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유산-257화 (257/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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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에서

“오빠 만화도 그려요? 와, 대박. 오빠는 도대체 못하는 게 뭐에요?”

만화라는 말에 유미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처음 말도 안 되는 노래 실력으로 놀래게 하더니 카페까지 운영하면서 수능 만점을 받아버리는 말도 안 되는 일까지 해버렸다. 그때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는데 이젠 만화까지 그리다니? 사람이 저렇게 다재다능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

“자, 읽어보고 감상평 좀 말해줘.”

시황이 타블렛을 건네주자 유미와 찬미가 감탄을 하며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 받아들었을 때부터 수준 높은 그림체에 감탄이 터져 나오더니 이내 만화에 몰입한 듯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유미와 찬미가 만화에 몰입하자 시황은 수란에게 휴대폰을 가리켰다. 그러자 수란이 시황의 폰으로 몰래 전화를 걸었다.

드르륵!

조용한 거실에 벨소리와 진동이 울린다.

“아, 미안. 잠시 밖에서 전화 좀 하고 올게. 만화 다 보면 수란이한테 감상평 좀 얘기해줘.”

“네. 오빠. 알겠어요. 걱정 말고 전화하고 오세요.”

유미는 만화를 본다고 시황의 말을 듣지도 못하자 찬미가 시황에게 말을 해줬다. 그리고는 찬미도 다시 만화를 봤다.

시황은 전화를 받는 척하며 수란을 지그시 쳐다 본 후에 문 밖으로 나갔다.

“진심 대박이네요. 오빠. 세상에……. 와, 이럴 수가……. 어? 오빠 어디 갔지?”

유미는 얼마나 재밌게 봤는지 시황이 나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잠시 전화하러 갔어. 만화는 어땠어?”

“진짜 대박이야. 이거 팔면 떼돈 벌 거 같은데. 아니, 떼돈만이 아니라 인기도 완전 많아질 거 같아.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재밌네. 그림은 어떻게 그린 거야? 오빠랑 둘이서만 그렸어?”

“거의요. 오빠가 스토리랑 배경을 맡고 저랑 어시스턴트가 캐릭터랑 마무리 하는 식으로 했거든요.”

수란의 말에 유미나 찬미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이 그린 건 아니지만 내 남자가 이정도 능력이라니! 역시 대단해! 정도의 느낌인 듯 했다.

이후로도 유미는 수란에게 만화에 대해 칭찬을 하기도 하고 궁금한 걸 묻기도 하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수란도 제법 흥미 있는 표정으로 유미와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는 게 번뜩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서울 가서 만화를 그릴 거니까 나오는 대로 유미한테 먼저 보여줄게.”

“아싸. 나중에 친구 사귀면 자랑해야지.”

“시황 오빠 없는 만화 보다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요.”

타이밍에 된 걸 느낀 수란은 찬미를 보며 말했다.

“중요한 할 말?”

찬미는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수란에게 약간 당황해서 되물었다.

“네. 이미 아실지 모르겠지만 서울에 있는 집에 은지 언니랑 지숙 언니도 같이 지내기로 돼 있어요.”

“맞다! 그러고 보니까 그 언니들도 같은 집에 사는 거지? 진심 싫다.”

수란의 말에 유미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보나마나 매일 오빠한테 꼬리칠 게 뻔하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빴다.

“시황 오빠는 서울에 내는 카페를 전부 은지 언니랑 지숙 언니한테 맡기려고 하는 거 같아요. 제가 전에 하는 얘기를 들었었거든요.”

“응. 맞아. 오빠가 나한테도 말해줬어. 은지 언니랑 지숙 언니한테 카페 맡기게 할 거라고. 뭐라더라 유진아인가? 하여튼 삼강그룹 회장 딸이랑 패션 브랜드 런칭할 거라 너무 바빠서 카페 관리를 못할 거 같다고 하던데.”

수란의 말에 아루가 맞장구를 쳤다. 지금까지는 조용히 있다가 타이밍이 되자 아주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시황이 한 말을 생각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다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도 아니고 아루의 위치가 시황의 여동생으로 돼 있는 만큼 굉장한 공신력을 가지고 있다.

“삼강그룹이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대기업인데…….”

“유진아? 오빠가 유진아랑도 아는 사이야?”

유미는 삼강그룹이라는 것 자체에 놀란 반면 찬미는 유진아와 시황이 뭔가를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유미는 몰라도 찬미는 시사 상식에 밝다보니 유진아의 얼굴을 신문이나 TV에서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불안감에 찬미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번에 오빠가 일주일동안 전화 못 받은 게 유진아랑 어디 갔다 온다고 그랬던 거 같아요. 저한테 유진아가 생각이랑 다르게 엄청 착하다고 막 칭찬도 했거든요.”

“그, 그럴수가…….”

찬미는 아루의 말에 약간 충격을 받은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물론 단순히 사업상, 일 때문에 간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진아가 시황을 단순히 사업 파트너로만 보냐는 것이다.

찬미는 갑작스레 밀려드는 불안감 때문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벌써부터 안 좋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시황의 매력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유진아라도 넘어가지 않으라는 보장이 없었다.

“언니야 왜 그래? 삼강그룹 회장 딸이면 아줌마 아닌가? 일 때문에 갔다 올 수도 있지 왜 충격을 받고 그래.”

유미는 찬미가 왜 충격을 받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중년은 아니고 이제 24살이에요. 궁합도 안 본다는 3살 차이죠.”

“헐, 진짜? 아줌마가 아니고? 에이, 그래도 대기업 회장 딸이라며? 그런 사람은 막 집에서 결혼상대 정해주고 그러잖아. 언니는 나 때문에 너무 걱정이 많다니까. 언니, 걱정 마. 오빠한테는 나 밖에 없으니까.”

유미는 별 것도 아닌데 찬미가 자기를 지나치게 걱정해주는 건지 알고 오히려 위로를 해줬다. 지금 사건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저도 여자라서 오빠 주변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진 않아요. 제가 봐도 시황 오빠는 매력적이니까요.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오빠와 만족하는 관계가 될 수는 없어요. 주변에 있는 경쟁자를 물리치고 승리자가 되든지, 아니면 적당히 타협을 보든지 결정해야 돼요.”

수란의 말이 찬미의 가슴을 찔렀다. 이때까지 시황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유미의 뒤에서나마 시황의 조그만 사랑이라도 받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건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었다. 시황의 주변에는 지숙, 은지를 비롯해서 수많은 여자들이 시황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렇다 현실은 정글이나 다름없었다. 조금이라도 강한 자가 시황을 쟁취하는 것이다. 이때까지 일부러 무시를 했는지 그런 걸 안 보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수란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대로 가다간 유미나 자신이나 시황의 근처에 머무르지도 못하고 경쟁자들에 의해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시황을 포기하면 편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시황을 포기한 삶 따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버렸다. 시황이 만약 유진아와 사귄다고 해서 실망하고 충격을 받는 게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적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에서 시황을 빼앗긴 자신의 실책이었다.

“언니, 왜 그래? 괜찮다니까? 진정해.”

유미는 넋이라도 나간 듯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찬미를 보며 걱정스러운 말했다.

수란은 그런 찬미와 유미를 보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결과다. 애초에 찬미는 어설픈 거짓말로 속일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정도 진실을 밝히고 원하는 쪽으로 사고를 이끄는 게 편했다. 그래서 유진아의 얘기를 꺼낸 것이다. 유진아야 말로 어찌됐든 그 어떤 경쟁자 중 최상위에 위치한 여자니까.

수란은 이쯤이면 됐다 싶은 생각에 시황에게 코코아톡을 보냈다. 들어오라는 신호.

끼익.

코코아톡을 보낸지 얼마 되지 않아 시황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거실로 들어와 앉았다.

“어? 찬미 표정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루한테 유진아인가 뭔가 얘기를 듣더니 저래요.”

시황의 말에 유미가 잘 모르게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유미가 어린 나이에다 남녀관계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게 없으니 눈에 보이는 은지, 지숙 말고는 유진아에게는 딱히 질투심도 안 생기는 듯 했다.

“오빠……. 정말 유진아랑 다녀오신 거예요?”

“응? 아루가 그런 얘기도 했어? 별 거 아니라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하하.”

“가서 별 일은 없었죠?”

찬미는 제발이라는 표정으로 시황에게 물었다.

“뭐, 사실 유진아가 갑자기 나보고 사귀자는 하더라고.”

이런 분위기면 당연히 아무 일 없었다고 말하는 게 보통이겠지만 시황은 눈치 없는 척 일부러 유진아가 고백한 사실을 밝혔다.

“아…….”

“엑? 진짜요? 그래서 오빠 뭐라고 했는데요?”

찬미는 정말 그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신음 소리를 냈고 유미도 설마 하다가 깜짝 놀라 물었다.

“당연히 거절했지. 우리 유미가 있는데 내가 어떻게 유진아랑 사귀겠어. 하하.”

“꺄! 오빠! 역시 오빠가 최고라니까!”

시황의 대답에 유미는 기뻐죽는 표정으로 시황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자기 때문에 그 유진아도 차버리다니! 시황이라면 그럴거라는 걸 진작부터 믿고 있었다.

하지만 찬미는 유미와 다르게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미 시황에게 고백했다는 거 자체가 한번으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시황의 매력이야 말로 여자라면 빨려들 수밖에 없는 블랙홀 같다는 걸 알기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유진아라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시황을 쟁취하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아니 이제야 깨달았지만 지숙이나 은지는 물론이고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여자들이 시황의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시황은 그런 목적도 모르고 여자들의 호의를 감사히 여길 게 분명할 테고.

이대로는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찬미의 표정이 사뭇 비장해졌다. 원래라면 그저 유미와 시황이 결혼을 하면 그저 뒤에서 시황만 바라보며 살려고 했는데 이대로는 그런 소박한 꿈조차 이루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어떻게든 이 싸움에서 승리해서 유미를 조금이라도 높은 위치에 점하게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어떤 경쟁자가 와도 무너지지 않을 그러한 위치말이다.

비장한 결심을 한 듯 찬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찬미와 유미가 카페 갈 시간까지 찬미의 집에서 시간을 보낸 시황은 모두와 함께 카페로 갔다. 올 때는 그나마 아루를 제외하고 수란만 아름답다보니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 정도만 있었는데 수란과 찬미, 유미가 함께 나가니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주변에서 웅성웅성 거리기까지 했다.

카페에 도착한 시황은 부모님과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한 뒤에 아루, 수란은 물론이고 지숙, 은지와 함께 카페를 나섰다. 오피스텔까지 길을 걸으며 지숙과 은지는 시황에게 아까 유미가 했던 질문들을 했고 시황은 유미에게 대답했던 것처럼 약간 숨기며 말했다.

지숙, 은지는 자신들이 사는 오피스텔에 들어오자 시황의 부모님이 있던 카페에서는 못했던 포옹을 서로 할 거라고 아옹다옹하며 싸웠다.

“강은지, 너 짜증나게 할래?”

“네가 좀 양보하면 안 돼?”

“진정 좀 해. 아루랑 수란이가 보고 있는데 안 부끄러워?”

“칫…….”

시황이 자제해서야 겨우 은지와 지숙은 아옹다옹 싸우는 걸 멈추고 거실에 앉았다.

그제야 상황정리가 대충 되자 시황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까 했던 것처럼 은지와 지숙에게 만화를 보여주고 전화를 받는 척 하며 빠져나갔다.

“오빠 정말 멋있다. 이렇게 만화도 잘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엄친아가 완전 시황 오빠네.”

“만화를 보여드리러 온 건 맞는데 사실 그거보다 중요하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한번 해봐서인지 수란은 지숙의 감탄을 적절하게 하게 끊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하고 싶은 말?”

“어떤 말?”

지숙과 은지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요즘 오빠가 고민이 많아요.”

“고민? 오빠도 고민이 있어?”

“일적인 건 아니고 여자 문제에요.”

여자 문제라는 말에 별 생각 없던 은지와 지숙이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오빠한테 애인이라도 생긴 거야?”

“어떤 여잔데? 설마 유미는 아니지?”

약간 소심한 은지는 겁이 난 듯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지숙은 눈에 띄게 당황해서 눈을 깜빡 거리며 말했다.

“아직 여자가 생기고 그런 건 아니에요. 중요한 건 이번에 오빠가 일주일동안 삼강그룹 회장의 딸인 유진아와 일을 했는데 그 유진아가 오빠한테 고백을 했어요.”

“그, 그럴 수가…….”

은지는 엄청난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고 그나마 지숙이 더듬더듬거리며 대답을 했다.

“사실 그 전부터 오빠가 말은 안 했어도 찬미 언니에게 마음이 좀 있는 거 같았거든요. 솔직히 저도 여자인 만큼 어느 정도 그런 걸 잘 느끼거든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오빠가 자기 때문에 지숙 언니랑 은지 언니가 매일 싸우는 거 같다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그랬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 찬미 언니가 오빠를 많이 위로해주고 그랬던 거 같아.”

바람잡이도 아니고 수란의 말이 끊어지자 아루가 바로 타이밍 좋게 들어와서 주절주절 말을 내뱉었다. 아루가 약간 인상을 찡그리며 하는 그 말은 은지와 지숙에게 가히 메가톤급의 충격을 선사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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