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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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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학교가시는 건가요?”
“그렇지. 오늘부터지.”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수란이 말을 걸자 시황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드디어 그 날이 온 것이다. 옛날이었으면 감히 꿈조차 못 꿨을 그 대학에 오늘부터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정말 좋다든가 기대감이 넘친다든가, 흥분된다든가 하는 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다시 학교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피곤하고 귀찮은 느낌마저 들었다.
별다르게 챙길 건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케즈론의 성에서 백팩을 하나 집어 들고 왔었다.
[테로미어 가방. 무게를 500그램 줄여준다. 좀 더 비싼 가격의 가방을 산다면 줄어드는 무게가 증가하게 된다.]
최하급 마법 물품들 중에서 고르다 보니 무한대로 들어가는 가방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고 딱히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학교갈 때 어울리는 심플한 디자인의 가방이면 충분했다.
“저도 따라가도 돼요? 오빠랑 같이 학교가고 싶어요.”
슬슬 나갈까 하고 가방을 집어 드니 아루가 옆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 아루야. 오늘은 안 되고 나중에 시간나면 같이 놀러가자.”
“네. 오빠. 그러면 가기 전에 키스해주시면 안 돼요?”
“아루가 해달라면 해줘야지.”
시황은 아루를 끌어안아 가볍게 키스를 해주고 주차장으로 가서 BMW M6를 탔다. 걸어서 몇 분밖에 안 걸리는 걸어서 가겠지만 제법 거리가 있다 보니 차가 필수였다. 그런데 학생이 이런 차 끌고 다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세워놓으면 누구 차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잠깐 고민했지만 별 문제는 없을 거 같아 바로 시동을 켜고 학교로 운전했다. 대략 30분 정도를 달려서 서울대학교에 도착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 애초에 찬미랑 유미, 그리고 자신이 다닐 거리를 생각해서 집을 구한 거니 먼 것도 이상하긴 했다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 등교를 하던 학생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BMW M6는 람보르기니니 페라리니 하는 차들보다 못하긴 했지만 2억 원에 가까운 가격인 만큼 평범한 20대가 사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차이기도 했다.
“오, 차 쩐다. 집 엄청 부자인가 봐?”
“개부럽다. 난 경차라도 하나 있으면 진심 소원이 없겠는데.”
“괜히 허세 부리려고 렌트한 거 아냐? 알고 보면 그러는 놈들 은근히 많거든.”
혼자 지나가는 남자들은 꼭 한 번씩 차와 시황을 번갈아 봤고 친구끼리 가는 사람들은 차와 시황을 본 뒤에 별의별 추측을 다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선이 너무 많이 쏠리자 시황은 괜히 차를 들고 왔나 하는 생각에 빠르게 걸음을 옮겨 강의실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차에서 멀어져야 흘끔흘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없어질 테니까.
처음 들어갈 수업은 전공이었다. 강의명은 영어학입문. 아무래도 1학년이다 보니 처음부터 영미희곡이니 영시니 하는 수업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수업은 아무리 네이티브 수준인 시황이라고 해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어가 모국어라고 시나 고전문학을 잘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시황은 강의실에 들어가서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대략 3:7정도로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거기다 다들 이제 1학년이라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앳되고 귀여움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대학교 신입생이라는 느낌이었다.
“고운아. 이 수업 끝나고 카페 케즈론 갈래? 오픈한지 얼마 안 된 곳인데, 거기 진짜 대박. 완전 맛있어. 특히 초코 쿠키랑 초코 빵은 빨리 안 가면 다 팔려가지고 먹지도 못해. 난 오픈 날 가서 사먹어 봤는데 아직까지 그 초코 쿠키랑 빵만 생각하면 입에서 침이 고인다니까.”
“카페 케즈론 맛있지. 근데 서울에도 생겼어? 그건 몰랐는데.”
“응. 생겼어. 근데 거기는 다 좋은데 맛있는 만큼 좀 비싸. 그래서 매일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간다니까. 힝.”
시황의 바로 앞에 앉은 여자애 둘이서 카페 케즈론에 대한 얘기를 하자, 시황의 눈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둘 다 이제 막 대학생이라는 걸 티내듯 얼굴에 풋풋함이 가득했다. 특히 둘 중에서 고운이라 불린 애는 약간 고양이 같은 느낌이 나는 애였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것도 그렇고 얼굴이 형태도 갸름한 게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냥 보고 있으면 저절로 눈이 간다.
시황은 당연하다는 듯 프로필을 확인했다.
[강고운]
[나이 : 20세]
[키 : 158.1cm]
[몸무게 : 47kg]
[가슴 사이즈 : 75C]
[섹스 횟수 : 없음]
[임신 여부 : 안함]
앞은 안 봐서 몰랐는데 가슴이 깜짝 놀랄 정도로 커다랬다. 저 키와 저 체중에 C컵이라니. 왠지 앞모습이 상당히 궁금해졌다.
틈틈이 고운이라는 여자애를 쳐다보고 있었으니 금세 자리가 다 차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가 들어왔다. 40대정도로 보이는 여자교수였다.
“여러분들 반가워요.”
보통 첫 수업이 그러하듯 교수는 수업에 대해서 여러 가지 얘기를 해줄 뿐 수업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이미 몇 년간 대학을 다녔었던 시황인지라 교수의 얘기를 설렁설렁 들으며 창문 밖을 쳐다봤다.
3월이 되면서 완연한 봄으로 접어들었다. 새싹이 돋아나고 나무에 생기가 감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패딩을 입을 정도로 추웠는데 이제는 날이 따스해져서 지나가는 여자들의 옷차림도 가볍고 산뜻한 게 보기도 좋았다. 아무래도 겨울은 날이 춥다보니 여자들이 꽁꽁 싸매고 다니니 아쉬운 감이 없진 않았다. 특히 시황은 두꺼운 레깅스는 정말 싫어했다. 단순히 레깅스를 신는 것만으로도 매력이 떨어지는 느낌. 만약 레깅스에 능력치가 붙는 다면 [보온성 +5], [매력 -10]정도가 되지 않을까?
“자, 그럼 오늘 첫날이기도 하니까 맨 뒤에부터 나와서 자기소개를 해볼게요.”
“네.”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풋풋하고 산뜻한 여자애들을 보느라 교수의 말은 건성건성 들었지만 시황은 전혀 당황치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갔다. 드래곤의 유산을 받은 뒤로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데, 겨우 이런 상황에 긴장하고 당황하는 게 말이 안됐다.
“저는…….”
“앗! 노래본좌다.”
칠판 앞에 서서 한번 주변을 둘러보고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왼쪽에 있는 여자애가 제법 큰소리로 말했다. 아까 시황이 틈틈이 보고 있었던 고운이었다. 순식간에 강의실에 있던 모든 눈길이 고운에게 쏠렸다.
“아……. 으……. 죄, 죄송합니다.”
엄청 부끄러웠는지 누가 봐도 확연히 구분이 갈 정도로 얼굴은 물론이고 귀까지 시뻘게져서는 고운은 조그만 목소리로 사과를 했다.
“반갑습니다. 강시황이라고 하고 27살입니다. 서울대에 입학하고 싶어 늦은 나이임에도 도전을 했고,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결실을 맺었습니다. 공부를 준비하며 힘이 들 때면 틈틈이 인터넷으로 노래 방송도 하고 그러다 보니 아까 저 분께서 말씀하신 부끄러운 별명도 얻게 되었습니다.”
시황은 손으로 고운을 가리키자 다시 한 번 눈이 그쪽으로 쏠린다. 그러자 약간 잠잠해졌던 고운의 얼굴이 다시 새빨개졌다.
보통 자기소개라 함은 앞에 나와서 간단하게 이름, 목표 정도를 말하고 들어가는데 시황은 발표라도 하듯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제법 길게 자기소개를 했다.
시황의 발표가 나름 재미도 있고 들을만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고운이 유독 뚫어져라 시황을 쳐다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시황의 소개가 끝나자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 중에서 시황을 뚫어라 쳐다보던 고운이가 가장 열심히 박수를 쳤다. 이쯤 되면 모르는 사람이 봐도 뭔가를 느낄 정돈데 시황이라고 모르겠는가?
하지만 시황은 별다른 티를 내지 않고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잠시만. 노래본좌라고까지 하는데 그냥 들어가면 되겠니? 얼마나 노래 잘하는지 궁금한데……. 여러분들도 궁금하시죠?”
“네!”
교수의 말에 다들 크게 대답한다. 얼마나 노래를 잘하기에 노래본좌라는 낯간지러운 칭호가 붙었는지 정말 궁금해 하는 표정들이었다.
“진짜 잘한다니까. 특히 노래본좌 오빠가 부른 리바이벌의 외로운 밤은 유투브 조회수 2천만에다 그 영상 본 사람들 대부분이 리바이벌 보다 노래 잘한다고 인정했어.”
“에이, 그래도 설마 리바이벌보다 잘할까.”
고운이는 작게 말한다고 친구랑 속닥거렸는데 강의실이 조용하다 보니 그 얘기를 못 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 리바이벌의 외로운밤 조금만 불러보겠습니다.”
“오!”
시황의 말에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흠흠…….”
시황은 목을 가다듬는 척 하며 마기를 끌어올렸다. 꾸준히 수련도 하고 섹스도 열심히 해서 어느새 마기의 양이 제법 늘어있었다.
마력 회로가 단번에 가동되고 노래에 관한 수치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다.
단번에 준비가 끝난 시황은 강의실을 한번 빙 둘러보고 난 뒤에 고운에게 눈을 맞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외로운 밤, 외로운 밤에 견딜 수 없었던…….”
반주도 마이크도 아무것도 없었지만 시황의 노래는 그딴 게 뭐 필요 있냐는 듯 감미롭고 완벽한 울림을 가진 채 강의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완벽한 기교, 완벽한 고음, 완벽한 감정처리. 도무지 흠을 잡으려야 잡을 수도 없었고 시황이 부르는 파워풀하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는 인세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시황이 인사를 하고 자리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강의실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대단하다, 정말 노래 잘한다라는 흔하고 평범한 감탄을 넘어서는 그 본질적인 감동에 다들 잠시동안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우와. 대단하다!”
폭죽이 터지듯 한 번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들 정말 노래에 감동한 표정이었다. 특히 고운은 눈에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그다지 슬픈 노래도 아니고 감정 이입이 될 노래도 아닌데 왜 눈물이 고였는지는 시황조차 이해가 불가능했다.
“감사합니다.”
시황은 살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더 좋았다.
최대치로 출력을 한 마력 회로이기도 마력 회로지만 시황의 감정이나 여러 가지 기교 자체가 늘었기 때문에 옛날보다 더욱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거였다. 마력 회로에 마력을 주입만 한다면야 당연히 노래든 춤이든 뭐든, 잘은 하게 되지만 여기에 감정을 넣고 특색을 가지고 더 본질적인 감동을 주는 건 시전자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다.
“자기소개는 이어서 다음에 하도록 할게요. 시황 군 다음에 나와서 자기소개 하는 학생이 무슨 죄겠어요.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칠 테니까 다들 즐거운 하루 보내도록 해요.”
시황이 부른 노래의 감동 때문이었는지 수업을 마쳤는데도 다들 웅성웅성 거리며 시황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그랬다.
시황이 어색한 분위기를 못 이기고 슬슬 나갈까 하고 가방을 챙기는데 고운이 빠르게 와서는 시황에게 인사를 했다.
“저, 저, 저 오빠 아, 안녕하세요. 저는 강고운이라고 하는데요. 오, 오빠 팬이에요. 오빠 방송할 때마다 제가 강주희라는 아이디로 달풍선도 쏘고 그랬거든요.”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