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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에서
“하하. 나도 시간만 되면 진아랑 같이 있고 싶어.”
“그러면……. 아니다. 안 되지. 그러면.”
“응? 뭐가? 안 돼?”
“하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까 비밀번호 가르쳐 줬으니까 정말 오빠가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도 돼.”
유진아는 그냥 이참에 같이 사는 건 어떠냐고 말하려고 했지만, 괜히 그랬다가 부담스러워하기만 할까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또 시황과 떨어져서 지낼 생각을 하니까 괜히 한숨만 나왔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시항이 싱긋 웃으며 얼굴을 만져주었다. 그러자 약간 안정되었다.
“고마워. 진아야. 그런데 우리 진아 얼굴에 뾰루지랑 흉이 조금 있네.”
“지금은 다 나았는데 옛날에 여드름이 조금 났었거든. 별 거 아니야. 오빠.”
유진아의 전체적인 피부 톤이 온실 속에 자란 화초마냥 새하얘서 그냥 보기만 해도 귀하게 자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하얀 얼굴을 시황처럼 가까이 달라붙어서 보면 흉이 진 게 조금 보였다. 사실 사람인 이상 뾰루지 안 나고 흉이 조금이라도 없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시황이 그런 걸 모르고 꺼낸 말은 아니었다.
“우리 진아를 위해서 특별히 내가 좋은 걸 하나 선물해야겠네.”
시황은 궁금한 표정을 짓는 유진아에게 케즈론의 화장품을 주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유진아의 다리가 넝쿨마냥 칭칭 감고 있어 일어날 수가 없었다.
“진아야 다리 좀 풀어줄래?”
“으, 응. 미안. 오빠.”
시황의 말에 유진아가 빠르게 다리를 풀었다. 이상하게도 시황의 옆에 누우면 이렇게 몸 전체를 꽉 끌어안고 싶은 본능이 샘솟았다.
시황은 가방에서 화장품을 꺼내는 척 하며 아공간에서 케즈론의 화장품 중에서 에센스를 하나 꺼내서 유진아에게 건네주었다.
“자, 이거 써.”
“에센스야?”
유진아는 시황이 건네준 에센스 뚜껑을 열어서 냄새를 살짝 맡아봤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신선한 냄새가 상당히 좋았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보통의 화장품은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주변 사람들한테 이 화장품 나눠주면서 어떤 화장품인지 전혀 안 가르쳐줬거든. 그런데 내가 진아한테만 가르쳐 줄게.”
“어떤 화장품인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하는 시황의 말에 유진아가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시황과 지내며 느꼈지만 시황은 절대로 별 거 아닌 걸 대단한 척 포장하며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도 그 정체불명의 무인도에서 가져온 거야.”
“아!”
유진아의 눈이 살짝 변했다. 그 무인도에서 가져온 물건이 레드 다이아몬드와 핑크 다이아몬드라는 것만 봐도 이 화장품이 절대 평범한 게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좀 시험해봤는데 이 화장품을 바르는 것만으로도 여드름이 싹 사라지고 뾰루지, 흉 진 것까지 완벽하게 없애줘. 그야 말로 마법의 화장품이라고 할까?”
“신기하다. 이거 지금 발라 봐도 돼? 오빠?”
“응. 너 쓰라고 준 거야.”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으며 유진아는 바로 에센스를 얼굴에 살짝 발라보았다.
화장품이 발리는 감촉, 느낌, 향기, 수분 보습까지 이런 화장품이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뛰어났다. 돈이라는 것 자체에 구애받지 않는 유진아였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쓰지도 못하는 굉장히 비싼 화장품 들을 썼었는데, 그 비싼 화장품 중에서도 시황이 준 이 신비로운 화장품이 단연 발군의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시황이 말한 대로 여드름 제거에 뾰루지, 흉까지 없애준다면 화장품계에 거대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도 남을 정도이리라.
뜻하지 않게 거대한 돈 냄새를 맡은 유진아는 술 때문에 살짝 붉어진 볼이 흥분으로 더욱 빨개졌다. 단순히 비싼 화장품을 받고 좋아했던 유미와 다르게 유진아는 단 한 번 화장품을 바르고 시황에게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단번에 파악해버린 것이다.
“어때? 괜찮아?”
“오, 오빠. 이거 얼마나 더 있어? 오빠말대로 이 화장품이 여드름이랑 흉 진 걸 확실히 제거해준다면 화장품 시장에 거대한 돌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그러면 이것 좀 볼래?”
시황은 다시 가방에 가서 타블렛을 꺼냈다. 그리고는 유진아에게 유미의 얼굴 변화를 차례대로 보여주었다.
“내가 아는 동생이야. 병원에 가도 여드름이 전혀 나아지질 않았는데, 방금 그 화장품을 바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얼굴이 말끔하게 변했어.”
“혹시 사진을 수정한 건 아니지? 오빠? 나 지금 너무 믿기지가 않아.”
“하하. 그래? 보다시피 단순히 여드름이 사라진 것만이 아니라 얼굴에 있던 흉까지 전부 싹 사라져서 마치 아기처럼 피부가 예뻐진 거야. 주변에 몇 개 건네줬는데 전부 피부가 이 사진처럼 정말 좋아졌거든.”
유진아는 정말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화장품이라는 건 미백이니 기능성이니 해봐야 피부 톤이 살짝 밝아지는 수준이지 이것처럼 여드름과 흉을 없애주는 건 불가능했다. 만약 제대로 홍보만 된다면 이건 백만 원, 아니 천만 원, 이천만 원이 넘더라도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일 게 분명했다.
시황은 타블렛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 멍하니 생각에 빠진 유진아의 눕힌 뒤에 그 옆에 누웠다. 확실히 유진아는 경영감각이 있다 보니 물건이 가진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 대화를 나누기가 편했다.
“오, 오빠. 이거 몇 개나 있어? 성분 분석을 해서 만드는 방법만 알아낸다면 케즈론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정말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몇 개 남았더라? 이제 한 30개 남았나?”
“그러면 일단 성분 분석을…….”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진아도 봐서 알겠지만 평범한 식물들 가지고 만들 수 있는 효능이 아니잖아? 우리가 갔던 정체불명의 무인도에 있던 나무와 식물들처럼 지구에는 없는 그런 식물로 만든 화장품이거든. 냄새만 해도 생전 처음 맡아보는 종류잖아?”
“아…… 그렇구나…….”
한껏 들떴던 유진아의 얼굴에 깊은 실망감이 어렸다.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하며 커다란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30개면 그냥 쓰는 게 나은 개수였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거기서 화장품 제조법이랑 필요한 재료도 같아 가지고 왔거든.”
“어? 정말? 정말이야? 오빠?”
다시 유진아의 표정이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하하. 당연하지. 그 재료로 화장품을 만들 준비도 해놨어.”
“오빠는 정말 대단한 거 같아. 난 그 무인도에서 무서워서 벌벌 떨기만 했는데…….”
유진아는 신뢰를 넘어서 존경에 가까운 눈빛을 시황에게 보냈다. 시황이라는 존재는 정말 알면 알수록 더 대단했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순진하게만 생긴 평범한 남자라고만 생각했는데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그 대단한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준비는 대충 마쳤으니까 남은 30개의 화장품은 홍보로 좀 이용해야 할 거 같아. 일단 진아가 아는 사람 중에 영향력 있고 유명한 사람들하고 만나게 해줄래? 특히 영국 왕실 쪽에 아는 사람 있으면 좋겠는데. 그쪽에서 사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테니까 말이야.”
“아이린! 오빠, 나 아이린 공주랑 친한 사이야. 안 그래도 한번 한국에 오겠다고 했는데, 일정 조절해서 한국에 오면 오빠랑 만날 수 있게 해 볼게.”
“오, 우리 진아 인맥 대단한데? 설마 아이린 공주랑 친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진짜 대단하다.”
“헤헤.”
시황의 칭찬에 유진아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시황을 끌어안았다. 시황에게 칭찬을 들으니 세상을 다가진 것 마냥 행복했다.
“나중에 내가 스킨, 로션 다 줄 테니까 일단 진아가 다 써보고 확실히 효과를 느끼면 주변 사람들하고 만나게 해줘. 어찌됐든 중요한 건 화장품의 효능이니까.”
“응. 오빠 내가 써보고 오빠한테 어떤지도 말해줄게.”
“그래. 고마워.”
시간이 조금 늦어서인지 유진아의 얼굴이 약간 피로해보였다.
“벌써 1시가 넘었네. 우리 이제 슬슬 자자. 내가 불 끄고 올게.”
“오빠랑 있으니까 시간 가는 지도 모르겠다. 매일 이렇게 있으면 좋을 텐데…….”
“하하. 나도 그러고 싶네.”
불을 끄고 오자 자신을 끌어안고 중얼거리는 유진아의 등을 시황은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 옛날, 처음 화장품을 팔 때 어떻게든 있어 보이기 위해서 영국 왕실이라는 이름을 팔았던 건데 어느새 정말 영국 왕실의 인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 빈궁했던 과거부터 드래곤의 유산을 얻고 해왔던 일들, 앞으로 해나가야 할 미래가 뒤엉켜서 뒤죽박죽 떠오르며 시황은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
시황은 유진아가 태워주는 차를 타고 학교로 가는 중이었다. 수업을 듣는 날 중에서 오늘은 두 시간짜리 강의만 들으면 되는 날이라 평소보다 여유가 넘쳤다.
“진아야?”
“으, 응? 왜, 왜? 오, 오빠?”
“아니, 그냥.”
어제와 확연히 다르게 유진아는 시황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앞만 보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술에 취해서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게 너무 부끄러워 시황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황과 사랑을 나눈 건 좋은데 그 과정에 상상을 초월하는 짓을 해버렸다. 혹시 시황이 변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길 정도로 말이다.
학교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라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니 유진아는 시황에게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침에 한 번 더 사랑을 나누기는 했었지만 어제와 다르게 너무 부끄러워 시황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어제는 그런 용기가 나와서 그렇게 부끄러운 짓들을 했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진아야.”
그런데 그때 시황이 한참 생각에 빠져있는 유진아를 잡아끌어 키스를 했다. 전처럼 단순히 입만 맞추는 뽀뽀가 아니라 드라마에 차마 내보낼 수 없을 정도로 야하고도 진득한 키스였다.
“어제랑 오늘 진아 정말 아름답고 멋졌어. 나는 차마 부끄러워서 진아랑 같이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었는데, 진아 덕분에 나도 큰 용기를 낼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진아야.”
“아, 아니야. 오빠.”
눈을 바라보며 하는 시황의 말에 유진아는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부끄러움이 가득했던 방금 전과 달리 이렇게 시황이 말해주니까 용기와 자신감이 생겨났다. 완전히 부끄러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아침에 느꼈던 그 혼란스러운 감정은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내가 모르는 게 많으니까 어제처럼 진아가 많이 가르쳐줘.”
“거, 걱정 마. 오빠. 내가 여자에 대해서 더 잘 가르쳐 줄 테니까.”
“진아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오빠도 참.”
대충 유진아의 정신이 수습된 거 같자 시황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에는 서로 알몸이었던 상태라 어떻게 자연스럽게 한 번 더 섹스를 할 수가 있었는데 그 뒤로 유진아가 엄청 부끄러워하기만 해서 좀 걱정이 생기긴 했었다. 그래도 이렇게 잘 마무리를 지었으니 앞으로는 큰 걱정거리는 없을 듯 했다.
“조만간 또 놀러갈게. 괜찮지?”
“응. 오빠 언제든지 와도 돼.”
“그러면 난 이제 수업 들어갈게.”
“나중에 문자할게. 잘가 오빠.”
마지막으로 키스를 한 번 더 하고 시황은 유진아의 차를 빠져나와 인문관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