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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279화 (279/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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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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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이 따스한 오후였다. 수업을 마친 대학생들이 친구들과 크게 웃거나 얘기를 하며 캠퍼스 이곳저곳을 지나다니고 있었고, 시황과 고운, 보영은 집으로 가기 위해 천천히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

“오빠 내일 봐요!”

“안녕히 가세요.”

“응. 잘 가.”

수업이나 학교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주차장에 도착했고 고운은 아쉬운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친구인 보영과 함께 버스를 타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떠나갔다.

주차장에 세워둔 BMW M6에 탄 시황은 바로 출발하지 않고 은비에게 문자를 먼저 보냈다.

[수업 다 마쳤어요. 이제 출발할 거니까 준비하고 계세요.]

[알았어. 빨리 오기나 해! 한참 기다렸단 말이야.]

은비의 답장을 확인한 뒤에 시황은 시동을 켜고 은비의 집으로 향해 운전을 했다. 은비가 가져오라던 초코 쿠키야 아공간에 잔뜩 있었기 때문에 카페에 들렀다 갈 필요도 없었다.

차가 약간 밀리기는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은비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큰 평수의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한강을 바로 마주한 위치라 땅값자체는 상당히 비쌀 듯한 곳이었다.

은비에게 문자를 보내자 채 1초도 되지 않아 답장이 왔다. 그리고 잠깐 기다리자 전에 선물해줬던 모자를 푹 눌러쓰고 흰 티와 핫팬츠를 입은 은비가 빠르게 차에 탔다.

“빨리 오라구. 바보야. 한참 기다렸잖아.”

차에 타자마자 모자를 벗어 머리를 깔끔하게 매만지며 은비가 말했다. 모자를 쓰고 있을 때도 연예인 특유의 작은 머리와 완벽하리만큼 아름다운 신체비율 때문에 절로 눈이 갔는데 모자를 벗자 은비의 미모 때문에 순간 차 안이 환하게 밝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그래. 집에서 얼마나 지루했는지 알아? 흥흥, 모르지?”

“하하. 최대한 빨리 온 거에요. 저도 오늘 은비 씨랑 문자하고 나서 자꾸 은비 씨 생각만 나던걸요.”

“흐, 흥. 거짓말하지 마. 바보야.”

시황의 말에 은비가 코웃음 치며 말했지만 살짝 올라간 입 꼬리와 약간 붉어진 얼굴은 상당히 기분이 좋다는 게 단번에 티가 났다. 저렇게 말과 속마음이 다른 게 은비의 큰 매력이기도 했다.

“그럼 어디로 갈까요? 가고 싶은데 있어요?”

“내가 다 생각해놨다구. 일단 간단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쇼핑 좀 하다가 미리 예약해둔 여름 왕국 보고 맛있는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한강에서 산책도 할 거야. 그리고 밤이 되면…… 아니, 하여튼 이렇게 할 거야.”

뭔가 더 말하려던 은비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얼굴을 붉히더니 대충 말을 마무리했다.

“일정 빡빡하네요. 그러면 쇼핑하러 백화점이라도 가볼까요?”

“응. 그러자. 근처에 백화점 몇 군데 있으니까. 아무데나 가자.”

“그럼 갈게요. 아, 맞다. 가는 동안 쿠키랑 초콜릿이라도 드세요. 카페에서 가지고 왔어요.”

“우왕, 고마워. 남겨뒀다가 나중에 엄마랑 먹어야지.”

시황은 가방에서 초콜릿과 쿠키가 든 상자를 은비에게 건네주자 은비가 눈을 반짝이며 상자를 받아들더니 바로 열어서 초콜릿과 쿠키를 먹었다.

마치 귀여운 강아지처럼 과자와 쿠키를 먹는 은비를 보며 흐뭇하게 웃은 시황은 운전을 해서 근처에 있는 백화점으로 갔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모자를 푹 눌러쓴 은비와 함께 지하매장부터 돌아다녔다. 다양한 식품은 물론이고 식기, 침구, 음식 매장까지 있는 곳이라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은비는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채거나 시황을 놓칠까봐 모자를 최대한 눌러쓰고 손은 시황과 깍지를 낀 채로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다. 평소에 사람들 때문에 은비는 이런 곳은 전혀 오지 못하다 보니 시황과 만나면 항상 데이트 코스에 쇼핑이 꼭 끼였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시황과 같이 다니면 사람들이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기도 하고 시황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와, 컵 예쁘다. 이거 하나 살까? 윽, 근데 엄청 비싸다.”

은비가 에르메스라고 적힌 식기 매장에서 컵과 그릇을 보며 연신감탄하며 옆에 있는 시황을 보며 말했다.

“이런 거 말고 제가 좀 더 좋은 컵이랑 그릇 있는데 드릴까요? 디자인도 제가 보기엔 훨씬 예쁜데.”

“응? 정말? 그러면 나야 좋지. 히힛.”

시황의 말에 은비가 별다른 미련 없이 식기 매장을 떠났다.

저런 비싼 브랜드 식기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시황이 가진 건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식기들이라 감히 평범한 공산품과 비교를 불허했다.

적당히 지하층을 살펴보고 은비와 함께 1층에 올라가서 해외 브랜드를 살폈다. 지하층은 그저 흥미로 봤다면 고급 해외 브랜드가 가득한 지상 1층은 새로운 브랜드 런칭을 위한 사전 조사의 느낌이 좀 더 강했다.

시황은 은비와 함께 유명한 명품 브랜드의 가방들을 살폈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브랜드의 가방이라 그런지 가격들이 백만 원은 우습게 넘기고 있었다. 옛날 같았으면 저런 가방을 사기는커녕 매장에 들어오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부담감 따윈 전혀 없이 가방들을 하나하나 재봉선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아까 식기를 팔던 브랜드인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갔다. 아직까지 완벽하게 명품 브랜드들의 사전조사를 끝낸 건 아닌지라 단순히 비싼 가방을 파는 곳 정도라 생각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가방들의 가격에 시황은 속으로 살짝 놀랬다. 비싸봐야 몇 백만 원 일거라 생각했는데 에르메스 매장엔 천만 원도 우습게 넘기는 가방이 상당히 많았다. 뭐, 그래봐야 보석함에 가득 든 보석 중에 하나만 대충 팔아도 이런 가방 수십 개는 살 수 있다만.

“주변에 이런 가방 많이 들고 다녀요?”

“응. 유명한 선배님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는 거 같더라구. 수집하시는 분도 있고. 난 이렇게 비싼 거 살 생각 전혀 없지만 말이야.”

엄청나게 비싸다 싶지만 은비의 말에 따르면 유명하다 싶은 연예인들이 이런 가방들을 사기는 사는 듯 했다. 확실히 외모로 먹고 산다고 할 수 있는 연예인들이니 패션에 관심이 많은 건 당연하다 싶었다.

천만 원이 넘는 가방들을 봤지만 당연하게도 특별한 점은 없었다. 시황이 보기에도 디자인이 좋고 가죽의 고급스러움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어떠한 마법적 효과 없이 그저 물건을 담는다는 단순한 기능만을 가졌음에도 디자인과 품질, 브랜드 때문에 천만 원이 우습게 넘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그걸 또 여자들은 못 사서 안달이었다.

시황이 런칭하고자 하는 브랜드인 케즈론은 이것보다 더 비싼 최고급 명품 브랜드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막 생긴 브랜드가 가격만 비싸게 판다고 사람들이 살까? 당연히 전혀 아니었다. 홍보는 둘째 치고 살만한 가치가 있어야했다. 그러한 가치를 지니게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마법적인 역할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가방에서 아주 살짝 고급스럽고 은은한 광채가 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어찌됐든 가방을 가졌을 때 디자인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돋보이게 된다면 그건 팔릴만한 가치를 지닌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이 부분은 케즈론의 성에 가서 마법 도구와 가방 등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었다.

에르메스 매장을 나온 시황과 은비는 2층으로 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이제 2층으로 가봐요. 여름 왕국 볼 시간 아직 안 됐죠?”

“응. 아직 좀 남았어. 내가 시간 되면 말해줄 테니까 걱정 안 해도 괜찮아.”

“하하. 알겠어요.”

은비가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며 말했다. 저녁 시간이 다돼가서 그런지 사람이 아까보다 좀 더 많아진 듯 했다.

“간만에 아이쇼핑해서 그런지 정말 재밌다. 그런데 넌 다른 남자들이랑 다르게 쇼핑하는 거 하나도 안 지루해 하네? 우리 아빠만 해도 엄마랑 같이 이런데 오기 싫어 죽으려고 하거든.”

“저런데 흥미가 있으니까요. 어떤 가방이 예쁜지 보고 은비 씨한테 선물해야 하잖아요.”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구. 바부야. 하나도 기대 안 되거든!”

말로는 기대 안 된다고 했지만 깍지를 낀 은비의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가더니 손을 더 꽉 쥐고 얼굴을 살짝 붉혔다.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시황은 가볍게 볼을 꼬집어 주었다.

2층에는 각종 패션 잡화와 시계 보석들이 가득했다. 1층의 명품처럼 여기도 가격대들이 정말 만만치 않았다.

“아! 잠시 만요.”

“응? 왜?”

“잠깐 뭐 좀 확인할 게 있어서요.”

별 생각 없이 시계들을 살펴보다가 시황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가방에서 타블렛을 꺼내 퀘스트들을 살폈다.

[100만 원 이상의 시계를 구입하세요. 경험치 300]

[1000만 원 이상의 시계를 구입하세요. 경험치 1000]

[1억 원 이상의 시계를 구입하세요. 경험치 3000]

예상대로 비싼 시계를 구입해도 경험치가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1억 원이 넘는 차는 경험치가 1000이었던 반면에 같은 가격의 시계는 경험치가 3000이었다. 아무래도 비싼 시계는 차와 다르게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경험치가 높은 듯 했다. 1억 원이 넘는 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많지만 1억 원이 넘는 시계를 구입하는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지금의 시황에게 1억 원은 절대 만만한 가격이 아니었다. 수입원이라고는 카페에서 벌어들이는 돈과 만화를 출판해서 버는 원고료 정도가 다였다. 여기에 남은 돈도 그렇게 여유로운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못 살 수준은 아니지.”

“응? 바부야. 뭐하는 거야.”

그렇다. 여유롭지 않다는 거지 1억 원의 지출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카페에서 벌어둔 돈도 제법 되고 서울에 새로 오픈한 카페에서는 지방에서와 다르게 버는 돈만해도 하루에 몇 백만 원은 되다보니 월매출 1억은 우습게 넘길 수 있었다. 거기다 내일 화장품 몇 개만 팔아도 단번에 몇 천만 원이 손에 들어오니 1억 원 정도의 지출을 하더라도 큰 무리가 있는 건 아니었다. 정 안 되면 유진아를 통해 보석을 팔면 억 단위의 돈이 들어 올 테니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사뭇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얼마 전만해도 정말 몇 천원에 벌벌 떨었는데, 이제는 몇 천만 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니 말이다.

“가요. 오늘 시계 하나 사야겠어요.”

“응? 시계 어떤 거?”

“일단 저 앞에 있는 매장에 가서 살펴봐요.”

“흐, 흥. 남자가 시계도 안 차고 말이야. 내가 하나 사줄까? 용돈 모은 거 조금 있는데.”

은비는 아직까지 부모님이 돈을 관리하고 조금씩 용돈을 받아쓰는 듯 했다.

“하하. 마음만으로도 고마워요. 그러면 시계 말고 나중에 키스 해주는 건 어때요? 전 시계보다 은비 씨 키스를 더 받고 싶거든요.”

“모, 못하는 말이 없다니까. 바부. 그, 그렇게 원하면 나중에 키스해 줄게. 네가 엄청 하고 싶어 해서 해주는 거니까 착각하지 말라고.”

“고마워요. 일단 매장에 들어가요.”

시황은 다시 은비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고 근처에 있는 시계 매장에 들어갔다. 이런 쪽은 시황이 크게 지식이 없어 아무데나 들어갔는데 그 매장의 간판에는 바쉐론 콘스탄틴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시계 매장 자체가 아까 전 그 에르메스 매장처럼 범상치 않았다. 블랙톤이 가미된 매장의 장식과 내부엔 척 봐도 고급스러움이 가득한 시계들이 유리벽에 전시되어 있었다. 가격은 싼 게 몇 천만 원 수준이었고 비싼 건 억대를 우습게 넘길 정도로 비싼 시계들이 즐비했다.

“너, 너무 비싸다. 다, 다른데 갈래? 세상에 무슨 시계들이 이렇게 비싸데.”

시계 가격을 본 은비가 깜짝 놀라서 시황의 귀에 작게 얘기를 했다.

시황도 설마 이렇게 비쌀 거라곤 생각을 못해서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매장에 갈 생각은 별로 없었다. 시황이 원하는 건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 그런 허영심 넘치는 비싼 시계가 아니라 5레벨이 되기 위해 1억 원이 넘는 시계를 사고 3000이라는 경험치를 얻는 거였다. 5레벨이 되면 2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을 받을 테니 일종의 투자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비싼 시계이니 만큼 여러 가지 마법 도구를 이용해서 스크레치가 전혀 안 나게 한다든가, 가죽줄이 더러워지지 않게 하는 등의 조취를 취한다면 좀 더 편하게 시계를 차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괜찮아요. 적당한 거 사면 돼요.”

은비를 안심시킨 시황은 시계들을 둘러봤다. 일단 보석이 박혀 있는 종류의 시계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오히려 심플한 디자인의 시계가 더 마음에 들었다.

이것저것 살펴보는데 유독 눈길이 가는 시계가 하나 보였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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