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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유산-269화 (269/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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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에서

강주희? 시황은 어렴풋하게 이름이 떠오르는 거 같기도 했다. 그때 시청자가 워낙 많아서 기억하는 아이디가 거의 없었지만 달풍선을 1000개 2000개씩 계속 쐈던 강주희라는 이름은 기억이 나는 거 같았다.

그때는 별다른 생각 없이 방송하고 달풍선을 받았는데 이렇게 직접 팬이라고 찾아와 주는 여자애를 만나니 어깨가 으쓱해질 정도로 기분이 좋기는 했다.

“아, 기억나네요. 그런데 이름이 다르네요?”

“그, 그게 그땐 제가 미성년자라서 언니 이름으로 한거라서요.”

“하하. 그렇군요. 뭐, 어찌됐든 이렇게 알아봐주시는 분이 있으니 저도 기분 좋네요.”

“아니에요. 시황 오빠를 봐서 제가 더 좋았는걸요.”

어쩌다 보니 강의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다음 강의까지 시간이 제법 남아있었다. 이제 점심시간이 다돼가기도 하니 슬슬 밥을 먹으러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황은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예상대로 아까 고운이랑 얘기했던 친구가 이쪽을 멀뚱히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전 이만 가볼게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기다리는 친구가 있으니 고운과 계속 얘기할 수도 없는 일이고해서 시황은 헤어지기 위해 인사를 하고 가방을 둘러멨다.

“오, 오빠 잠깐만요.”

“네?”

“저기, 저기 식사하셨어요?”

“아니요. 아직 안 먹었어요. 이제 슬슬 밥이나 먹으러 갈까 생각 중이긴 해요.”

“혹시 친구 분이랑 식사하세요?”

“아니요. 혼자 먹으려고요.”

OT도 안 갔다 왔고 해서 아는 사람이 없다보니 좋든 싫든 혼자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옛날에는 혼자 밥 먹는 게 그렇게 민망하고 부끄럽고 그랬는데 지금은 별다른 생각조차 들지 않고 무덤덤했다.

“그러면 저희랑 같이 식사하실래요? 안 그래도 이제 막 밥 먹으려고 했는데…….”

약간은 긴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고운이 말했다. 어떻게든 좀 더 시황과 대화를 나누고 같이 있고 싶어 한다는 게 표정에서 역력하게 드러났다. 마치 동경하던 연예인을 만난 그런 모습 같았다.

시황은 좀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지금 여자들을 많이 사귀고는 있지만 고운처럼 처음부터 좋아하는 티를 내면서 다가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에 마치 하트가 새겨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고운이 처음이다 보니 약간은 연예인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안 그래도 혼자 먹는데 같이 먹으면 저야 좋지요. 일단 친구 분께서 기다리시는데 괜찮냐고 말씀부터 드려보세요.”

“아, 네. 네. 그렇게 할게요. 자, 잠시 만요.”

역시 생각했던 대로 시황은 배려심이 좋다는 생각에 고운은 친구에게 다가가서 시황과 같이 밥을 먹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너무 시황과 밥을 먹고 싶어서 미리 양해도 안 구한 것이다.

“보영아. 갑자기 이런 얘기해서 미안한데 시황 오빠랑 밥 같이 먹어도 될까? 나 정말 같이 먹고 싶어서…….”

“나, 남자랑 밥 먹는 게 처음이라 좀 긴장되기는 하지만 난 괜찮으니까 밥 먹으러 가자고 말해.”

“응. 고마워.”

고운은 시황에게 바로 뛰어가서 보영의 말을 전했고 시황과 밥을 먹기 위해 강의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시황이 앞에 나와 자기소개를 할 때 고운은 사진과 방송으로만 보던 시황이 앞에 나와 있자 정말 깜짝 놀랐었다. 처음 유투브 동영상으로 시황의 노래를 듣고 정말 감동해서 휴대폰에 영상을 넣어 항상 넣어 힘이 들 때마다 보곤 했었다. 그러다 세렝게티에서 방송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언니 이름으로 세렝게티에 가입했었다. 생각대로 시황의 노래 실력은 눈물이 찔끔 흐를 정도로 감동적이라 있는 용돈을 다 털어 달풍선을 선물했었다. 그 전부터 시황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방송을 본 이후로는 정말 팬이 되어서 시황이 한다는 카페를 찾아가기도 했고 시황이 나온 영상, 유투브를 전부 다 모아놨었다. 지금도 시황이 부른 노래와 영상이 폰에 저장되어 있었다.

시황과 고운, 보영은 사람이 북적이는 인문관에서 나와 화창한 캠퍼스 거리를 걸으며 어떤 밥을 먹을지 정하고 있었다. 오늘 막 개강한 새학기라 그런지 건물 안은 물론이고 캠퍼스에도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아침만 해도 시황은 학교 간다는 사실에 그다지 긴장도 흥분도 되지 않아 무덤덤했는데, 지금 이렇게 여자들과 캠퍼스를 거리를 거닐고 있으니 약간은 기분이 좋아졌다. 의외로 즐겁다고 할까? 과거에 다녔던 대학은 친구가 없다보니 수업 끝나면 집에 가서 게임을 하거나 귀찮으면 수업을 빼먹는 일도 많아서 이런 기분을 느껴보지를 못했었다.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전 아무거나 괜찮아요. 오빠.”

“그러면 간단하게 학식 먹어요. 전 조금 있다가 또 강의가 있어서요.”

괜히 차타고 나가긴 좀 그렇고 해서 시황은 학식을 먹자고 했다. 간만에 만난 팬인 만큼 맛있는 거 사주고 싶었지만 강의 때문에 멀리 나갈 수가 없었다.

“네! 전 아무거나 다 좋아해요.”

“고운 씨는 괜찮다는데 보영 씨는 어때요?”

“저, 저도 괜찮아요.”

시황이 얼굴을 바라보며 말하자 보영은 차마 시황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얼굴을 약간 숙이고는 대답했다. 귀가 새빨개진 걸 보면 남자랑 얘기하는 거 자체를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황도 과거에 여자랑 대화 자체를 잘 못했기 때문에 충분히 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남중, 남고나 여중, 여고 테크트리를 타고 좀 소심하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일이기도 했지만.

근처에 있는 학생식당에 가서 원하는 메뉴를 고른 뒤에 밥을 받아와 기다란 테이블에 앉았다. 밥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제법 소란스러웠다.

“맛 괜찮아요?”

“네. 오빠. 정말 맛있어요.”

시황이 먹어본 바에 따르면 고운처럼 저렇게 정말 맛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저냥 먹을 만한 수준. 강의가 아니었다면 꼭 여기 와서 먹을 이유가 전혀 없는 맛이기도 했다.

“오늘은 제가 강의가 있어서 그냥 학식 먹었는데 나중에 고운 씨랑 보영 씨한테 밥 맛있는 걸로 사드릴게요.”

“정말로 감사해요. 아, 기대된다.”

“가, 감사합니다.”

오늘만 볼 사이도 아니고 같은 과라 학교 다니면서 계속 볼 사이인데 친해져서 나쁠 건 전혀 없었다. 고운이도 고운이지만 저 보영이라는 애는 키가 아루처럼 작고 생긴 것도 어린 티가 가득한데다 부끄럽고 소심한 모습이 가득해, 시황은 왠지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고 오빠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희보다 나이 많으신데 자꾸 존댓말 쓰시면 불편하시잖아요.”

“그럴까? 보영이도 괜찮아?”

“네, 네. 저도 괜찮아요. 전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시황이 자연스럽게 보영에게도 묻자 보영이 귀를 빨갛게 물들이며 대답했다. 친구와 있을 때는 말 잘하다가도 모르는 사람이나 이성을 만나면 급격히 소심해지는 보영이 같은 아이들은 말을 계속 걸어줘서 친밀성을 높이는 게 중요했다.

“오빠, 그런데 서울에도 카페 케즈론이 생겼다고 하는데 그거 오빠가 새로 하시는 거에요? 팬카페에 가도 그런 글 못 봐서 생긴 지도 몰랐어요.”

“팬카페? 설마 내 팬카페?”

“그럼요. 오빠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팬카페에 카페 케즈론에 관한 글도 자주 올라와요. 거기 커피 정말 맛있다고 다들 칭찬이 자자한 걸요.”

“부끄럽네. 팬카페라니.”

세렝게티에서 방송 안한지도 제법 됐고 별다른 게 방송 나간 것도 없는데 팬카페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제 아무리 시황이라도 약간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하여튼 서울로 이사 오면서 지방에 있던 건 부모님한테 맡기고 서울에 새로 하나 냈어. 시간나면 한 번씩 놀러와. 맛있는 거 줄 테니까.”

“우왕, 그렇구나. 오빠가 하니까 당장 가봐야죠.”

“카, 카페 케즈론! 거, 거기 설마 오빠가 운영하시는 거예요?”

당연하다는 듯 얘기하는 시황과 고운의 말에 보영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 대단한 카페 케즈론의 주인이 눈 앞에 있다는 게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다.

“응. 오픈한지 이제 이틀째인가 그렇지. 다들 밥도 다 먹고 했으니까 내가 초콜릿하고 초코 쿠키 줄게. 우리 카페에서 초코 쿠키는 팔아도 초콜릿은 안 팔거든. 초콜릿은 너무 맛있어서 사람들한테 다 팔 양이 안 돼서. 하하.”

시황은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내는 척 하며 아공간에서 초콜릿이 든 상자를 집어서 꺼냈다. 이것도 하도 많이 해서 이젠 정말 완벽하게 가방에서 꺼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약간은 소녀틱한 감성이 묻어있는 반짝반짝한 상자였다. 그냥 이대로 선물해도 제법 괜찮을 정도로 상자 자체의 디자인이 탁월했다.

“20개 정도 들었을 거야. 둘이서 나눠먹어.”

“예쁘다. 오빠, 이 상자 저 가져도 될까요?”

“응. 편한대로 해.”

“감사합니다. 보영아 초콜릿 먹어. 자.”

상자의 뚜껑을 연 고운은 초콜릿을 집어서 보영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보영이 정말 감동받은 표정으로 초콜릿을 받더니 빠르게 입 안에 집어넣었다.

“아……. 맛있다.”

그리고 당연하게 이어져 나오는 감탄사.

“자, 이건 쿠키.”

시황이 쿠키가 든 상자를 건네주자 이번에도 고운이 빠르게 받아들었다. 시황이 준 상자인 만큼 집에 갖다 놓고 장식해둘 생각이었던 것이다. 사실 시황에게 말은 했지만 시황의 사진을 프린트해서 벽에 걸어두기도 했었다.

상자를 열자 이번엔 보영이 빠르게 쿠키를 집어서 먹었다. 아까 고운에게 카페 케즈론에 가자고 얘기를 하더니 정말 맛있어 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감격스러워 하면서 먹고 있었다.

“맛있어?”

“네. 정말 맛있어요. 오빠의 마음만큼이나 부드럽고 맛있는 거 같아요. 아마 오빠의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이겠죠?”

“으, 응. 그래. 고맙다.”

민망할 정도의 칭찬에 시황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런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고운이 대단하다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팬이 되면 저런 감성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일까?

“이, 이정도 양이면 엄청 비쌀 텐데…….”

“부담 안 가져도 돼. 고운이랑 보영이랑 처음만나서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도 괜찮고.”

보영의 말대로 시황이 준 초콜렛과 초코 쿠키의 가격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조그마한 초코 쿠키 3조각에 8천원. 20개니까 대략 5만 원 이상에다 초콜렛까지 생각하면 10만원은 우습게 넘길 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건 가격도 가격이지만 시간에 맞춰서 찾아가지 않으면 항상 금방 다 팔려서 먹지도 못할 정도로 유니크한 디저트이기도 했다.

쿠키도 쿠키지만 시황이 준 상자를 가져서 기분 좋은 고운과 쿠키와 초콜릿을 먹고 감격한 표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보영과 식당에서 빠져나왔다.

“난 이제 다음 강의가 있어서 가봐야 슬슬 가봐야 할 거 같네.”

“오, 오빠, 저기 전화번호 교환해도 될까요?”

“물론이지.”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고운, 보영과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그럼 이제 갈게. 다음에 보자.”

“네. 오빠 나중에 문자할게요. 오늘 정말 즐겁고 재밌었어요. 다음 수업시간에는 옆자리에 앉아요!”

“안녕히 가세요.”

고운과 보영과 헤어지고 시황은 다음 강의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나쁘지 않은 대학 생활이 될 거 같았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좀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요즘 일이 좀 바빠서.. ㅎㅎ;

새벽에도 올리도록 할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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