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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300화 (3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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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즈론 런칭

“고마워.”

수란이 구석에 나 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시황은 본격적으로 주위를 돌아다니며 금화와 보석들을 살폈다.

“이 상자 때문에 문이 안 열렸던 거구나.”

지하로 통하는 문은 금화와 보석 한가운데 있는 게 아니라 금화와 보석이 전혀 없는 구석에 따로 떨어져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없는 구석진 자리에 제법 큰 보석 상자가 옆으로 밀려나간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문을 열 때 엄청 무겁더니 이 보석 상자가 막고 있어서 그랬던 거 같았다.

“무슨 상자지?”

금화나 보석을 몰래 가져가려는 게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이 생겨나 시황은 커다란 보석 상자를 열어보기로 했다. 혹시 상자가 잠겨 있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과 다르게 아무런 보안장치가 안 되어 있었는지 너무나 쉽게 상자의 뚜껑이 열렸다.

“호오, 좋은 것만 다 모여 있네?”

지천에 쌓인 금화를 제외하고 척 보기에도 값나갈 것만 같은 보석과 장신구 등이 상자의 3분의 2나 차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기 때문에 시황은 다시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여자들이 봤다면 비명을 지르며 좋아했겠지만 이런 거 보다 전자제품과 기계를 더 좋아하는 평범한 남성인 시황은 금세 흥미를 잃고 말았다. 어차피 가질 수 있는 것들도 아니니 흥미가 있어봐야 의미가 없기도 했다.

“좀 더 신기한 건 없나?”

앞에서만 왔다 갔다 하며 새로운 무언가를 찾던 시황은 좀처럼 별 게 없어 어느새 산처럼 쌓여있는 금화의 옆 부분까지 갔다.

“어? 검이네?”

금화의 산 뒤편에 살짝 튀어나온 검손잡이 같은 부분이 보이자 시황은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중세 영화에서 보는 그런 흔한 검과 다르게 무채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듯한 잿빛의 손잡이는 과할 정도로 단순하고도 절제된 형태였다. 이 손잡이만 보고도 시황은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손잡이를 쥐고는 곧바로 묻혀있는 검을 뽑아들자 금화들이 짤랑거리는 소음을 내며 불규칙적으로 흘러내렸다.

“어? 부서진 검이네?”

당연히 보기만 해도 베어질 것 같은 은색으로 빛나는 검신이 나타날 거라 생각했는데 약간은 탁한 빛을 머금은 혼탁하고 뭉툭한 검신이 드러났다. 거기다 검신의 중간 부분은 부서져서 제대로 쓰지도 못할 정도였다.

“괜히 기대했네.”

금방 실망한 시황은 부서진 검은 그냥 내려놓으려다가 왜 부서진 검인지 알아나 볼까 하는 생각에 검의 정보를 살펴봤다. 보통 때는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정보창을 끄고 있었기 때문에 물건의 정보를 확인하려면 이렇게 직접 켜야 했다.

[루나스의 파편. 블랙 드래곤 루나스가 만든 검. 드래곤 하트의 파편이 극소량 포함되어 있어 뜨거운 용암에도 녹지 않고 그 어떤 장인이 제련한 날카로운 검에도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다. 부서진 듯한 외관은 기본적인 형태이며 극소량이기는 하나 드래곤의 파편이 들어간 만큼 사용조건이 까다롭다. 루나스의 파편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60년 어치 해당하는 마력이 필요하고 일정량의 마력을 부서진 검신에 집어넣게 되면 마력에 의해 완전한 검신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마력의 공급이 불안정하게 되면 중요한 순간에 검신이 사라져 큰 피해를 입게 될지도 모르니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대단한 검이네?”

시황은 연신 검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일단 드래곤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무조건 좋은 거였다. 이 검의 절삭력이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래곤이 만든 거니 그 어떤 검을 가지고 와도 상대가 안 될 게 분명했다.

“이렇게 좋은 검이 왜 이렇게 대충 방치되어 있는 거지?

사람이 하는 사고는 어느 정도 비슷하기 마련이었다.

처음 이 검을 발견한 사람도 제법 그럴싸하게 보이는 외관 때문에 로 하임 제국의 황제에게 공물로 바쳤었다. 이 검을 받은 황제도 비록 부서진 검이긴 하나 범상치 않은 모습에 장식용으로 쓰다가 시간이 차츰 지나고 몇 대의 왕에게 거쳐 내려온 뒤에 결국 대충 아무 보물이나 보관하는 비밀 창고로 옮겨지게 되었다.

60년 마력이라는 제한 조건이 간단해 보이지만 말이 60년 마력이지 절대로 간단한 조건이 아니었다. 60년 마력이라는 건 말 그대로 60년 동안 모은 마력을 말하는 거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60살 이전에는 다다르지도 못하는 어마어마한 수치의 마력이었는데, 이런 마력을 황제들이 가지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시황이야 대기업에 입사한 회장 아들이 1년마다 승진하는 것처럼 드래곤의 유산을 받아 영약이 몇 개씩이나 있었기 때문에 60년의 마력을 모으기 어렵지 않은 거뿐이었다. 실제로 이런 영약은 아무리 황제라도 거의 구할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하고도 희귀한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끼이익.

한창 검을 보고 있던 시황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수란이 온지 알고 말을 걸려고 했다. 그런데 금화의 산 뒤편으로 살짝 보이는 사람은 수란이 아니라 하녀복을 입은 10대 후반의 여자애였다.

“jjayu oulla koun.”

혹시 이곳을 청소하러 온 하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여자애가 중얼거리는 말이 전혀 해석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로 하임 행성의 언어를 배우지 않고 워프 게이트로 바로 이동했었다.

시황은 왠지 들키면 안 될 거 같아 일단 금화 뒤로 조심스럽게 몸을 숨긴 뒤에 아공간에서 언어 습득용 알약을 하나 꺼내 먹고는 바로 로 하임 제국의 언어를 익혔다.

“병신들. 내가 대낮에 보물 창고를 털어가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겠지. 하녀장부터 병사들까지 병신 아닌 놈들이 없다니까. 지들이 뭘 지키고 있는 지도 모르고 술 좀 주니까 좋아서 마시러 가는 꼴 좀 보라지.”

언어를 습득하는 순간 로 하임 제국의 언어가 단번에 이해되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이제 겨우 10대 후반이나 될까하는 하녀인 여자애가 하는 말 치고는 상당히 과격했다.

“이제 이 짓도 며칠만 더하면 끝인가. 이걸 마지막으로 손 털고 나도 떵떵거리면서 살아야 하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하녀복을 입은 여자애는 연신 낄낄거리며서 조그만 주머니에 금화들을 쓸어 담았다. 겨우 금화 10개 정도 들어갈 주머니에 물리법칙을 거스르듯 한도 끝도 없이 금화가 계속 들어가는 걸 보면 공간확장이 걸린 마법 주머니인 듯 했다.

아까 전엔 당황해서 까먹고 있었는데 수란의 말을  상기해보면 이 비밀 창고를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왕족 중에서도 한손가락 안에 든다고 했다.

저 여자애가 입은 하녀복을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왕족은 아닌 거 같았다.

왕족도 잘 못 들어오는 보물 창고에 하녀가 들어와서 돈을 훔치듯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도적이었다.

고전 판타지의 필수 파티원 중 하나인 도적을 보자 시황은 걱정보다는 신기함과 호기심이 생겨났다. 특히 도적하면 떠오르는 날렵한 인상의 야비한 남자가 아니라 호리호리한 몸매에 기다란 금발, 하얗고 귀여운 얼굴은 정말 도적인가 싶을 정도로 신선한 느낌이었다.

“오오! 엄청 큰 진주 발견! 내 보물 상자에 모아뒀다가 마지막 날에 한 번에 들고 가야지. 후훗.”

여자애는 휘파람을 불며 아까 시황이 의아하게 생각한 덩그러니 떨어진 상자에 가더니 자연스럽게 발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금화를 쓸어 담으며 나왔던 괜찮은 보석들을 상자 안에 무더기로 집어넣었다.

텅!

“음?”

대충 발로 상자를 닫은 여자애는 뭔가 이상한 느낌에 살짝 눈을 살짝 찌푸렸다.

“위치가 다른데?”

일부러 문 위에 올려둔 상자였는데 지금 보니까 문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에 상자가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건드리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위치에 상자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은 여자애의 표정이 굳는다 싶은 순간, 전광석화 같은 빠른 몸놀림으로 한바퀴 돌며 단번에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언제 뽑아들었는지 알 수조차 없는 단검을 앞으로 내밀고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 전 희희낙락하던 표정이 존재했나 싶을 정도로 얼음장처럼 얼굴이 차가워졌다. 몸에서는 날카롭게 벼려진 칼을 보는 것만 같은 기세까지 느껴졌다.

시황은 도적 여자애가 갑자기 경계 태세로 들어간 걸 확인하고는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금화의 산 뒤에 좀 더 숨어 있을지 지금 나가서 붙잡아둘지 선뜻 선택할 수가 없었다.

서슬 퍼런 단검을 보니 아까와 다르게 긴장이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창 시황이 고민하고 있을 때 여자애는 고양이 같은 발걸음 금화의 산 뒤로 조용히 이동했다. 아니, 조용히 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런 기척조차 나지 않았다. 마치 음소거 상태에서 화면만 움직이는 TV를 보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단검을 든 여자애가 약간 이상한 낌새가 감도는 금화의 산 뒤로 서서히 접근했고 시황은 더 이상 고민했다간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마기를 끌어올렸다.

쿵!

여자애처럼 아무런 기척을 내지 않는 발걸음 따윈 전혀 몰랐기 때문에 칼을 내팽개치고는 20년이 넘는 어마어마한 마기의 양으로 다리 근육을 강화시켜 그 힘을 그대로 바닥을 박찼다.

단단한 돌로 만든 바닥이 패이며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갈라져 나갔다.

벼락같은 속도였다.

보통 격투 게임을 할 때는 이렇게 발을 굴러 속도를 붙인 다음에 단번에 얼굴을 타격해 승리를 거두는 게 시황의 싸움법이었다. 하지만 게임이 아니라 여기서 여자애를 그런 식으로 때렸다간 단번에 이승을 하직할 게 분명했기 때문에 단검을 피한 뒤에 최대한 넓은 면적으로 부딪혀 전투 불능의 상태로만 만들 생각이었다.

휙!

시황은 어깨가 여자애의 허리 부근에 살짝 닿았다고 느낌이 오자 면적을 넓게해 죽지 않도록 조심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런 시황의 공격에 아무런 타격을 못 받았는지 여자애는 아까처럼 뒤로 돌며 빠르게 물러섰다. 그리고 바로 바닥을 박차더니 단검을 앞세워 시황의 이동경로에 단번에 찌르고 들어왔다.

“흡!”

시황은 이대로라면 단검에 찔리겠다는 생각에 마기를 더 끌어올려 브레이크를 걸듯 다리에 힘을 줘 단번에 멈춰섰다. 그리고 곧바로 손에 부착된 장갑에 마기를 불어넣어 단단하게 만든 뒤에 단검을 막아냈다.

깡!

쇠와 쇠가 붙이치는 소리가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빛이 번뜩할 정도만큼이나 순식간에 일어난 공수교환.

어떻게 단검은 막아냈다. 하지만 무리하게 속도를 멈춰서인지 시황은 다리가 욱신욱신하게 아파오고 몸이 살짝 떨리는 걸 느꼈다.

격투 게임을 했던 게 상당히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날카로운 검을 든, 그것도 무술에 제법 조예가 있어 보이는 상대와는 처음 싸워보는 거라 긴장과 두려움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큭! 개새끼……. 너 뭐하는 놈이야?”

그런데 얼음 같은 표정으로 시황을 노려보던 여자애가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시황의 어깨에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여자애는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은 것이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오는 차에 살짝 부딪히고 어떻게 뒤로 물러섰다고 그 데미지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단지 제대로 부딪혔을 때보단 데미지가 덜 들어왔을 뿐.

지금 여자애의 상황이 그랬다.

시황은 항상 게임에서 이런 식으로 이기다 보니 힘조절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잘 몰랐다. 그저 최대한 넓은 부위로 타격을 주면 죽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달리는 차에 최대한 넓게 부딪히면 안 죽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쨍그랑!

여자애의 손에 있던 단검까지 바닥에 떨어지고 입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왔다.

시황은 당황한 표정으로 바로 여자애에게 가려다 혹시 기습을 당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살짝 주의를 기울이며 단검을 멀리 차낸 뒤에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가갈 수 있었다.

“괜찮아요?”

“좆같은 새끼. 개새끼. 내가 너 찢어죽이고 만다. 그리고 가슴에서 심장을 꺼내서 하나도 남김없이 잘근잘근 씹어……. 쿨럭.”

시황이 부축을 해주자 시뻘건 눈으로 시황을 바라보며 여자애가 온갖 욕을 다 퍼붓다가 다시 피를 토해내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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