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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304화 (30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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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즈론 런칭

프린은 알몸인 상태도 드러누워 공허한 눈빛으로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엔 화가 나서 온갖 난리를 다 치더니 불과 며칠 만에 무생물이라도 된 것처럼 모든 욕구가 사라진 거 같았다. 이쯤 되니 시황도 프린이 좀 불쌍하기도 했고 너무했나 싶기도 했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프린이 고개를 돌려 시황을 바라봤다. 며칠 만에 보는 시황의 모습에 눈에 다시 생기가 감돈다.

“내가 하는 말에 따를 거면 고개를 끄덕이고 하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계속 여기서 지내게 해줄 테니까.”

시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프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더니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흔히 죄에 따라 여러 가지 고통을 느끼는 곳을 지옥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진정한 지옥은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는 거였다. 아무런 소음조차 없는 흰색의 공간에서 식욕도 배설의 욕구도 없이 가만히 누워있는 건 자신이 살아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오히려 처음에 귀에서 소리가 나던 그 이상한 노래라도 듣는 게 낫다 싶을 정도였다.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 영원히 여기에 갇혀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자 프린은 이제껏 느끼지 못한 지독한 두려움이 엄습해 옴을 느꼈다. 여기서 나가면 그 어떤 짓이라도 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몇 달, 아니 어쩌면 몇 년이 지났을 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시황은 전혀 오지 않았고 프린의 정신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조차 박탈당한 공간은 프린의 정신을 완벽하게 굴복시킨 것이다.

“여기 있은 지 한 5일 됐나? 이정도 시간으로는 부족한 거 같지만 일단 대화라도 해볼까 생각중이거든. 만약 대화를 하는 중에 한마디라도 욕설이 나오면 다시 여기에 집어넣을 거야 어때? 할 수 있어?”

이번에도 프린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나간다면 욕 같은 것쯤이야 영원히 안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저번처럼 나한테 달려들어도 여기에 넣을 거야. 이해했어?”

프린은 다시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일단 나가서 얘기부터 하도록 하자.”

시황은 프린을 양손으로 들어 올려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생각 같아서는 샤워부터 시키고 싶었지만 다시 집어넣어할지 어떨지 몰랐기 때문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식당에 도착한 시황은 가까이서 마주볼 수 있고 작은 식탁에 프린을 앉혔다.

“팔이랑 다리에 묶은 구속구는 나중에 풀어줄 거고 먼저 입에 물린 구속구부터 풀어줄게.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하는 말 외에 이상한 소리 하면 다시 집어넣을 거니까 알아둬.”

단단히 주의를 준 시황은 프린에게 물린 공자갈을 풀어주었다. 그나마 침이 덜 흐르게 한다는 공자갈이었지만 입에 물리는 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공자갈에 침이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시황은 공자갈을 대충 옆에 두었다.

“하아…… 하아…….”

공자갈을 풀어주자 프린은 숨부터 거칠 게 쉬었다.

“콘즈야.”

“네! 시황 님.”

“여기에 먹을 음식들 좀 차려줘.”

“알겠습니다.”

딱!

콘즈가 손을 튕기자 식탁에 다양한 음식들이 생겨났다. 시황이 처음 보는 음식들부터 해서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갈만한 음식까지 식탁을 가득 채웠다.

꼬르륵.

며칠 동안 밥을 전혀 못 먹고 겨우 안 죽을 만큼 허기만 면하다 보니 음식 냄새에 프린의 배가 바로 반응했다.

“이, 이거 먹어도 돼?”

“아니. 일단 얘기가 먼저야. 그리고 존댓말 해야지. 설마 계속 반말할 생각은 아니지?”

“아, 아니요. 조, 존댓말 할게요.”

혹시 공자갈을 풀어주면 욕부터 할까 했는데 며칠 동안 독방에 있어서 그런지 엄청나게 순해져 있었다. 하지만 수란에게 했던 연기를 생각하면 절대 방심은 금물이었다. 이러다 언제 또 달려들지 몰랐다.

“좋아. 그러면 그때 보물창고에서 거기서 뭐하고 있었어?”

“그, 그게……. 금화랑 보석이랑 후, 훔치고 있었어요.”

프린이 잔뜩 기죽은 표정으로 소심하게 대답했다. 주변에 아무런 병사도 기사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렇게 거대한 성을 사용하는 남자인 만큼 권위 있는 귀족가의 마법사일 게 분명했다. 아직 뭐가 뭔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목숨을 오래 보전하려면 최대한 눈치를 잘 봐야 했다.

“그러니까 보물을 훔치다 나한테 들킨 거 같으니까 단검으로 죽이려고 달려들었다는 거지? 뭐, 그 부분은 됐고. 널 그냥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거든. 어차피 돌아가 봐야 사지가 찢겨 죽겠지만.”

“히익! 사, 사지가 찢기다니. 서, 설마요.”

시황의 말에 프린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지옥 같은 공간에서 나오자마자 사지가 찢겨죽는 건 아니겠지 라는 압박감이 가슴을 죄어왔다.

“네가 욕한 여자가 로 하임 제국의 공주였거든. 널 죽이겠다는 걸 일단 내가 막아둔 상태인데 네가 그대로 돌아가면 어떻게든 찾아내서 죽이겠지. 그러니까 일단 내 밑에서 일을 하면서 나한테 도움을 좀 주면 잘 말해서 자유의 몸이 되도록 해줄게. 어때?”

시황은 프린에게 채찍과 당근을 주며 살살 꼬드겼다. 프린이 가진 그 능력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전에 봤던 그 날렵한 몸놀림은 절대 인간의 근력만으로는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프린을 기습할 때 마기를 잔뜩 이용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이라면 피할 수도 없이 그대로 얻어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프린은 눈치 채는 게 살짝 늦어 어깨에 배를 타격 당했을 뿐, 만약 제대로 서로를 인식한 상태였다면 시황으로서는 프린을 잡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 알겠어요. 그런데 얼마나…….”

“그건 네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금방일 수도 있고 오래거릴 수도 있지. 네가 제대로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안 돌려보낼 거거든.”

“네. 그렇게 할게요. 어떤 일이든 시켜만 주세요. 그러면 이제 이 음식들 먹어도 될까요? 배가 너무 고파요.”

“그래. 먹어.”

시황의 허락이 떨어지자 프린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팔에 수갑이 채워져 있어 제대로 손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저기, 손에 발에 달린 거 풀어주시면 안 돼요? 풀어주셔도 절대 이상한 짓 안할게요! 정말요!”

프린은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시황에게 말했지만 시황은 그 모습이 그저 가식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저런 표정을 짓다가도 기회만 되면 식탁에 있는 포크로 가슴을 찔러올 게 분명했다.

그런 위험요소가 가득한 일을 시황이 할 리가 없었다.

“나중에. 네가 좀 더 개념이 생기면 생각해보지. 일단은 내가 먹여줄게.”

시황은 프린의 옆자리에 가서 음식을 하나씩 먹여줬다.

“읏……. 그냥 풀어주시면 되는데.”

그러자 프린은 제법 불편한 듯 시황의 눈치를 보며 음식을 꾸역꾸역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시황은 바로 프린을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깨끗하게 씻겨주었다. 이것도 잠재적 위험 때문에 시황이 직접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일이 다 씻겨주었는데, 프린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제 가슴 괜찮죠? 가슴 만지셔도 돼요. 아니, 가슴만이 아니라 제 몸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하셔도 괜찮아요.”

“별로. 옷이나 입으러 가자.”

다 씻겨주고 나서 몸을 닦아주자 프린이 노골적으로 시황을 유혹했다.

팔로 가슴을 살짝 끌어 모으며 애절한 눈빛을 지었다. 더러울 때는 아무런 감정조차 없었는데 깨끗하게 씻고 촉촉한 물이 묻은 상태에서 그러자 시황은 약간 음심이 동하기는 했다.

특히 탄력이 가득하고 풍만한 저 C컵의 가슴은 어떤 감촉일지 느껴보고 싶었지만, 어떻게 봐도 자신을 유혹해서 빠져나가려는 속셈으로 가득한 게 빤히 보였다.

이정도 음심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인내력이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시황은 가볍게 신경도 쓰지 않고 옷이 가득한 방으로 갔다.

“넌 이제 이 성의 하녀가 되는 거야.”

“네? 하녀요?”

“그래. 밤에는 밖에 나가서 라롤린을 따고 낮에는 날 도와줘야 돼.”

“보, 보통 반대가 아닌가요?”

“어차피 여긴 이 성 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밤이라고 딱히 위험하진 않아. 아, 그리고 도망가도 바로 잡히니까, 그럼에도 도망가다 잡히면 벌을 내릴 줄 알아.”

“네. 절대 도망 안 갈게요!”

말은 저러지만 눈은 벌써부터 밖에 내보내주면 당장 도망가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어차피 이 행성에서 도망가 봤자 어디든 시황이 바로 붙잡을 수 있었다. 다른 행성에선 평범한 인간이지만 적어도 이 케즈론이 만든 행성에서만큼은 전지전능에 가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옷 정도면 적절하겠네. 이런 거 입고 도망가진 못하겠지?”

제법 야하게 생긴 하녀복이었다. 속옷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스루 스타일에다 사용된 천 조각이 매우 작아 엉덩이의 윤곽이 확연하게 보일정도였다. 그럼에도 하녀복이라는 이름을 쓰기 위해 옷 자체에는 다양한 효과가 걸려있어 몸이 쉽사리 더러워지지 않게 해주었다.

무슨 의도로 이런 하녀복을 만들었는지 대충 짐작은 간다고나 할까?

이어서 젖꼭지만 겨우 가리는 브래지어, 아니 브래지어가 아니라 스티커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브래지어와 음부만 겨우 가릴 수 있는 팬티, 아니 이것도 그냥 밴드라는 표현이 좀 더 맞는 팬티를 골랐다.

마지막으로 굽이 높은 하이힐까지 골라서 옷을 입혀주었다.

하녀복을 입힐 때는 손과 발에 있는 구속구가 거치적거려서 하나씩 풀며 입혔는데 혹시나 달려들까 대비해 마기를 끌어올려놨음에도 프린은 그냥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나중에 밖에 내보내 주길 기다리고 있는 거 같았다.

옷을 다 입은 프린은 남에게 보이기가 민망할 정도의 모습이었다. 노출 심한 그라비아 아이돌 영상을 보는 것처럼 젖꼭지와 음부만 겨우겨우 가렸는데 하녀복 자체도 짧고 노출이 심해서 움직일 때마다 가슴과 음부가 대놓고 드러났다.

이건 일종의 제한 장치였다. 이런 옷을 입는 다는 거 자체가 부끄러울 테고 그러한 부끄러움은 행동의 제약이 되기 때문에 프린을 압박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람은 신기하게도 잘해주다 약간 못해주면 크나큰 실망을, 못해주다 조금 잘해주면 크나큰 기쁨을 느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효과를 기대하며 일부러 입힌 옷이었다.

그런데 보통 여자애라면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 해야 할 텐데 프린은 별다른 기색도 없이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시황은 이어서 요리를 할 수 있는 부엌과 거기에 있는 기기들의 사용법을 가르쳐 주고 성에 있는 방들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는 밖에 나가 라롤린이 잘 자라고 있는 정원도 가르쳐 주었다.

이제 슬슬 라롤린이 많이 필요해지는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에 미리미리 뜯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대충 마무리가 되자 시황은 여전히 구속구를 단 프린을 옆에 앉히고 수련실에 가서 검법 연습을 했다.

며칠 동안 연습을 해서인지 어색함은 약간 사라진 모습이었다.

제법 격렬하게 검법을 수련해서인지 시황의 몸과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프린은 할 게 없어서 멍하니 시황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가서 라민차 좀 가져올래?”

“네. 그럴게요.”

시황의 말에 프린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는 수련실을 나갔는데 시간이 제법 지났음에도 돌아올 생각을 안했다.

수련실에서 내보내주자마자 도저히 못견디고 도망을 친 거 같았다.

“콘즈야.”

“네! 시황님.”

“지금 프린 어디있어?”

“정원을 지나서 성 밖으로 향하고 있어요.”

케즈론의 성은 주변에 정원으로 둘러싸여있을 뿐 지구에 있는 고대의 성들처럼 해자나 벽으로 막혀있지 않았다. 애초에 쳐들어올 적 자체가 없으니 그런 식으로 방어를 할 필요성이 존재치 않았던 것이다.

“성으로 소환할까요?”

“아니. 일단 놔둬봐.”

시황은 프린이 도망가게 놔두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그만큼 상실감도 커질 테니까. 그런데 도망치지 말라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혀놨는데 바로 도망칠 줄이야. 도저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었다.

“어떤 벌을 줘야 할까나?”

아까 전에 도망치다 잡히면 벌을 준다고 했기 때문에 시황은 어떤 벌을 줘야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 작품 후기 ============================

개인 사정상 내일이나 모레는 쉴 수도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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