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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아래에서
남자가 입을 옷은 절대 없다던 유진아에게서 추리닝을 빌려 입은 시황은 빌라 앞에 세워둔 자신의 차를 타고 지방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유진아의 집에 올 때 미리 주변 사람들에게 며칠 못 들어오고 연락도 못 받는다고 말은 했지만 다들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제법 속도를 내서 달리다 보니 4시간이 채 되지 않아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이젠 이 오피스텔에 지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카페 인수인계도 거의 끝이 났으니 당장 서울로 가도 문제는 없었지만 일단 여자들과의 관계를 수습은 하고 올라가야 했다. 안 그러면 거기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다른 사람은 다 괜찮은데 은지와 지숙, 찬미와 유미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오빠! 오빠……. 오빠아!”
시황이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에 앉아 있던 아루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시황을 부르더니 그 다음은 감격에 차서 부르고 마지막으로 빠르게 달려와 시황에게 안기며 불렀다.
“잘 있었어?”
“오빠아……. 정말 보고 싶었어요. 흑…….”
시황은 감격에 벅차서 눈물을 찔끔 흘리는 아루를 들고 거실로 와서 소파에 앉았다.
“오셨어요? 중간에 연락 좀 하시지 그랬어요. 아루가 오빠 전화 기다린다고 하루 종일 휴대폰만 잡고 있었는데.”
“그랬어? 미안 아루야. 내가 중간에 연락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좀 그래서……. 미안해.”
수란의 말에 시황은 아루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상황을 보지는 못했지만 어떤 상황이었을지는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졌다.
“히잉……. 오빠.”
“자자, 진정해.”
시황은 강아지 마냥 자신의 볼에 얼굴을 부비는 아루를 진정시키고 옆에 떼놓으려고 했지만 일주일 만에 만나는 거라 그런지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아루를 안은 채로 수란과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 사이에 별 일 없었지?”
“네. 그다지 별 일은 없었어요. 중간에 오빠랑 사귀는 여자들이 찾아오기는 했는데 제가 잘 얘기해서 돌려보냈으니까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래? 고마워. 그럼 그 건 됐고 만화는 어때? 꾸준히 인터넷에 올리고 있어?”
“안 그래도 그거에 대해서 얘기할 게 있어요. 오빠가 없을 때 제가 몇 편 더 사이트에 올렸거든요. 그런데 갈수록 조회수가 늘더니 이젠 댓글이 300개가 넘게 달려요.”
약간은 사무적인 표정을 짓던 수란의 얼굴이 댓글이 300개가 달렸다는 말을 할 땐 볼이 살짝 상기되며 기쁨이 여실히 드러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땐 제법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던 거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대할 때 약간은 무뚝뚝해졌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아루와의 생활을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줘서 그런 걸까?
“생각보다 더 반응이 좋은 걸? 축하해.”
“고마워요. 하여튼 댓글 300개 달린 것도 중요하지만 그거보다 이틀 전에 출판사에서 연락 달라고 쪽지가 왔어요. 일단은 오빠가 없어서 답장을 안 하기는 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벌써? 생각보다 인기가 많은가보네? 한 번 내가 확인해볼게.”
수란이 옆에 앉자 시황은 아공간에서 타블렛을 꺼냈다. 직접 확인을 해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응? 웬 알람이 있지?”
간만에 꺼낸 타블렛에 알람이 와있었다. 문자나 그런 건 아니었고 퀘스트 앱에서 온 알람 같았다. 전에는 알람 자체가 안 왔는데 자동 업데이트라도 된 듯 했다.
시황은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알람을 확인했다.
[자산 10억 원 이상을 가진 여성과 키스를 하세요.][완료][경험치 400]
[대기업 회장의 딸과 키스를 하세요.][완료][경험치 500]
유진아와 키스를 한 것만으로 퀘스트 2개를 완료했다. 덕분에 900이라는 의외의 경험치를 얻기는 했는데 5레벨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경험치가 한참이나 더 필요했다. 3레벨에서 4레벨 갈 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4레벨에서 5레벨 갈 때의 경험치가 많이 필요했다.
잠깐 계산을 해보던 시황은 이젠 이런 식으로 퀘스트를 하나하나 해서는 답이 없다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드래곤과 섹스를 해서 경험치 몇 만을 단번에 버는 거 아니고서는 지금하고 있는 만화, 유투브 등과 같이 막대한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대충 확인을 마치고 수란이 만화를 올리는 사이트에 접속해서 댓글들을 확인했다. 300여개의 댓글 대부분은 만화에 대한 칭찬과 빨리 다음 편을 원하는 것들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열렬한 반응에 시황은 어느 정도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어서 바로 출판사에서 왔다는 쪽지를 살폈다.
[안녕하세요. 한마음에서 인사드립니다.
저희 한마음은 국내외의 대작 만화들을 출판하고 있는 중견 출판사입니다. 제가 작가님께 쪽지를 드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작가님께서 인터넷에 연재 중인 루스 모룬의 모험과 인연을 맺고 싶어서입니다. 혹시 출판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희 한마음과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쪽지의 마지막에는 연락을 준 출판사 관계자의 전화번호가 적혀져 있었다. 원래라면 인기를 좀 얻고 난 뒤에 직접 출판사를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좀 더 수월하게 출판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바로 연락하실 거예요?”
수란은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마음이면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출판사니까 괜찮을 거 같은데? 일단 내가 연락해볼게.”
시황은 이제는 진정된 듯 볼에 쪽쪽거리면서 뽀뽀를 하고 있는 아루를 옆에 내려놓은 뒤에 휴대폰을 꺼내서 바로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네. 한마음의 김석우입니다.]
[안녕하세요. 루스 모룬의 모험을 그린 강시황이라고 합니다. 쪽지 주셔서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아! 강시황 작가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지금 통화가능하신가요?]
[네. 가능합니다.]
촐랑거리는 목소리가 아닌 약간은 낮고 진중한 목소리였다. 일단 목소리로 판단했을 때는 썩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저희 쪽에서 작가님께서 그린 그림을 보고 정말 감탄을 했습니다. 그림 솜씨는 물론이고 스토리 전개까지 깔끔한 게 정말 대작이라는 느낌이 오더군요. 일단 직접 만나서 계약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되시나요?]
[언제든 시간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만화는 저 혼자 그린 게 아니라 전 스토리만 써주고 그림은 지금 옆에 있는 여자애가 그렸습니다.]
[아아, 그런가요? 굉장한 퀄리티의 만화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스토리 작가분이 따로 계셨군요. 저희 쪽에서 루스 모룬의 모험을 정말 대단하게 생각한 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그런 흡입력 있는 스토리였거든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러면 내일 오후에 시간이 되시면…….]
시황은 내일 오후에 한마음 편집자와 만날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서울에서 제법 먼 지방임에도 직접 찾아온다니까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없었다.
만화 계약 건은 이제 끝났고 좀 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뭐라고 해요?”
“내일 와서 계약에 대해 얘기해보자네. 별 문제 없으면 간단히 계약할 수 있을 거 같아.”
“드디어 계약을…….”
수란은 계약이라는 말에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지구에 와서 가장 신경 쓰고 노력한 일이라 그런지 그만큼 애착이 있는 듯 했다.
“계약 건은 내일 하면 되니까 그건 이제 됐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
“더 중요한 일이요?”
시황의 말에 수란이 약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전에 내가 여자 문제를 해결하는 거 도와달라고 했잖아. 슬슬 그 때가 온 거 같다.”
“아…….”
시황의 말에 수란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황의 여자관계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대충 봐도 어떤지 느낌이 왔다. 사실 사람의 마음만큼 복잡한 것도 없고 남녀 문제만큼 어려운 것도 없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좀 아파왔다.
“일단 다른 여자들은 다 괜찮은데 은지랑 지숙, 찬미랑 유미가 큰 문제거든.”
“그러면 일단 그 분들하고 지금 어떤 관계이고 상황이 어떤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세요.”
수란이 워낙 영특하다 보니 누가 확실히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지구에서 생활하며 보고 듣고 느낀 정보를 토대로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자기가 있든 말든 대놓고 알몸으로 다니거나 섹스를 하는 게 일반적인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만. 뭐, 일부일처제인 나라다 보니 여자 한 명 사귀는 게 당연한 일임에도 대놓고 여러 여자랑 사귀고 다니는 데다, 그걸 또 하나하나 챙겨주고 애정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거 보면 애초에 시황 자체가 평범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는 아닌 듯 했다.
“음, 그러면 처음부터 설명을 해줄게.”
시황은 아예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수란이야 말로 자신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데다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유일한 보조자였기 때문에 딱히 뭔가를 숨기기보단 완벽하게 설명을 해서 도움을 구하는 게 나았다.
“은지랑 지숙은 친한 친구였는데 지금은 나 때문에 사이가 상당히 안 좋거든. 특히 마사지 뒤에 섹스를 할 때는 서로 질투를 해서…….”
시황의 말이 이어지자 수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루와 매일 섹스를 하는 걸 보고 대충 짐작은 했지만 저 정도일지는 몰랐었다. 도대체 어떤 정력을 가졌기에 하루에 서너 번씩 섹스를 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오빠, 나도 오늘 밤에 섹스 하고 싶어.”
“응? 아, 그래. 걱정하지 마. 아루야. 안 그래도 나도 일주일동안 참아서 엄청 하고 싶거든.”
섹스 얘기가 이어져서 그런지 아루가 시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시황이 없는 일주일은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다. 매일 밤 너무 외로워 수란을 끌어안고 잤음에도 견딜 수가 없어서 시황의 사진을 보며 훌쩍거리며 울기도 했었다. 이제 아루의 삶에서 시황을 빼놓고는 성립이 안 될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하던 얘기부터 마무리 짓도록 하죠.”
“그래. 계속 이어서 하자면…….”
오늘 밤 또 자기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에 수란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시황과 아루의 얘기를 끊었다.
한참동안 시황의 얘기가 이어졌고 수란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진지하게 모든 얘기를 다 들었다. 야한 부분이 상당히 많기는 했지만 막장 드라마 못지않게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관계는 상당히 흥미롭기도 했다.
“생각보다 복잡 미묘한 관계네요. 보니까 나름 방법이 있을 거 같기는 한데…….”
“어떤 방법? 이상한 마법 같은 거 쓰는 건 아니지? 그런 건 절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심리 조작이나 생각을 통제하는 마법은 안 쓸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 말을 들어보니까 은지라는 분과 지숙이라는 분의 질투심이 꽤 강한 거 같은데 그걸 역이용하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일단 같은 집에서 지내더라도 큰 문제없을 정도로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오호, 정말? 어떻게?”
시황은 신기하다는 듯 수란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안개처럼 앞이 전혀 보이지도 않는 상황을 말 한번 들은 걸로 어느 정도 해결책까지 생각했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그건 지숙이라는 분과 은지라는 분이 단 둘이 있을 때는 서로 질투심 때문에 싸우지만 외부에서 적이다 싶은 사람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협력 관계가 되는 부분에 착안해서…….”
수란의 말이 술술 이어졌고 그 말을 듣는 시황의 눈이 반짝였다. 확실히 수란이 말한 대로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완벽한 해결책이 되기 위한 토대는 될듯했다.
============================ 작품 후기 ============================
의도치 않게 1위를 찍어서 그런지 코멘트가 시끌시끌하군요. 지나치게 욕설이 많은 코멘트는 삭제 조취하였습니다. 아무래도 보기가 안 좋아서 ^^;;
그리고 관리자는 연재 안 하냐고 질문 주신 분이 계시는데... 저도 마음 같아서는 드래곤의 유산을 하루에 두, 세편씩 올리고 관리자도 연재하고 싶지만 상황이 마땅치가 않네요. 하루에 한편씩 쓰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지쳐서 관리자를 쓸 틈이 없네요. 괜히 똥만 싸고 처리를 안 하는 거 같아 죄송합니다. 틈틈히 관리자를 써서 분량이 좀 모이면 연재를 하도록 할게요. 아무래도 매일 2편 쓰는 건 좀 무리인지라..
배틀은 처음 말했다시피 주가 아니라서 그렇게 자주는 안 나오지만 슬슬 넣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조만간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아예 드래곤의 유산에 나오는 배틀 게임을 소재로 한 글을 하나 쓰고 싶기는 한데 관리자도 연재 못하는 마당에 글을 더 쓰는 건 힘드니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연중 안 하도록 노력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