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3 ------------------------------------------------------
한 지붕 아래에서
“자나?”
시황은 유진아의 숨소리가 옅어지고 규칙적으로 변하자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자는 척 하느라 안 움직이고 누워있었더니 몸이 엄청나게 뻐근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시황은 유진아가 확실히 자는 지 살펴봤다.
“휴, 깊게 잠들었나 보네.”
낮게 중얼거린 시황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옥과도 같은 일주일이었다. 그냥 섹스를 안 하는 거면 별 거 아니었을 텐데 객관적으로 봐도 흔히 보기 어려운 미모를 가진 유진아가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니고 밤만 되면 성기를 만지며 흥분이란 흥분은 다 시켜놓고는 막상 자기 욕구만 채우고 끝내버리니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늘로서 이것도 끝이다. 원했던 목적은 다 이루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만 하면 된다.
시황은 유진아의 머리 위에 있는 보석을 챙겨 대충 아공간에 집어넣고 지구로 이동하는 문을 소환했다. 살짝 열어 보니 환한 빛이 문틈사이로 빠져나온다. 여긴 한 밤이지만 지구는 낮이다 보니 들어오는 빛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혹시 몰라 시황은 최대한 빛이 새어나오지 않게 살짝 연 틈으로 상황을 주시했다. 대기업 회장의 딸이 일주일간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큰 소동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잠시 동안 눈을 부릅뜨고 귀를 환하게 연 상태로 방안을 살폈다. 그런데 예상외로 아무런 소리도 흔적도 없었다. 심지어 침대에 헝클어진 이불 모양도 일주일 전과 똑같았다.
약간 아리송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별다른 문제점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유진아를 옮길 준비를 시작했다.
문을 건너 유진아의 방으로 가서 문 위치를 조절했다. 마음 같아서야 그냥 대충 유진아를 들고 침대에 내려놓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중간에 깨기라도 하면 귀찮게 기억 제거용 플래시를 사용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최대한 침대에 가깝게 문을 두고 가로로 눕힌 뒤에 다시 케즈론의 행성으로 돌아왔다. 여기서도 문을 유진아의 옆에 둔 뒤로 가로로 눕혀 될 수 있는 한 이동범위를 줄었다.
대충 준비가 끝나자 시황은 마나를 끌어올렸다. 아무리 유진아가 여자래도 인간인 이상 기본적인 무게는 쌀 두포 대 이상이었기 때문에 근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유진아의 신체밸런스가 무너지지 않게 조심하며 들어올렸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며 아름다운 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햇빛에 비친 뽀얀 우윳빛 살결과 한손에 쥐고 만지기 좋은 탐스러운 가슴이 한눈에 들어오자 시황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아직까지 견뎌내야 했다.
조심스레 문으로 유진아를 통과시킨 뒤에 침대위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흐음……. 오빠…….”
이제 끝났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려는 찰나 유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시황은 잠시 동안 아무런 움직임 없이 유진아를 쳐다만 봤다.
그런데 단순 잠꼬대였는지 몇 번 더 웅얼웅얼거린 유진아가 깊은 잠에 빠져든 듯 고른 호흡을 내뱉었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쉰 시황은 유진아의 방으로 들어온 뒤에 문을 없앴다. 짧다면 짧고, 기다면 긴 일주일간의 무인도 여정이 비로소 막을 내렸다.
아공간에서 다이아몬드를 꺼내 유진아의 머리 위에 놓고 시황은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유진아의 옆에 누워서 잘까 아니면 거실 소파에 누워서 잘까 고민이 됐던 것이다.
“뭐, 쓸쓸하게 혼자 누워있을 필요는 없지.”
마음을 정한 시황은 자신의 발자국으로 더러워진 바닥을 아공간에서 휴지를 꺼내 깔끔하게 닦아낸 뒤에 유진아의 옆에 드러누웠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유진아가 팔과 다리로 시황을 휘감았다.
혹시 자는 척하는 건가 싶어 움찔해서 시황은 유진아를 쳐다봤지만 그저 단순한 몸부림인지 아까전과 다름없이 규칙적인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아마도 일주일 내내 이렇게 엉켜서 자다보니 무의식중에 행한 행동이 아닌가 싶었다.
부드러운 유진아의 몸이 감겨오자 시황도 유진아를 끌어안았다. 여자의 이 부드러운 살결은 언제 만져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아까 전 유진아가 장난만 쳐놓고 그만둬서인지 이정도만으로도 단번에 성기가 분기탱천하듯 발기했지만 시황은 간만에 느껴보는 이 편안함에 조용히 잠을 청했다.
“우웅…….”
벌써 아침인지 뭔지 모를 빛이 자꾸 눈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유진아는 시황을 안고 있던 손 하나를 빼서 눈 위에 올려 빛을 차단시킨 뒤에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런데 평소와는 뭔가 약간 이상한 느낌이 자꾸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혹시나 싶어 빛을 차단시켰던 손을 다시 시황에게 옮겨 더듬더듬거리며 몸을 만져봤다. 손에 가득 튼실한 엉덩이와 탄탄한 근육이 만져진다. 자신의 기분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시황을 확실히 껴안고 자는데도 미묘하게 거슬리는 느낌에 이번엔 손을 조금 내려 시황의 성기를 더듬거리며 만졌다. 축 늘어졌음에도 묵직한 성기가 만져지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참, 피곤한데 뭐지?”
분명 모든 게 다 잘 있는데도 가시지 않은 기분 나쁜 거슬림에 유진아는 눈을 번쩍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어?”
너무나 익숙한 공간의 모습에 유진아는 잠시 동안 상황을 파악한다고 이마를 찌푸렸다. 제대로 자지를 못해서 그런지 사고가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 오빠! 오빠! 일어나 봐! 얼른! 빨리!”
접촉 불량처럼 끊어졌던 사고가 한순간에 이루어지며 눈을 통해 바라본 정보가 완벽하게 해석되었다.
결국 돌아온 것이다. 그토록 염원했던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으음, 무슨 일인데?”
겨우 3시간이나 잤을까? 얼마 자지도 못한 시황이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빠 우리 현실로 돌아왔어. 밖에 차도 지나다니고 모든 게 진짜야.”
유진아는 정말 기쁜지 방방 뛰면서 이거저거 아무거나 만지면서 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알몸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커튼을 걷어내고 창문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와, 정말이네.”
그냥 잠이나 계속 자고 싶었지만 그러면 뭔가 의심을 살 수가 있었기 때문에 시황은 같이 기쁜 척 창가에 다가가서 말했다.
“아, 너무 행복하다.”
“전부 네 덕이야. 진아야.”
시황은 행복함에 취해있는 유진아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창가에 선 아름다운 미녀와 그 미녀를 뒤에서 끌어안은 건장한 남자는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겉보기엔 예술적일지 모르지만 현실은 유진아의 부드러운 살결에 닿은 시황의 성기가 단단히 흥분을 해서 순식간에 발기를 해버렸다. 예술이든 뭐든 본능은 이길 수가 없는 법이니까.
“오빠 덕분이지.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유진아는 180도 빙글 돌아 시황을 마주 보며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렇게 무사히 시황과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너무 행복했다.
잠시 동안 서로가 서로를 응시하더니 특별한 신호나 말도 없었음에도 자연스럽게 키스를 시작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완벽한 타이밍의 키스.
딱히 엄청난 테크닉을 사용한 건 아니었지만 분위기에 취해서 유진아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황홀함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자기 스스로가 인지조차 하지 못한 사이에 시황의 엉덩이에 손을 옮겨 살며시 움켜쥐어버렸다.
시황이 자는 사이에 워낙 여기저기를 만지는 게 습관처럼 되다보니 생각을 하고 자제를 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저절로 시황의 몸을 더듬는 게 당연시 되어버렸다.
유진아가 시황의 엉덩이 말고도 몸 여기저기를 더듬는 사이에 키스가 제법 길게 이어졌다. 시황은 이쯤이면 그만할까 하고 입술을 떼려고 했는데 그 낌새를 눈치 챈 건지 유진아가 시황의 목에 팔을 둘러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덕분에 시황은 한참동안 더 길게 키스를 하고나서야 겨우 풀려날 수가 있었다.
“아……. 오빠 나 지금 말로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행복해.”
키스를 끝낸 유진아가 시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는 게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듯 했다.
“나도.”
시황은 다정하게 웃어주며 유진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맞다. 우리가 찾은 보석은 어떻게 됐지? 그것도 여기에 왔을까?”
“아! 보석. 너무 기뻐서 깜빡하고 있었네. 오빠랑 나랑 침대에 있었으니까 보석도 침대에 있지 않을까?”
시황의 말에 유진아는 껴안고 있던 손을 풀고 침대로 갔다. 좀 더 오래 시황과 껴안고 이 행복함을 느끼고 싶었지만 보석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했다.
“앗! 있다. 오빠 침대에 있어.”
“혹시 모르니까 열어서 확인해봐.”
시황의 말에 유진아는 침대에 놓여있는 보석함을 집어 들고 뚜껑을 열었다. 순수한 핑크색을 지닌 아름다운 다이아몬드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정말 예쁘다. 세상에 이런 다이아몬드가 있다니.”
시황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 다이아몬드는 눈을 못 뗄 정도로 아름다운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다 잘 된 거 같으니까 우리 이제 슬슬 씻고 밥 좀 먹자. 배고파서 죽을 거 같네.”
“아, 응. 오빠. 그렇게 하자.”
시황의 말에 정신을 차린 유진아는 보석함을 탁자위에 올려두고 시황에게 어디서 씻는지 위치를 가르쳐줬다. 마음 같아서야 시황과 즐겁게 장난치며 같이 씻고 싶었지만 아직 그런 걸 할 사이는 아니다 보니 부끄러워서 말로 꺼낼 수가 없었다. 아직은 알몸으로 지내는 게 다라고 할까?
유진아는 시황이 샤워하는 사이에 방에 딸린 샤워실에서 샤워를 했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니 기분 좋은 나른함이 몰려왔다. 그런데 긴장이 풀려서일까? 방금 전에는 무턱대고 기쁘고 행복하기만 했는데 뜨거운 물에 몸을 적시니 갑작스럽게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시황이 떠나가면 이 좋았던 관계가 흐지부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전에 말한 자기를 좋아한다는 여자들에게 빠져 시황이 더 이상 자신을 만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온갖 불길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서, 설마……. 오빠는 그럴 사람 아닌데.”
유진아는 고개를 흔들며 불길한 상상들을 지워버렸다. 그래. 설마 현실로 돌아왔다고 시황이 자기를 버릴 리가 있겠는가?
혹시 몰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말 꼼꼼하게 씻어낸 유진아가 몸을 닦고 욕실에서 나오자 침대에 앉은 시황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내고 있었다.
순간 움찔한 유진아가 재빠르게 시황의 아랫도리를 쳐다봤다. 다행스럽게 수건 같은 걸로 가리지 않은 상태. 보통 때라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이런 사소한 변화마저도 두려웠다.
“오빠 피곤하지? 우리 다시 한숨 잘까?”
왠지 시황이 이제 집에 돌아간다고 말할 것만 같아 유진아는 재빠르게 말을 했다.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시황을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하고 싶었다.
“약간 피곤하긴 한데 그거보다…….”
“오, 오빠! 눈이 빨간 게 엄청 피곤해 보이네. 일단 자고 나서 뭐 하든가 하자.”
닦던 수건은 대충 욕실 앞에 던져 둔 유진아는 침대 위에 올라간 뒤에 시황의 손을 잡아 침대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섹스를 하자는 신호같이 느껴질 정도로 야릇한 행동이었다.
“아니, 잠은 됐고 일단 밥부터 먹자. 거기서 과일만 먹었더니 밥부터 엄청 먹고 싶네.”
“아! 밥. 그러면 나가서……. 아니아니, 여기서 시켜먹자.”
실수로 나가자고 말할 뻔 했던 유진아는 급하게 말을 바꿨다.
“그래도 되고. 그러면 찌개 같은 걸로 하나 시켜줘. 얼큰한 거 먹고 싶네.”
“응. 알았어.”
시황의 말에 유진아는 그나마 몇 번 시켜먹었던 부대찌개 집에 주문을 했다. 일단 이렇게라도 시황을 잡아둘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가 된다.
“아! 밥이 없구나. 오빠 잠시만. 나 밥 좀 안치고 올게.”
“응. 난 누워서 TV나 보고 있을게.”
유진아는 잽싸게 부엌에 나가서 쌀을 씻고 전기밥솥에 밥을 안쳤다. 요리를 자주 안할 뿐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한 번씩 직접 요리해 먹는 걸 나름 좋아하기도 하니까.
대충 준비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자 시황이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그냥 시황이 어디 못 나가게 침대에 묶어놓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