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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291화 (29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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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에서

길게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카페 문이 열리자 바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카페 케즈론에서 파는 커피와 초코 쿠키 등이 워낙 유명해져서 이렇게 줄 서서 기다리지 않으면 사먹지도 못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압도적인 초코 쿠키와 커피의 맛은 그 어떤 곳에서도 맛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느새 여자라면 꼭 가보고 싶은 카페의 첫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쩜 좋아. 나 지금 막 가슴까지 떨려. 빨리 사진부터 찍어야지.”

“나도나도. 애들이 이거 먹고 싶다고 징징거리던데 코코아톡으로 자랑이나 해야지.”

언제부터 기다린 건지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둘이 제일 먼저 커피와 초코 쿠키를 받아와 호들갑을 떨며 사진을 찍고 폰으로 친구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커피가 맛있다고 호평을 받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크크. 개웃긴다. 애들이 지금 여기 찾아와서 다 먹는데. 와도 안 줄거지롱.”

지금 시황이 은근슬쩍 보고 있는 테이블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테이블들도 마치 경건한 의식이라도 행하는 것처럼 테이블에 커피와 초코 쿠키와 빵이 담겨있는 그릇을 폰과 DSLR 등을 사용하여 너도나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시황이 테이블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노을이었다.

“노을 씨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네. 저는 매일 카페에 왔는데 사장님은 카페에 잘 안 오시더라구요.”

“하하. 뭔가 민망한데요. 요즘 학교 다닌다고 바빠서 시간이 잘 안 나네요.”

“그렇군요. 저기, 잠깐 저랑 얘기 좀 하실 수 있을까요?”

노을이 약간 주저주저하더니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시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얘기하기는 좀 그러니 안에 들어갈까요?”

“감사합니다.”

이럴 때는 보통 뭔가를 부탁하기 마련이고 노을이 할 부탁은 뻔했기 때문에 시황은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처럼 노을을 직원실로 데리고 갔다. 가방부터해서 이것저것 잡다한 물건들이 있기는 했지만 조용히 얘기하기엔 나쁘지 않은 공간이었다.

시황이 대충 앉자 노을이 테이블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기…….”

“네. 말씀하세요.”

“주제넘게 이런 말해서 죄송한데 초코 쿠키를 좀 더 많이 만들어 주시면 안 되나요?”

“더 많이 만들어 달라고요?”

초코 쿠키를 달라고 말할 거라 생각했는데 약간 다른 얘기가 나오자 시황이 궁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저런 말을 했는지 대충은 알겠지만 저런 건 보통 은지나 지숙이, 현주가 해야 안 어색한 말인데 노을이 하니까 조금 어색했다.

“제가 카페 케즈론을 정말 좋아하고 여기 있는 모든 커피를 다 마셔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커피랑 다르게 초코 쿠키는 오늘처럼 날 잡고 기다리지 않으면 먹는 게 불가능해요. 같은 그룹 언니나 다른 연예인 분들도 커피 마시러 여기에 자주 오기는 하지만 초코 쿠키를 못 먹어서 항상 아쉬워해요.”

“아…….”

“그 초코 쿠키 정말 맛있는데……. 너무 맛있는데 먹지 못해서 얼마나 슬픈지 모르시죠? 매일 너무 조금만 파니까 경쟁도 치열하고 심지어 인터넷에 서너 배 비싸게 팔아도 팔릴 정도에요.”

“인터넷에 팔기도 하나요?”

“네. 저 같이 아쉬워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보니 그렇게 비싼 가격이라도 금방금방 다 팔려버려요. 제가 주변에 정말 홍보 열심히 할 테니까 조금만 더 초코 쿠키를 많이 만들어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말이 없던 노을의 평소 이미지와 다르게 초코 쿠키에 대해서는 정말 열정적으로 개선을 요구했다. 이러니까 마치 노을이 여기서 일하는 직원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그렇게 노을 씨가 초코 쿠키를 좋아하시는지는 몰랐네요.”

“…….”

살짝 놀란 듯 시황이 말하자 노을이 볼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평소 초코 쿠키를 잘 먹지 못한 울분이 한 번에 터져 나왔다. 웬만한 일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대충 넘기는 게 노을의 성격인데 초코 쿠키에 대해서는 도저히 그런 식으로 참을 수가 없어서 평소와 다르게 지나치게 흥분 해버렸다. 가슴이 후련하기도 했지만 부끄러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요즘 학교 다닌다고 바빠서 제가 이정도로 초코 쿠키의 인기가 많은지 몰랐거든요. 사람들이 줄 많이 선 거 보고 저도 어떻게든 개선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노을 씨 말도 있고 하니까 앞으로는 웬만하면 다 초코 쿠키를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저,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냥 초코 쿠키를 좀 더 많이 팔겠다는 말만으로도 노을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면 임금협상에 성공이라도 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카페 케즈론에 대한 애정이 저렇게 많을 줄이야.

“그 부분은 제가 개선하도록 하고 다른 얘기를 좀 해보죠.”

“네? 무슨 얘기를…….”

“아, 잠시 만요.”

시황은 밖에 나가서 제법 커다란 박스를 하나 가지고 왔다.

그 박스의 정체가 뭔지 아는 노을의 눈이 순식간에 커다래졌다. 저건 바로 돈이 있어도 사먹지도 못하는 초레어 초콜릿이 든 박스였다! 처음 오픈하는 날 뿌렸던 그 초콜릿 맛을 잊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카페 케즈론에서 파는 초콜릿의 정체를 수소문했지만 그 누구도 찾지 못했었다.

“전에 드렸던 그 초콜릿이에요. 주변에 나눠주셔도 되고 노을 씨 드셔도 상관없어요. 좋은 의견 말해주셔서 제가 그냥 드리는 거니까요.”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스를 받아드는 노을의 손이 살짝 떨렸다. 옛날에는 이 초콜릿의 가치를 잘 몰랐지만 지금은 이게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닌 가슴 깊이 알고 있었다. 이런 대단한 초콜릿을 선뜻 내주는 시황을 보자 노을은 순간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강아지도 아니고 먹을 거 줬다고 호감을 넘어 좋아한다는 감정이 생기다니……. 노을은 그건 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어 시황에 대한 감정을 날려버렸다.

“혹시 주변에서 화장품 얘기 안 하던가요?”

“화장품이요? 어떤…….”

“음,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기엔 좀 부끄럽지만 대충 보니까 기적의 화장품이라면서 여기저기 소문이 도는 거 같더라고요.”

“기적의 화장품이요? 아! 들어본 거 같아요.”

“어떤 식으로 들으셨어요?”

“같이 방송하는 선배님들이 엄청 비싼데 바르기만 하면 피부가 정말 좋아지는 화장품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파는 데가 없어서 사고 싶어도 못 산다는 말도 했구요.”

블로그에도 사진이 올라왔을 정도니 패션과 피부에 민감한 연예인들이 그런 정보를 놓칠 리가 없었다. 유진아와 그 친구들을 통해서만 팔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너무 한쪽으로만 팔고 있는 거 같아 노을이나 은비를 통해서 연예인들한테도 화장품을 팔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일부러 20개 정도만 팔고 25개 정도는 남겨두고 있는 상태였다. 한 번에 다 팔아버리면 곤란하니 말이다.

“그러면 혹시 주변에 화장품 사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시면 저한테 연락 좀 주세요. 30~40대 연기자 정도면 더 좋고요.”

“네. 혹시 알아보고 사고 싶은 분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그런데 제품 이름이랑 가격은 뭐라고 해야 되죠?”

“제품 이름은 그냥 기적의 화장품이라 하면 다 알아 들으실 테고, 가격은 1억입니다.”

“네? 1억이요? 화장품이요?”

“네. 원래는 5천만 원짜리 였는데 수요를 너무 많다 보니까 저절로 가격이 1억까지 오르더라구요. 그래도 여전히 물량은 없는데 수요가 많아서 일부러 아주 제한된 수량만 팔고 있지만요.”

“어, 엄청 비싸네요.”

노을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고개를 절래절래 젓더니 금세 화장품에 흥미를 잃고 방금 준 초콜릿을 아까운 듯 혀로 살짝살짝 핥아먹었다.

원래는 은비에게 부탁할까 했는데 잘못했다가 스캔들이라도 나면 곤란했기 때문에 일부러 노을에게 부탁한 거였다. 그나마 노을을 그럭저럭 잘 아는 사이기도 했고 선물도 제법 줬기 때문에 이 부탁을 대충 넘기진 않을 게 분명했다.

연예인에게 화장품을 팔게 되면 TV상에 피부가 확실히 드러나서 그 효과가 상당할 게 분명했다.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까.

**

한창 수업을 듣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유진아였다.

[오빠.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자꾸 화장품 좀 팔아달라고 사정하는데 어떻게 하지? 이제 화장품 얼마 안 남았잖아.]

[한 20개 정도 남았나? 우리 브랜드 런칭할 때 맞춰서 생산하려고 아직 준비 중이라 이게 다야.]

[브랜드 런칭하려면 시간 좀 많이 남았는데……. 그러면 오빠 한 달에 3개 정도씩 해서 경매로 팔까? 한 10개 정도면 3달은 버틸 수 있는데.]

[진아가 편한 대로 해. 나중에 수업 마치면 화장품 10개 줄게.]

[응. 고마워 오빠. 그리고 오늘 우리 집에서 밥 먹자. 내가 맛있는 소고기 얻어놨거든. 오늘 밤에 잠 안 재워 줄 거니까 각오하라고. 이런 말 하니까 좀 민망하다. ㅋㅋ]

유진아는 말해놓고도 약간 부끄러웠는지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ㅋㅋ라는 초성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저런 말 안 해도 평소에 상당히 오랫동안 섹스를 즐기는데 저렇게 선전포고까지 하면 얼마나 섹스를 하겠다는 건지 궁금하기는 했다.

[미안. 오늘은 집에 일이 있어서 조금 일찍 들어가 봐야 돼.]

하지만 오늘은 찬미, 유미와 중요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가서 그 궁금증을 풀 기회는 없을 듯 했다.

[그러면 우리 집에서 밥 먹고 잠깐 놀다갈 시간은 돼?]

[응. 그 정도는 될 거 같아.]

[알았어. 나중에 봐. 오빠. ♡]

전에는 안 그랬는데 유진아에게 애교가 약간 늘어난 거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여전히 도도하고 무뚝뚝하면서 자신에게만 저런 하트를 보내니까 왠지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 시황은 씩 미소를 지었다.

시황은 수업을 마치고 유진아의 집에 가서 화장품 10개를 건네주고 소고기를 얻어먹었다. 언제부터인지 유진아의 집에 가면 옷을 다 벗고 샤워를 먼저 하는 게 기본적인 수순이었는데 오늘은 소고기를 구워먹다 보니 밥을 다 먹고 나서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알몸인 여자와 남자, 그것도 호감을 넘어 좋아하는 남녀이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섹스를 시작했다.

평소라면 유진아가 지칠 때까지 섹스를 즐겼을 테지만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시황은 간단하게 마무리하고 유진아의 집을 나섰다.

오후 8시.

집에 돌아온 시황은 거실에 있는 찬미, 유미와 바로 마주쳤다.

“오빠! 왔어요? 오빠 덕분에 우리과에서 저 인기 완전 좋아요. 초코 쿠키 하나씩 주면 애들이 좋아 죽는다니까요.”

“하하. 그래?”

의외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유미의 모습에 시황은 갸우뚱하기는 했지만 별다른 내색 없이 유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힘드셨죠?”

“괜찮았어.”

오히려 찬미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당연히 섹스를 해본 찬미가 평소랑 다를 바 없고 유미가 긴장해야 할 텐데 어찌된 게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어찌됐든 상관은 없지만.

방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은 시황은 거실에서 TV를 보며 여자애들과 시간을 보냈다. 따로 살 때는 그렇게 싸우더니 수란을 통해 얘기를 한 게 효과를 봤는지 지금은 다들 별다른 갈등과 불만 없이 원만하게 지내고 있는 듯 했다.

물론 눈치들을 보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어찌됐든 시황의 옆 자리는 아루와 찬미로 확실히 고정이 된 거 같았다. 여자들 사이의 관계를 잘은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서열 같은 게 있는 거 같다고나 할까?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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