어주지 않는다고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혹시 모를 위협에 대한 몇 가지 안전대책을 세울 필요는 있어보였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나온 시황은 화창한 날씨에 한적한 캠퍼스를 걸었다. 루비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아직 제법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느긋한 마음과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처음 와본 성균관대를 구경했다.
약간은 후덥지근하지만 여름처럼 땀이 흘러내리는 날씨는 아닌지라 여자의 옷들이 상당히 다채로웠다.
“저기요. 길 좀 물어 봐도 될까요?”
“길이요? 죄송한데 제가 여기 학생이 아니라서 길을 잘 몰라요.”
유유자적하게 걷고 있는 시황에게 어떤 여자가 오더니 살짝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걸었다.
짧은 팬츠와 살랑거리는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준수한 미인이었다. 순진하거나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은 아닌 듯 했고 입은 옷과 하는 행동, 얼굴을 보니 활달하고 거침없는 성격이라는 게 대충이나마 느껴졌다.
“학생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요? 놀러 오신 거예요?”
“학생은 맞아요. 잠깐 일이 있어서 왔다가 이제 돌아가는 길이에요.”
보통 길을 모른다했으면 알겠다하고 갈 길 가는 게 당연한데 여자는 계속 시황에게 말을 걸며 도무지 떠날 생각을 안 했다. 이런 패턴이면 보통은 뭔가 꿍꿍이가 있기 마련이었다. 종교적인 거든 설문조사든 아무튼 귀찮은 일이 생길 확률이 다분했다.
“어디 학교 다니는지 물어도 괜찮을까요? 실례되는 말인가요?”
“서울대요. 결혼할 여자 친구가 여기 다니고 있어서 잠깐 왔는데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옛날이었으면 당연히 실례되는 질문이었겠지만 지금은 전혀 실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 전 유미가 남자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 일부러 결혼할 여자 친구라는 말을 넣었다. 안 해도 상관없는 말이었지만 유미를 보고나니 괜히 한번 해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자, 잠깐만요. 조금만 얘기 좀 해요. 서울대생도 들으면 좋은 얘기에요.”
시황이 여자를 무시하고 지나가려 하자 여자가 시황의 옷을 빠르게 붙잡으려 했다.
그 행동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면 누구나 쉽게 피할 수 있었겠지만 시황은 여자를 지나친 상태라 자신의 옷을 붙잡으려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 수 있었다.
여자의 손이 시황의 옷자락 끝에 닿아서 꽉 움켜쥐려는 순간, 시황이 기묘하게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